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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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은 결핍에서 오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다. 그러나 빈곤은 공평하지 못하다. 대물림되는 빈곤의 대다수가 특정한 곳에 집중된다. 대대손손 빈곤의 망령은 삶을 공허하게 하고 불확실한 세상으로 물들게 한다. 상대적 빈곤이나 주관적 빈곤은 논외로 하더라도 절대적 빈곤은 삶을 공포로 내 몬다. 이러한 절대적 극 빈곤자 층의 대다수가 남반구에 산다. 적도 이남에 위치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 위치한 소외된 인간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농경지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굶주림에 허덕인다. 그들이 굶주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알량한 민족성을 들먹인다. 그들에게 펼쳐 진 고통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숙명처럼 부여된 가난과 결핍의 고통을 우리는 상대적 차별에 의한 결과로 포함하고 도외시한다. 이러한 모든 외면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의 아픔은 누구로부터의 시작인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북반구의 중심, 서양세계의 지배를 받고 산다. 문명의 근원지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는 우월감과 서양의 선민의식이 지배와 피지배로 나누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이 벗어 던진 야만성과 폭력의 광기는 식민 지배를 더욱 단련되고 완고한 무자비함으로 강화되어 연결되었다. 이로써 피와 광기로 얼룩져 가려진 역사의 이면은 문명의 충돌에서 살아남은 이긴 자의 몫으로 내어 주었다. 그 단 한 번의 처절한 패전의 도륙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불합리를 유발했다. 5백 년여 동안 끈질기게 유린당한 인권은 현재도 서양에 의해 쥐락펴락하는 믿기 힘든 현상이 오늘도 자행되고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이 책 <빼앗긴 대지의 꿈>은 삶의 터전을 상실해 꿈을 잃어버린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르포르타주다. 저자 장 지글러는 <탐욕의 제국>, <왜 세상의 절반을 굶주리고 있는가>에서 신랄한 비평과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서방세계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그의 연속기획물인 이 책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어진 빈곤에 대한 거대담론이다. 스위스 사회학자 출신인 장 지글러가 뿜어내는 서양의 원죄에 대한 재조명과 해석은 여태껏 알고 있던 역사서의 대부분을 새롭게 기술해야 될 지경에 이른다. 서양의 폭력과 무자비에 굴복당한 그들의 처참한 현장이 가려지고 지워진 현실처럼 폭력의 연대는 끈질기고도 무섭다.

 




      실제 이 책의 사례로 제시된 나이지리아와 볼리비아의 현실은 기존의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사그리 종식시킨다. 그 오염되고 가난이 짐승처럼 떠도는 현장은 서양의 무관용과 배타주의가 낳은 인위적인 참상이다. 서양은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자본과 기술의 우위를 앞세워 모든 것을 약탈한다. 그 배후에는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은행IBRD, 세계무역기구WTO가 사악한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서양은 문명화라는 협박과 감언이설로 남반구의 나라를 꼬드겨 국영기업을 무장해제시켜 빼앗고 열악한 무역조건을 약탈적 관세를 내 세워 빈곤의 악순환의 끓을 수없는 사슬로 묶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양의 이 모든 약탈의 목적은 사악한 독이었다. 그들에게 빌린 자본은 그 옛날 선조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던 광기의 시절과 전혀 다를 없다는 진실이다. 산업의 균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후진국에 대해 최첨단의 제품이 막강한 자본력을 토대로 밀려 와 썰물처럼 천연자원을 약탈해가도 넋을 놓기만 할 뿐 방도가 없다. 더욱이 자신들의 소중한 터전에서 일군 식량자원을 고스란히 약탈자들의 넘쳐나는 기름진 배를 채워주기 위한 탐욕의 도구로 희생되는 동안 그들의 자식들은 멀걸게 여윈 등가죽을 굽히고 불룩 솟은 세상 사이로 말라버린 눈물 한줌을 체념으로 게웠다. 파충류처럼 광산을 기어 하루 14시간 한달 내내 목숨을 담보로 엄청난 노동에 시달려도 돌아오는 것은 불과 푼돈에 불과하다. 

 

 

     이 모든 불공평은 서양의 탐욕이 낳은 구속당한 절망의 현실이다. 저자 장 지글러가 유엔인권식량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적나라하게 파헤친 믿기 힘든 어둠의 풍광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자행되는 타인의 고통이다. 수잔 손택은 이 세계의 거짓된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참된 이미지를 제대로 짚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폭력과 잔혹함이 난무하는 현실은 거짓으로 달궈진 오만함의 산물이다. 서양의 정신분열증상도 편견에 사로잡힌 결과다. 아울러 타자로부터의 관계가 고착화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설명히 가능하다. 인권은 누구나 향유할 천부된 권리다.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의 불평등은 부자유스러운 것이며 진정한 인간의 본성과도 무관하다고 본 장 자크 루소의 철학처럼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 프랑스가 탐욕의 광란에 도취될지라도 그 옛날 인권대선언의 정신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반전이 기가막힌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권은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권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환원 불가능한 무엇, 다시 말해서 가치의 정수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 함께 우리가 단 하나의 인간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P.124)

 

 

     남반구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양세계의 손아귀에서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서양세계가 만든 탐욕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뭉쳐 다져진 철옹성처럼 그들의 이권을 물샘틈없이 착취하는 동안 남반구의 나라들은 기아의 늪에 빠져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인다. 하지만 희망은 척박한 곳에서 움트기 마련이다. 볼리비아의 희망, 민선 인디오 대통령 에보 모랄데스의 등장은 탐욕의 사슬을 종식시키고 미래를 구원해 줄 소중한 등불이다. 그는 천박한 서양자본주의에 맞서 빼앗긴 영토주권을 회복하고 민족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시대적 대통합을 이뤄 낸 그의 희망의 불씨는 기울어진 불합리한 현실을 복원하는 근원이 될 테다. 갖은 진통과 내홍을 견뎌 이겨 낸 사회적 합의는 진정한 인권의 희망을 쌓는 초석이 될 것이다. 비록 그 어둡고 긴 어둠의 터널을 건너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여야 하겠지만 그 본질은 변질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정한 승리인지를 보여주는 인간성의 항체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은 바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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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5-1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1권력과도 중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남반구와 북반구 개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렇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07   좋아요 0 | URL
어떤 개념이나 이론의 충돌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저두 이 책을 보면서 비슷한 내용이 곁치는 책들을 떠올렸습니다. 박노자님, 우석훈님, 장하준님 등등 읽을 책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불확실한 세상 -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
박성민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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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에 경계는 불안이다. 불안의 징후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불안의 골이 깊을수록 세상은 더욱 비열해진다. "불안은 삶의 조건이며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유쾌한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불안은 욕망의 또 다른 존재인지 모른다. 이처럼 불안은 인간의 삶과 함께 뒹굴며 껴안고 살아가는 객체이다. 더욱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념도 정치도 과학도 문화도 모두 불안하다. 마치 심연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싼 불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더 나아가 불확실함을 추동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한다. 불확실한 것의 개념을 확실의 범주로 끌어내려 원인이라는 씨줄과 결과라는 날줄로 치밀하게 엮었다. 정치, 사회, 경제, 종교, 과학의 인식 있는 건강한 생각의 총합이 이 책으로 귀결된다. 결국 불확실을 통해 확실로 나아가는 지혜를 찾는 대항해에 비유된다. 이러한 각기 다른 제 분야의 공통점을 하나의 요소로 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념의 중추를 이끄는 알고리즘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작용하지 않는 이상 그 전제는 취약해 진다. 그래서 10명의 각 분야의 석학들이 모여 불확실성을 치유할 키워드를 찾고자 생각을 모았다. 그들이 고민하고 숙고한 흔적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불확실한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 그리고 그의 돈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보장해주는가로 측정되어 진다. 그래서 권력은 계층을 생산하고 계층은 또 다른 계급을 만든다. 이러한 계급화 사회는 우리 사회를 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의 정치현상을 꼭 이와 같이 그린다. 우파와 좌파에 대한 본질, 이해관계에 얽힌 집합체, 명분을 중시하는 오염된 정치세력 등 정치의 오랜 불신을 모두 담는다. 아마 파벌현상은 인간이 사회를 만든 그 시점부터 생겼으리라. 그것이 건전한 견제와 건강한 이념을 유도하는 교집합이 된다면 이상적인 모습이겠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 사회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이 책이 지목한 정치의 혼탁은 본질에 대한 정체성과 직결된다. 정체성은 우리의 존재가치를 일깨우는 방증이자 체제를 유지시키는 견인차가 된다. 그것은 또한 불평등을 제거하는 평등의 산물이며 인간답게 하는 삶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박성민 대표가 말하는 가시거리의 이론은 실로 적절한 비유다. 정치의 출발이 무엇인지 절로 묻게 된다.

 

        경제 또한 서양의 자본주의의 압력에 정치만큼 불확실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통제된 경제시스템은 다수의 노동을 통해 소수가 착취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발판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그것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제국주의의 폭압과 식민화를 통해 일궈진 부의 기틀을 서양은 오롯이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발주자로 뛰어든 우리 경제가 그들과의 경쟁에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그것에 있다. 그들이 주창하는 경쟁의 미덕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며 비열함을 감춘 부정의 소치다. 결국 저자들이 지적하는 정보화를 통한 분배의 양극화, 비효율성, 경제테크놀로지는 이미 그들로부터 비롯된 체제의 오류와 다르지 않다. 브랜드화를 부추기고 소비를 미덕이라고 삼는 기회의 개방은 유리 막처럼 차단된 모두를 서민화시키는 첩경인지 모른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의 안전판이 바로 공공복지다. 복지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사회적 담보장치다. 그러나 우리 현재 복지정책은 역주행을 신나게 한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전차처럼 말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종교에 대한 배려나 너그러움이 혼재이다. 맹목적인 광신도나 종교근본주의자가 희박한 토양에서 이러한 현상은 국제적으로도 이례적이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사회와의 밀애는 그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아 오른 곳 또한 우리 사회다. 종교의 본질은 차치하고라도 종교가 하나의 기업화로 관변단체로 이행한다.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종교는 성스러움을 최고 가치로 삼고 불안한 인간을 보듬는 안식처와 같은 존재다. 무신론자가 넘쳐나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그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이념의 물경화다. 물신주의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종교적 선을 추구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더욱이 종교의 본질이 위협받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불확실성을 근접한 거리에서 위무하는 유일한 개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세계화가 되면서 나타난 현상 중 과학의 대중화와 정보기술의 발달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과학과의 연계는 직접적이고 빠른 전이가 특징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에 인간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흡수되거나 도태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세기말부터 지속된 바이러스의 전파는 그러한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질병의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특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따라서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위험에 대처하느냐가 공중 보건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는  강양구 기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싸워야 하는지 모른다. 정보의 독점화로 인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다국적 제약회사와 결부된다면 신종플루나 조류독감의 위험성마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21세기가 생산한 우경화는 집단 무의식 속에 위험을 담보로 우리는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밖에도  지구 온난화의 실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불확실성을 포섭한 과학과 수학의 관계에 대한 논제는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추적된 불확실은, 궤적의 평행선을 뚫고 그려 나아가 그 선상의 대척점으로부터 순항하며 영원불멸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긴박하게 우리를 향한다. 그들이 바라 본 세상의 불확실은 다름 아닌 모두의 불확실로, 어김없는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확실의 요체는 확실이라는 상태를 통해 단련되어 지며 긴장의 순간은 더욱 바싹 고삐를 조여 옴을 알게 된다. 집단최면으로 얼룩진 불안한 이념의 동요가 계몽된 이성의 지각위에 우뚝 서는 그날까지 우리는 희망하는지 모른다. 타락한 천민자본주의가 세상을 취하게 하고 어지럽게 하여도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현재의 가치로 변함없다. 맨틀의 거대한 움직임처럼 나아가고 움직인다는 만고의 진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돌며 불확실이 확실로 확실히 불확실로 바뀌는 역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을 동력삼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불확실성으로 뭉친 확실성의 길을 나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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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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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생각 없다."는 말을 숱해 써 댔다. 딴에는 상대방이 신중하지 못하다거나 결과가 엉성할 때마다 연신 버릇처럼 읊조렸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왜곡된 시각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수용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오히려 부정적 관념이 지배적이다. 다양성을 묵살하고 동조하지 않는 타자의 요구와 이해를 거부하는 편협한 사고의 일환이다. 이처럼 생각없다의 논리는 따져 보면 배려나 소통이 단절된 불협화음의 한 단면이자 일방적 대화의 표본이다. 두 번째는 "생각 없다."를 행위의 관념을 통해 상태의 무지와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가 고착화될 때 무지를 빌미로 생각을 강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은 무지를 포함하게 되고 상대를 얕보게 되는 원인이 된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과 어떤 목표나 결론에 도출하기 위한 관념의 과정인 생각이 동일시될 수는 없다. 남발된 생각으로부터의 공격은 폭력이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생각 없다."는 단정적 의견의 표현은 이제 쉽게 혀끝으로 내뱉기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매일 핫이슈처럼 떠오르는 우리 사회의 현안문제들 대부분 생각 없다는 일방통행으로 춤춘다. 이 책 <생각의 좌표>는 생각이 잉태한 의식화된 문제를 생각하고 되짚어 보며 방향성을 제시한다. 아울러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생각의 개념을 시원하게 해소해 준다. 나는 저자 홍세화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처음 만났다. 그가 풀어 낸 프랑스 생활의 고단함보다 똘레랑스(관용, tolerance)의 표현이 그윽하고 울림을 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에게는 의식의 지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할 지에 대해 무척 진지한 물음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만 해도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던 때로 민주화를 향한 거친 항해를 막 통과하던 시기였다. 학내에는 투쟁보다는 취업의 현실이 더욱 살벌하게 버티고 서서 영혼을 옭아매고 저주받게 만든 세월의 연속이었다. 관용은 잊혔고 경쟁과 살기위한 몸부림만 남았다. 안전판은 고사하고 떨어지면 낙오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팽배했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세운 목표와 도전은 명분에 불과했으며 위선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나는 진정 행복한가를 진지하게 되묻게 된다. 88만원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그토록 고군부투했던 지난한 세월과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르고 기었던 세월이 대체 누구를 위해 그토록 시큼하고 얼얼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각을 추동하는 물질은 뚜렷한 명분과 소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현재 생각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로부터의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생각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저자의 단상은 우경화의 굴레를 벗겨 주는 소중한 틀이다. 사람은 환경과 습관에 지배를 받는다. 의식 또한 마찬가지로 주체적 사고를 말살하고 치우친 좌표에 따라 움직이다보면 좀처럼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책에서는 우리를 향해 날 선 시선처럼 물어 오는 불편한 질문들이 반복 계속적으로 출현한다. 자유에 대한 불온한 생각의 실체, 천형과도 같은 지역주의에 대한 망령, 나눔과 배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구조, 현실에 안주하는 암묵적 동조 등 소통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꾹꾹 눌려 숨겨 왔던 환부를 고스란히 까발린다. 자각증세가 없는 암세포가 점령해 시어빠진 몸뚱이처럼 우울하다.

 

        이 책 속에 자주 등장하며 눈에 뜨이는 단어 중 사회귀족이 있다. 사회귀족은 계급과 신분이 없는 민주사회가 자본주의와 결탁하면서 만들어 낸 계층쯤으로 이해된다. 그들에게 우리는 오블리스의 영예를 부여했다면 노블리주는 체화되어 드러나야 온당 옳다. 그런데 노블리주는 형식화되고 명분만 남았다. 1% 상위 부자에게만 국한되는 종합부동산세를 평등에 반한다는 논리로 무력화시키고 감세에 환영하는 처사는 불온한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세금에 민감하다. 저자 말마따나 세금이 제대로 쓰일 리 없다는 의심이 팽배하기도 한 현실도 한 몫 했겠거니와 유리알처럼 얇은 지갑을 여는 행동은 약탈처럼 섬뜩하게 다가선다. 하지만 실제 세금은 소외된 저 소득자를 돕고 분배의 패러다임을 유기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목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면 사회의 안전은 위태롭다. 목 놓아 부르는 저자의 톨레랑스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관용과 미덕은 색깔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사회의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자연적 이치를 깨우쳐야 한다.

 

        고이면 섞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 속에서 산다. 이곳에서 산다면 당신을 말해준다는 건설광고의 한 자락처럼 물질이 정신을 지배했다. 아파트 크기와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계급을 만들어 준다면 진입장벽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마땅하다. 사회적 평등이란 조건과 기회가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와 다르며 이상주의자들의 희망이 아니다. 생각의 좌표가 물질에 맞추어 져 만들어 낸 결과이며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한 물신경배에 대한 현실이다. 이처럼 저자는 물신경배에 대한 삐뚤어진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기회 차별의 깊은 골에서부터 출발하는 물질만능주의이념에 전도된 세상의 비루한 현실에 대해 통렬한 생각 한 줄기를 던진다. 강남에서 잘 사는 아이와 소도시 아이의 인생은 같을 수 없다. 운명은 예정되어 있다는 숙명에 무릎을 꿇게 되는 비열한 현실이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구전된 민화의 흔적으로나마 찾을 수 있겠다. 교육의 양극화에 대한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양극화를 부추긴 데에는 모두의 잘못으로 우리는 곧잘 해명한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미루기만 난무하고 정녕 대책은 없다. 특목고를 만들어 개성을 담고 자율화를 높이겠다는 미명 아래 양극화를 더욱 조장하는 현실은 아이의 앞날에 먹구름만 짙다. 생색내기용 사회적 배려도 그들에게는 무소용이다. 면제된 학비에 육박하는 기타 보충수업비 등은 수입의 전부를 훌쩍 넘어선다. 결국 노블레스를 위한 마름으로 우리는 열심히 산다는 푸념만 한 가득이다.

 

        그렇게 차별화된 교육현장을 뚫고 사회로 배출된다해도 인생역전은 없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이 남긴 잉여인간처럼 불안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은 줄곧 해 왔음은 틀림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저자의 지적처럼 의식화되고 세뇌된 회색논리로 물든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이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뒤따른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무관심도 자유를 유기하는 공범이다. 하지만 여기서 되묻게 된다. 너의 밥그릇을 내어 놓을 수 있겠느냐고. 비약적 추궁인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적 연대를 꿈꾸는 소시민으로서 갈등이 앞선다. 언제부터 이렇게 염세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나마 분명한 것은 희망은 치이고 베여도 미래를 품는다는 사실이다. 똘레랑스의 저자처럼 쓴 소리 가감 없이 뱉어 주는 따끔한 일침은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됨은 분명하다. 역사는 지루하지만 변해 가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프랑스대혁명의 숭고한 이상이 이 땅위에 바로 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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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심리학 - 상대를 이기는 스마트 심리학 이기는 심리학 1
김문성 지음 / 스타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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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어렵고 힘이 든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한다. 나와 관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을 수 없음에서 오는 당연한 현상임을 알면서도 종종 열패감에 피로가 누적된다. 그래서 보다 나은 공감과  상호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을 찾아 롤모델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결국 인간을 이해한다는 본질을 따져 묻는 것에 있다. 타인으로부터 전해 오는 표정, 감정, 몸짓 등을 통해 그 너머의 진실을 찾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의미겠다. 역사를 통해 이와 같은 추적의 흔적은 넓게 산재해 있다. 고대의 로마신화에서부터 중국의 용인술에 이르기까지 그 파장효과는 실로 광범위하다. 이와 같이 심리학을 통해 인간을 통찰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의 종처럼 말이다. 동시에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모든 것들의 공통분모 또한 심리관계다. 그래서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심리분석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의 동기動機에 포커스가 맞추어 진다.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행위를 불러일으키고 지시하는 것이 바로 동기다.

 

        그러므로 이 책이 펼쳐 낸 함의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한다. 가려운 곳은 긁어 주고 아픈 곳은 보듬어 준다. 또 어렴풋이 알고 있던 잠재의식에 갇힌 해법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것이 이 책의 괄목할만한 성과다. 통념의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본다는 현실 괴리적인 해법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었기에 대입과 적용이 무척 빠르고 살갑게 느껴진다. 저자가 골라 뽑은 제목처럼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 이기는 필승 해법들로 가득 메워진 느낌이다. 사람을 읽고 사람을 다루는 실용적인 접근법의 경쾌한 기술이 무척 인상적이다. 저자 김문성은 인간을 통해 찾은 키워드를 통해 성공에 다가서라고 주문한다. 그 중심에 심리학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성공'이란 선천적인 재능과 함께 끈질긴 인내로 목표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쓰는 것이다.(머리말에서)

 

        하지만 책의 윤문과 편집이 미흡한 점이 크게 아쉽다. 오탈자와 문맥오류 등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의 질적 완성도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물며 심리학을 다루는 책이 그렇다면 일반화된 오류가 팽배해 지기는 더욱 쉽겠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서운함이 읽는 내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아울러 단정적인 서술방식은 편향된 생각을 생산해 내어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학문의 열의와 굳은 신뢰가 저자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확고함에는 이견이 없으나, 인간심리에 대해 확정적인 논거는 반대다. 행위의 전제로 다채로운 경험과 간섭의 영향으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불러일으키는 우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이렇게 라는 상황적 설명에 부수적인 증거를 통해 타자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좋으나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위험한 사고의 연장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맥락과 취지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저자와의 소통이 와전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나로서는 균형감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였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책의 질적인 완성도에는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것은 오롯이 독자들 개개인의 몫이다.

 

        책은 총 4부로 나누어 인간을 통찰한다. 사람을 알고, 읽고, 얻으며, 잡는 기술을 세세하게 다루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표리부동함에 내재된 실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상호관계에서 항상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미연에 안다면 백전백승이다.  인간은 생각이라는 재료를 통해 감정을 견인한다. 감정은 드러난 사실과 달리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책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해 관계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통찰한 범위는 인간을 아우르는 심리세계의 모든 것을 총괄한다. 희로애락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정의 프레임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살펴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주력했다.

 

        우리는 고착화된 오류와 편견의 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드러나지 않는 생각은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구현되고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은 불안의 상태와 즐거움의 상태가 동일할 수는 없다는 것과 같다. 긴장감이 과도하게 억누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표정을 감추는 이른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인간의 이면에는 실제의 모습이 은연중에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의 분출이 인간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저자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로 꼽았다. 대개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홍조를 띄는 완연한 증거를 남긴다. 따라서 인간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물리적 현상까지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반드시 생산되는 증거를 채집해 나간다면  의사소통과정은 보다 쉬워진다는 의미겠다.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최대의 이유는 생각하고 사유하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의 마음은 상황에 지배를 받고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은 유약하고 외부의 영향에 쉽게 변질되는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이해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인간은 타자로부터 존중받기를 바란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 의하면 생리적, 안전,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집단 내에서 포지션을 얻기를 원하게 되는 자아존중의 욕망을 갈망하게 된다. 욕망의 동기부여는 인간을 추동하는 동인이다.  그래서 인간이 욕구충족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트라우마가 되고 심리적 불안으로 전이된다. 이처럼 심리학은 심오한 진실의 우듬지를 솎아 내는 작업이다. 저자의 논리처럼 상대방이 전해 오는 감정의 징후를 포착하고 스킬을 배운다는 것은 실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렇듯 저자가 이야기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는 진정한 의미는 공감이다. 상대방의 주장과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성공을 의미한다.  말과 달리 전해 오는 신체언어, 즉 상대방의 제스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 최선이다.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묘약이다. 따라서 상대를 이긴다는 말은 나를 이긴다는 뜻이다. 행간의 숨은 뜻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조금이나마 미연에 대처할 수 있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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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3-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 쥑여주십니다. <심리학, 어렵다> 이보다 더한 심리학 정의가 있을까요? 진중한 리뷰 뒤에 숨은 님의 이런 유머마저 존경합니다. ㅋㅋ

穀雨(곡우) 2010-03-15 14:20   좋아요 0 | URL
느와르님 덕에 한껏 비행기탑니다.@.@
 
심리학의 힘 P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
전우영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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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정해 놓은 틀이 없기에 복잡 미묘하다는 의미다. 동일한 상황도 어떤 이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어떤 이에게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예측 불가능한 마음의 행로를 엿 본다는 것은 관계를 푸는 열쇠와도 같다. 인간은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최근 들어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경향을 보인다. 지금의 인기도 예전에는 심리학에 대한 편견과 괄시가 심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심리학을 배워서 어디에 써 먹겠느냐."는 자본주의식 선택의 결과였다. 하지만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성화될수록 인간에 대한 탐구는 중요한 가치판단의 수단으로 부상한다. 언제나 화두는 인간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요즘 서점에 나가 보면 엇비슷한 유형의 심리학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인간을 이해하는 올바른 도구로서의 조언자를 자처하며 심리학이 인간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 <심리학의 힘, P>는 독자층의 구미에 당기는 콘텐츠를 담아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쉬운 내용과 잘 알려진 스포츠 스타, 연예인의 행위를 적절하게 버무려 놓았기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명한 마술사가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 보는 독심술처럼 해법이 절묘하고 기가 막힌다. 그 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 주는 일종의 처세의 기술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심리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미 소개된 내용의 윤색에 가까워 진부해 버린 소재의 식상함이 아쉽다는 흠이 있지만 이것도 읽는 이에 따라 개인차를 보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겠다.

 

        책은 전체 11가지 테마로 구성했다.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결과인 행위와 영향을 미치는 원인관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작동하는 실체의 구조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지에 돋보기를 들이 밀었다. 기실 심리학의 연구 성과는 1+1=2라는 논리추론을 도출해 낼 수도 있지만 1+1=1이 될 수도 있다는 비논리적 결과를 보여 줄 수도 있는 분야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 보는 데는 인간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소위 마음이라고 하는 뇌의 기능적 연결이 다양한 효과와 경향을 생산해 내는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된다는 이유도 그러하다. 그래서 현대의 심리학은 뇌의 특정부위가 담당하는 영역범위에 따른 메커니즘을 토대로 이해하는 영역으로 빠르게 전이된 상태다. 이 책에서는 독자의 가독범위를 고려하여 구체적인 사례에 무게 추를 두었지만 결국 추구하는 요소는 마음의 이치를 발견하는 지도를 찾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일반인들보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긴장감이나 심리변화는 상당하다. 실제 이번 벤쿠버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트의 여제 김연아가 받은 심리적 불안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컸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의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평소에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며, 세계의 눈을 매혹시키고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을 극복하고 더 좋은 결과를 얻어 내기 위한 방법을 이 책에서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긴장된 상태, 즉 각성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평소의 습관과 경험치에 따라 달라진다. 각성상태에 따른 부정적 효과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함께 동반하게 된다. 하지만 박지성, 베컴 등은 적재적소에 걸맞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보이기에는 담담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켜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게 한다. 이것을 '사회적 촉진'이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책은 강조한한다.

 

        심리학의 영향력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음의 상태를  관찰하는 학문이다. 무릇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 책에서 소개된 집단의 영향, 인간의 생리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 사이에서 오는 다양한 결과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프로이드가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 상이한 욕구를 보인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도 이해 가능한 범주에 놓인다. 비록 칼 융에 의하여 수정되고 보완되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상호작용에 따른 관계를 규명했다는 평가는 현재도 긍정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교감하고 관계를 맺을 때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원활한 하나의 개체로 성장한다는 것이 숨겨진 가치다. 끊임없는 피드백에 의한 원만한 관계의 형성이 사회적 촉진을 돕는 첩경이며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거대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책은 이러한 사회적 촉진에 대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근영이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자 기부행위가 증가했다는 사례, 박태환이 올림픽에서 착용하고 나온 헤드폰, 수영복의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 났다는 사례 등은 동일시의 투영으로 설명한다. 마이클 조던의 23번 등번호가 박힌 티셔츠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이렇게 매니아 층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는 스타들의 행위와 팬들과의 사이에는 일정한 동질감이 그들을 묶게 된다. 동질감은 사회적 욕구를 분출하는 또 다른 창구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은 인간의 일반화된 경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주는 막강한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가 찾는 키워드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유기체다. 혼자일 때나 집단 속에 있을 때나 어디서든 주위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지를 확인하고자 하며 왕성한 호기심을 소유한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관계의 정도에 따라 불안해하기도, 행복해 하기도 쉬운 타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욕구 내지 욕망에 의해 불안한 상태를 종결시키고 극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흔히 초인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보아 알 수 있듯 사고思考의 전환에서 기인한다. 평범한 비타민을 두통을 멈추는 데에 특효약이라는 외관을 형성한 상태에서 우리는 신뢰의 힘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는 플라시보효과처럼 심리학은 인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이 규명하고 밝힌 경향Bias과 효과Effect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을 본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겠다. 이 책을 통해 왜 슬럼프에 빠지고 징크스가 생기며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화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 간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기에 일독하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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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0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우리 삼남매 중 누군가 전공하면 좋겠다고 부추기는 중이지요.^^
친절한 리뷰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穀雨(곡우) 2010-03-08 08:41   좋아요 0 | URL
심리학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맛이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소원대로 성취하시길...^^

다크아이즈 2010-03-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심리학 관련 치유서 읽으면서 마음 다친 것 많이 돌려 놨지요. 근데 도루묵이네요. 반복 학습이 필요할 때인데 좋은 리뷰에 위안 삼고 갑니다.

穀雨(곡우) 2010-03-08 13:50   좋아요 0 | URL
무슨 일이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