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언 프로이드 - 오래된 붓으로 그려낸 새로운 초상의 시대 다빈치 art 21
조디 그레이그 지음, 권영진 옮김 / 다빈치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그림이 되다>를 읽은 독자로써 지나칠 수 없었던 작품.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루시언 프로이드를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재능이 출중한 두 작가 ( 마틴 게이퍼드와 이 책을 쓴 조디 그레이그) 에 의해 낱낱이 조명이 되다보니, 루시언 프로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겠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난 마틴 게이퍼드가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거나...<내가 그림이 되다> 정도의 책을 쓴 사람이라면 통찰력이 없을리 없으니, 그에게 루시언 프로이드가 안 보였을리 만무하고, 그가 무언가를 봤음에도 쓰지 않기로 결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과 그 책을 비교해 본 결과 마틴 게이퍼드가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나름 웃기고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그건 루시언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그를 그림으로만 봐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마틴의 무언의 동의였지 않을까 싶더라. 두 남자가 사생활이 아닌 자신이 창조해낸 결과물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을 했다고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내가 뭐라할 이유는 없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각기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두 사람이다보니, 다른 말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오해의 여지도 잘못 해석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흘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림이 되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그림을  그대로 빼다박은 글을 써낸 것이므로. 해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는, 그리고 마틴 게이퍼드가 그의 책 속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가지는...


바로 루시언 프로이드가 소시오패스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토록 자신의 사생활이 언급되는 것에 신경을 곧두세운 이유는 그가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였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사생활이 그만큼 난잡했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맺은 여인만 대략 500명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식만 열 네명, 그외 알려지지 않은 자식들만 삼십명이 넘을지 모른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차가 얼마나 되든, 그들의 족보가 어떻게 되건( 전 아내의 딸과 관계하기도 함.) 상관하지 않으셨다니, 그를 현대판 카사노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 카사노바를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하시길래 얼마나 통찰력 있으신가라고  감탄했더니만,  알고보니 그도 같은 과라서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아니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까나?--그가 평생 아버지로써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뭐, 그런 것조차 없었다고 하니 내가 왜 루시언 프로이드를 소시오패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런걸 보면 예술가를 아버지로 둔다는 것이 생각만큼 근사한 일은 아닌가 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냉정하거나 무자비하거나 무관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타인이라면 친절할 수도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도 사람이기에, 루시언은 타인으로 만난 이 작가에게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타인과 친구라는 경계 선상에서 만났으니 상처를 입을 일이 없어서 작가로썬 좋았겠다 싶다. 좋은 점만 보고 들었어도 되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에서 루시언의 일생을 돌아본 것이 장점, 왜냐면 얼마든지 삼류 막장극으로 빠져들 여지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루시언의 사생활이 얼마나 난잡하고 야만적이었던지 간에 우리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루시언 프로이드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말하건데, 이 이상의 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루시언에게 질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루시언을 좋아하고픈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그가 화가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림속에 다 담아 두었으니 말이다. 추측컨대 그는 평생 인격자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다만 탁월한 화가가 되고자 했고 그 야망을 이루었다. 타협하지 않은 지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뚝심, 그리고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그의 업적에 경도된 사람들이 눈을 가리기로 결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때론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영생을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예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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