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하버드 신경학 교수에 소울메이트 남편, 거기에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삼남매까지...앨리스에게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매일 매일 조깅하는 거리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기 까지는. 처음 갱년기 증상일거라 짐작했던 앨리스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자 본격적으로 자신의 뇌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진단명은 조발성 알츠하이머. 나이 오십에 치매라니...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강의를 하고 학회에 출석해야 하는 앨리스로써는 자신이 숨쉬는 것마냥 해온 모든 것이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녀의 발병이 유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 앨리스는 그녀의 자식들이 걱정이 되고,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병명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던 앨리스는 실수가 잦아지면서 더이상 남에게 증상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
영화 <Still Alice>의 원작인데 영화가 궁금하다보니 원작먼저 읽게 되었다.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을 하나둘씩 못하게 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느린 인격 살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 소용돌이 치는 과정속으로 휩쓸려 버린 한 교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어떻게 영화화가 되었을지 짐작이 가던데, 무엇보다 배우들을 잘 선정한 듯 싶다. 주인공 역의 줄리안 무어나 앨리스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세째딸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책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아 보이니 말이다. 지적인것이 생명인 하버드교수에게 찾아온 치매라... 그런 아이러니함속에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앨리스의 모습을 통해 치매의 끔찍함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더불어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어디까지를 ' 나'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그 상황에 처한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작가는 앨리스는 통해 질문하고 있던데,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다.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모두에게 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주장인 듯 하던데, 알고는 있지만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 힘든, 어찌보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런지 싶다. 치매의 문제야 말로 나는 상관없다고 자신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 말이다.
★★☆☆☆ 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치바의 후속작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사신 치바가 다시 돌아왔다. 전작을 재밌게 읽었던 나로써는 반가움에 콧노래를 불렀던 작품. 내일 죽는다면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별로 떠오르는 상대가 없는 나완 달리 꼭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두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외동딸을 사이코패스에게 허무하게 잃어버린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야먀노베 부부는 1년동안 치밀하게 딸의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되었을때 그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치바! 과연 치바는 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며, 이번에 그가 조사(?) 하는 사람은 누구인 것일까?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실은 개미하나 죽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야먀노베 부부는 복수는 커녕 오히려 딸의 살해범에게 농락을 당하고 마는데...
사신 치바같은 쓸만한 캐릭터를 이미 만들어놨음에도 왜 전작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걸 보면 좋은 작품을 쓴다는게 생각만큼 쉬운게 아닌 모양. 장점은 뭐, 거의 없다 시피하니 대충 생략하고 단점만 들라면 이사카 코타로의 고질적인 악습이라고 해야 하나? 설교가 여지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양반, 치바가 음악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처럼 설교를 안 하면 책을 못 쓰시나보다. 누군가 좀 말려줬음 싶을 정도로 전작품을 통해 설교를 남발하시는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누가 소설 읽으면서 지루한 설교따위를 듣고 싶겠는가. 하여간 난 아니라니까? 이야기는 굼뱅이 마냥 느리게 진전을 하고, 이런 전개가 필요하긴 해? 라는 뜨악한 심정으로 보게 만드는데다, 사이코패스가 이젠 전세계적인 유행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별로다. 그만큼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는 말씀. 그나마 결말이 맘에 들어서 다행. 그렇지 않았더라면 점수를 더 박하게 줄뻔했다. 냉정하지만 인간적이고, 음악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신이라는 기발한 캐릭터를 고안해낸 이사코 코타로, 그가 다음엔 이 치바를 더 훌륭하게 활용해 주시길...
★★★☆☆ 실크 웜/ 로버트 갤브레이스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낸 조앤 롤링의 두번째 추리 소설 . 복잡하게 시리 왜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필명으로 내셨을까 짜증이 나긴 하는데, 해리 포터의 세계적인 인기를 감안하면 그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 글을 써내겠다는 그녀의 의지만큼은 존중해주고 싶다. 하여간 자신이 아동용 책뿐만이 아니라 어른용 추리 소설도 굉장히 잘 쓴다는것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던 작품. 해리 포터로 평생을 써도 다 못쓸 돈을 버셨을텐데도 힘들여 책을 쓰시는걸 보면 그녀의 근면성도 알아줄만하고, 더군다나 다른 장르임에도 이질감없이 뚝딱뚝딱 잘만 써내려 가는걸 보면 그녀가 천상 글쟁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해리 포터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름을 꼭 날렸을만한 재능이다. 하긴 이제 오십을 넘기셨으니 나중에 어떤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언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 하여간 이젠 하도 칭찬을 해서 더이상 칭찬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조앤 롤링이 내놓은 두번째 소설. 그녀에 대한 욕심이 과해져서 일까? 기대치가 이제 하늘로 치솟아 보이지 않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이 전작만큼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글쎄...살인 방식이 너무 끔찍하고, 사건을 조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꼬아놔서 말이다. 과연 누가 이렇게 살인을 하고 싶겠는가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 살인을 저지른 과정도 석연치 않아서, 이 모든 것을 합해 점수가 좀 내려갔다. 하지만 살인사건만 빼고 본다면 그외 과정들은 훌륭하다. 탐정과 그 비서의 썸탈듯 썸타지 않는 이야기, 출판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재미, 당대 인기 락스타의 혼외 자식이라는 어정쩡한 캐릭터로 중무장을 한 탐정 자신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져서 흔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은 탁월했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조앤 롤링에게 실망했느냐고? 어디 감히!! 그러겠는가. 생각해보면 조앤 롤링은 짝수번째 작품이 그다지 재밌지 못했다. 첫번째 해리 포터가 대박나고 나서 나온 두번째 책이 난 가장 재미없었다고 보는데, 그 이후로도 약간은 짝수번째가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었지 않는가 한다. 해서 아마도 다음 편이 이보단 더 재밌을 것이라 추측을 하면서, 조앤 롤링이 남는 시간에도 꾸준히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내어 주셨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