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 셰익스피어에서 헤밍웨이까지 작품으로 읽는 문학 독법
해럴드 블룸 지음, 윤병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벌써 3년째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형식 속에 조금씩 끄적거리는 습관을 갖게 된지. 처음에는 간단히 몇 줄 안 되는 솔직한 감상들을 즉흥적으로 써대기 시작했고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저 이 책은 읽기 쉽고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듯하니 좋은 책같다라는 지극히 단순명료한 평들이었으니까. 그러하니 리뷰라는 걸 쓰는 게 하나도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는데 점점 시간이 흘러 같은 책을 읽고 쓴 타인의 멋드러진 리뷰를 접할 때면 나의 짧은 감상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 나의 리뷰도 업그레이드 시켜야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 나도 저렇게 제대로 된 리뷰를 써야 되는데, 혹은 나도 저 사람처럼 느꼈는데 글로 표현이 안된 것이구나 싶은 그런 생각들을 수도 없이 하면서.

그래서 본격적으로 서평다운(?)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노력과 진심이 조금은 통했는지 조그마한 서평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해 책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내 글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해 좌절감을 만나는 일도 많아지는 날들이다.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데 단지 그 느낌을 제대로 글로 풀어쓰기가 어렵다면 그나마 성공한 독서이지만 ‘최고’라고 찬사를 받는 책을 읽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거나 도대체 저자가 하는 말이 뭘까 감도 잡지 못할 때는 책을 씹어 먹어버리고픈 생각까지 들었다.
이럴 때 누군가 명쾌하게 작품을 해설하고 비평한 책을 보면 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양 황홀감에 취해 기존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해롤드 블룸의 독서기술]은 책 읽기의 목적과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었고 더 나아가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전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고마운 책이다.

  사실, 지난 2월부터 활동하는 책 카페에서 ‘고전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한 달에 한권씩 읽고 있는 중인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고전을 통해 나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유명한 인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이 책의 저자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 읽기의 즐거움이란 타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저자의 책 역시 고전을 읽는 문학 독법에 대한 내 스스로의 관심사를 통해 지적욕구를 채우는 이기적인 행위가 바탕이 된다는 사실만보더라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내 관심과 취향에 따라 선택된 책을 통해 또 다른 미지의 것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더 나아가 나만의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이르렀을 때 맛보았던 ‘독서의 즐거움’은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 목적이자 동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해럴드 블룸과 내가 느끼는 ‘독서의 즐거움’이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결코 쉽지가 않다. 저자는 책에서 고전작품 60여 편을 선별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가볍게 술술 읽어나가기에 좀 버겁기는 하다. 그가 풀어내는 지적사유의 결정체와 고전문학의 바다에서 헤엄치다보면 어느 새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으니까. 아니 방향만 찾지 못했다면 다시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내 지식의 한계는 어느덧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저자의 독서 안내를 힘겹게 쫒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가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고전작품들은 아직 반의반도 접하지 못한 글들이기에 그의 문학비평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책 페이지만 의미 없이 넘겨버린다. 차라리 소개된 60편의 고전작품들을 한 번씩이라도 접했다면 이리 막막하지는 않았을텐데하는 마음에 심란한 마음이 삐죽 솟아오르지만 때때로 저자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완벽하게 이해 되었을때의 기쁨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발자크와 디킨스의 천재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파리와 런던을 인물들로 가득 채우고 그들에게 기이할 정도로 인상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각양 각층의 사회적 계급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서술했는데 이 부분에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얼마 전에 읽었던 디킨스의 작품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디킨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이름, 성격, 사회적 위치와 직업등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인물관계도까지 그려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 그 책의 리뷰를 쓰자니 하나같이 중요하고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많아 모두 언급하지 못하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디킨스의 천재성이 바로 이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런 고생들이 괜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드러내보였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서정시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에밀리를 만나는 색다른 즐거움도 맛보는 한편,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힘겹게나마 한 발 다가선 충만감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작가는 단편, 시, 장편, 희곡등을 넘나들면서 실로 방대한 지적유희를 제공했는데 독자들은 여기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의 이야기들을 즐겁게 듣는 한편, 작품 날것 그대로를 독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만들어내는 ‘창조적 오독’의 단계를 꿈꾸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는 절대 진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의 문학 수업을 뛰어넘는 나만의 새로운 오독(誤讀)작업, 이것이 내가 이 책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 통해 얻은 특별한 독서법이다.
어쩌면 앞으로 난 좀 더 과감히 문학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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