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119 - 전문 약사가 권하는 나이별 증상별 영양제 맞춤처방
정비환 지음 / 부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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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정말 그럴까? 병이 아니라 보다 나은 몸을 위한 '영양보충'을 위한 약이라면 우린 대부분 약사가 아닌 '누가 어디 아픈데 그거 좋데더라..' 하면 내게도 좋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먹는다.문명의 발달은 아니 매체의 발달은 1+1=2다 라는 공식처럼 '00에는 000' 라는 똑떨어지는 답을 주는 광고에 우린 흔하게 노출되어 있고 익숙하게 '000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게 하여 내가 약사가 되어 처방을하여 내몸에 좋겠지 하며 먹는 영양제가 대부분 한두개씩은 있을 것이다.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인 딸들은 원기회복및 모자라는 에너지를 위하여 '홍삼'과 '과립형 유산균' 을 먹고 있다. 그뿐인가 비타민제나 가끔 소화가 안될때를 위해 복용해주는 것도 있고 집에는 녀석들이 먹다가 반도 먹지 않고 남겨 놓은 영양제가 몇 개 더 있다. 그런가하면 남편 또한 원기회복을 위하여 홍삼에 비타민제를 늘 복용하고 있고 가끔 다른 것들을 먹을 때가 있는데 난 그런 약들을 싫어하는 편이고 먹는 것도 잘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영양제를 복용했다면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면 이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곰곰히 따져가며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약사에게 정확한 자신의 몸상태를 먹어야겠지.내 몸을 살리기 위하여 먹는 영양제가 내 몸을 망쳐서야 될까.

남편과 난 무릎이 좋지 않다. 내가 무릎이 아프고 난 후에 그리고 성장기 아이들을 가끔씩 무릎이 아프다고 하여 '글로코사민' 을 구매해 놓은 것이 있다. 그런데 글로코사민도 종류가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을,좀더 세분화되어 알고 난 후에 복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년간 약과 관련한 일을 했기에 약에 대한 노하우를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그동안 너무 무절제하게 몸에 좋다면 마구잡이로 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좀더 자신의 몸을 위한다면 적어도 전문의를 한번쯤을 찾아보며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의보다는 '대중화된 광고'를 더욱 신뢰하고 그말대로 따라하듯 약국에 가거나 내가 어디가 아프거나 부족하다면 '뭐에 뭐' 라는 공식처럼 광고의 약을 찾는다. 그 약하나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약을 만용하기도 한다.하지만 약이란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증상에 따라 모두 다라다는 것을 '전문 약사'를 통해 상담을 거친후에 먹어야 효과도 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 하는 것은 '건강'이다.건강을 위해서 일년에 한번씩은 종합검진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산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그리고 모자란 영양을 보충하기 위하여 영양제 뿐만이 아니라 액성 음료식도 즐긴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뭐가 한가지 좋다면 대형마트에 품귀현상까지 빚는 것이 현대인들의 심리이다. 거기에 물건너 온 영양제는 더욱 좋은줄 알고 복용을 한다. 나 또한 사고로 인하여 골절이 되었을 때 지인으로부터 물건너 온 '칼슘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그 성분을 따져보기에 앞서 우리것이 아니면 더욱 좋을 것으로 판단, 하지만 골절된 뼈는 칼슘제를 복용해도 다른사람보다 더 더디게 붙어갔다. 바른 처방이었을까.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인병' 한가지씩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인병은 현대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채식이 아닌 고기밥상으로의 변화하면서 성인병 또한 노출이 많은데 그런 이유로 3장에는 '성인병에서 내 몸을 살리는 영양제'편을 실어 놓았다. 며칠전에는 갑자기 남편이 며칠동안 윗부분에 열이 오른다고,몸살처럼 열이 올라 내리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왜 그럴까 하며 그냥 진통제와 해열제를 먹다가 병원에 가보니 '고혈압' 으로 인한 열이었다. 주사와 약처방을 받고 괜찮아졌는데 그런 일을 처음 겪어 보아서인지 당황했다. 남의 일처럼 여겼던 일이 이젠 내게 것이다. 고혈압 뿐만이 아니라 비만,당뇨,고지혈증, 암,골다공증,퇴행성관절염,그리고 한참 드라마에서도 다루고 있는 '치매' 등에 어떻게 대처하며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다루었다. 현대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병,하지만 나만은 꼭 피하고 싶은 성인병으로부터 내 몸을 살리는 영양제가 있다. 남편의 갑작스런 고혈압 증상을 겪어 책을 받고 그 부분을 먼저 읽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부분도 먼저 찾아 읽게 되었다. 이렇듯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어도 좋고 모두를 읽어도 좋을 책이다.

더 나아가 4장에서는 '영양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에 대하여 다루었다. '웅담 성분이 피로 회복에 좋다?' 한참 광고 '0때문이야..0때문이야..' 때문에 피로하면 꼭 그 제품을 먹어야 할 것만 같이 어떤 제품은 정말 깊게 각인되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잇몸약은 잇몸 보약일까?' 잇몸약 또한 늘 복용해 주어야 할 것만 같은데 읽어보면 답이 나와 있다. 정말 재밌는 것은 '영양제 회사에는 영쟝제 전문가가 많다?' 정말 오해와 진실이다. 재밋게 읽어가며 내게 득이 되는 부분들을 '영양섭취'를 하듯 쏙 쏙 빼 먹어도 좋을 듯 하다. 난 내가 필요한 부분을 먼저 빼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다. 그렇다고 약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약보다는 음식에서 섭취를 하는 것을 원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가끔씩 '영양제'를 보충해 줘야할 때가 있다면 이젠 '전문 약사' 에게 상담하고 처방을 받아야 할 듯 하다. 모르고 먹는 약보다 알고 먹는 약이 효과는 더할 것이다. 약이란 '플라시보효과' 처럼 먹는것만으로도 효과가 배가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모르는게 약이다'가 아니라 '아는게 약이다'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며 영양제가 필요할 때 한번씩 꺼내어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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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1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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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도 반려견을 십여년이 넘게 키우고 있기에 이 책의 웹툰및 에세이는 정말 100%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올 사월에는 11년동안 키웠던 치와와 '호야'가 갑자기 죽었다. 호야는 작은오빠가 새끼를 내서 언니에게 언니가 새끼를 내서 우리집으로 첫 해에 한마리를 가져온 것이 '호야' 였고 그다음에 암컷이 태어나 또 가져온 것이 지금도 십여년 살고 있는 '여시' 다.아기때부터 아니 그 어미의 어미부터 모두 알고 있고 녀석들의 어미 또한 지금도 건강한 상태는 아니지만 15동안 살고 있어 남들보다는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지난해에는 여시가 갑자기 위급상황이 왔다. 무얼 주워 먹었는지 몸 안에 염분의 농도가 맞지 않았던지 흉수가 가득 찼다. 처음엔 그 이유도 몰랐다. 물을 마시며 목 아래 물주머니처럼 철렁철렁 하게 물이 고여 있는데 여시가 점점 숨을 못 쉬고 죽으려 하여 24시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만 '식도천공' 인 듯 하단다. 몸무게 1kg인데 거대한 링거병을 달고 작은 발에 작은 주사기를 꽂고 녀석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 그 아픈중에도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몹시도 불안하고 싫어하며 울부짖던 녀석,하지만 나아진 것은 없고 내가 사는 곳에서 고칠 수 없고 긴급상황이라고 하고 서울의 커다란 동물병원으로 급하게 가게 되었고 흉수가 가득차고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흉수를 주사기로 두개나 제거를 했다. 그래도 가망이 없이 축 늘어져 있던 녀석,병원비가 장난이 아니라 4일 입원후에 집으로 데리고 왔지만 남편은 거금의 병원비에 난리였지만 십여년 함께하며 내게 준 것을 생각하면 그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날밤을 새며 한달여 간호한 끝에 건강하게 되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데 그 후 갑자기 호야가 호흡곤란을 겪다가 갑작스럽게 숨을 먹었다. 그때도 살려 보겠다고 인공호흡까지 했지만 저녁 10시경부터 갑자기 시작된 호흡곤란은 새벽녁에서 마침표를 찍으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겨우 산소기에 숨을 의지하고 있으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애타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녀석 또한 심장과 폐가 좋지 않았던가 보다.하지만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잘 먹고 잘 놀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11년 생을 급하게 마감한 녀석이 남기고간 빈자리는 말할 수 없이 컸다. 한동안 녀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여시는 호야를 찾아서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하고,그런 녀석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혼자 있지 않으려고 떨어지지 않는 녀석을 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어린애를 하나 키우는 것과 같다. 먹이고 오물치우고 목욕시키고 아프면 보험이 안되는 병원비 앞에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에 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금의 병원비에도 치료를 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하는 시간동안 사람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녀석들이 채운것을 생각하면 정말 잔잔한 이야기거리가 많다. 하지만 동물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그런 사람일수록 한번 꼭 키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게에 주는지,함부로 할 수 없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작가 또한 15년이나 된 늙은 개와 어린 고양이을 키우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품으로 오기까지의 이야기며 한가족이 되면서 가족에게 안겨준 잔잔한 감동들이 내가 반려견을 키우며 느꼈던 사소한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 듯 하여 미소를 지으며 읽었다.정말 꾸밈없고 선한 녀석들의 눈을 볼 수 있는 사람이면 동물확대를 하지 못할 것이다.

식구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도 반려견이다. 나가는 길이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고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을 때는 현관앞을 얼마나 서성이며 기다리는지,어느 날은 현관앞 욕실매트에 앉아 있다가 누워서 기다린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모르겠지만 가족을 기다리는 그 사소함마져 얼마나 큰 감동인지.키워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주인들의 발자국 소리는 모두 알아 듣고 짖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나면 짖는다.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알아 듣는지. 우리집 또한 십여년이 넘게 키우다보니 '동물' 아닌 '영물' 이 되어 서로의 감정을 모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녀석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삐지면 금세 표시가 난다. 기분이 좋으면 온집안을 돌아 다니며 얼마나 또 꼬리를 흔들어대는지 그 사소함이 없었다면 가족간의 대화도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려견으로 인해 가족간의 대화거리도 더 생기고 집안에서도 분위기메이커로 한자리 톡톡이 차지한다. 그런 녀석들의 사소함이 모두 글과 그림속에 담겨 있다. 십여년을 함께 키웠다면 동물이 아니라 '가족' 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적어도 동물을 키울 자격조건이 갖추어지는 듯 하다.중간에 어떠한 이유로 녀석들을 버린 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인 듯 하다.

작가가 반려동물을 키우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경험한 듯 하다.식물 하나를 키우면서도 모든 정성을 주다 새롭게 커나가는 하루 하루가 이채로운데 사람으로 말하면 탄생에서 죽음까지 경험하게 되는 15년이란 세월을 동물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희로애락 모두를 경험하고 생사까지 경험하는 그야말로 인생의 길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 하나 하나 그 기능이 떨어지듯이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거나 귀가 들이지 않게 되거나 성인병이 오거나 다리를 못 쓰게 되거나,그것이 사람보다는 더 빠른 시간이라는 것이,사람보다 더 빠른 시간을 앞서서 보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더해져 키우던 동물을 보내고 나면 우울증 또한 깊어진다고 하는데 한번씩 키웠던 사람들은 그 '정' 이 무서워서 다시는 못 키울것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늙은개가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점점 다른 기능들도 잃어갈텐데 세월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하겠지만 녀석이 가고 없다면 그 빈자리 또한 클 듯 하다. 우리집 개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단숨에 읽어버린 이야기지만 잔잔한 감동과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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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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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녹두 장군 전봉준이 김경천이 자신을 밀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알고서 피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쓰여졌을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순순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인 전봉준, 그를 내세운 역사동화가 아니라 보부상이었던 아버지가 어느 노스님에게 전해 받은 서찰을 전해야 하는데 가던 길에 갑자기 죽었다.어떻게 할 것인가. 나이도 어린데 그 험한 난리속으로 들어갈 것인가,아님 보부상이었던 아버지를 이어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 이야기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부상의 의무를 다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시대의 역사 또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전작 <봉주르,뚜르>와 <해리엇>을 정말 감동깊고 인상깊게 읽어서 그를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역사동화' 다 그것도 '동학'과 '전봉준' 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하면서 전봉준을 앞세우진 않겠다고 한 그의 눈에 한장의 사진이 들어왔단다. 어린 소년이 찍힌 사진, 그 소년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그 역사의 현장에서 말이다. 작가의 예리하게 그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아니 물음표를 가지고 그 소년을 내세워 재밌고도 흥미로운 역사동화를 탄생시켰다.정말 대단하다.


노스님과 아버지가 긴한 말씀을 나누고 계실 때 소년은 암자의 뒤 커다란 바위에서 '거인의 배꼽' 처럼 생긴 곳에 고인 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니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뭔가 새로운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와 정말 중요한 '서찰' 을 전하려고 길을 떠난다. '이 서찰에는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다.' 서찰에 무어라고 적혀 있기에 아버지는 '한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한다'고 했을까.궁금했지만 아버지 또한 그 내용을 말해주지도 않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그런데 아버지와 소년을 길을 떠나고 아버지는 바로 거짓말처럼 운명하게 된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돈 몇 냥과 서찰 뿐이다. 늘 집 없이 떠도는 보부상들이기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소년,아버지 없는 이 하늘아래에서 그가 할 일은 무엇일까? 아니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열세살이라면 어리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철부지 아이일텐데 장똘뱅이로 떠돌던 보부상의 아들이었기에 장에서 주워 들은 노래도 많고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똘똘한 소년은 우선 아버지가 못 다한 '서찰' 을 전해주려고 맘을 먹는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까.아니 누구를 만나야 할까.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서찰을 몰래 펼쳐 보았지만 써 있는 것이라고는 '한자 열 자' 아는 글씨도 없거니와 뭐라 쓰여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버지가 전라도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것 같아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떠나지만 한참 동학으로 인해 세상은 어수선하다. 어른들도 나돌아 다니기에 세상은 흠흠한데 어린 소년이,하지만 그는 용기를 가지고 굽히지 않고 나아가며 서찰에 쓰여 있는 글씨를 알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알아가게 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세상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학으로도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한참 천주교가 들어오던 시절임을 글에서 암시를 한다. 아산 공세리 성당은 두어번 가 본 곳이기에 괜히 동화를 읽으며 내가 주인공이 된양 소년을 따라가는 길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 모르던 글씨를 돈을 주고 알게 되기도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다' 라는 장똘뱅이의 철칙을 전해주듯 글씨를 알게 되는데도 돈을 지불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공짜로 얻으려 하지 않는 소년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으니 힘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우연히 만났던 강직한 사람이라 여겼던 이가 '김경천' 전봉준을 밀고한다는 그 '경천' 이라는 자일까 의심을 하면서 가고자 했던 피노리까지 가게 되고 '녹두 장군' 전봉준도 만나서 서찰을 전하게 되지만 전봉준은 왜인지 끌려가고 있다. 자신이 피하라는 '서찰'을 분명히 전했는데 왜 그는 '김경천' 의 밀고를 피하지 않은 것일까.


동화는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 장에서 듣던 '노래'를 풀어 놓는가 하면 그 시대에 왜 청일전쟁이 일어났는지 동학은 왜 일어났는지 등도 이야기를 해준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가 어디 지방에서 부흥을 했는지도 이야기를 해주고 양반이나 평민의 구분이 명확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원하고 있었음을 비춰주며 역사도 재밋게 읽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교과서에서 딱딱하게 배우는 역사가 아니라 일개 보부상의 아들인 소년의 뒤를 따라가다보면 재미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역사 이야기' 라 읽으며 그냥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역사 이야기다. 그리고 역사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의문부호' 를 가지고 보면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숨겨진 역사의 한 단면을 본 듯 하고 그 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도 한 '서찰을 전하는 아이' 는 작가가 보여주었던 다른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참 좋다. 거부감없이 아이들이 역사를 접할 수 있겠고 '동화' 의 범위가 더 넓어진 듯 하다. 그런가하면 책의 말미에 '동학' 에 대하여 정리를 해 놓은 부분들이 있어 더 공부가 될 듯 하다.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내용' 은 다름이 아닌 역사인 듯 하다.


<이미지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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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비
이준연 지음, 김재홍 그림 / 삼성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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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이준연님의 대표작중에 엄선된 7편의 동화들,<바람을 파는 소년> <하얀 발자국> <소라 피리> <오백 나한> <가을 나비> <까치를 기다리는 감나무> <지워지지 않는 일기> 인데 한 편 한 편 정말 감동과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질박함이 숨어 있어 단숨에 읽어 내렸다. 교과서에 실리거나 상을 수상한 작품들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작품속에 모두 숨어 있다. 앞부분 작가의 말중에 '오늘도 나는 손녀 한솔이와 진솔이가 읽어 주는 내 동화를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늙고 야위었지만 싱그러운 꿈나무를 가지고 있어 오늘도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바늘귀만한 시력과 암투병중에도 이런 작품들을 쏟아 내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다.

어느 작품 하나만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가슴에 와 닿는다. <바람을 파는 소년>은 예전에는 모두가 알아주는 '대나무부채' 였지만 새로운 '나일론' 부채에 할아버지는 기운을 잃고 손주 앞에서 한마디도 못 내신다. 하지만 할아버지부채의 대단함을 인정하고 알아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전통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어린 손주는 알게 되고는 값싸고 오래쓸 수 있는 나일론 부채도 좋지만 전통과 할어버지의 재주가 겸비한 '대나무부채'에 대한 자부심에 한껏 심이 난 어린 손주,그런 손주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눈길이 느껴지는 듯한 가슴 뭉클한 작품이다. 예전에는 좋았지만 새로운 것에 밀려 없어지거나 점점 도태되고 있는 것들이 주위를 보면 정말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하얀 발자국>이란 작품은 산골에서 살던 두 집이 모두 이사를 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만나기로 했는데 겨울방학에 자신들이 살던 산골집에 찾아 가는 아이들, 어리지만 짐승에게 줄 먹이도 가져오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도 가져왔지만 약속했던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집을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있다,누굴까. 그들은 산에서 산짐승을 잡는 사냥꾼들,자신들은 산짐승들이 겨울에 먹이를 못 찾을까봐 먹이를 짊어지고 왔는데 사냥을 하다니,산짐승을 잡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방에 들여보내주는 녀석들.그들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짐승에게 줄 먹이를 놓을 곳을 깨끗하게 눈을 치워주고 떠났다.

<오백 나한> 이 이야기는 선운사와 도솔암을 배경으로 쓰였졌다. 작가가 태어난 고장이 고창이라 그런지 지역색이 강하게 나지만 참 좋은 작품이다. 엄마와 아빠를 잃고 할머니를 따라 절에 온 아이,하지만 할머니는 절에서 일을 해주지만 돈을 받아 오지 않는다. 아버지 엄마는 일을 하면 돈을 벌어 오셨는데,하지만 할머니는 다른 소원이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소원을 듣고 소녀 또한 오백 나한을 그려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보려 한다. 그렇게 소녀는 하루에 몇 개씩 나한을 가져다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절에서는 나한이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할머니가 아파 누워 계시는 집에 왔다가 소녀의 그림을 보고 알게 되는 스님, 소녀의 소원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가을 나비> 봄에만 나비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도 나비가 태어난다. 하지만 가을 나비는 그만큼 생명이 짧다. 꽃도 부족하고 시간도 짧고,그래도 자신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데 가을 나비는 나비 구름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나비 구름이 될 수 있을까? 코스모스 속에 숨어 있다가 병실에서 아파 누워 있는 소녀느이 누나를 발견하는 나비는 누나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듯 하고는 자신은 떠나간다. 아니 나비 구름이 되어 영원히 살게 된다.

위 이야기들 외에도 모든 이야기들이 진솔하면서 가슴 따듯해지고 정말 훈훈하다.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처럼 가슴 따듯한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정서를 따듯하게 데워준다. 아이들만 읽으라는 동화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동화로 모든 이야기가 다 좋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 옛적에..' 하면서 들어야 할 것처럼 훈훈한 이야기들이 잠시나마 잊었던 동심을 깨우고 혼탁함을 비우게 한다. 이런 이갸기가 자신의 손에 의해 쓰여졌지만 손주들에 의해 다시 듣는 다면 더욱 행복할 듯 하다. '가을 나비' 한마리가 나비 구름이 되어 파란 하늘에서 늘 바라보며 날개를 펄럭이고 있을 것만 같은 '맑은 기운' 이 느껴지는 동화들이 할아버지의 화롯불을 쬐고 있는것처럼 훈훈하게 해 주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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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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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자님 말씀에,여자는 사람들 앞에 구부리는 것이니, 삼종의 도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다. 집에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지아비 죽으면 자식을 좇아 잠시잠깐이라도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어야 한다고 했느니, 아예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 게 좋을 게야.....' 아버지 초당 허 엽은 딸이라고 하여 그녀를 아들과 다르게 키우지 않았다. 아들들과 함께 사랑방에서 글을 읽고 배우게 했으며 그녀는 이미 8세 때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대단한 글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천재적인 글재주가 결혼 후에는 그녀의 인생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게 좋을 게야..' 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하지만 그 삶을 버릴 수 없었던 그녀,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을 더욱 꾹꾹 눌러 참으며 더욱 슬픔을 시에 녹여내지 않았나 한다.

그녀의 결혼 전 15세까지의 친정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자유' 라고 볼 수 있다.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는 조선시대에 남자인 아들들과 함께 대등하게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배려와 그녀의 재주를 높이 샀던 오빠와 스승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맘대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담았던 그녀, 담장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시속에서는 자유를 맘껏 표현하고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당당한 집안에서 글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오빠 붕과 동생 균 그리고 그녀까지 그야말로 글재주가 있는 집안에서 자신의 재주를 맘껏 펼쳤던 그녀가 결혼이라는 그것도 안동 김씨 집안이라는 '장벽' 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도 최순치도 이미 서로를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김성립의 아녀자가 되어야 했던 초희,그녀의 글은 우리나라 보다는 중국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던 그녀의 글솜씨와 빼어난 외모는 그야말로 그녀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걷게 만든 주요인이 되고 말았다.

자유분방한 친정집과는 다른 시집에서의 생활, 된시집살이와 불성실한 남편 사이에서 어렵게 가졌던 아이들마져 잃게 되고 친정아버지의 부음에서부터 오빠 붕의 귀양과 죽음으로 인한 친정의 몰락을 보면서 힘들어했던 그녀는 맘 붙일 곳 없는 결혼생활에서 더욱 황폐해져 가기만 했던 듯. 만약 남편 성립이 좀더 그녀의 편에 서서 그녀를 감싸주고 말한마디 그녀의 편이 되어 주거나 시모로부터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여자인생은 뒤웅박팔자라더니 그 잘나가던 천재시인이 시집의 꽉 막힌 시집살이에 갇혀 그녀의 인생은 얼음장같은 별채에 갇혀 한마리 날지 못하는 박제된 새처럼 점점 자신의 생을 갉아 먹고만 있었다. 아니 아름답게 피었던 부용꽃이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다니.'같이 앉아 시를 나누고 ,하늘과 별과 세상 끝까지 흘러가는 물에 대해 이야기 나누리라. 그런 남편과 더불어 세상의 끝까지 동행하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별거 아니었다. 그녀와 도란도란 시를 나누고 자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함께 동행하길 원했는데 그러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남편과 그녀 사이에는 '시어머니' 라는 넘지 못할 장벽과 같은 장애물이 가로 막혀 있었던 것.어찌할꼬.

그런 삶 속에서 믿었던 친정집마져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으니 그녀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얻은 딸과 아들마져 시모에게 빼앗기듯 하고는 뒷방신세가 되어 아이들의 죽음을 보아야만 했으니 어떠했을까. 딸로서도 아내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어미된 자리도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니 그녀,살고 싶었을까? 시들시들 시들어 가는 부용꽃처럼 그렇게 스물일곱의 아름다운 부용꽃은 그렇게 지고 말았던 것이다.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너무 다정함도,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어찌하여 남자도 아닌 아녀자가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살게 된 것일까.담장안에 갇혀 있는 아녀자가 촛불을 켜고 산다고 세상이 그녀의 것이 될 수 없는 세상, ' 이 좁으나 좁은 조선 땅에 태어난 것도 여자로 태어난 처량함도,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원망하고,서러워했던 걸 부인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조선 땅에 태어남도, 여자로 태어남도, 김성립을 낭군으로 맛이한 것도 제게 주어진 운명이겠지요.' 그렇다 모든 것이 운명인것을 어찌한단 말인가.죽음으로서 비로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이 안타깝다.눈물겹다.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된다 하지 않던가...' 라는 말처럼 너무 그녀의 천재성이 과했던 것일까 그를 시샘하여 일찍 그녀의 꽃이 지게 만든 것일까? 정말 슬프다,눈물이 그냥 흘러 내린다,가슴이 먹먹하여 한참을 같은 줄을 읽고 또 읽고 하였다.

처음 소설을 읽으며 정말 故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대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환생하여 쓴 소설처럼 초희의 혼례장면이 <혼불>의 어느 대목처럼 아니 <혼불>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정도로 잘 표현해 놓았다. 대하예술소설인 <혼불>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소설이 이렇게 아름다울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아쉬움,소설이 완성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혼불10권>은 미완성이면서 장장 17년의 세월동안 쓰여진 소설이며 그 내용또한 대단하다. 한동안 다른 소설을 읽어도 맘에 들어오지 않고 모두 시시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 그런가,아니 '난설헌' 이라는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인지 너무도 잘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것과 예술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전통과 예술에 빗대어 초희 그녀의 비극은 너무 극명하게 갈라짐을 잘 나타내 주었다.그러면에서 혼불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난설헌 그녀의 인생은 15세 이전과 그 이후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결혼전인 15세 이전에는 친정집에서 아버지 오빠와 동생과 함께 자유롭게 글공부를 하고 시를 짓고 했다면 결혼을 한 15세 이후에는 여자가 시를 짓는 것부터 싫어하는 시모와 남편의 눈총을 받아가며 결혼전에는 양지에서 글을 썼다면 결혼후에는 음지에서 쓴 글처럼 인생 또한 그렇게 음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좀더 개방적이고 그녀의 재주를 알아주는 그런 집안 그런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짧은 생이라 더욱 아름답고 곱게 피어 올랐던 것일까.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하듯 그녀의 삶을 조각보로 이어가듯 아름답게 잘 표현해 낸 '난설헌'을 읽는 동안 울컥 울컥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던지.그녀를 아내로 맞은 성립의 삶 또한 어쩌면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너무 자신의 아내에게 안이했던 것이 밉다.그녀가 죽어가게 방치한 사람이기도 하기에 밉기도 하면서 불쌍하다.그런가 하면 순애보처럼 그녀를 향했던 사랑을 접지 못했던 최순치 또한 가련하다. 천재적인 문학성을 가진 여인인 난설헌을 중심으로 많은 인물들이 그려졌음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요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면을 본 듯 하여 기쁘다. 그리고 난설헌이라는 그녀의 애련한 삶을 오롯이 잘 담아 내어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듯 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가를 한번 들러봐야겠다.그곳에 갔으면서도 시간이 없어 주위를 맨돌다 온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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