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젓가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익숙한 식기로 식별성이 강해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악어꿈」 331쪽

아시아 3개국의 장르물 작가들이 젓가락을 소재로 한 괴담집을 위해 어벤저스를 구성했다. 원래 중화권 작가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으나, 괴기, 호러, 추리의 결합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거물 미쓰다 신조가 합류하면서 판이 커졌다. 여기다 홍콩의 찬호께이마저 등장하니 추미스 팬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하다. 나머지 3명의 대만, 홍콩 작가 역시 신조나 찬호께이와 일합을 겨루려면 한국에 소개가 안 되었을 뿐, 자국에서는 1진 급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 작가들은 후기에서 미쓰다 신조와 함께 글을 쓰는 영광을 누린다고 한껏 자세를 낮추지만, 팀을 구성하는데 턱없이 실력이 부족한 작가가 낄 틈은 없었을 거다. 이리 해서 탄생한 <쾌 : 젓가락 괴담 경연>(? : 怪談競演奇物語)은 5人5色의 매력으로 장르문학 애호가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책을 읽기 전 젓가락이라는 동아시아 공통의 소재로 각자 괴담을 쓰는 형식으로 알았는데, 5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은 '따로 또 같이'의 연작 구성을 취한다. 각 소설은 완결성을 띠지만, 일정 부분 연결 고리가 있다. 이 단편에서는 스쳐가는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는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매음새도 이어지고 있는 것. 상상력이 중요한 작가들에게 자유형이 아닌 이런 가이드를 두면 불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A급 작가들은 역시나 나의 기우를 뛰어넘는 내공을 보인다. 분명 이들 못지않게 빼어난 편집자의 공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통상적으로 육상 계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주자이고, 그다음이 첫 번째 주자다. 5인 릴레이의 시작은 미쓰다 신조, 마지막은 찬호께이다.

 

"여러분은 저주를 기획할 때 자신들이 인간의 '악의'라는 벌집을 쑤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아무리 간접적이라고 해도 부정적인 일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321쪽

'저주'를 생각한다.

강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기복(祈福) 행위를 한다. 소원을 말해보고, 기도, 기원, 축복을 하고...

악의를 가지고 하면 그건 저주가 된다. 힘이 있는 자, 권세가 있는 자는 저주를 잘 하지 않는다. 저주란 힘없는 약자의 마지막 무기다. 한없이 당하기만 했을 때,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가해자에게 복수를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저주뿐이다. 결혼 못 하고 죽은 처녀 귀신의 저주는 무섭다.

개별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해본다.

「젓가락님」 - 미쓰다 신조

젓가락님(오하시사마) 의식과 꿈속 '고도쿠' 세계의 결합.

* 고도쿠 ☞ 항아리 하나에 파충류나 벌레를 여러 종류 집어넣고, 마지막 한 마리가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잡아먹게 한 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을 섬기면 신령한 능력을 얻는다고 믿는 주술.

역시 미쓰다 신조의 향기가 강하게 배어있다. 너무 짧아서 아쉬운데, 애초 계획한 2만 자 규칙을 지킨 유일한 작품이라고.

「산호 뼈」 - 쉐시쓰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고객이 찾아간 퇴마 전문가와의 심리전.

젓가락은 왕선군(王仙君)이란 고유명사로 영혼을 부여받고 신격화되고 종교가 된다.

괴담으로 영혼이 치유되는 신비한 경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 예터우쯔 (본 젓가락 괴담 경연의 발제자)

제한된 공간과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지만 기둥 트릭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귀신 신부만 있고, 정작 경찰서에 가가 형사는 없단 말인가!

「악어 꿈」 - 샤오샹선

이 소설집에서 가장 강력한 한 방.

구성, 복선, 반전 모두 만족스럽다.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떻게 젓가락님 의식은 타이완에서 일본으로 건너 갔는가?"

다만 10세 소녀의 위업은 무리수 아닌가요, 작가님.

「해시노어」 - 찬호께이

'누가 어떤 전개를 하더라도 내가 다 받아줄게'하는 찬호께이의 객기. 박학다식한 그의 대체 역사 강의. 다른 작품들과 톤 앤 매너가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뷔페에서도 손이 안 가는 음식이 있기 마련.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럽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진수성찬이라고나 할까. 찬호께이와 미쓰다 신조가 참여한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을 앞에 두고 무념무상이다. 올해도 '도조 겐야' 시리즈 신작이 나왔건만 일단 '선수들의 결과물' <쾌>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할 수 없는 당신이 미쓰다 신조나 찬호께이라는 이름에 설렌다면 올해 연말 선물은 이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