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과 올로지 - 세상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
아서 골드워그 지음, 이경아 옮김, 남경태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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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일 매일 갓 구운 신문의 내용을 드려다 보면 ‘이데올로기’와 ‘이념’이 판을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이론이나 의견이 오늘은 옛것이 되고 또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이해득실관계로 얽힌 목적 집단의 다량출현에도 있다. 이처럼 생소한 저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막연한 불안감마저 치민다. 내가 언제 그들을 보기라도 했던가? 아님 들어 보기라도 했던가? 지식홍수시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마뜩찮은 현실이다.

 


그래서 나 같은 무지몽매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앞서와 같은 고민을 몽땅 그리 종식시키기 위해서 등장한 책이 바로 <이즘과 올로지>이다. 그 발상이 고맙고 번뜩이는 재치가 더 없이 빛나 보인다. 대략 눈짐작으로 그런 뜻이겠거니 하고 구렁이 담 넘듯 두루 뭉실 넘어 가던 허접한 지식 주머니에 한 가득 채운 심정이다. 게다가 개념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당최 야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인간을 빗댄 인종이란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발견했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이런 類류의 백과사전식 책들은 손 잡히는 가까이에 두고 읽는 것이 제격이다. 단숨에 읽어 내린다고 게살 뽑아 먹듯 쏙쏙 넘어 오는 짭조름한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읽으면 긴요하게 여러모로 쓰임새가 클 것 같다. 하지만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용도가 우선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읽다보면 제법 구미가 쏠쏠 당기는 것이 동종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호기심이 그득하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일정한 틀이나 법칙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사상이나 이념으로 묶인 틀은 상호연관성으로 얽히게 된다. 그 다양한 이념의 줄기들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흡수되어 새롭게 변태하고 파생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정치, 역사, 철학, 예술, 과학, 경제, 종교, 성도착 등의 카테고리로 나열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사실 인간이 만든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그 기저에는 일정한 틀이 있음을 발견한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그 이념 속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항과 지배의 대립이자 사회적 소통이며 역사의 순환이다.

 


이 책에서 선보인 이즘과 올로지의 근간은 생소한 줄기다. 전적으로 미국식 자유주의에 의해 저술된 탓도 크다 하겠으나, 저자가 파헤친 직관의 우듬지 또한 대단하다. 종횡으로 넘나드는 지식의 방대함이 산을 이룬다. 비록 미국식 사상과 색깔에 맞춘 렌즈로 인화된 가치관의 집대성이 진하게 담겨 배어 있긴 해도 가볍게 넘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백과사전이 주는 태생적 한계도 있거니와 시각적 편협함과 치우침을 차치하더라도 이 책이 가져 다 주는 가치는 사상의 주류적 흐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바로보고 이해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지식전달의 이면을 뛰어 넘어 인간의 모든 생각을 관통하는 그것은 지혜의 산물이다. 초끈이론에서 드러난 불일치의 패턴처럼 사회구조, 인간 심리, 철학, 사상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이어진 관계의 나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가 짚어 내다 본 통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즘이 만든 허깨비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 사상적 자유를 회복하고 인식의 범위를 확산하고자 위함이다.

 

이렇듯 인간이 생산한 이념의 방정식의 해법이 이 안에 모두 녹아 있다면 무리겠으나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혜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생경한 날것 그대로의 지식의 자양분을 오롯이 흡수한다면 앎이 가져 다 주는 포만감에 절로 배부르지 않을까?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시작이 아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죽음이다. 회의론에 사로잡히고 의심이 들면 연구와 조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사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p.330, 클래런스 대로의 <왜 나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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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외제니 베글르리 지음, 이소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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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 철학에 대한 고차원적인 물음에 참으로 가볍게 대한 편이다. 현상세계의 가벼움과 관념세계의 무거움 사이에서 오는 부정할 수 없는 난해함에 회피로 일관했다. 오늘도 치열하게 현실의 줄타기를 거듭한다는 세속적 만족으로 애써 자위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철학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원형적 통찰에서도 이념의 깊은 심연을 감싸는 의식에서도 무엇이 관념이고 본성인지 구별하기에는 까막눈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처럼 철학이 어렵고 살갑게 와 닿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언어도단에서부터 비롯된 현실감의 상실이라고 본다. 철학이 인간의 도리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이전에 정념(情念)의 내밀한 본성을 현실에 맞게 쉽게 풀이해야 한다. 선문답으로 일관하는 잡힐 듯 말듯 현학적 경구는 시대의 창을 대변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이 태동한 뿌리를 보아도 그렇고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다스리는 혜안을 보아도 그렇고 인간의 삶에서 빠트릴 수 없는 분명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이 책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현실과 관념의 간극에서 오는 불안감, 불확실성, 존재의 당위에 대한 물음에 철학의 시각으로 답한다. 인간의 사유와 사색을 통해 이성적 발견을 돕고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다양한 틀을 제시한다. 아울러 관념의 잣대를 통한 현세의 통찰을 시도하였기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공통된 문제를 아우른다.

 


책은 신뢰, 시간, 타인, 자유, 죽음, 사랑, 존재의 장으로 나누어 인간의 삶을 둘러 싼 객체를 대상으로 한다. 긴밀하게 연결된 상호관계를 통해 소통의 장치를 찾고 인간을 지배하는 관념의 인식과 제어를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저자는 각 장의 서두에 핵심적인 주제의 정의와 고찰을 나열하고 철학자들의 사례를 접목시켜 대비감과 집중도를 높였다. 하나하나의 의미마다 농염한 철학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기에 쉽게 읽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읽어 내기는 행간 사이사이에 담긴 오롯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압축된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으며 현실과의 연락을 시도하며 읽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이 책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삶의 분명한 행동지침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한숨에 읽기보다는 느릿느릿 깊이 있게 호흡을 조절하며 진득하게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살아 있고 의식하는 존재인 나에게 사유는 삶에 빛을 밝혀준다.

살아 있고 사유하는 존재인 우리에게 생존한다는 말은 삶의 방법과 이유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는 말은 연대해서 함께 건설한다는 뜻이다.

정치사회의 존재 목적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유를 통해 안락함에 대한 염려에서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옮겨간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사유는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고장에서 태어났다.

 


결국 철학은 시련을 통해 결핍된 이성을 단련시키고 삶의 불확실성을 통해 자신을 바로 세우는 지혜의 자양분을 공급한다. 획일적이고 단락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타자로부터 연결된 자아의 신뢰를 되새기며 시간의 관념을 극복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삶을 돕는다.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 지향하는 바른 삶이요, 요체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저자가 길러 낸 철학적 사유는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에게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비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 사유의 신성함을 배우고 더불어 올바른 판단력의 주춧돌을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마치 뿌리와 줄기를 연결하는 나무의 수액처럼 우리 삶에 신선한 지혜의 샘물이 넘쳐 나기를 소망해 본다.

 


“철학적인 삶, 깨어 있는 정신과 유쾌한 마음으로 자양분을 얻고 기뻐하는 삶, 어찌 되었든 마지막까지 너를 자유롭고 젊은 마음으로 살게 하는 삶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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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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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황의 힘에 의해, 그들은 1주일도 채 안 되는 감옥 생활 동안 자신들이 일생에 걸쳐 받은 교육을(잠정적이지만) 해체해버렸습니다. 인간적 가치는 유보되었으며 자아는 무시되었고, 인간 본성의 가장 흉악하고 비열한, 병적 측면이 표면에 드러났습니다. “




인간이 원래부터 선한지 아니면 악한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상태이다. 인간이 가진 이중성에서 비롯한 극악무도하고 흉악한 심성이 어떻게 드러나며 확대 재생산되는지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하다. 기실 인간은 인지체계와 상황적 판단에 따라 행위의 방향을 설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성적인 사고를 무참하게 뒤엎는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인간의 두 얼굴>은 이미 EBS를 통해 다큐멘터리 기획으로 방영이 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이 가진 이성적 자기기제의 불안정성을 되짚어 보고 일련의 무자비한 범죄행위에 대한 심리적 특질을 살폈다. 인간이 처한 상황에 따라 윤리규범이나 이성적 틀이 보편적인 상태의 보통인 이라 할지라도 악으로 치닫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통념이나 관습을 깨트리는 새로운 기준을 보게 된다.




책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상황적 가설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피관찰자의 행위를 심리적 기제와 연결지여 인간의 이중성을 드려다 보았다. 인간이 동일한 상황에 따라 유일한 행위목적자인지인지 아니면 행위책임을 분산할 수 있는 다수의 군중인지에 따라 상황은 달리 전개 되었다. 실제 군중심리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나 신념, 가치관을 뒤흔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이성적 판단의 불안정성은 이 책의 거대담론이다.




1964년 뉴욕 어스름한 늦은 밤 평범한 주택가 어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살해된 사람은 제노비스로 동일범에 의해 38차례 약 30분 동안 무참하게 난도질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두고 미국 사회는 살인범의 비인간성에 흥분하고 한 동안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한 내용은 살인사건의 내용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그녀가 살해되는 동안 무려 38명의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관자 효과는 그 비슷한 사례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상황을 지배하기 보다는 지배당하는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 지우고 싶은 흔적인 홀로코스트나 이라크 전쟁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행위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적절한 사례다. 책이 주목한 위와 같은 행위는 인간이 상황에 따라 보이지 않는 지위나 권력, 협박에 의해 무력화 될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실제 비슷한 유형의 보고가 잇따르는 것에도 집단 사고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제력의 착각이나 무의식적 동조화는 이성적 통제를 허무하게 무너트리는 결과를 도출한다.




지난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총기 난사 사건은 익히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어 알고 있다. 당시 그 처참한 실상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였으며 비이상적이고 통제되지 못한 행위의 결과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범죄행위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리는 조승희가 처했던 당시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비이성적 정신이상의 범죄행위는 인간관계 속 소통의 부재에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악한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약 한기만 한 것일까? 책은 가설적 상황이 동일한 패턴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를 실험을 통해 제시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범죄가 수많은 군중들 틈에서 발생하여도 모두 외면하는 방관의 선택과 인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뛰어 드는 평범한 지하철영웅처럼 왜 다른 선택을 행하는지 의문을 던졌다. 실제 이러한 상황적 선택은 행위의 주도적 의지에 따라 나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지배하는 상황을 어는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선택하는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이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의식의 전환 또한 상황을 지배하는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인간이 악한지 선한지를 떠나 사회관계 속에서 서로를 돕는 기본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볼 때 비윤리적 행위나 사소한 법규위반도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가진 비범한 능력과 나약한 면모를 동시에 알았다. 이러한 선한 마음이 널리 퍼진다면 나비효과처럼 온 세상을 뒤덮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정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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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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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로 찬사될 만큼 와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와인을 찾고 소비하는 와인인구의 가시적인 증가는 국내 와인시장을 격전지로 달구어 놓았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인식이 덜 성숙한 상태에서 자리를 잡아서 인지 와인을 고급문화의 대표주자로 넘겨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와인이 종류도 많고 원산지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애교로 받아 들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인 와인문화의 확산은 경계해야할 것임은 분명하다.


와인은 재배지역과 품종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부터 미국, 칠레,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와인으로 숙성하기에 알맞은 토양과 기후를 가진 재배지역에 따라 그 급과 상태가 나뉜다. 이 책 <와인 정치학<은 와인에 등급이 매겨지고 제조와 유통관계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숙성시켰다.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가격과 등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역점을 두어 서술하였기에 읽는 재미가 있다.


책은 최대 생산국인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와인의 역사, 지리적 배경, 시대적 관계, 기후적 관계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기술하였다. 실제 와인에 정치학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가늠해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타일러 콜만은 뉴욕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다. 와인에 의문을 품은 작은 호기심이 시장의 왜곡현상과 지역 간 비교학적 접근으로까지 발전한 셈이다. 첨언하건데 재미에 반해 쉽게 읽히지는 않음을 밝혀둔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대표적인 샤토(지역)는 보르도를 꼽는다. 기독교적 문화관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와인을 신이 예찬한 천상의 선물로 비화시키며 와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와인은 빈티지(생산연도)와 떼루아(원산지 체계의 토대)를 근간으로 등급이 부여되었다. 크게 세 가지로 AOC(우수품질와인), VIN de pays (중급와인), vin de table(하급와인)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와인은 다시 떼루아에 따라 프랑스 와인협회인 INAO가 주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품질의 질적 구분에 따라 증류되거나 생산되는 지역으로 재편되게 된다. 이것이 생산자와 중개인, 유통업자의 끝없는 쟁탈을 예고하는 단초다. 와인을 고품격의 명품으로 끌어 올리며 소규모 직접거래를 시도하는가 하면 와인으로 인해 발생한 음주피해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와인에 얽힌 이해타산을 단체의 시각으로 조율하려 하였다. 이에 더 나아가 와인에 첨가물(설탕 등)을 넣어 폭리를 취하거나 등급을 조절하는 사기를 저지르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프랑스의 와인체계는 원산지제도에 강하게 묶인 태생적 한계로 누구를 위한 와인생산인지 애매한 상태에 빠졌다. 역사적 흔적을 보더라도 생산업자의 분규와 중개인의 농간은 포도의 달콤함에 매료된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지적인 갈등이 세계적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함을 인식하고 원산지표시가 다소 유연해지고 희석된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은 생존의 파고를 넘는 공생의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더 풍부한 더 값싼 가격에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을 지금보다 손쉽게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와인의 토착화가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 미국의 50개주마다 각기 다른 주류유통법안으로 주의 경계를 넘어 가는 것이 미국에서 독일로 수출하는 것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 내 최대 생산주인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적포도주는 주 내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는 미국이 대공황의 예상치 못한 경제 재난을 겪으면서 도래한 금주령의 통속에 밀어 넣어졌기 때문이다. 금주령이 희석과실주까지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하지는 못 하였다. 와인이 명멸할 수 있었던 사실도 암울한 시기를 보듬어 줄 위안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와인산업은 와인감별사 로버트 파커가 주장하듯 상당한 수준의 와인을 생산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와인의 국내생산과 유통망이 거대 기업의 지분참여로 단체의 주도적 개입이 희박하다. 하지만 각 이권단체마다 상당한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와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당하다. 로비를 통해 전국적인 소규모 양조업 자를 규합하고 유통망을 장악하는 과정은 비단 와인에만 치중되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정치학적인 간섭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산업 변화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파편으로 돌아섰다. 프랑스의 와인 수출 감소가 고급와인수요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지 못하고 미국의 대량생산체계는 와인의 깊은 맛을 떨어뜨리는 현실을 생산하였다. 이처럼 저자는 와인의 선택적 지위가 소비자에게 오롯이 남겨진 것이 아님을 역설하며 와인에 얽힌 역학관계를 규명하고 보다 다양한 와인의 식별과 구분이 이루어질 것을 피력하였다.


끝으로 와인이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포도생산지와 생태 역학적 농법의 도입으로 환경주의자의 비난을 돌파하고 지속가능한 유기농법을 도입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포도 농장은 농장개발과 관료주의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예측 가능한 미래공존의 해법을 찾은 것 같다.


이처럼 책의 전반을 훑어 지나가는 와인에 담긴 비교 역학적 분석은 달콤 쌉싸래한 맛만큼 오묘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와인이 단순하게 포도의 생산 환경에 따라 제조과정에 따라 등급이 매겨질 것으로 판단한 순진함은 벗어 던져야 할 것 같다.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이런 내막을 알고 즐긴다면 더 뜻 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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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나라 사람들 - 목욕탕에서 발가벗겨진 세상과 나
신병근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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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의 목욕탕은 유래 없이 개방되고 열린 평등한 곳이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 부귀 따위로 사람을 재단하는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소통과 해방의 배출구로 일상에 찌든 육신을 재충전하고 삶의 불만을 풀어 흘려버리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끼어 들 자리가 없다. 그만큼 사적인 휴식의 순간이다. 그렇다보니 목욕탕이 서민들의 다사다난한 일상으로부터 일탈의 유혹을 지켜 주는 일종의 안전지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처럼 목욕에 담긴 문화는 은밀함으로부터 기반을 둔 자유다. 이 책 <탕나라 사람들>의 소재는 아이들 눈에 비친 대중목욕탕의 풍경을 유머와 위트를 겸비하여 철학적 사유로 통찰하였다. 7살 뺑글이와 똥희의 유아적 사유와 어색한 이미지를 날것 그대로 차용하여 원형적 순수함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가벼운 문체와 추상화에 가까운 이미지는 쉽게 책장을 넘기게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상호간의 소통은 엉키고 단절되는 원인의 발단이 되었는지 모른다. 수치와 모욕이 생산한 파생물은 소통의 매개체를 엉키게 하는 갈등의 원인이다. 저자가 추구한 사유의 존재의미 또한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서 비롯되었음은 소통의 창구로서 지목한 목욕탕의 소재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철학적 물음은 타인과의 관계 속 연결된 상호연결성에 있다. 권력, 탐욕, 명예로부터 시기, 질투, 대립, 갈등의 상황은 모두가 넘어야 할 고립무원의 산이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망각시켜 버린다. 


목욕은 순화와 청결의 정서로 대변된다. 묵은 때를 닦아 내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 드는 산뜻한 기분은 개운한 상태를 생산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욕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관심을 보인다. 주일을 기점으로 누가 지키라고 한 적도 없건만 그 주기를 뒤따르는 현실이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목욕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순수한 상태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서 맛본 기억 저편의 평정 그 상태와 같다.  


저자의 생각이 투영된 책의 전반의 시선은 이채롭고 색다르다. 목욕탕의 풍경을 사회문화와 결부하여 희화화 시킨 것 또한 새롭다. 동심의 시각적 순수함이 그렇고 이미지의 소탈함이 그렇다. 누구나 쉽고 용이하게 행간의 숨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책 이면에 담긴 소통의 의미를 통찰하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받게 된다. 


기계적이고 획일화된 고정된 시각으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을 담았다. 육신의 겉에 묻은 오염된 상태는 목욕을 통해 정화된다. 하지만 우리 이면에 담긴 오염된 마음은 그것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헐뜯고 뭉개고 비난하는 배타적 이기심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문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진실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내와 포용이 절실한 현실이다.


저자의 목욕탕에 얽힌 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인간 본성의 회복에 가 있다. 이렇듯 무절제하고 탐욕스러운 오만한 이기심이 목욕탕 배수구를 타고 마음의 때 바다로 흘러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성 회복이 우선이다. 인간의 모양을 한 탕나라에 빗댄 풍자는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님은 분명하다. 마음의 때로 함몰되고 더욱 뒤틀리고 변형되기 전에 오염된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돌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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