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이 일어나기 2초전/ 아녜스 리디그


십대때 엄마가 되는 바람에 대형마트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는 줄리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아들 룰루 때문에 버텨내고 있는 싱글마더다. 어느날 마트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본 한 중년의 신사가 줄리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그의 이름은 폴, 처음엔 온갖 나쁜 상상을 하던 줄리는 폴의 거부하기 힘든 진지함에 넘어가 함께 여행에 따라 나서게 된다. 세살난 아들에게 바다를 보여줄 생각에 들뜬 줄리는 함께 여행할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바로 폴의 아들 제롬으로, 그는 아버지가 난데없이 젊은 여자와 그녀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자 경계심을 품게 된다. 줄리 역시 뚱한 채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제롬이 부담스럽기만 하고, 자신이 왜 이 여행을 온다고 했을까 후회하기 시작한다. 이 여행이 잘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모두를 아는 폴과 아무것도 모르는 룰루뿐...과연 이 여행은 잘 마무리 될 수 있을까. 여행 가기전까진 서로를 몰랐던 그들이 2주나 되는 시간동안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줄리와 제롬은 회의적인 가운데, 다만 폴만이 느긋하게 이 상황을 즐겨 보자고 하는데...


작가의 경험과 진심이 부표처럼 떠있는 덕에 진부한 트릭과 감상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용케 익사하지 않고 헤어나올 수 있었던 책이다. 작가가 조산사인 자신의 경험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아픔을 진심으로 담아냈기에 가능했던 일. 그걸 보면 이 작가는 상상력보다는 자신이 아는 것을 잘 쓰는 타입인듯하다. 그래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나머지가 좀 개연성이 떨어진다. 진부한데다 감상적이고 개연성마저 떨어지니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그럼에도 이 책이 그럭저럭 읽히는 것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울림 때문이다. 떠나 보낸 아들을 잊지 않으면서도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슬픈 다짐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나로써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내는 수밖엔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심정일 듯...



★★☆☆☆ 나의 세번째 가족/ 홀리 골드버그 스로운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아마존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문구에 속았다. 어쨌거나 최고라는 말이 붙은 것에는 약한 경향이 있어서 솔깃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드시, 꼭 좋은 작품일거라 라고 생각했었는데, 결론은 참 미국 사람들은 어린 천재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것. 이 책 속에서도 조숙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어린 천재가 등장한다. 그녀의 특징이라면 태어나자마자 입양이 된 입양아이자 백인이 아니라는 것. 자신을 친딸처럼 키워주고 있는 양부모에게서 전격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난 그녀지만 부모의 사랑도 그녀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너무도 머리가 좋은 탓에 학교에서 왕따 신세가 된 윌로우는 컨닝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행동상담을 받게 된다. 상담소에 들르게 된 윌로우는 그곳에 먼저 와 있던 남매를 보고 드디어 자신에게도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천재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다. 그것이 12살밖에 안 된 7에 광적으로 집착한 천재일지라도 말이다. 위기에 처한 천재를 이웃들의 협력으로 구해주었더니 그녀가 그들을 도와준다는, 미국 버전 흥부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런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엔 이젠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다는 것이지. 이젠 나 정말로 천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싶다. 감동 받지 않아도 돼.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음직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 교장/나가오카 히로키 


경찰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묶어 놓은 것. 아, 물론 실화는 아니고 소설이다. 왜 이것에 정색을 하는가 하면 진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이건 경찰학교가 아니라 범죄자 학교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잡으라고 가르치는 곳인데, 이미 범죄자 못지 않은 마인드를 가진 학생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원래 경찰학교가 이렇단 말인가 하면서 조금 의아해하며 보게 된 책. 난 경찰 학생들은 그래도 범죄자를 잡는 다는 사명감이나 정의 관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아니더라. 그냥 직업이 필요해서 학교에 등록하게 된 사람들은 부적응자도 있고, 새롭게 천직을 발견하게 된 자들도 있고.문제는 그들이 범죄자를 잡는 것뿐 아니라 범죄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척하면 척, 부채가 떨어지기도 전에 점꽤를 맞춘다는 부채 도사의 재현을 보여주는 듯했던 가자마 선생님이다. 그의 눈을 통해 학생들이 벌이는 범죄를 간파하고 그를 해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구성 거리인데, 가히 셜록 홈즈 수준의 수사력이라고 보면 되지 싶다. 물론 매력적인 면에서 보자면 셜록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지만서도...그럭저럭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괜찮다. 남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은 감안하시고 보심 되실듯.


★★★☆☆ 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몇년 전 그가 사망했다는 뉴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영자 신문이라도 들여다 보았더라면 그가 투병중이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을텐데, 영자 신문을 끊은지 오래되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결론만 들려 오는데 충격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듣게 되었어서 말이다. 평소에 하도 짱짱하셔서 아주 아주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런 카리스마를 누가 죽일 수 있겠는가라고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누가 달겨 들어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할 말 다 하시던 불독 같은 분이시다보니, 그에게 죽음이란 가장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지 않았는가 한다. 그 자신이 너무도 생명력이 충만한 분이었으므로.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더라. 가족들이나 본인 조차도 자신이 죽을 줄 예상하지 않았었다고 하니, 이해가 간다. 글에서 짐작이 되는 것과 그는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의 깜찍한 매력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가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속에서 남긴 몇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어떻게긴? 잘이지...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듯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이 식도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과연 자신이 어떻게 달라지려나 궁금해진다. 그가 평소에 무신론을 과하게 주장하고 다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혹시라고 개종이나 개과천선을 하지 않을까 라면서 종교인들이 희망을 가졌다고 한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그들의 천성이 그러한 것을 어쩌겠는가. 하여간 그렇게 불난 집에 부채질을 열심히 하면서, 혹시라도 지금에라도 생명을 구걸하면서 나에게 오면 광명이나 최소한 천국의 한 자리 정도는 내주겠다는 종교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조금은 짜증을 내고, 조금은 유머로 받아치면서, 그는 끝까지 자신이 믿었던 것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어찌나 속시원하고 후련하던지 말이다. 내가 왜 예전에 그를 그렇게도 좋아했는지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종교를 경멸하기 위해 죽음의 두려움을 숨기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심 안 된다. 그는 제정신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신체의 고통에 수반되는 모든 감정적인 변화들을 적어내려 가려 노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는 끝까지 글쟁이였고, 그 자세만큼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 나는 항상 스스로의 이성적인 사고능력과 엄격한 물질주의를 자랑스러워했다." 고...나 역시도 그렇다. 그의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의 빛같은 것이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광명과 속시원함을 가져다 주었는지 나는 잘 안다. 늦었지만, 이렇게 그를 일찍 잃었던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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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얼음속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때 내가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소재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을 쓴 저자가 <차일드 44>의 톰 롭 스미스라는 말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의심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내지는 경험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전작이 좋았다고 할시 오히려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우등생이라고 해도 맨날 백점만 맞기는 힘든 것처럼, 전작만큼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해서, 연작인데도 비교적 고르게 작품을 내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도 있다. 때론 전작에서 작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티가 역력해서 다음에 뭐가 나올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작가도 있고. 톰 롭 스미스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차일드 44>가 굉장히 재밌기는 했지만 후속작이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해서 그가 다른 작품을 내놓았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한 문장때문이었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발상을 얻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작가는 , 그때의 혼란과 불안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심리 스릴러를 구상해냈다...."는 것 말이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웨덴으로 이주를 한 부모님, 잘 계시는 줄 알았더니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가 미쳤단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번엔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이 이웃 사람들과 공모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고 있다고, 나는 병원에서 탈출했으나 분명 아빠에게서 전화가 갈 터이니 그를 믿지 말라고,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이다. 과연 이런 전화를 연달아 받게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것에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작가는 그걸 어떻게 극복해 냈을지가 난 궁금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무엇을 배웠을까 라는 점도...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숨차게 밀어붙이는데, 역시나 재능있는 작가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인데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다보니 일필휘지로 시원스럽기 그지 없다.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끔찍한 전화 한 통, 한눈에 봐도 미친게 틀림없는데 미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엄마의 등장. 확연하게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경악한 아들 다니엘까지 숨돌릴틈이 없다. 믿을 사람이 다니엘밖에 없다며 엄마는 자신이 마을의 살인 사건을 알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모자들이 자신을 정신병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엄마가 제기한 사건의 심각성에 놀란 다니엘은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당황하는데...



라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작에 버금가는 작품은 아니었다. 가장 맘에 안 드는 것을 꼽으라면 중반 정도에서 결정적인 헛점을 드러내며 멈칫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내려 놓을 정도로 신빙성이 떨어져서 말이다. 스웨덴 태생인 엄마가 열 여섯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정을 털어놓는데, 그게 좀 어설펐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의문부호가 생겨나자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별로 재밌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건 망상이건 간에 이미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결말 부분에 가서 설득력을 되찾아 올 수 있었지만, 이미 생긴 실망감을 감추기란 힘들었다. 초반과 결말 부분만 두고 보자면 잘 짜여진 소설이라고 할만했는데, 추리 소설로 만들기 위해 억지를 쓴 것이 오히려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의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했고, 아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는 척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었겠지.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써냈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가 얼마나 거대한 음모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건 간에 아마 아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이상하다는걸 알기에 더 섬뜩하다고. 간단하다.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그걸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추리 소설을 만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점이 아마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를 잘 짜여내긴 했지만 어딘지 진실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하니, 아귀가 맞는 듯한 추리 소설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은 보시길. 과연 이 엄마가 미친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하신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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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하버드 신경학 교수에 소울메이트 남편, 거기에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삼남매까지...앨리스에게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매일 매일 조깅하는 거리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기 까지는. 처음 갱년기 증상일거라 짐작했던 앨리스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자 본격적으로 자신의 뇌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진단명은 조발성 알츠하이머. 나이 오십에 치매라니...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강의를 하고 학회에 출석해야 하는 앨리스로써는 자신이 숨쉬는 것마냥 해온 모든 것이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녀의 발병이 유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 앨리스는 그녀의 자식들이 걱정이 되고,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병명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던 앨리스는 실수가 잦아지면서 더이상 남에게 증상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


영화 <Still Alice>의 원작인데 영화가 궁금하다보니 원작먼저 읽게 되었다.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을 하나둘씩 못하게 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느린 인격 살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 소용돌이 치는 과정속으로 휩쓸려 버린 한 교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어떻게 영화화가 되었을지 짐작이 가던데, 무엇보다 배우들을 잘 선정한 듯 싶다. 주인공 역의 줄리안 무어나 앨리스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세째딸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책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아 보이니 말이다. 지적인것이 생명인 하버드교수에게 찾아온 치매라... 그런 아이러니함속에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앨리스의 모습을 통해 치매의 끔찍함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더불어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어디까지를 ' 나'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그 상황에 처한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작가는 앨리스는 통해 질문하고 있던데,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다.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모두에게 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주장인 듯 하던데, 알고는 있지만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 힘든, 어찌보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런지 싶다. 치매의 문제야 말로 나는 상관없다고 자신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 말이다. 


★★☆☆☆ 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치바의 후속작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사신 치바가 다시 돌아왔다. 전작을 재밌게 읽었던 나로써는 반가움에 콧노래를 불렀던 작품. 내일 죽는다면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별로 떠오르는 상대가 없는 나완 달리 꼭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두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외동딸을 사이코패스에게 허무하게 잃어버린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야먀노베 부부는 1년동안 치밀하게 딸의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되었을때 그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치바! 과연 치바는 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며, 이번에 그가 조사(?) 하는 사람은 누구인 것일까?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실은 개미하나 죽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야먀노베 부부는 복수는 커녕 오히려 딸의 살해범에게 농락을 당하고 마는데...


사신 치바같은 쓸만한 캐릭터를 이미 만들어놨음에도 왜 전작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걸 보면 좋은 작품을 쓴다는게 생각만큼 쉬운게 아닌 모양. 장점은 뭐, 거의 없다 시피하니 대충 생략하고 단점만 들라면 이사카 코타로의 고질적인 악습이라고 해야 하나? 설교가 여지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양반, 치바가 음악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처럼 설교를 안 하면 책을 못 쓰시나보다. 누군가 좀 말려줬음 싶을 정도로 전작품을 통해 설교를 남발하시는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누가 소설 읽으면서 지루한 설교따위를 듣고 싶겠는가. 하여간 난 아니라니까? 이야기는 굼뱅이 마냥 느리게 진전을 하고, 이런 전개가 필요하긴 해? 라는 뜨악한 심정으로 보게 만드는데다, 사이코패스가 이젠 전세계적인 유행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별로다. 그만큼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는 말씀. 그나마 결말이 맘에 들어서 다행. 그렇지 않았더라면 점수를 더 박하게 줄뻔했다. 냉정하지만 인간적이고, 음악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신이라는 기발한 캐릭터를 고안해낸 이사코 코타로, 그가 다음엔 이 치바를 더 훌륭하게 활용해 주시길...


★★★☆☆ 실크 웜/ 로버트 갤브레이스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낸 조앤 롤링의 두번째 추리 소설 . 복잡하게 시리 왜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필명으로 내셨을까 짜증이 나긴 하는데, 해리 포터의 세계적인 인기를 감안하면 그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 글을 써내겠다는 그녀의 의지만큼은 존중해주고 싶다. 하여간 자신이 아동용 책뿐만이 아니라 어른용 추리 소설도 굉장히 잘 쓴다는것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던 작품. 해리 포터로 평생을 써도 다 못쓸 돈을 버셨을텐데도 힘들여 책을 쓰시는걸 보면 그녀의 근면성도 알아줄만하고, 더군다나 다른 장르임에도 이질감없이 뚝딱뚝딱 잘만 써내려 가는걸 보면 그녀가 천상 글쟁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해리 포터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름을 꼭 날렸을만한 재능이다. 하긴 이제 오십을 넘기셨으니 나중에 어떤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언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 하여간 이젠 하도 칭찬을 해서 더이상 칭찬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조앤 롤링이 내놓은 두번째 소설.  그녀에 대한 욕심이 과해져서 일까? 기대치가 이제 하늘로 치솟아 보이지 않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이 전작만큼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글쎄...살인 방식이 너무 끔찍하고, 사건을 조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꼬아놔서 말이다. 과연 누가 이렇게 살인을 하고 싶겠는가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 살인을 저지른 과정도 석연치 않아서, 이 모든 것을 합해 점수가 좀 내려갔다. 하지만 살인사건만 빼고 본다면 그외 과정들은 훌륭하다. 탐정과 그 비서의 썸탈듯 썸타지 않는 이야기, 출판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재미, 당대 인기 락스타의 혼외 자식이라는 어정쩡한 캐릭터로 중무장을 한 탐정 자신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져서 흔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은 탁월했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조앤 롤링에게 실망했느냐고? 어디 감히!! 그러겠는가. 생각해보면 조앤 롤링은 짝수번째 작품이 그다지 재밌지 못했다. 첫번째 해리 포터가 대박나고 나서 나온 두번째 책이 난 가장 재미없었다고 보는데, 그 이후로도 약간은 짝수번째가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었지 않는가 한다. 해서 아마도 다음 편이 이보단 더 재밌을 것이라 추측을 하면서, 조앤 롤링이 남는 시간에도 꾸준히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내어 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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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언 프로이드 - 오래된 붓으로 그려낸 새로운 초상의 시대 다빈치 art 21
조디 그레이그 지음, 권영진 옮김 / 다빈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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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 되다>를 읽은 독자로써 지나칠 수 없었던 작품.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루시언 프로이드를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재능이 출중한 두 작가 ( 마틴 게이퍼드와 이 책을 쓴 조디 그레이그) 에 의해 낱낱이 조명이 되다보니, 루시언 프로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겠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난 마틴 게이퍼드가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거나...<내가 그림이 되다> 정도의 책을 쓴 사람이라면 통찰력이 없을리 없으니, 그에게 루시언 프로이드가 안 보였을리 만무하고, 그가 무언가를 봤음에도 쓰지 않기로 결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과 그 책을 비교해 본 결과 마틴 게이퍼드가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나름 웃기고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그건 루시언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그를 그림으로만 봐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마틴의 무언의 동의였지 않을까 싶더라. 두 남자가 사생활이 아닌 자신이 창조해낸 결과물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을 했다고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내가 뭐라할 이유는 없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각기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두 사람이다보니, 다른 말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오해의 여지도 잘못 해석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흘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림이 되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그림을  그대로 빼다박은 글을 써낸 것이므로. 해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는, 그리고 마틴 게이퍼드가 그의 책 속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가지는...


바로 루시언 프로이드가 소시오패스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토록 자신의 사생활이 언급되는 것에 신경을 곧두세운 이유는 그가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였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사생활이 그만큼 난잡했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맺은 여인만 대략 500명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식만 열 네명, 그외 알려지지 않은 자식들만 삼십명이 넘을지 모른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차가 얼마나 되든, 그들의 족보가 어떻게 되건( 전 아내의 딸과 관계하기도 함.) 상관하지 않으셨다니, 그를 현대판 카사노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 카사노바를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하시길래 얼마나 통찰력 있으신가라고  감탄했더니만,  알고보니 그도 같은 과라서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아니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까나?--그가 평생 아버지로써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뭐, 그런 것조차 없었다고 하니 내가 왜 루시언 프로이드를 소시오패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런걸 보면 예술가를 아버지로 둔다는 것이 생각만큼 근사한 일은 아닌가 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냉정하거나 무자비하거나 무관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타인이라면 친절할 수도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도 사람이기에, 루시언은 타인으로 만난 이 작가에게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타인과 친구라는 경계 선상에서 만났으니 상처를 입을 일이 없어서 작가로썬 좋았겠다 싶다. 좋은 점만 보고 들었어도 되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에서 루시언의 일생을 돌아본 것이 장점, 왜냐면 얼마든지 삼류 막장극으로 빠져들 여지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루시언의 사생활이 얼마나 난잡하고 야만적이었던지 간에 우리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루시언 프로이드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말하건데, 이 이상의 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루시언에게 질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루시언을 좋아하고픈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그가 화가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림속에 다 담아 두었으니 말이다. 추측컨대 그는 평생 인격자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다만 탁월한 화가가 되고자 했고 그 야망을 이루었다. 타협하지 않은 지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뚝심, 그리고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그의 업적에 경도된 사람들이 눈을 가리기로 결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때론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영생을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예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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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 동물의 왕국에서 벌어진 가슴 뭉클한 43가지 이야기!
제니퍼 S. 홀랜드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속의 사진때문이었다. 각 사연들 속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내 호기심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동물들의 이야기라면 종을 불문하고 좋아하는 나로써는, 사진까지 첨부된 이런 미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니.그레이트 데인이 새끼 사슴을, 테리어가 새끼오리를, 암닭이 강아지를, 어미개가 새끼 고양이를, 점박이 양이 달마티안 개를, 돌고래가 바다 사자를, 소년이 마못을, 올빼미가 야옹이를...끝도 없이 나오는 이종들의 향연. 과연 그것이 가능해 라고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서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니 놀랄노자 아니겠는가. 해서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보게 된 책인데, 책을 얼마 읽지 않아서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은 우리도 동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이종 동물들끼리 사랑하고 돌보고 아끼고라는 단어를 곰곰히 따져본다면, 우리야말로 그런 경우의 최고봉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이야말로 다양한 동물들을 키우니까, 단지 먹기 위해서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말이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다른 동물들도 그럴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이 돼지를 먹지만 어떤때는 애완용으로 키우듯이 말이다. 우리의 동물 사랑이 무한대라면,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다고 추측한다는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들이 우리와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쩜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동물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쩜 우리의 무지나 오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사랑하고자 하는 감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건 똑같을텐데 말이다. 그들이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거나, 지능이 낮다거나, 우리와 다른 뇌의 구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다른 종을 사랑하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에게 있는 감정이 그들에겐 없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는 것일까?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인간들이 그들에게도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고들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데 말이다. 개나 고양이에게 우리 인간은 다른 종 아니던가? 그러니까, 어찌보면 이 책속에 나온 많은 동물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만큼 특별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동물들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만 특별하다면 다른 종과 교감을 하고 공감을 나눌만큼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일테지만서도, 그런건 인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니 넓게 본다면 다른게 없다고 하겠다.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다보니, 이종들의 사랑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저자의 글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책들 속에서 나오는 동물 모두에게 찬탄을 금치 못하던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서 말이다. 그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사진이다. 동물들의 사진들...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저자의 글에 실망을 하다가도 사진만 보면 그런 기분이 싹 가신다. 그러면서 애초에 내가 왜 이 책을 보고 싶어했던가 이해가 된다. 난 그저 동물들이 애정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귀엽고 신기하고 동화속에 나올만한 비주얼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흐른다. 기분이 나쁠때 휙휙 넘겨보면 우울한 기분이 가실 것도 같다. 광고계에서 3B가 있다고들 하지. 아기, 미인, 그리고 동물...정말로 이해가 간다.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에는 눈길이 저절로 머문다. 하니 우울하시고 기분이 안 좋은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길. 이종 동물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아끼고 등을 기대고 코를 맞대는 모습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해지는 광경들에서 눈을 떼기란 지극히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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