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 셰익스피어에서 헤밍웨이까지 작품으로 읽는 문학 독법
해럴드 블룸 지음, 윤병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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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째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형식 속에 조금씩 끄적거리는 습관을 갖게 된지. 처음에는 간단히 몇 줄 안 되는 솔직한 감상들을 즉흥적으로 써대기 시작했고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저 이 책은 읽기 쉽고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듯하니 좋은 책같다라는 지극히 단순명료한 평들이었으니까. 그러하니 리뷰라는 걸 쓰는 게 하나도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는데 점점 시간이 흘러 같은 책을 읽고 쓴 타인의 멋드러진 리뷰를 접할 때면 나의 짧은 감상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 나의 리뷰도 업그레이드 시켜야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 나도 저렇게 제대로 된 리뷰를 써야 되는데, 혹은 나도 저 사람처럼 느꼈는데 글로 표현이 안된 것이구나 싶은 그런 생각들을 수도 없이 하면서.

그래서 본격적으로 서평다운(?)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노력과 진심이 조금은 통했는지 조그마한 서평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해 책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내 글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해 좌절감을 만나는 일도 많아지는 날들이다.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데 단지 그 느낌을 제대로 글로 풀어쓰기가 어렵다면 그나마 성공한 독서이지만 ‘최고’라고 찬사를 받는 책을 읽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거나 도대체 저자가 하는 말이 뭘까 감도 잡지 못할 때는 책을 씹어 먹어버리고픈 생각까지 들었다.
이럴 때 누군가 명쾌하게 작품을 해설하고 비평한 책을 보면 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양 황홀감에 취해 기존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해롤드 블룸의 독서기술]은 책 읽기의 목적과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었고 더 나아가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전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고마운 책이다.

  사실, 지난 2월부터 활동하는 책 카페에서 ‘고전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한 달에 한권씩 읽고 있는 중인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고전을 통해 나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유명한 인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이 책의 저자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 읽기의 즐거움이란 타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저자의 책 역시 고전을 읽는 문학 독법에 대한 내 스스로의 관심사를 통해 지적욕구를 채우는 이기적인 행위가 바탕이 된다는 사실만보더라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내 관심과 취향에 따라 선택된 책을 통해 또 다른 미지의 것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더 나아가 나만의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이르렀을 때 맛보았던 ‘독서의 즐거움’은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 목적이자 동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해럴드 블룸과 내가 느끼는 ‘독서의 즐거움’이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결코 쉽지가 않다. 저자는 책에서 고전작품 60여 편을 선별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가볍게 술술 읽어나가기에 좀 버겁기는 하다. 그가 풀어내는 지적사유의 결정체와 고전문학의 바다에서 헤엄치다보면 어느 새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으니까. 아니 방향만 찾지 못했다면 다시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내 지식의 한계는 어느덧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저자의 독서 안내를 힘겹게 쫒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가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고전작품들은 아직 반의반도 접하지 못한 글들이기에 그의 문학비평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책 페이지만 의미 없이 넘겨버린다. 차라리 소개된 60편의 고전작품들을 한 번씩이라도 접했다면 이리 막막하지는 않았을텐데하는 마음에 심란한 마음이 삐죽 솟아오르지만 때때로 저자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완벽하게 이해 되었을때의 기쁨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발자크와 디킨스의 천재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파리와 런던을 인물들로 가득 채우고 그들에게 기이할 정도로 인상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각양 각층의 사회적 계급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서술했는데 이 부분에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얼마 전에 읽었던 디킨스의 작품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디킨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이름, 성격, 사회적 위치와 직업등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인물관계도까지 그려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 그 책의 리뷰를 쓰자니 하나같이 중요하고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많아 모두 언급하지 못하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디킨스의 천재성이 바로 이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런 고생들이 괜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드러내보였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서정시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에밀리를 만나는 색다른 즐거움도 맛보는 한편,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힘겹게나마 한 발 다가선 충만감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작가는 단편, 시, 장편, 희곡등을 넘나들면서 실로 방대한 지적유희를 제공했는데 독자들은 여기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의 이야기들을 즐겁게 듣는 한편, 작품 날것 그대로를 독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만들어내는 ‘창조적 오독’의 단계를 꿈꾸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는 절대 진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의 문학 수업을 뛰어넘는 나만의 새로운 오독(誤讀)작업, 이것이 내가 이 책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 통해 얻은 특별한 독서법이다.
어쩌면 앞으로 난 좀 더 과감히 문학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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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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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백과사전 한 질을 구입해주신 이후 나는 매일같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린 내가 한 손으로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무게와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 내용은 방대함이 상상이상이었다. 당시 전화번호부책 만큼이나 두꺼웠던 각 권이 인물,사회,역사, 과학 등 세분화 되어 관심 있는 것만 골라 읽어도 뿌듯하고 좋았었다.

오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상력사전>을 만난 느낌이 딱 그 시절의 내가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인데 이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책을 통해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행복한 것이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사전이라는 책 제목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가 몇 해 전에 발간했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래 맞다. 이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특별하고 흥미로운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는 사전이다. 제목에 걸맞게 6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방대함. 기발하고 독특한 관점을 가진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상상력마저 자극한다. 때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거나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상상력 ‘사전’이라고 명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때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어서인지 이 책에서는 과학적 설명이 유독 두드러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 부분들이 조금 버겁기도 했다. 워낙 관심밖에 생소한 용어들도 있었기 때문인데 그건 초반의 기우에 불과하다. 나중에는 그런 것까지 새로운 지식으로써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이외의 다른 다양한 분야들 즉, 문학, 심리학, 연금술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군데 안 건드린 부분이 없을 정도이니 그가 어떻게 삶을 관조하고 글에 풀어내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래서 그렇게 독특하고 기발한 전작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나보다.

만약, 그가 우리와 같은 생각과 느낌들을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선보이는 데 그쳤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고유한 색깔을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했겠지만 자신 앞에 펼쳐진 생의 무대에서 순간순간을 그냥 넘기는 법 없이 항상 사유하고 끄적거리고 상상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이 가진 상상력의 무게를 즐기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실 우리 교육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주입식 교육에 따른 획일화된 사고와 경직된 창의성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데 바로 이런 작가와 같은 상상력이 배제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상상하는 힘’은 아닐는지. 게다가 상상력이 결핍되면 오직 한 가지 답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편협한 사고를 갖게 되고 결국 이는 상대방의 차이마저 부정하는 위험한 결론에 이를수 있다는게 나의 견해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위대한 상상력의 향연을 감탄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처럼 단조롭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개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재미나고 신선하게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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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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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어렸을 때 한 번씩 집에 방문한 친척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리고 함께 온 사촌들과 나를 비교하는 작업이 빠지지 않았고 그러면 나는 그 아이들에게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눈흘김을 당해야했었다. 조금 더 커서는 이사를 할 때면 항상 내가 애지중지한 책들이 애를 먹였다. 이사 한 달 전부터 엄마는 책 좀 정리해서 빼놓고 가자고 나를 닦달하셨고, 나는 한 권도 정리할 책이 없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책 때문에 이사비용은 늘어났지만 책은 결코 정리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할 내 분신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지금도 나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면서 책장 앞에 서 있는 잠깐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책을 읽는 속도 보다 책을 구입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점점 선택하는 일이 힘들어지지만 책장에 쌓여가는 책을 보는 건 통장에 잔고가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기쁜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연유로 나는 단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사유 없이 읽는 건 기계적인 반복일 뿐이라는 생각에 항상 책 리뷰로 마무리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책의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많지만 그 중 가장 으뜸은 책이리라. 여기 15인의 지식인이 있고 회고하듯 우리에게 고백한다. 독서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으려는 일생의 놀이터요, 미래를 향해가는 교량이라고. 그런가하면 또 다른 지식인은 책은 자신이 존재하는 근거라하고 서재는 삶의 길을 찾는 고물상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서재라는 공간, 책이라는 사물은 이미 물질적인 속성을 넘어선 근원적인 존재이유였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세울 수 있는 지적사유의 무대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수 십 권, 수 백 권의 책들 사이를 넘나들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리고 현재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우뚝 서 있다.

 나에게 책은, 서재는 내가 스스로 만든 학교이다.

20대 후반까지 세상은 나름 나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책에서 말하는 대로 성실히 열심히 살면 행복한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고 그 믿음이 크게 엇나가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인 삶 속에서는.  

그러나 30대에 들어서면서 뒤늦게나마 세상이 조금은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고 들리는 게 모두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에 눈앞의 것들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실과 진실사이에 숨겨진 엄청난 괴리감을 발견하게 해 준 것은 새롭게 탐독하기 시작한 책들이었다. 이전까지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세상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던 그 안에서 진짜 세상이야기를 발견한 후 나는 새로운 나만의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서재라는 공간에서 책이라는 지식을 가지고서.

작년에는 내가 만든 이 학교에서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라는 책을 통해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법을 배웠고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읽으며 실제 교사의 눈을 빌어 학교폭력의 진짜모습을 체험했다. 또 몇 달 전에는 [동물농장]을 다시 읽으며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인간의 탐욕과 허망스런 욕망을 재확인했다. 지금은 [지식인의 서재]를 읽는 동안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쌓으며 책과 소통해온 그들의 모습 속에서 각자의 인생을 완성해가는 거짓 없는 방법을 지켜보았다. 내일은 또 다른 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것이고 나 역시 오늘의 내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나의 학교는 항상 건재할 것이다. 내가 모셔다 놓은 스승들과 함께.

 

나는 책을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 안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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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교 - 고양이에게 배우는 마음공부
잇사이 쵸잔시 지음, 김현용 옮김, 이부현 감수 / 안티쿠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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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한다. 검도란 운동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수양을 배우기 때문에 검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한다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건 곧, 사물과 자아,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와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해탈의 경지를 이르기 위한 깨달음이었다.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이 온 우주와 철학 사상을 담고 있어서 그 간결함과 응축된 의미가 쉬도 때도 없이 허를 찌른다.

잇사이 쵸잔시라는 이 책의 저자는 일본 막부 시대의 무도가이면서 교육자,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이 책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내용으로 쇼캔이라는 검술가의 집에 큰 쥐가 나타난다. 이 큰 쥐를 잡기위해 용감무쌍한 고양이들이 뛰어들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죄다 실패하고 만다. 수소문 끝에 뛰어난 고양이가 있다하여 보니, 이 고양이는 소문처럼 똘똘하지도 않고 늙은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고양이를 그 큰 쥐 앞에 데려다 놓자 그 위세등등함에 쥐가 꼼짝하지 못하고 잡혀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서 쥐사냥을 시도했던 그 내노라하는 고양이들이 늙은 고양이에게 그 비결을 묻는 것인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마치 늙은 훈장 선생님을 앞에 두고 동양철학을 배우는 것처럼 진중하기 그지없다. 하나의 화두를 던지면 그에 답하는 늙은 고양이는 달변가 중에 달변가라 불러도 될 만큼 뛰어난 가르침을 선사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야기 원문은 그리 길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작품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 번역과 철학적 해석등이 함께 곁들여져 있는데 우리의 삶과 접목시켜 큰 생각거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동양적인 정서와 철학적 사유를 맛보는 과정이 흥미롭지만 쉽게만 읽히지는 않는다.

본문의 내용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자신 안에 있지만 이를 스스로 볼 수가 없을 때 외부에서 지적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그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의 가르침은 간단하며 그 내용 또한 간단한 것입니다. 자신 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곧 견성이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이란 망상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하며, 눈을 뜬다고 하는 것 또한 망상에서 깨어남을 일컫는 것입니다.” [본문중]


선생의 가르침은 간단하지만 그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인간의 삶에 다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작은 무도서이지만 삶의 가르침이 모두 녹아있는 이 한 권의 책이 바로 스승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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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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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단어 중 내가 자주 쓰고 좀 더 자주 들여다보는 단어중 하나가 ‘청춘’이라는 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청춘을 지났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지나간 청춘이 너무 그리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같이 그 단어가 맴돈다.
청춘을 정의하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번에 만난 이 책의 제목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도 그때는 그렇게 아팠으니까.
하지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아프지?라고 이야기 해주는 이가 없었다. 대부분 얼마나 좋니? 두려울 게 뭐가 있니? 앞날이 창창하구나...와 같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러나 난 그 시절 참 많이 아팠다. 두려울 게 뭐가 있냐는 말이 무색하게끔 인생의 선택지 앞에서 하나하나가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다. 얼마나 좋니라는 말에 씁쓸한 미소를 날릴 정도로 온 마음으로 좋았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다만, 남들이 내 나이 때는 좋은거라고 하니까, 그렇게들 이야기해서 보니 딱히 나쁜 것도 없는 것 같으니까 소극적으로 수긍했을 뿐이다. 아니, 대학생이 되어 만끽한 그 자유스러움 하나만으로도 아픔이 상쇄되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서 호흡하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해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을 참 잘도 이해하는 구나 싶다. 게다가 ‘어른’성인들이 처음부터 무엇이든 가르치려드는 어조도 아니고, 두 팔 벌려 꼭 안아주고 나서는 자 이제 울음 뚝 그치고 앞일을 생각해보자, 네가 아픈 건 당연하니까 그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상처를 봉합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자라고 다독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수많은 아프다는 청춘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건가 보다.
벌써 몇 주간 서점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유명세도 있고 해서 책의 제일 앞면을 펼쳤더니...맙소사!!! 지난 5월 2일에 무려 246쇄를 발행했다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출간 석 달만에 50만부를 훌쩍 넘기고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이런 추세라면 100만부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의 인생 강의에 이렇게 감동하고 위로받는 것일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자야말로 내 전처를 지나간 인생선배가 맞구나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그도 암울하고 어두운 청춘의 터널에서 고뇌하고 갈등하고 아파하였지만 그때의 그 아픔 때문에 지금 비상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왜 요즘 청춘들은 눈앞의 단기간에만 열중하는지 앞으로 얼마나 긴 장기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당장 뭔가 결론이 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조급해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한다. 특히나 혼자 있지 말라는 말 너무 공감된다. 너나 할 것 없이 홀로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진 요즘이다. 함께 있어도 사람이니까 외롭다는 말도 있는데 혼자인 청춘들은 얼마나 외롭겠나?

그의 말처럼 이어폰 빼고 컴퓨터 끄고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 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 인생에도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적당한 레시피를 주변에서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수많은 요리를 해 온 경험자들이 저마다의 요리 레시피를 작성하고 가르쳐 주었듯이 인생 역시 앞서간 많은 선배들의 레시피를 배울 수 있을테니까.
그렇지만 명심하자. 결국 그 레시피를 완성하는 사람은 나라는 절대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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