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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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야~ 저녁 먹었으니 하천가에 운동가자~”

 

배불리 저녁 먹고 편안히 쇼파에 누워 책 한 권 오지게 읽으려 했던 나는 ‘내일 가면 안되요?’라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이미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준비완료를 외치신다.

하는 수 없이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집 앞 하천가를 향해 함께 터벅터벅 걸어 나가게 되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금방 날이 저버려 아무 것도 안보이지만 한 여름 해질녁의 하천가에는 참으로 다양한 꽃이나 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진짜 마음먹고 눈길을 주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이름 모를 풀들이 저마다의 모양을 뽐내는 것이 신기할 때가 참 많았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똥그랗게 떠야만 볼 수 있는 녀석부터 큰 키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있는 꽃들에 이르기까지 어찌나 그 모습들이 다양하던지.

 

“장맛비를 맞고 수북수북 자라나는 저 흔한 잡초들도 한 포기, 한 포기가 수만 개 씨앗 가운데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쥐꼬리망초는 한 포기 싹이 터서 자라게 하기 위해 수만 개 씨앗을 준비한다. 그런 쥐꼬리망초 삶에 요행이란 없어 보인다. 쥐꼬리망초가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쥐꼬리망초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지 않을까.” P. 49

 

귀화식물을 또 다른 이주노동자라고 칭하거나 풀에서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런 온갖 종류의 들꽃들에서 우리네 삶을 발견한다. 언땅에 뿌리내리고 겨울을 나는 점나도 나물에서조차 비정규직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그렇지만 따뜻한 봄은 당신들 것이라고 응원하는 저자의 한없이 따뜻한 마음에서 나는 훈훈한 사람의 냄새를 느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사람내음이라고나 할까?

풀 한포기, 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도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한 눈으로 수용해야만 가능한 걸까? 갑자기 저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에는 이름도 낯설고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수많은 들꽃들이 등장한다. 들꽃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반면, 왜 난 이런 작은 생명에게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는지 삶의 여유가 참 없긴 하구나 싶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잡초마저도 그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고 나 역시 그렇다. 요즘은 도시들도 온통 친환경에 아름다운 미관을 가꾸기에 열을 올린다. 구청 앞이나 횡단보도 옆에 일렬로 늘어선 꽃들을 보면 와~ 예쁘다. 라는 생각이 처음엔 들지만 자꾸 지나가다 보면 뭔가 획일화되고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에 결국 인공적인 감상만 남는다. 때로는 아직 철도 지나지 않아 싹 바뀌어버린 꽃들을 보며 ‘이런 식으로 내 세금을 낭비하다니...’하고 살짝 분노하기도 한다.

그럴땐 차라리 풀 숲, 공터, 계단 밑에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풀들이 더 생명력 있고 귀해 보여서 이 녀석들에게 더 마음이 가기도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고 스스로 살아간다. 그래서 자연이다. 잡초가 많다는 것은 자연이 망가졌다는 것이고, 망가진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는 표시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생기는 상처딱지 같은 게 잡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되면 상처딱지가 떨어지듯 잡초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잡초를 뽑는 것은 아물지도 않는 상처딱지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꾸 이벤트를 벌이고 돈을 들여 그럴듯하게 뭔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건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또 그건 바꿔 끼워진 생명 없는 고무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P. 185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하고 그 자리에서 온전히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수많은 들꽃들을 우리는 얼마나 더 짓밟고 괴롭혀야 그 존재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오늘은... 화려하고 강한 향을 뿜는 꽃보다는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저 이름 모를 들꽃들에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눈인사라도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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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2-0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다란 콘크리트 화단에 알록달록 꽃들을 심어놓고 길가에 죽 늘어놓은 꼴을 보면 참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죽 돈 쓸 데가 없어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까 싶구요. 얼마지나지 않아 싹 갈아엎고 다른 꽃들로 바꿔놓은 꼴을 보면 참 할말이 없어지죠. 반면 콘크리트가 깨진 귀퉁이, 공터에 나있는 이름모를 풀꽃들을 보면 새삼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 참 맘에 드는 책입니다!

영원한 청춘 2010-12-01 05:15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도 이 책을 즐겁게 읽으셨군요. 저 역시도 그랬답니다.
책을 읽기전에는 그저 식물도감(?)같은 책이려니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그런 책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