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김호기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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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고 지칠 때 우린 필연적으로 어디엔가 의탁하게 된다. 내가 보듬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무엇이 고난으로 내모는지 멈추어 생각하기 마련이다. 현실에 부닥친 불행의 씨앗은 크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마치 세상 모든 불행의 화살이 나를 겨누고 있는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하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과 역경을 나누어 주는지 모른다. 고난과 성공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언제 들어도 그윽한 향이 난다. 이 책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의 저자 김호기 씨는 바이올린주자로서 전도유망한 이였다. 그녀에게 닥친 시련 또한 예고 없이 찾아 온 불청객처럼 그녀의 삶을 불안의 나락으로 밀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게 성공했으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쐈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제대로 인생을 바꾼 성공한 바이올린 제작자로 탈바꿈하였다.




그녀의 성공인생이 값진 이유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 부는 바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을 통찰하는 키워드 역시 지극히 평범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원인 불명의 손가락 마비는 일순간에 그녀의 인생을 위기의 순간으로 내몰았다. 더 이상 아름다운 선율을 뿜어 내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은 인생을 얼어붙게 만든다. 오로지 암흑만이 지배한 세상과도 같다. 이처럼 위기는 준비 없이 찾아든다. 그러므로 위기를 이겨낸 성공스토리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녀를 지탱한 성공요인은 긍정, 믿음, 열정이었다. 긍정의 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힘이다. 마법의 힘을 믿고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어떠한 일도 해냄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도한다. 이처럼 성공의 삼위일체가 짜임새 있게 돌아 갈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두려운 현실도 극복하고 자신을 더욱 단련시키고 무두질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성공을 노래하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다. 식상할 법도 한 성공스토리겠으나 저자의 이야기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밝음이 주는 상큼함이 매력이다. 낯선 타지에서 혈혈단신 아는 이 하나 없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그녀의 강단함도 매력이겠거니와 그 속에 깃든 친화력과 긍정마인드가 더욱 눈길을 잡아맨다. 그러하기에 맛깔나고 경쾌한 그녀만의 노래와 음악이야기에 시나브로 흠뻑 젖게 만든다.




이처럼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열망이 오늘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무한도전과 성공을 향한 집념이 그녀를 둘러 싼 모든 기운을 유리하게 바꾼 시발점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따지고 보면 성공을 추동하는 요인은 바로 나 부터라는 불변의 진리를 그녀에게서 보았는지 모른다.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얻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변하기를 원한다면 행동하라는 덴젤 워싱턴의 말을 인용한 그녀의 생각도 이와 같다.




이렇듯 그녀의 성공신화는 진정성이 보석처럼 빛난다. 힘들고 지칠 때 우연히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고 감싸 준 것은 노라 존슨의 음악이었다. 짧은 순간이 인연이 되어 그녀가 심혈을 다해 만든 바이올린을 타국의 거물급 스타에게 전해 준 에피소드는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순수한 열정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거듭 나아가는 그녀의 진정성은 인생을 아끼고 즐기는 자의 특권이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느리게 노래하듯이’라는 악상기호란다. 호랑이 눈처럼 두 눈 부릅뜨고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라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품을 줄 안다면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라는 넉넉한 믿음 한 선율을 그녀로부터 얻는다. 인생은 맘마미아(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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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용설명서 - 단 한 번뿐인 삶을 위한 일곱 가지 물음 인생사용설명서 1
김홍신 지음 / 해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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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알기 힘든 물음이다. 주어진 그릇이나 무게의 값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인생의 값어치를 부의 척도와 혼동하고 사는지 모른다. 급기야는 덜 가진 것 보다 더 가지려하고 좋은 것만 추구하게 되는 물질의 욕망과 정체성을 혼동한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금욕적 생활을 영위하는 종교인이나 구도자가 아닐 지라면 그 또한 사회통념상 용인되고 통용될 수 있는 미덕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인생에 정답이 없으니 그르다 옳다의 견해로 단정 지어 재단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이 주는 욕심에 사로잡혀 진정한 행복을 잊고 사는지 모른다. 나만은 깨끗하고 청순하기에 세속적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 파생된다. 일종의 묵시적 거부감이 강하게 생기는 이유도 마지막 남은 알량한 자존심의 표현일까. 이것은 자아 중심적 세계관이 일으킨 편협한 자기착각의 표현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생각과 뭐가 다르겠는가.




나는 평소 김홍신 교수에 대해 호불호를 달리 두지 않고 살았다. 오히려 발해에 대한 솔직하고 담대한 그의 역사론에 한때 감흥 했던 기억만이 오롯이 남는다. 그가 이 책 <인생사용설명서>를 집필한 순수한 의도만을 놓고 볼 때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내용이다. 아직 할 것이 많고 열정이 넘쳐흘러 나에게 인생은 벅차고 숨 가쁘다. 인생을 관조적으로 보기에는 쉼 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복잡다단한 일생이기에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터득하고 깨우친 진리를 후학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와 닿는다. 




어차피 인생을 논하는 책들은 철학적이거나 스스로 구린내를 맡지 않고는 향기로울 수가 없다. 나름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건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후회라는 거추장스런 삶의 조각이 붙들어 매는 것을 볼 때 말이다. 그 속에 담긴 욕심과 자만, 반목, 질시의 껍질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흐려진 눈을 맑게 하고 혼탁한 공기를 정화시켜 가뿐하게 해 주는 고마운 느낌마저 든다. 가르침이 되었든 충언이 되었든 가슴 속 깊이 아로새긴다. 멈춰 서 서 흐트러진 생각의 기운을 차분하게 돌게 하고 마음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에 적합한 그것이다.




책은 크게 7장으로 나누어 인생을 통찰한다. 오욕칠정의 인간 시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살다보면 치이고 넘어지고 다치는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집중하여 현실 그 너머에 담긴 진정한 행복의 세계를 넌지시 일러준다. 아울러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저자의 뜻 깊은 속내도 발해에 담긴 웅혼한 역사관에 한가득 심어 놓았다. 구구절절 옳고 그른 말이기에 가볍게 생각의 문을 열수 없겠다. 조용히 사색하고 인식하는 과정에 인생의 참된 의미를 어렴풋하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절로 생긴다.




용이하고 평이한 문체로 기술된 책이기에 부담 없이 다가선다. 저자의 경험을 반추해서 읊조려 거름망에 걸러 만든 이야기이기에 글귀 하나하나에 따사롭고 소중함이 물씬 배어 오른다. 삶이 조금 더 밟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염원을 행복의 문으로 함께 더불어 드려다 볼 기회를 가졌기에 읽는 것만으로 삶의 가치를 공유하게 되는 힘이 느껴진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이다. 타인과의 교감과 상호관계 속에서 타협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신실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뜻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욕심이라는 뜨거운 돌멩이가 손위에 쥐어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매한 행동을 일삼아 불행을 자초하는 현실을 살기 때문이다. 용서가 미덕이라는 고귀한 뜻은 누구나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가 실행으로 옮겨지고 사랑으로 감싸는 조건에는 덕이라는 원대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저 잊는다고 덮어 둔다고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옛말에 복을 받으려면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온도는 섭씨 100˚C가 넘어 자칫 델 수도 있지만 덕의 온도는 36.5˚C로 사람의 온기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차갑거나 뜨겁지 않아 누구라도 끌어안을 수 있고 누구에게 주어도 불편하지 않은 것입니다.(P.106)

 

베풀면 돌아온다는 경구는 빈말이 아니다. 소탈하게 자신을 대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다면 이로써 정신이 윤택해지고 맑아진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인간은 순간의 집착과 번민, 탐욕을 참지 못해서 행과 불행이 나뉘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모양이다. 어차피 인생을 여러 번 나누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해답이다. 이제라도 저자가 일러주는 사용설명서에 따라 밝고 활기차게 인생을 헤쳐 나간다면 역경도 고난도 행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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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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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당신을 가슴에 묻던 날, 영결식 노제 中 도종환 시인의 말-




2009년 5월 23일,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큰마음의 별을 잃은 날이다. 14줄의 짧은 유서만을 휑뎅그렁하니 남긴 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질곡과 영욕으로 점철된 애증의 삶을 버리고 창공을 향해 영원히 날아 가버렸다. 당신을 그리워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굳은 비석만을 세긴 채 말이다.


바보 노무현. 굽히지 않는 원칙과 소신으로 현실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원칙과 신념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을 받았다. 혹자는 그를 일러 싸움꾼이라고도 이상주의자라고도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다. 참여정부 내내 괴롭히던 개혁과 보수의 갈등을 통해 그들은 물어뜯고 깎아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출신이 비천하며 그들과는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천길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돌려 세우기에 급급했으며 비겁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를 그리워하고 우상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걸어 온 인생역정과 생전에 보인 영욕의 삶을 통해 우리를 가둔 허상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강한 자에게 더 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게 더 없이 약했던 강단한 그의 삶이 이제 와서 제대로 보이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가치를 깨우친 우리는 모두 바보다.




그는 전후세대가 그랬듯 지지리도 가난한 유년기를 거쳤다. 단단한 차돌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굳은 신념을 키운 것도 유복하지 못한 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려운 이에게 선뜻 가진 모든 것을 내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옳지 않다면 쉬운 길도 돌아서 가는 뚝심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학창시절 그가 겪었던 원칙을 뒤흔드는 부정의 유혹은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비겁함을 물리치고 원칙과 신념을 체득한 순간이다.


이렇게 다듬어 그를 세운 이념의 토대는 지난한 세월을 준비하는 발판이었다. 지치지 않는 도전과 열망으로 성취한 사법고시합격은 그를 더 큰 세계로 이끌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불거진 계기는 낮은 곳을 대변하는 든든한 횃불이 되게 만든 촉발제가 되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해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모두 버리고 담대한 바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청문회가 낳은 스타라는 별명을 위시해 그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수구보수 세력과의 지리멸렬한 투쟁을 이어갔다. 철옹성으로 막힌 그들의 아성을 향한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에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전했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그의 용기와 희망이 통해서였을까? 그래도 우리는 환멸스럽고 역겨운 구태의 정치를 청산하고 더불어 잘 사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그를 통해 희망하였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던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개혁의 성과를 보였다. 어떠한 권력도 이익을 위해서 사용치 않았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의 얼개를 구축하였으며 공약으로 내건 가치를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어 나갔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치로 영도적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하고 대화를 통한 화합의 장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 분배와 성장의 경계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FTA 협약 문제, 국민연금개혁문제, 비정규직처우문제, 부동산규제문제, 광우병사태 등 민생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허점과 간극은 기득권자와 보수 세력에게는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마추어정권이니 무능하고 미숙한 집단이니 운운하며 비하시키며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며 혼란으로 빠트렸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말처럼 그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근원에서부터 신중하게 접근하였다. 이러한 그의 우직한 행보는 즉각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흡사하다. 바로 이것이 그를 있게 한 소신이자 성품이다. 또한 한 가지 일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매진한다면 마침내 큰일을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성정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인간의 참된 자세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랬을까?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성급한 게눈과 같았다. 어서 빨리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쳤으며 그들과 달라진 게 없다는 불평과 불만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다. 점점 타성과 광기에 물들어 그의 행보와 거침없는 발언에 불안을 감출 수 없었으며 믿음마저 내던졌다. 지난 600년 동안 이어온 반칙과 편법의 달콤함에 취해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건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한 상식이 통하는 공감의 물결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그런 그가 국정을 떠나 15개월 만에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노간지’로 ‘노짱’으로 평범한 서민으로 거듭났던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를 키우고 길러 낸 봉화마을의 넉넉한 품으로 돌아갔다. 그를 위협하고 회유했던 수구세력도, 헌정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탄핵소추도 그를 넘어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지탱했던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며 왜 그가 그토록 모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계층 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원칙과 신념이 짓밟히고 이상이 추락한 암울한 세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그가 바라보았던 ‘그 너머’의 상식이 통용되는 부정과 비리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그것이 고인의 큰 뜻이었으리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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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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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른들은 무애 그리 바쁜지 항상 쫓기듯 살아갔다. 일상에 찌들고 치열한 격정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 그리도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땐 이런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든 불만이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떤가? 복잡다단한 일상에 숨 돌릴 겨를조차 없다. 어릴 적 나의 눈을 통해 보았던 여유를 잃은 삶, 그 모습이다.

 


왜 나는 여유조차 누리지 못할 만큼 바쁜 삶을 살아갈까? 구렁텅이로 빠져 허우적댈 것을 알면서 말이다. 자분자분 생각해보면 관계와 소통의 문제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상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편견과 오해로부터 발생한 갈등의 골이 서로를 깊게 갈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왜곡은 사회 모든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기실 따지고 보면 결국 마음의 문제로 회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마음에게 말 걸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방법과 해결책을 마음으로 건네어 온다. 갈등, 선택, 집착, 번민, 고통, 불안과 같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감내한 현실과 경험을 통해 사색과 통찰로 수정처럼 반짝인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저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상태로 30년의 세월을 감내하였으며 희망이 사자졌을 현실을 뛰어 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방송인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직접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신실한 귀기울림이다.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고로부터의 출발은 힘겨운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그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 세월 동안 순간순간에서 뽑아 낸 조각들을 모자이크한 사색의 도출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회고하며 어느새 모두를 둘러싼 우리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전작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호응에 힘입은 바도 있겠거니와 무엇보다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현대인들의 걱정과 불안감을 함께 고민하고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대장정에 더불어 동참하기 위해서가 우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우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펼쳐 낸 인생여정의 통찰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마음의 치유, 그것과 같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흐트러짐에 대비해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인 평형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티핑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균형과 회귀본능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맹신으로부터 오는 부작용으로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실제 이 책에서 드러난 에피소드의 큰 밑그림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현상의 편중과 결핍에서 온다. 이러한 삶의 균형의 난제의 해법은 저자가 파헤친 문제의 이면을 통해 가족 간의 소통과 관계의 참된 원형을 그린다 하겠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마음의 지도를 따랐다. 1부에서는 반목과 갈등을 통해 연결된 상호관계의 다양성을 펼쳐 놓고 문제의 핵심을 직접적인 예시로 고찰한다. 대개 심각한 신체장애를 가지게 되면 자포자기상태에 빠지거나 예민한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나락의 순간으로부터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자신을 다독이고 갈등의 열쇠를 찾았다. 그가 발견한 열쇠는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상처받지만 그 상처는 항상 치유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p.52)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고착화된 편견의 관점을 내 안에서 걷어 내어 외부로의 도출을 통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임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2부에서는 삶의 지난한 고통의 순간을 통해 갈고 닦은 천착한 저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집착으로부터 키운 화를 슬기롭게 다스린다. 마치 달구어진 돌멩이를 한가득 손바닥에 올려 놓고 내려놓을 시기를 찾지 못하는 우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불안으로부터의 동요는 마음을 흩트리고 안달 나게 한다. 저자가 짚은 평정의 비밀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p.122)

 


끝으로 3부에서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의 위대함을 설파하였다. 우리의 자의식은 자가치유능력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불안으로부터 나름의 보호막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살면서 파생되는 각기 다른 삶의 단상으로 밀도와 강도의 차별화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침잠한 무의식의 본능은 욕망을 갈급하며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트라우마를 통해 일그러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소한 상실과 박탁의 순간으로부터 욕망을 다스리고 참는 법을 배운다. 욕망은 그저 약간 고통스러울 뿐(p.200)이며 외려 허상에 불과함을 내포한다.

 


흔히 우리는 사랑이란 미명아래 상대방을 구속하기도 하고 참견하며 못미더워 하는 것을 인지상정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모습이로 착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과신과 집착으로부터 오는 편견의 받침대를 통해 평행의 상태를 추구하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아집, 불평, 불안이 파생한 삶의 우울한 편린에 불과함을 뒤늦게 깨닫고 어리석음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결국 저자의 철학처럼 인생이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겠으나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그 역시 중요함을 사무치게 일깨우는 책이며 각각의 마음의 지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최첨단 내비게이션과 같은 고마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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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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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재치가 넘치고 흥미를 유발하는 재담이나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진 사람을 종종 보곤 한다. 어쩜 저렇게 맛깔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좌중을 이끌어 가는지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분명 재미없는 말도 시답잖은 화젯거리도 그를 통하면 가히 촌철살인이 된다. 이런 재능은 타고 난 선천적 기질도 한 몫 하겠거니와 길러 진 후천적 인성도 한 몫 하리라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의 저자 홍동원은 재치와 기지가 번뜩이는 재담꾼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 몰래 엿듣던 진기한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던 그런 재미남과 상상력이 넘쳐 난다. 게다가 디자인으로 밥 벌어 먹고 산다는 저자의 직업이 더욱 흥미를 유발하였으리라. 기실 따져보면 디자인의 세계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는 일종의 편견과 자유분방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고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연유로 디자인이라는 화려함이 창출하는 멋진 외투와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의 향연에 빠져 속을 드려다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여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어우러진 디자인의 힘에 압도되고 푹 빠져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일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쉽게 되는 것이 있을까? 뼈를 깎는 고통과 처절한 경쟁의 속성에 한시도 여유를 찾기 힘든 곳이 디자인의 세계가 아닐까.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사유를 통해 모은 저자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담아 낸 이야기는 읽는 이를 공감의 큰 틀로 요동치게 하는 힘이 숨어 있다. 더불어 386 기수세대로서의 역할과 소임이 무엇인지 반듯하게 드러낸 저자의 심상이 돋보이는 글이다. 민주화의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저자를 일으키고 세운 선연한 가치가 세대를 연결하는 소통, 그것이다. 구속이나 핍박,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정열의 가슴으로 품어 잉태한 삶의 열정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기에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만약 이 책이 개인적 신변잡기나 에피소드에 그쳤다면 그저 그런 가십거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이렇듯 디자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생활인의 중심으로 스며들게 한 소통도 저자의 역량이다. 게다가 디자인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도 우리를 자극하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다. 보이지 않게 만들어 진 계층의 층위의 시각과 인식을 통합하고 대중들의 시선과 다를 것 없다는 인식의 확대가 이 책을 소통하게 만드는 커다란 강점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서야 베끼기가 난무하고 짝퉁이 판을 치는 혼탁함에 너그러웠던 것도 디자인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제품의 품질만 좋고 싸기만 하다면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다. 경제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우월주의에 경도된 세상은 우리의 관념마저 오염시켰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디자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디자인 바닥에만 통용되는 가치는 아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악화의 영향이다. 상업성에만 치중해 정작 중요한 정서를 놓치고 있는 이 시대가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판에 박힌 듯 유치찬란한 디자인의 소산도 현재는 문화를 이끌고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변모하였다. 디자인은 삶을 담고 인간을 그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벌로 줄 세우고 연줄로 이어지는 관행의 독버섯이 버젓이 자라나도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정열이 담긴 디자인은 시대를 대변하는 문이다. 아톰이나 마린보이, 디즈니와 같은 제국주의에 경도되었어도 저자의 도전정신이 낳은 산물은 우리를 통합하고 모으는 힘을 촉발한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불신과 폐단의 악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저자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시대를 인식하는 힘을 배우고 상상력으로부터 파생되는 무한한 부가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며 이 시대를 사는 필요조건을 채우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상상력, 그 원대한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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