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 - 그 男子, 그 女子의 대화법
이정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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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눈이 멀고 그 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다. 모든 세상의 기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끝난다. 이것도 잠시, 사랑의 묘약이 풀리면 긴장관계가 이완되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된 만남과 대화로 지리멸렬한 관계가 지속되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대개의 경우다. 하지만 남녀관계라는 것이 일정한 공식을 가지고 대입하여 해답이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아닌 것처럼 밀고 당기기의 팽팽한 신경전은 보이지 않는 중에도 계속 충돌된다.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남녀관계는 탐색과 견제의 끝없는 소모전이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여태껏 우리는 남녀의 특성과 관점에 대한 생각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이며 보편적 견해이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지 구체적인 이해와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 <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의 저자 이정숙은 이러한 남녀관계의 문제를 감각적인 문체와 멜랑꼴리한 시선을 곁들인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를 펴냈다. 한마디로 연애전도사로 나선 셈이다.




이미 시중에 출간되어 넘쳐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도서들에서와는 달리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견해와 이론중심의 논리를 탈피하고 가상의 커플들을 설정해 스토리텔링형식으로 일상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풀어 설명하였다. 또한 캐릭터의 다변화를 통해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하는 남녀관계의 관점과 시선을 중심으로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적절한 팁과 어드바이스를 첨가해 톡톡 끄집어내는 경쾌함이 돋보인다.




저자는 인간이 오랜 역사적 적응의 산물에 결과에 따라 남자는 사냥꾼의 두뇌모드로 여자는 파수꾼의 두뇌모드로 나뉘어 진화하였다고 설명한다. 남자가 사냥꾼의 기질인 전체적이고 입체적인 사물판단과 직접적이며 몰입하는 속성 강하며 동적인 것을 즐기는 것에 주력하고 반대로 여자는 파수꾼의 미시적인 관찰과 세밀하고 섬세하며 지엽적인 사실에 보다 관심을 가지며 정적인 형태로 표출된다고 이른다.




실제 남녀관계를 구별 짓는 생리적 특징 외에 심리적 특징으로 양분한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상당부분 희석되고 중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옅어지고 경계가 모호한 상태가 인간의 평균적인 특성을 나누는 정도는 아닌 만큼 저자의 생각이 더욱 흥미롭다. 결국은 남녀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차이에서 오는 낯선 상황이 문제이다.




상대방이 지닌 내밀한 특성을 보듬어 주고 이해해주며 관점, 시선, 태도, 언어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소통과 배려의 문제다. 서로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배려를 주춧돌로 한 대화가 지속된다면 소통은 물 흘러가듯 막힘이 없다. 비단 남녀관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진리가 아닐까.




남녀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사랑에 상처 받고 가슴 졸이며 어리둥절한 게 만드는 요상한 녀석의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렵고도 벅차다. 그래도 사랑은 끌림에서 오는 강력한 마법과 같아서 삶을 빛나게 해준다. 저자가 일러주는 조언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보듬어 읽다 보면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을 상당부분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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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사람들 - 양해남 사진집
양해남 지음 / 연장통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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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록을 담는 매개체이다. 그 속에는 다양한 표정들과 삶의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감정으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의 기록이 삶의 한 조각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소박한 표정과 어디서나 봄직한 평범한 인물을 대상으로 잡아 낸 사진은 추억에 다름 아니다. 저자 양해남이 담아 낸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일상적인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하는 풋풋한 사진첩이다.


디지털 사진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누구나 사진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표현에 열광하며 연출된 상황을 담는 것에 공을 들이는 현실이기에 정작 내면은 들여 다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세태와 비교해 본다면 작가의 사진은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담은 피사체에는 인물에만 중점을 둔 사진 기법을 사용하여 대부분 아웃 포커싱 처리가 되어 있다. 두드러진 인물의 섬세한 표정을 되살리고 빛의 자연스러운 광선 처리는 풍부한 계조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적인 인물구도의 집중은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시각적 분산효과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사진 간의 연계성을 극대화 한다.


다듬어 진 것 없이 날것 그대로 형상화하고 찰나에 깃든 순수함을 담고자 하였음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오롯이 전해온다. 수줍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삶의 역경과 풍파를 온몸으로 체득한 노인들의 주름 깊은 표정 뒤 감추어 둔 인자한 웃음, 옛 향수를 자극하는 놀이에 흠뻑 빠진 동네 개구쟁이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스며든 소소한 우리네 모습을 프리즘을 통해 심도 깊게 재현하였다.


작가의 사진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판박이 성형미인이 판치고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소박한 표현이지 싶다. 아스라이 지워져 가는 기억의 그림자 뒤로 우리가 잃어 간 것에 대한 애환과 향수를 드러내니 말이다.


날로 발전하는 첨단문명만큼 매번 추억의 한 움큼씩을 세월이라는 시간으로 흘려보내고 살아간다. 문명화로 편향된 사회구조는 도시화의 미명아래 확대 재생산되었다. 떠나 버린 빈자리는 남겨 진 자의 몫으로 인식될 뿐 더 이상 모두의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역 사회 재편은 더 이상 농촌사회의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작가의 안타까움이 기록된 빈 여백의 미완의 주인공에 대한 애석함은 단절된 흔적임을 사진은 말한다.


그래도 어디든 사람 모여 사는 곳에는 사람 내음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도시로 떠나보낸 이들을 뒤로하고 남겨진 그들에게는 인간미 풀풀 넘치는 자연 그대로의 멋이 담겨 있다. 때 묻지 않은 꿈을 간직한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읽어 내게 한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이 땅의 토박이로 구수함과 정겨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순정함 그 자체의 향을 진하게 퍼트린다. 


이처럼 사진은 작가가 표방한 세계와의 깊이 있는 교감의 순간이라 하겠다. 매몰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반추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들 속에 깃든 삶의 단상이 우리네 모습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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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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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그 모양새만 다를 뿐 그 본질은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경제개발에 얽혀 급격하게 매몰되어 자취를 감춰버린 현실에서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는 가슴 따뜻한 무엇인가를 생산하게 만든다. 사회문화적 구조가 다변화되고 전문화된 현상에서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짧은 역사적 근간에 다민족이 이룬 전형적인 이질적 문화관을 형성한 나라이다. 그러한 연유인지는 몰라도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의인화하거나 상징적인 도구로서 사회문화적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 <듀이>는 미국인이 가진 기질적 특성을 잘 대변해 주는 소재에 저자의 에피소드가 함께 어우러져 진한 감동을 우러나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이 넘치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 고양이 듀이 리드모어 북스의 저자 미키 마이런은 미국의 조그만 도시의 도서관장으로 재직한 실존인물이다. 그녀가 듀이를 만나게 된 것은 복잡다단한 일상에 단지 하찮은 일에 불과한 평범한 에피소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듀이가 도서관에 미친 영향과 지역사회에 끼친 반향은 실로 대단하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야기는 미국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이오화주의 조그만 도시 스펜서의 공공도서관에 찾아든 새끼고양이의 일화를 바탕으로 저자가 겪어 온 인생역정을 자전적 글로 담았다. 듀이를 중심으로 다중장애를 가진 소녀에게 새로운 구원의 전도사가 된 이야기, 미국 전역에서 찾아든 희망을 꿈꾸는 보통사람들, 조그만 도시가 듀이를 매개체로 개발논리에 맞서 전통을 지키는 모습, 무엇보다 저자에게 살아가는 구심점이 되어 준 일화 등은 배타적이고 탐욕스런 오늘날 우리네 모습에 절로 숙연해지게 한다.




분명하게도 이 책은 인간보다 훨씬 인간미 넘치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감동의 이면에는 저자의 세계관이 오롯이 녹아들어 영롱한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문명화된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지역사회 해체현상에 대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발달현상에 대한 부작용이 듀이라는 고양이를 통해 지역 사회 주민들이 담대한 결정을 하게 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탐욕스런 천민자본주의를 배척하게 되는 커다란 용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어찌 보면 지나친 확대해석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나 그 속에 담긴 진실한 화합의 마음은 달리 무엇으로 대변할 수 없음에 있다 하겠다.




더불어 저자는 참으로 고단한 일상을 견뎌왔다. 집안병력으로 인해서, 부주의한 의료사고로 인해서 그녀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와 맞서 오랜 세월을 병마와 싸워 이겨 냈으며 싱글 맘으로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 냈다. 이 책에서 듀이가 희망을 노래하는 상징적 의미라면 그녀의 삶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기에 둘의 조화가 완벽해 보이는 이심동체와 같은 존재라 하겠다.




이렇듯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경이로워 보일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듀이와 저자 비키는 가족보다 더 진한 피를 나눈 사랑으로 묶인 든든한 무엇이 있었기에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듀이를 그리워하며 찾는 많은 이들 또한 외로운 영혼을 달래고 인간미 넘치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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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머니스트다 - '5초남'이 부르는 인생별곡
최영록 지음 / 수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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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숨 돌릴 틈 없이 치열한 하루를 산다 할지라도 무언가 허전하고 감성에 목말라 할 때가 있다. 지금 걸어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반드시 있다. 이럴 때 누군가 넉넉한 가슴과 따스한 손길로 보듬어 준다면 더 없이 고마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일 게다.




다른 여타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이 책 <나는 휴머니스트다>의 저자 최영록님의 글은 팍팍하고 메마른 삶에 가슴부터 머리끝까지 명징해지는 참으로 고마운 글이라 하겠다. 세상을 바라보는 진솔한 처세와 철학이 오롯이 녹아들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교감을 주며 새로운 희망을 샘솟게 하는 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책은 잡문형식으로 구성되어 월간지에 게재된 글을 한데 모아 책으로 펴냈다. 전체 구성은 4장으로 나누어 분류하였다. 1장 “문화, 삶의 틈새를 엿보다”에서는 외면 받고 소외당한 문화 기피현상에 대한 저자 특유의 거친 쓴 소리를 담았다. 더불어 근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아픔과 절절한 몸부림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대를 사는 오늘날과 함께 호흡하며 진실한 대화를 시도하였다. 작가의 신실함 마저 엿보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2장 “ 일상, 삶의 그림자에 비틀거리다”에서는 작가가 온몸으로 체득한 감성적 리듬을 바탕으로 잊혀 져 가는 우리네 소중한 전통의식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일상에 스며든 소소한 즐거움을 인생의 참된 맛으로 빗대어 소묘하여 살갑게 하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멋이 깃들여 있다.




3장에서는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주제로 작가가 자식에게 보낸 글을 모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조 이황, 박지원, 박제가, 유성룡 등 쟁쟁했던 유생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편지로 대신했던 <아버지의 편지>의 저자 정민, 박동욱이 이 글을 읽었다면 어찌 생각했을까? 아마도 작가의 자식사랑이 예전 그들과 다르지 않음에 감복하였을 성 싶다. 시대가 달라 글이 아닌 e-mail로 대신하였다지만 자식을 향한 염려와 조바심은 달리 보이지 않게 하며 그 속에 담긴 아버지의 가르침은 시대가 바뀌어도 어색하지 않으며 변함이 없다.




저자는 삶의 진정성과 치열함, 성실성이 무엇보다 우선됨을 강조하며 더불어 책읽기의 중요성을 일러주며 덜 여문 아들의 사상적 근간을 기반부터 단단히 여물어 질 것을 바라며 사랑을 듬뿍 담아 구구절절 읊조린다. 어찌 부럽지 아니할까? 아버지와 자식 간의 소통이 소원한 대개의 경우를 보더라도 작가의 자식사랑이 부러움을 넘어 경이로워 뵈기까지 한다.




끝으로 저자는 왜곡되어 삐뚤어진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실었다.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무턱대로 남용하는 외래어 사용, 근본도 모르는 외계의 사용, 일제 강점기 잔재가 남긴 밉상스런 일본말 등 문화 전반에 만연한 잘못된 언어사용습관을 꼬집고 바로잡기를 권한다.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호흡하며 연신 주억거리는 새 시나브로 끝장을 뒤적이게 하였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어 흘려버릴 것이 없으나 ‘강아지똥‘의 삶을 살다 자연으로 돌아 간 동화작가 故권정생님의 이야기는 성마른 세태에 크나큰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내면 깊숙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선다.




이렇듯 작가를 통해 실로 살맛나는 세상의 구수한 맛과 신명나는 우리네 삶을 엿보는 지혜를 공으로 넘겨보았다. 근래처럼 신산한 이때 단비와 같은 존재라 하겠다. 이래저래 치이는 맴맛한 50대 쉰둥이라 빗대어 희화해서 말하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세상을 보는 지혜의 창이 가일층 넓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어지러운 이 때 일독하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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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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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노래한다. 저자 김훈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단상은 아득히 품은 감정의 오롯한 기억저편을 되살린다. 드러낸 것과 드러내지 않은 것의 경계에서의 사유와 헛헛이 쌓이는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들에 공감하게 되고 그 수고스러움에 감동의 여운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리게 한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품은 시대적 격동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감내하며 겪은 삶에 대한 원형적인 통찰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읊조린다. 시대가 배출한 태생적 암흑 속에서 표현치 못해 묻어 두어 명멸하지 하지 못한 채 오그라든 아픔의 기억들을 되뇐다. 인생의 무상함을 남가일몽에 실어 자연에 빗대오며 흐르듯 휘적휘적 흘러간다.


참으로 저자의 상념이 뜨겁고 수많은 여운의 가지를 뻗어 나게 한다. 아무런 동질감이 없어 보이는 무채색의 실체 없는 것들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이 하나의 큰 틀 속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현실적 번민의 무게감으로 반영한다.


지극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로 짧으나마 오래도록 감정의 끄트머리를 거머쥐게 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 이상 그만의 이야기가 아닌 독자들의 마음으로 온전히 전해 퍼져 오는 우리의 이야기가 됨을 말이다.


이로서 저자는 습관처럼 기록된 감정의 단조로움을 무수한 표현의 바다로 이끌며 생명에 대한 개별성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사물에 대한 단편적 시선을 시각적 다양화를 통해 새로운 익지 않은 날것의 원형적 모습으로 변모하게 한다.


이렇듯 글이나 말로 표현된 사물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의 틈바구니에서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게 한다. 더불어 사실로 인식된 것들에 대한 의견으로의 인식과 의견으로 불완전한 의미를 사실로 명명하는 잘못된 언어적 습관을 통렬히 비판하고 하릴없는 수사적 조사의 남용의 허무함을 비판한다.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p-135)


저자는 신념의 언어 즉, 정서적 수용의 언어적 관점을 경계할 것을 일갈하고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힘을 기를 것을 요구한다. 이는 정서적 인식의 근원적인 형태인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식 사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를 일깨우기 위한 커다란 가르침의 근원일 것이다.


언어가 가져다주는 -특히 우리나라 말의 기술적 특성상- 모호함이 우선시 되어 그 자연적 아름다움이 반감되며 표현이 주는 의뭉스러운 속내의 경계를 파악하기 힘든 기술적 한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렇듯 저자는 영미문학의 서정주의적 아름다움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지는 과정에서 그 순수 이상향을 추구하는 감성적 기저의 근원적 본성이 퇴색되게 되고 그 변모하는 감정의 기복들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임을 갈파한다.



저자는 우리말이 아직 덜 체계화되고 발전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나 일면 수사적 조사의 발달이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두리 뭉실 묻혀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주관적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적 한계에 대한 저자의 불편한 주관적 진실에 대한 담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 아님을 알게 한다. 언어가 시간을 표현치 못하고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과학적 규정이 수없이 많음에 동조하게 되고 동어반복에 의한 익숙한 반복에 지나지 않음을 진실은 저자의 이면을 그대로 대변한다.


바다가 들려 준 소식은 그 깊은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저자를 통해 우리의 것으로 함께 어우러지게 한다. 초로에 접어 든 저자의 반듯한 상념들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참됨과 올바름을 구별하는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고 사실과 의견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변적 세계의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할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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