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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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깨나 쓴다고 하는 작가들은 다들 글쓰기 책을 낸다. 소설가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는 사람 중 문체가 확실히 잡혀있던지, 글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굳혔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글쓰기 책을 낸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 유시민, 정유정, 강원국 등이 있고, 외국 저자 중에는 가장 대표적으로 스티븐 킹이 있다. 예를 든 사람 중 2명은 소설가이고 나머지 2명은 비소설 분야의 글쓰기 전문가 들이다. 여기서 강원국은 약간 예외일 수 있겠다. 연설문 전문 작가로 저술은 글쓰기 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쓰는 전문 집단인 연설 비서관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고, 연설문 전문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글쓰기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했기 때문에 글 쓰기 책을 낼 만한 충분한 자격은 된다고 생각한다. 뭐 어쨌든 글 깨나 쓴다는 작가들은 다들 글쓰기 책을 낸다.

흥미로운 것은 글쓰기 책이 글 쓰는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니다. 대부분 글 쓰기를 빙자한 자서전적인 모습을 띤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글 쓰기를 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를 나열하다 보면 자서전이 된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대부분 독서광 들일 텐데 분명 다른 글쓰기 책들을 봤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공통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렇다는 것은 다들 자서전적인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책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발행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이 책도 직업으로의 소설가를 표현한 듯했지만 글 쓰는 방법을 적어 놓았고,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 기록을 같이 적음으로 자서전적인 모양을 띠는 책이 되었다. 물론 상당히 잘 썼다. 40년 동안의 기록이기 때문에 내용도 풍부할 수밖에 없고, 고수의 관록이 느껴지는 글의 내용이다. 내가 읽어본 숱한 글쓰기 책에 견줘 봤을 때 가장 훌륭한 글쓰기 책으로 생각한다. 자서전적인 내용과 적당히 소설가로서의 모습 그리고 자기변명까지 적절한 벨런스를 갖췄다.

하지만 글 쓰기의 본질적인 부분은 크게 정리하진 않았다. 제목을 봐도 글 쓰기 책은 아니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양을 차지했다. 작가도 계속 서술했지만 가르치는 책은 아니다. 본인은 이렇게 글을 썼다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따라 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소설가는 어려운 직업이니 포기하라는 말도 하진 않는다. 새로운 도전자는 언제든 덤벼라 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버티는 작가는 드물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40년의 세월이 물씬 풍기는 책이었다. 이상한 고집으로 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에세이만 골라 보고 있는데, 소설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 정도로 글을 잘 썼다. 이런 소설 쓸 때 이런 일이 있었고, 저 소설을 쓸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소설이 이렇게 나왔다는 등 세월의 흐름에 따른 소설의 변화가 충실히 쓰여 있었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의 책은 소설가와 소설가의 대담이기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을 꼼꼼히 읽어본 팬이 아니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담담한 서술로 삶에 대한 깊은 울림을 맛볼 수 있다. 잡지에 가볍게 기고된 에세이와는 색다른 느낌으로 하루키의 울림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쓴다는 것은 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실제로 상당히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짐입니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 강한 성격이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 본문 P179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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