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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우선 발상이 신선했다. 돈이 궁해 충동적으로 인질 납치를 시도했는데, 돈을 요구하기도 전에 다른 범죄로 감옥에 가는 바람에 동굴속에 숨겨둔 피 납치인의 생사가 불분명하게 되었다라는... 범인외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남겨져 생사를 다투게 된 여인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감히 입을 떼지 못한 범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그런 참신한 설정이라면 일단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고, 또 그런 참신한 스토리를 생각해 낼 줄 아는 작가라면 기대해볼만하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에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발상을 가지고도 이 정도밖엔 쓰지 못하냐 싶더라. 그러니까, 최고의 식재료를 갖다 주었더니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 내온 듯한 느낌? 분명이 이것보다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싶은 짙은 아쉬움. 아까웠다. 이런 소재를 생각해냈다는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맨날 맨날 일어나는 일은 아닐텐데, 왜 이보단 맛깔나게 버무려내지 못했을지 싶어 내가 괜히 섭하더라. 능력있는 작가에게 이런 소재가 떨어졌다면 굉장히 멋들어진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마도 그건 창작이라는걸 모르는 독자가 할만한 나이브한 상상이려나? 이야기를 창작해 낸다는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니 말이다.
내용은 뭐, 위에서 간단하게 언급했듯이, 납치극을 벌이려다 일이 심하게 꼬여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돈이 궁해 돌파구를 찾던 라이언은 한적한 도로에 홀로 서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납치한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고향의 여우 동굴에 그녀를 감금한 뒤, 남편에게 돈을 요구하러 간 그는 우연찮게도 그 전날 술집에서 벌인 싸움으로 감옥에 갇히고 만다. 여우 동굴에 여자가 갇혀 있는걸 아는 것은 라이언뿐, 하지만 그는 감옥 생활 2년 반 내내 그 사실에 대해선 한마디로 뻥끗하지 않는다. 여자를 살리겠다고 자신의 수감 생활이 늘어나는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이 칼을 들고 실제로 죽인 것은 아니니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나 현실감이 덜했던 것도 사실, 그는 납치된 여자나 그녀의 가족의 고통은 나몰라라하고 자신은 왜 그렇게 운이 없는가를 되뇌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나 출소하게 된 그는 이제는 착실하게 살아보자면 다짐을 하지만 그날부터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의 엄마가 납치되어 숲에 버려지고 그의 옛 애인마저 강간 당한 채 발견된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아무런 연관없이 벌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한 라이언은 그간 자신의 죄책감을 갉아먹고 있던 그 사건을 떠올린다. 과연 누가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라이언의 짐작대로 이 모든 사건은 납치된 그 여자의 짓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살아나올 것일까? 라이온의 손발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마는데...
용두사미 까진 아니라도, 초반의 압도적인 몰입도를 생각하면 뒤로갈수록 긴장감이 쳐진다. 차라리 한가지 이야기로 집중을 했었더라면 더 박진감 넘치지 않았을까 싶던데, 이것 저것 여러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벌어지다보니 오히려 집중이 안 되더라. 거기에 이 모든 사건들이 어쩌다 보니 라이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그가 벌였던 사건의 모방작으로 보여지는데다, 이 모든 것이 팍스밸리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에 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다보니, 과연 그때 어떻게 된 것일까 잔뜩 궁금증의 풍선을 키워 놓고서는, 그런 결론을 내어놓으면 반칙이라는 것이지. 이렇게 되면 독자는--정확히는 나는--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럴거면 뭐하러 분위기는 잡았는데 원망 사기 딱 좋았다.
거기에 심리 묘사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작가가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은 하는데, 정작 읽는 나는 반감이 많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다들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는데다, 작가 생각엔 그것만으로도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들 못난 점들 몇 가지씩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읽는 내가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하긴 추리 소설에서 존경할만한 등장인물을 찾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그래도 적어도 매력적인 인물 하나 정도는 나와줘야 했던거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기대는 창대했으나, 종착지는 실망 밸리 그 언저리쯤에 착륙해 앉게 된 작품이었다. 아~, 제목은 그럴싸했는데 말이다. 제목만으로 별 한 개는 먹고 들어가던 책, 폭스 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