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장바구니담기




볼테르는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고 말한다. 해럴드 블룸 같은 이는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라고까지 말한다.
– 7쪽
에드먼드 버크는 편견을 일컬어 ‘인류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집단적 지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1쪽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말처럼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제아무리 영어 도사들이 많이 출현해도 그들이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외래 문명의 새로운 개념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 어휘와 개념,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풍성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일본의 번역 활동을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한 고종석의 평가는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나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21쪽
서양 철학자 강영안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2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번역 작업을 통해 서양 문화를 수용하고자 애쓴 일본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철학은 일본을 통해 번역된 서양 철학 용어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서양 철학이 한국에 수용된 시기가, 번역에 대한 고뇌와 시행착오가 일본인들을 통해 거의 끝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쓰고 있는 학문 용어들을 마치 옛 조선총독부 건물 헐어내듯 일거에 철거한다면, 우리는 논문은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 23쪽
도교의 개념은 불교의 초월적 관념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했다. 예컨대 도가 철학의 중심 개념이며 예부터 중시되어온 용어인 ‘도’는 때로 가르침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다르마’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른 경우 ‘도’는 ‘교화’라는 의미의 ‘보디’ 또는 ‘요가’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불멸의 인간을 가리키는 도교 용어인 ‘진인’은 ‘완전히 교화된 사람’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아르하트’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무위’는 불교의 궁극적 해탈인 ‘니르바나’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 32쪽
불문학자 김화영의 표현대로, ‘참다운 번역은 원작은 가치에 대한 이해에서 생겨난 존경과 감동’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한 번역은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노동일뿐이다. 자신이 각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나 전공하는 분야의 텍스트를 선정해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 110쪽
역주는 번역자가 독자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성의요 배려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결국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고, 번역자가 한 권의 책을 번역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원문의 의미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미심쩍은 부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목을 짚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번역자? 나는 그런 번역자를 신뢰할 수 없다.
– 122쪽
충실성에 중점을 둔 번역, 가독성에 비중을 둔 번역 등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지닌 번역서가 출판되어 독자들이 ‘골라 읽는 재미’를 만끽하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리라.
– 143쪽
당시(18세기) 사회 지도층은 독서가 너무 지나치게 보편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하층계급의 독서량 증가로 가져올 위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컨대 자유주의의 비조로 알려진 존 로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 157쪽
당연한 일이지만, 번역자와 편집자에게는 각기 고유 영역이 있다. 번역자에게는 일차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할 의무가 따른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액튼 경이 말했듯이 ‘정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 반면, 편집자에게는 넘겨진 번역 원고를 ‘다듬는’ 임무만을 맡겨야 한다. 정확성의 의무까지 편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 160쪽
학문적 자부심에 충만한 학자들은 자신의 문장력에 대해서도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쓰기에 약점이 추호라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장에 대한 편집자의 지적을, 마치 자신의 논문이 비판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고 정색을 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 161쪽
“진정 ‘이상적인’ 작가는 자기 작품의 홍보며 표지며 책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일일이 자기가 확인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항상 결과적으로는 출판사 측의 판단은 존중하고, 출판사 측이야말로 자기 못지않게 책을 많이 팔았으면 하는 쪽이란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랜덤하우스 설립자 베네트 서프)
– 161-162쪽
“번역이 바라는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채 편집자에게 넘어오는 경우, 편집자는 고심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제 있는 부분을 다시 번역하거나, 새로운 역자를 찾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수위에서 교열 작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번역자와 편집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대로 책을 내자는 뜻을 서로 잘 이해해 별다른 대립이나 갈등이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서로의 자존심 내지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고집 때문에 불편한 관계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책이 나오더라도 감정의 앙금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며, 책의 완성도도 떨어진다.”(전응주, ‘역자에게 멱살 잡힌 사연’, 2004년 8월 26일 교수신문)
– 163쪽
나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 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서와 편집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아직 문화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 167쪽
“출판인은 대학 총장에 못지않은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총장이 훌륭한 교수를 찾아서 학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과 출판인이 좋은 저자를 찾아내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는가?”(현암사 사장 조상원)– 169쪽
“서적의 우량 여부 평가는 독자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자기 돈을 꺼내어 그 책을 사는 데서 결정된다. 사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효용에 의해서 도서의 구매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일조각 사장 한만년)
– 173쪽
김교신은 책을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서재란 마치 ‘군함’과도 같아서, 마치 해상에서 전투가 발발했을 때 대포가 필요할지, 소총이 필요할지 알 수 없듯이, 서재에서 글을 쓸 경우에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적 생활자에게 책은 양도할 수 없는 값진 무기이다.
– 19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한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전자는 귀중한 것이고 후자는 비천한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는 존중하지만 이기주의는 전적으로 배척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존중한다. 자기를 존중함과 동시에 또한 남도 존중한다. ……개인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우치무라)– 208쪽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또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동초서초하여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번역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작품의 문자 그대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르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없고 또 전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부분의 철저한 해석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인용출전에 대한 완전한 조사를 강요당한다.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그 번역자의 스칼라십이 완전히 노출된다.”(김용옥)– 220쪽
저명 학자들의 조악한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조악한 상품에 그럴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이태원의 가짜 외제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주간동아’ 제279호(2011년 4월 12일))
– 231쪽
저의 경우에는 함께 번역한 사람들이 전부 저보다 나이도 많고 학력도 높고, 개인적 관계로는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보니 처음에는 남의 글에 손을 대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일이 안 되니까 전체 논의 하에 수정을 적극적으로 할 것, 다른 사람의 수정에 대해 낫다면 전적으로 수용할 것, 개인적 감정을 갖지 말 것 등을 합의하게 되었습니다.(저자의 주간동아 글에 달린 댓글, ‘또 다른 번역의 문제점은’, ID: 번역의 실제)
– 254쪽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때문에 독자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어떤 저자도 아침에 5분, 저녁에 5분 하는 식으로 책을 쓰진 않았으므로 그런 식의 독서는 이인삼각 경기를 파탄 낸다.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해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폭풍처럼 읽어야 한다.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5”)– 263쪽
김영민은 우리 학계에서 중요시되는 미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김밥 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틀에 꼭 끼어서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기, 재주 없이도 오래 버티기, 인용과 표절 능력, 명절치레나 관혼상제 챙기기’(“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 263쪽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의 모든 것
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년 3월
장바구니담기




아마존의 사내 습관은 매우 특이하다.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나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직원들은 자신이 발표할 내용을 여섯 페이지짜리 산문 형식으로 써야 한다. 베조스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언론 보도용 기사 스타일로 서류를 작성한다.
– 17쪽
“저희는 사람이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무의식적 성향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홉스(국제 디자인 회사 펜타그램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의 직원)가 말한다. 그들이 조사한 내용 가운데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 좋은 책은 독자를 책이 열어주는 세계로 빨아들여, 손에 든 책을 읽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베조스는 나중에 이것을 디자인의 최고 목표라고 불렀다. “킨들은 독자들이 작가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도록 길을 내줘야 합니다.”
– 294쪽
오래된 책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법적인 제약이 많았다. 1990년 말 이전에 출간된 책의 경우 디지털 판권의 실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출판사들은 이 문제를 작가나 이에전트들과 다시 상의하기를 싫어했다. 그들이 이를 전체 계약의 재협상 기회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305쪽
베조스는 인기 도서와 신간의 디지털판에 일괄적으로 9.99달러를 매겼다. 이 가격을 뒷받침할 어떤 조사도 없었다. 그저 베조스의 직감에 따른 결정이었다. 애플 아이튠스의 디지털 싱글당 99센트라는 가격이 성공적인 것을 보고 비슷한 방법으로 가격을 매겼다.
– 310쪽
“왜 책은 아날로그의 마지막 보루일까요?” 베조스가 물었다. “문제는 책처럼 고도로 진화했고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물건을 더 향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2007년 11월 19일, 맨해튼의 W 호텔)
– 312-313쪽
“다른 단말기들은 다 실패했으나 킨들이 성공한 까닭은 우리가 이 일에 거의 집착했던 덕분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예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이행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었지요.”(킨들 부서에 합류한 러스 그랜디네티)
– 313쪽
“책이 죽은 나무에 계속 인쇄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제프 베조스)
– 316쪽
아마존의 다이렉트 마케팅 툴은 중앙집중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품목 책임자들도 특정 품목을 구경하고 사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메일 광고를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이메일은 살까 말까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사는 쪽으로 살짝 밀어보낸다. 아마존의 연간 매출 중 수억 달러가 이러한 방법으로 발생했다.
– 399쪽


 
 
 
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 - 영혼 있는 직장인의 일 철학 연습
배리 슈워츠 & 케니스 샤프 지음, 김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2년 2월
장바구니담기




실천적 지혜의 핵심적 특징
1. 현명한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행동의 참된 목적을 안다. 이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올바로 행동하려 하며 자신이 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한다.
2. 현명한 사람은 서로 맞서는 목표를 조율하고 각각 특정한 맥락에 맞는 규율과 원칙을 파악하면서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을 안다.
3. 현명한 사람은 통찰력이 있고,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며, 흑백 원칙을 넘어 주어진 상황의 회색 영역을 보는 식견이 있다.
4. 현명한 사람은 다른 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안다.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므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 전환 능력 덕분에 현명한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학생이나 환자, 친구 등 상대에 맞게 의사 결정을 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 40쪽
5. 현명한 사람들은 감정도 이성 쪽으로 끌어들인 다음, 감정을 바탕으로 상황이 보내는 신호를 파악하고 감정의 왜곡 없이 판단을 내린다. 현명한 이들은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느끼거나 직관으로 ‘알아채므로’, 시간을 다투는 사안에서도 지체 없이 행동한다. 이들은 감정과 직관이 잘 발달해 있다.
6. 현명한 사람은 노련하다. 실천적 지혜는 일종의 기술이며, 노련함은 적절한 경험이 있어야 쌓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감하게 행동해야 용기를 배운다고 말했다. 정직, 정의, 신의, 배려, 경청, 조언도 마찬가지다.
– 40쪽
윤리 담론이 지혜가 아닌 규율을 다루는 점은 당연해 보인다. 실천적 지혜는 모호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지혜는 흑백 영역이 아니라 회색 지대에 놓여 있다. 또 맥락에 의지한다. 그래서 일련의 규칙은 다른 이에게 전수가 가능하지만, 지혜는 경험으로 길러야 한다. 그래서 현명하지 못한 사람에게 ‘판단력을 발휘하도록’ 재량권을 주면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 64쪽
고립된 사건이나 에피소드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서사 덕분에 우리는 살아온 내력을 이해하고 우리 앞에 놓인 에피소드를 이해한다.
– 90쪽
일이 없다면 모든 인생은 부패한다. 그렇지만 일에 영혼이 없다면 인생은 질식사한다. (알베르 카뮈)
– 351쪽


 
 
2014-03-2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5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ntitheme 2014-03-31 19:52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시죠?

마늘빵 2014-04-05 05:00   URL
아아, 반갑습니다. 안티테마님. 전 그럭저럭 매일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제가 서재에 뜸하네요. 일도 바빴고, 트위터로 옮기고는 서재를 방치해 두게 됐습니다. ^^ 잘 지내시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사이먼 사이넥 지음, 이영민 옮김 / 타임비즈 / 2013년 1월
장바구니담기




대단히 성공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영감을 주고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가게 만든다. ‘자신만의 성공’이 아니라, ‘여럿의 성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비범한 성공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 12쪽
기업을 만들고 제품을 구상해 시장에 내보내는 일,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뽑아 배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곳에 바로 이 ‘고무망치’가 등장한다. 야근과 휴일근무, 개인의 비상한 노력 따위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또 다른 고무망치가 되어 결과를 그럴듯하게 포장해낸다.
보이는 결과는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조직, 제대로 된 구성원, 훌륭한 리더라면 고무망치가 난무하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며,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들어맞도록 설계를 바꿔나갈 것이다.

*고무망치: 자동차 문의 강판을 두드려 맞추는 도구(밑줄그은이 주)
– 30쪽
가격이라는 조종 전략에는 늘 희생이 따른다. 문제는 수익 중 얼마를 기꺼이 희생할 용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 38쪽
경영 컨설턴트인 한 친구는 자산규모 10억 달러인 회사를 꽤 오랫동안 컨설팅 하고 있다. 그는 회사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무슨 주제든 상관이 없어. 어떤 것에 대해서든 더 나은 장기적 해결책 대신 돈이 덜 드는 쪽을 선택해. 그게 그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야.”
습관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처럼, 습관적으로 솔루션을 찾아 헤매는 이들은 처음부터 꾸준히 제대로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는다. 친구가 고객사에 대해 한 말처럼 말이다.
“다 망친 다음에 또 다시 시간과 돈을 들여서 다시 하지.”
– 45쪽
(구글에 인수된 모토로라를 두고) 진정한 혁신과 그저 새롭기만 한 것을 혼동했던 것이다. – 48쪽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도 빠르고 경쟁의 장벽도 낮은 시대에, 다른 회사들도 얼마든지 최고의 디자이너와 탁월한 엔지니어를 채용해서 애플 제품을 모방해 유려하고 사용이 편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애플의 직원을 빼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지 않을 것이다.
애플의 ‘무엇을’과 ‘어떻게’를 모방하는 것으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애플의 엄청난 시장 영향력을 설명하거나 그걸 모방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무언가. 사람들은 ‘무엇을’이나 ‘어떻게’를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를 보고 구매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되풀이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왜’하는가를 보고 구매한다.
– 68-69쪽
바깥에서 출발해 안으로 들어가는 메시지에서 마지막 ‘왜’는 그럴듯하지만 설득력이 없는 위선적인 정보일 뿐이다. 하지만 안에서 출발해 바깥으로 나오는 메시지에서 ‘왜’는 핵심적인 구매 이유가 되고 ‘무엇을’은 그 신념을 실현해낸 유형적 증거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념이란 다른 제품, 다른 회사, 다른 아이디어가 아닌 우리 제품, 우리 회사, 우리 아이디어에 끌리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내는 핵심이 된다.
– 69쪽
소비자의 최우선 사항은 라이프스타일이다. 회사의 ‘왜’가 만들어낸 산물이 제품이듯, 개인의 ‘왜’가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를 구매하게 만든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철학의 증거이듯, 개인이 구매하는 제품 역시 그 사람이 가진 철학의 증거다.
심지어 애플 종사자들조차 ‘우리의 차별성은 품질!’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훌륭한 품질은 물론 중요하다. ‘왜’라는 명분이 아무리 뚜렷해도 제품이 꽝이면 먹힐 리 없다. 하지만 반드시 최고의 품질일 필요도 없다. 그저 ‘괜찮다’, ‘훌륭하다’ 정도면 된다. ‘더 좋다’나 ‘최고로 좋다’따위는 상대적 비교일 뿐이다. ‘왜’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이런 비교는 구매자에게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한다.
– 78쪽
‘직감에 따른 결정’이라는 게 있다. 그냥 ‘이거야!’하는 느낌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감에 따른 의사결정이라고 해서 두뇌가 아닌 다른 어떤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번연계에서 일어난다. 의사결정을 설명할 때 ‘느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직감에 따른 결정이 옳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를 통제하는 대뇌 영역에서 우리의 감정까지 관장하기 때문이다. 직감을 따른다고 하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하든, 그건 다른 신체기관이 아니라 모두 변연계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다.
– 90-91쪽
‘왜’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회사는 경험적인 근거만 제공한 채 의사결정을 강요한다. 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힘에 부치거나 불확실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열망이나 두려움, 의심이나 환상을 이용하는 조종 전략은 아주 잘 먹힌다. 회사는 ‘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감 따위는 품지 못했는데도 회유에 못 이겨 결정을 내린다. 사실 결정의 근거는 모두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와 특장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회사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 92쪽
우리 모두가 지독히 합리적이라면 신생기업은 생겨날 수 없다. 탐험에 나서는 사람도 없고, 혁신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훌륭한 리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은 보다 나은 것을 향한 인류 불멸의 신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신념은 이유 없는 증오, 두려움과 같은 다른 감정도 부추기고 부정적인 행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다수에게 위해를 가하는 테러는 생겨날 턱이 없다.
– 98-99쪽
신뢰는 충성도를 불러일으킨다. 균형이 무너진 골든서클은 진정성이 없다는 의미이고 강력한 관계도 형성되지 못했다는 말이며 신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격, 서비스, 품질, 특징으로만 판매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경쟁자와 똑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진정성이 결여될수록 기업은 가격 인하, 판촉, 집단 압박, 두려움 같은 조종 수단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효과는 있을 것이다. 허나 단기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 109쪽
사업의 목적이, 내가 가진 것을 그것을 원하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나의 신념을 함께하는 대상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의 ‘왜’와 부합하는 사람들을 까다롭게 선별할 때, 비로소 나의 비즈니스에서 신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118쪽
신뢰는 시계태엽 같은 정확성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성공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개인이나 조직이 그들의 직접적 이익과 무관한 일에 열정을 보인다는 느낌이 들 때, 신뢰는 시작된다.
신뢰는 가치와 동행한다. 돈을 많이 버는 가치가 아니라, 가치관 말이다. 가치의 정의를 살펴보면, ‘신뢰가 전달된 것’이라 되어 있다. 자신만의 가치를 가진 사람을 억지로 설득할 수 없다. 무언가가 신뢰하는 누군가를 강제로 납득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뢰는 상대와 내가 동일한 가치와 신념을 공유한다는 것을 서로 알리고 보여줌으로써 생겨난다. ‘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을 통해서 증명해야 한다.
– 121쪽
훌륭한 기업은 기술적으로 숙련된 사람을 뽑은 후 그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으려고 기를 쓰지 않는다. 이미 의욕이 충만한 사람을 채용하여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의욕이 넘치는 사람에게 오히려 지향으로 삼아 더 노력할 무언가를 주지 않는다면, 동기부여가 되기는커녕 금세 다른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136쪽
평균 수준에 있는 기업들은 직원에게 힘써 처리해야 할 ‘업무’를 부여한다. 반대로 혁신적인 조직은 사람들에게 노력하여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공한다.
리더의 역할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혼자서 모조리 생각해내는 게 아니다. 리더의 역할은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업무방식을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조직 내에 있는 사람, 최전방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 143쪽
‘왜’에 대해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있는 회사는 경쟁사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한 경향이 있다. 반면 ‘왜’에 대해 모호한 회사는 다른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 145쪽
공동체든 조직이든 구성원들은 리더가 자신들을 위해 그물망을 쳐놓았을 거라고 신뢰해야 한다. 실재하는 그물이든 정서적 그물이든 자신을 지탱해준다는 느낌이 들 때, 조직 구성원은 궁극적으로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가외의 노력을 경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149쪽
“직원이 먼저입니다. 직원을 제대로 대접하면 직원들이 바깥세상을 향해 제대로 대접하게 되고, 바깥세상은 우리 회사의 제품을 다시 이용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주주는 자연히 행복해지는 거고요. 이것이 진짜로 효과적입니다.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캘러허,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지도자)
– 159쪽
에너지는 동기부여를 해주지만 카리스마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에너지는 눈에 쉽게 보이고 측정하기가 쉽고 모방하기도 쉽다. 반면 카리스마는 정의하기가 어렵고 측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모방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모든 훌륭한 리더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모두 명료한 ‘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184쪽
잡스는 판매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애플컴퓨터가 탄생했다. 목적이 있는 회사였다. 견고한 기존 권력에 맞서는 힘을 개인에게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몽상사와 이상주의자에게 권한을 부여해 현상에 도전하고 성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의, 즉 ‘왜’는 애플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이미 태동했다.
– 276쪽
개인이나 조직의 ‘왜’는 모두 과거로부터 나온다. 개인이나 집단의 교육과정과 인생경험에서 나온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각각의 ‘왜’가 있게 마련이다. 기억해야 한다. 모든 기업 혹은 조직은 어떤 이들이 자신이 설정한 ‘왜’를 자신의 인생에서 증명하기 위해 실행한 ‘무엇을’ 중 하나이다.
– 283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말은 옳다.”(헨리 포드)
– 289쪽


 
 
 
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장바구니담기




특정한 부류의 지식인들은 ‘잠수함의 토끼’ 혹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로 비유되곤 한다. 잠수함이나 탄광의 산소가 부족하면 토끼나 카나리아가 먼저 죽는다. 죽은 짐승들을 본 광부들은 갱도에서 나가고, 잠수함의 수병들은 신선한 공기를 얻기 위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지식인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 26쪽
실명비판으로 인해 비판의 주체뿐 아니라 객체 또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럴 터다.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니 말이다. 실명비판을 당한 사람은 순식간에 ‘객체’가 된다. 더는 집단의 안전한 치마폭에 숨어 있을 수가 없다. 이 경우 대응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강준만을 비판하거나, 어떤 정치적인 수단을 사용해 자신을 비판한 이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다.
– 37쪽
실명비판은 어쨌든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즉 ‘주체’와 ‘객체’를 개인 단위에서 명료하게 드러냈다. 주체와 객체로 이루어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근대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 38쪽
진중권은 스스로 말하듯이 디오게네스, 광대, 거리의 철학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상대방을 조롱할 줄 아는 지식인이었고, 또 조롱할 수 있는 상대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조갑제, 이인화, 이문열 등 극우 지식인들을 실컷 약 올리는 책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진중권은 말의 장터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언어의 시장바닥에 기꺼이 좌판을 벌이고 앉아, 문자 그대로 ‘지나가다’ 같은 아이디를 쓰는 익명의 네티즌들과 선플 악플 무플을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물론 인터넷에서 열심히 활동한 지식인이 진중권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을 완벽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본인이 응용하고 창조하는 경지까지 나아간 사람은 오직 진중권뿐이었다.– 74-75쪽
조갑제의 입을 빌려 박정희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더니, 진중권이라는 디오게네스가 정말 퉤퉤퉤 침을 뱉었다. 그리고 앙시앙 레짐이 무너졌다.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 75쪽
‘디워’ 논란을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러하다. 어떤 이론가가 주창한 방안을 진작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던 한 창작자가 있다. 그런데 이론가는 창작자의 결과물을 보고 진저리를 내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소리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마법 소녀의 주문 같기도 하고 뭔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느낀 대중들은 이론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론가는 기존 독자층을 벗어나 대한민국 최초로 자신을 ‘횽’이라고 부르는 팬 집단을 거느리게 된다. – 83-84쪽
한국에 돌아온 실패한 유학생 진중권이 개척한 길은 그야말로 전인미답이었다. 그는 인터넷이라는 광장에서 질펀하게 뛰어노는 지식인상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동경하는 디오게네스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지식인을 단 한 사람 꼽자면,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진중권은 따라올 자가 없다. 자동차 면허증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항공기 면허증은 있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많은 글을 쓰지만 가장 선호하는 작업실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반경 2킬로미터 안에 하나씩은 있는 PC방이며, 음악에는 조예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울적할 때에는 샹숑을 듣는 지식인의 모습을 진중권은 만들어냈다. 그것을 우리는, 진중권이 선호하는 표현대로라면, ‘존재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93쪽
그는 한창 기세등등했던 한국의 극우들을 향해 단기필마로 달려 나갔던 돈키호테였고, 그 풍차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다른 어떤 지식인도 해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중권이 횽’이 되었고, 그의 정치적 판단력에 대중들이 의문을 표할 무렵에는 우연히 새끼 고양이를 주워 ‘루비 애비’로 거듭났다. 근대인의 영혼을 갖고 있지만 포스트모던한 매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 바로 진중권인 셈이다.
– 96쪽
매체 기고자에게 있어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일 직함을 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너무 튀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평범하면 재미가 없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함부로 참칭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고, 단순히 ‘자유기고가’ 같은 호칭을 쓰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으면서 아무 말이나 떠드는 사람처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좋은 직함을 스스로 지어 붙이면 구차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분야, 생산해내는 원고의 수준, 독자의 눈높이까지 한번에 그려내어 보여주는, 일종의 ‘시적 도약’을 이룩해 낸 직함을 찾아낸 경우라면 그렇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완벽한 호칭을 찾아낸 글쟁이는 단 한 사람뿐이다. ‘지식소매상’ 유시민. – 99쪽
진중권의 독일, 홍세화의 프랑스, 혹은 김어준의 배낭여행에서 보고 들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더라구.’처럼 확고한 지위를 갖는 ‘외국’이, 박노자에게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조국은 이미 망했고, 설령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갓 21세기를 맞은 한국인들에게 삶의 표준으로 제시할 수 없는 구소련이기 때문이다.
– 134쪽
지승호: 글쓰기의 대상이 분명하신 거군요.
김규항: 그렇죠. 내 글을 읽을 사람이라면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죠. 굳이 극우 세력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을 욕하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신이 진보적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과 설득력을 갖는 중간게급 인텔리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이 내 비판의 대상이죠.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까지”, 116쪽)–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