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예술과 미 속에서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과 미 속에서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 즉 예술 창조의 능력에 주목했다.31)
이는 대단히 중요한 관점으로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은 스승을 통해 예술을 그 총체성에서 볼 줄 알게 되었고, 트로이와 바빌론, 페르세폴리스를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하며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의 수립과도 연결시켜 역사의식을 한층 높였다.

『시학 Poietica』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념의 모방은 사물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태 및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상태를 나타낼 수 있으며, 스스로를 보편적·전형적·필연적인 사물들의 특징으로 제한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방은 우선 인간행위의 모방으로 충실한 복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의미했지만 점차 자연의 모방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시를 선천적 본능과 후천적 모방을 통해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으며,32) 사고thought를 ‘알기 theoria’, ‘하기 praxis’·‘만들기 poiesis’ 세 종류로 구분했다.33)
시를 좀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서 ‘만들기’의 한 종류를 모방으로 보고 사물들 혹은 사건들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모방론을 이원화하여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으로 시각적 외양을 모방하는 예술로 분류했으며, 시를 시구, 노래, 댄스를 통해 인간 행위를 모방하는 것으로 분류했다.34)
시를 언어와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매개체로 하는 것으로,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을 매개체로 하는 것으로 상이한 점을 지적했을 뿐 모방이란 점에서는 둘을 동일하게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예술의 기능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비극을 찬양하는 중 비극의 기능으로 ‘적합한 즐거움 oikeia hedone’을 꼽았다.
이는 시각예술에도 해당하는 기능이다. 모방을 자연적 현상으로 보았고, 모방을 인식하는 것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로 사람이 즐거움을 아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다.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회의적 태도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본 미적 즐거움을 철학자의 것과 동일한 류의 인식적인 요소에 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시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일반적으로 미에 대한 즐거움으로 시각예술에도 적용된다.
적합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아름다운kalliste 것 혹은 부분들이 순열적으로 배열된 탁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의 예술에 대한 이해였음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식물에 실체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식물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영혼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정신은 어떤 다른 종류의 것으로 육체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영혼의 일부분일지는 몰라도 정신을 갖고 있는 생물은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하다.55) 정신은 사유에 의해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실제적인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56)
이런 학설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용어가 조금 다르다.

영혼에는 이성적인 요소와 비이성적인 요소가 있는데 비이성적인 부분은 이중으로, 즉 식물적인 부분과 욕구적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모든 생물에게서 볼 수 있으며 후자는 모든 동물이 지닌 요소이다.57)
이상적인 영혼의 삶이란 명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인간의 완전한 행복으로 이를 충분히 누리기 어려운 이유는 신적인 것이 그 속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적인 요소가 인간의 본성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런 활동이 다른 종류의 실용적인 것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신적인 이성을 따를 때 신적인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론으로 말하면 인간의 고유한 개성은 육체와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고, 이성적인 영혼, 즉 정신은 신적이며 비개인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첫 부분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으로 사람이 경험을 통한 보편적 판단에 의한 기술art과 추론능력을 가졌음을 꼽았다.58)
경험을 통한 보편적 판단이라는 지식이 기술을 향상시키며 모방은 여기서 과정일 뿐이다.
그는 『시학 Poietica』에서 비극을 예로 들어 모방양식을 플롯mythos, 성격ethe, 조사lexis, 사상dianoia, 장경opsis, 노래melopoia 여섯 가지로 구분했는데 모방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유명한 기술에 대한 모방론으로 알려졌다.

현실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미술품을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적 모방은 실재 본래의 상태보다 더욱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30)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29-1)

“서사시와 비극, 또한 희극, 주신酒神 찬가(열광적인) 시, 그리고 대부분의 플롯 연주와 수금연주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보았을 때 모방의 양식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세 가지 방법에서 상호 다른데 그것들의 상이한 매체들에 의해, 그것들이 모방하는 상이한 오브제들에 의해, 그것들의 모방의 방법에서 다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전된 모방론



모방론을 진전시킨 사람은 플라톤의 문하에서 20년에 걸쳐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3-322/1)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모방 개념 및 모방론을 변형시켰는데 예술가의 전체적 실존이 지닌 가치를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스승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 그는 이데아를 보편적 개념으로 대신했다.
그의 ‘제3인간 the third man’ 논증은 유명한데 누군가가 이데아 인간을 모방해야만 한다면 그와 모방한 이데아 인간에게는 둘의 공통된 이데아 인간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박이다.
인간이 동물인 한 그 이데아 인간은 또한 이데아 동물도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물의 수만큼 이데아 동물의 수도 많아야 할 것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개념universal concept과 개별개념individual concept을 구별하면서 “우리가 보편개념이라고 말할 때 많은 주어에 대하여 술어가 될 수 있는 것을 뜻하며, 개별개념이라고 말할 때 그러한 술어가 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는 고유명사와 명사와의 관계를 지적한 것인데 예를 들면 태양, 달, 한국, 이퇴계 등은 고유명사로 하나뿐이지만 개, 소, 인간 등은 명사로 많은 대상에 적용되는 것으로 명사는 실체가 아닌 보통 개념이며 복수를 가리키지만 고유명사는 실체로 개별 개념인 단수를 가리킴을 지적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스승의 이데아론을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이데아 세계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대상에 대한 모방으로 보지 않고 자연에 대한 모방으로 단순화시켰다.
그는 자연 속에 직접 표현된 절대미의 모방에 관해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Physica』 2권에 적었다.

“그 자체로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갖고 있는 그런 것들이 자연의 성질을 갖고 있는 (혹은 자연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정의했고 또 그 개념의 다양성을 공고히 했다.
그는 “자연이란 표현은 어떤 자연적 과정 및 그 과정의 산물 양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에게 자연이란 표현은 사물의 질료를 지칭하는 동시에 형상, 즉 사물의 본질, 자연을 이끄는 힘을 가리킨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변화하는 조건에서도 일정하게 지속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에서 사람의 본성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았으며,53) 사람은 자기가 모방한 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 또한 자연으로 보았다.
흉칙한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본성 때문이라고 했다.
모방은 사람의 자연으로 자연을 알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모방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에게 사람의 본성이란 그 사람의 본질이 되게 하는 속성이다.
본성은 육체의 목적하는 바 영혼을 향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서 발견하는 사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발견하는데 그는 사람을 정신, 영혼, 육체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다.
정신은 영혼보다 높은 단계에 속하며 육체의 구속을 덜 받는다.
『형이상학 Metaphysica』에서 그는 “정신의 경우는 다르다.
정신은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독자적인 실체인 것 같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 실체이다”54)라고 했다.
정신은 보다 높은 사유의 기능으로 육체나 감각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정신은 불멸일 수 있으나 영혼의 나머지 부분은 불멸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보았다. 공간적인 형체를 일종의 형상으로 보았는데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이를 영혼과 형체의 공통성을 일정한 양과 질료에게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 덩어리의 대리석 중 나중에 조각상이 될 부분이 아직 대리석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다.
조각가가 그 조각상을 만든 후 비로소 통일성을 갖게 되며 통일성은 그 형체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러셀의 해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