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의 달인을 위한
로버트 그레이엄 외 지음, 윤재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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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담는 것이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끼적이는 글이라도 글쓰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빚어내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생각처럼 실타래를 술술 풀어 가 듯 막힘없이 쉽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글쓰기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내밀한 원형적인 본능에서 촉발된 관계가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확인코자 하는 의도된 목적에서 온다. 아울러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시각, 함의, 단상 등의 건전한 의식거리를 제공하는 순기능적 요소이다.




글쓰기의 순기능을 차치하더라도 오로지 작가의 깜냥을 통한 허구의 세계를 창설하는 문학적 순수성으로서의 기능은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를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작가라면(설령 아니더라도) 혼을 쏙 빼 놓을 만큼 공감 가는 글을 언제고 어느 때고 생산해 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열렬한 반응으로부터 살벌한 외면까지 결국은 살아 숨 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작가의 로망인지 모른다.




이처럼 글쓰기에 관한 모든 길라잡이가 있다면 백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책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전적으로 창의적인 글을 쓰고 사용설명서처럼 기능할 수는 없다. 소재를 발굴하고 다듬고 내러티브를 씨줄과 날줄처럼 정밀하게 조합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역량이 관건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소홀하게 넘어 갈 수 없는 것은 기본 즉, 주춧돌의 튼실함이라 하겠다.




이 책을 통해 글쓰기의 영감과 번득이는 창의성을 개발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아마도 베스트셀러작가를 꿈꾸는 것이 로망이라면 반드시 읽어 봄직한 내용이다. 평범한 일상의 특별할 것 없는 소재를 사실적 묘사, 감정이입, 회상으로 단단한 플롯의 뿌리내림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담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해 진다.




책은 글쓰기의 메커니즘 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교과서의 형태를 보인다. 크게 6장으로 분류하여 1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준비 작업을 제시하고 2장에서는 사회적 관념과 일반적인 태도, 젠더, 인습 등의 다양한 주제를 공통된 틀로 갈무리하였다. 3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기법과 장치를 통해 완성도 높은 글로 바꾸는 테크닉을 열거하였다. 4장에서는 글의 형식과 장르를 통해 문법의 적절한 사용법을 5장에서는 탈고된 원고의 다듬기를 위한 출판의 정보를 실었다. 끝으로 6장에서는 작가로서의 이념과 삶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신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혹자는 글쓰기를 위해 뼈 속까지 써 내려갈 것을 요구하며 영혼을 흔드는 글담이 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이 모든 글쓰기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공감이 아닐까? 인간의 오랜 열망과 꿈을 플롯에 담고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내러티브는 신과의 교감처럼 신성함 마저 든다. 또한,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완성체로 끊임없는 자아의 성찰과 정체성 확립은 글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이 어떤 장르라 할지라도 인간이 만든 물질세계를 투영하지 않고는 시놉시스조차 건져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예창작을 준비하는 사람과 글쓰기의 실제와 이론정립을 다지고자 하는 이라면 든든한 길라잡이로 작용하겠다. 물론 다독을 통한 필사와 습작이 선행되어야 하며 간접경험과 자료 수집을 통해 무의식 세계의 무한 영역을 채워 나가야 하겠지만 글쓰기를 위한 이념정립 또한 이에 뒤지지 않게 중요하다. 글쓰기의 성공이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능력으로부터 좌지우지 된다고 할지언정 순수함과 열정이 없다면 창의적인 글쓰기 또한 요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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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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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제주는 희망을 부풀게 하는 곳이다. 제주에 대한 관념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 또한 아무래도 쉽게 가지 못함에서 오는 거리감일 것이다. 지금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상태지만 굳이 물리적 거리를 차치하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멀기만 하다. 한번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큰 맘 먹고 준비를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제주에 대한 동경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품어봄직한 막연한 설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훌훌 버리고 떠나갈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끝없이 속삭인다.

 


이 책 <낭만제주>는 경쾌함이 묻어난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제주의 푸른 올레길을 따라 작가의 마음 가는대로 소탈한 단상을 날로 옮겼다.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연인과 함께한 제주의 풍광일 게다. 여행이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순간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부럽기 짝이 없는 내용 일색이다. 때로는 사색에 잠겨 상념의 열변을 안주거리 삼아 질겅이게 하기도 하고, 객기를 닮은 호기는 청춘이 주는 열정에 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흠모하는 순수의 감정만이 파상적으로 펼쳐 져 코발트 내음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맛이 곁으로 흘러넘친다.

 


제주는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인간의 배타적인 탐욕이 생산한 난개발로 인해 유린당하기도 하고 태곳적 신비 그대로를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걷는 곳 가는 곳곳마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깊은 눈부심과 싱그런 푸름이 엘돌핀을 폐부 깊숙이 용솟음치게 한다. 아마도 저자 또한 이런 매혹적인 신성함에 도취되어 그리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가는 흥분과 낭만은 듣기만 해도 짜릿해 진다.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개그처럼 읽는 것만으로 부풀어진 가슴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만든다.

 


책은 제주의 마을, 풍광,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때로는 광각의 넓은 풍경을, 때로는 조밀한 사람내음을 담았다. 알려진 곳이 아닌 제주의 석회암처럼 풍화된 기록의 흔적을 모았기에 기존 여행서의 획일성과는 차별화 되는 것이 특색이다. 여느 판에 박힌 가이드가 아닌 점이 무엇보다 마음을 잡아 붙들어 맨다. 그가 찾아 간 이름도 낯선 어느 고즈넉한 마을의 한적함에 심신의 피로감을 몰아내기에는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시간의 색깔을 희석한 예배당의 고풍스러움과 섬사람의 애환을 담은 지신(地神)의 소통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기존의 제주여행은 남과 서를 기점으로 구분한다. 최근에야 올레길의 발굴과 복원으로 쉬엄쉬엄 걸으며 체험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대개 처음 제주를 찾으면 어김없이 평범한 여행코스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여행 로를 고집하는 것이 나쁠 것까지야 있겠냐마는 이왕이면 저자가 따라 간 길처럼 인적 드문 곳을 따라 흘러가는 것 또한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이름난 여행지가 최상의 상태를 갖춘다는 것은 자연과 조화로운 개발이 우선이다. 저자가 명소가 아닌 곳만을 밟은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렇듯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꿈길처럼 아름다운 제주여행의 묘미는 낭만 바로 그 자체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그(그녀)와 함께라면 추억을 저장하고 감정을 업그레이드 해 줄 것 같다. 이국적인 풍경과 뜻하지 않는 기대감이 숨 쉬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여행지로 선택해서 함께 한다면 색다른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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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 여행지 75 - 여행플래너가 알려주는 리얼버라이어티
류동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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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여행은 심신을 돌보고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어 주는 것과 같다. 여행으로 일상의 찌든 마음을 가다듬고 거침없이 치열하게 걸어 온 시간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일이다. 이처럼 여행이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에게 더 없이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함 그 이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마냥 설레기만 할 수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계획해야 할 지 등등 여러 가지 선택과 준비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 우리네 삶이 그렇듯 선택은 필요불가결한 순간이다. 또 다른 고민을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기에는 부담스럽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떠난 여행이 틀에서 벗어나 나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겠으나 목적과 방향 없이 나선 여행이 오히려 피로감만 누적되어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과는 다른 낯선 곳으로의 체험이기에 준비 없는 여행은 자칫 짜증과 불만이 가득한 여행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 책 <알뜰 여행지 75>는 이러한 생활인의 고민을 가뿐하게 해결하였다. 어디가 되었든 두루두루 알짜배기만 엄선하여 담아내었기에 선택의 고민 없이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대개 여행전문서적은 대상과 방향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견지할 때 이 책은 분명한 색깔과 차이를 둔다. 저자 류동규는 실력 있는 여행 플레너로 활동하고 있다. 시대 트렌드에 부합하는 명소와 지역 특색을 쏙쏙 들이 끄집어내는 탁월한 안목과 감각이 돋보이기에 그 풍부함이 차고 넘친다. 여행의 하나에서 열까지 빠트리기 쉬운 행복을 배가시켜 주는 팁까지 곁들였기에 이 책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저자가 뽑은 여행지는 효율적인 극대화하여 비용적인 면을 부각시켜 나열하였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어디론가 떠나고프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을 때 간단히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여행은 새로운 발견이다. 어디든 연결되는 편리한 지하철이용으로 서울 시내 곳곳을 맛깔난 음식과 함께 역동적인 모습과 정적인 모습의 조화로움을 만끽한다면 오감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일상의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재충전할 수 있는 나름의 여행지를 찾는 것도 재미난 일이며 나만의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겠다.

 


그래도 여행은 어디론가 멀리 오롯이 몸을 맡기는 것이 제일이다. 그것만큼의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억누를 수 없다. 밤새 들떠 설레게 하고 흥분되는 기분은 누구나 거부하기 싫은 달콤한 유혹일 게다. 이렇게 들뜬 기분을 채워 줄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도와주었기에 여행에서 오는 신선함을 오롯이 맛보게 한다. 이를 충족시켜 줄 꺼리로 저자는 다양한 패턴을 제시한다. 오붓한 가족여행에 안성맞춤인 수목원, 남이섬, 중도, 테마여행지. 연인과 함께 떠나기 좋은 강촌, 양평, 정선 등등. 이렇게 대상과 목적에 맞추어 체험에서부터 먹을거리, 볼거리, 숙소에 이르기까지 직접 다녀 보고 골라낸 최상의 순간들만을 담아 엑기스만 걸렀다.

 


여기에 여행 플레너로서 겪은 나름의 노하우와 조언도 아낌없이 곁들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떠나고 편리함 보다 자연과 한 걸음 다가설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하며 여행 정보를 최대한 이용할 것을 꼽는다. 또 예약은 필수이며 할인쿠폰, 여행사패키지 살펴보기, 카드사 제휴상품 적극 활용하기로 알뜰하고 계획된 여행이 최상의 추억을 선사할 것으로 자신한다.

 


이밖에도 본전 뽑는 여행 팁을 자세하고 옹골지게 채워 놓았기에 이 책 한권이면 웬만한 여행은 자신감이 붙게 하며 언제라도 떠날 힘을 생산한다. 그나마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수도권 위주로 꾸며진 책이라는 점에서 지역적 배려가 부족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주변지역을 짜 맞춰 나가는 묘미 또한 있기에 실망할 필요는 없겠다.

 


이처럼 여행은 준비만으로도 설레고 어디론가 동경하게 만든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편리한 것이 우선이라는 가치가 미덕인 세상일지라도 너도나도 하는 판에 박힌 맹목적인 여행이라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며 오히려 독이 될지 모른다. 가까운 곳이라도 특별한 기분으로 누군가 걸어 간 흔적을 따라 가는 마음으로 밟아 걸어간다면 여태껏 여행에서 빠트린 행복과 조우하고, 여행이 선사하는 자유에 삶이 더욱 향긋하고 부드러워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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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밥상 이야기 - 거친 밥과 슴슴한 나물이 주는 행복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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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면 공유하는 향수마저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어느 기억이 동시대를 타고 넘은 이들에게서 생산되는 오롯한 추억의 산물이다. 하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연결의 교통의 순간은 매번 단순함에서 스며든다. 먼저 산 세대나 이제 갓 피어난 세대와의 소통이다. 작가 김성하는 글을 읽고 다시금 쓴다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확장이며 삶에서 결락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것으로 빗댄다. 이처럼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힘듦에서 오는 애환보다 정서적 교감이 세대를 넘나드는 희열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윤혜신은 밥을 짓고 밥에 온몸을 불사른 넉넉한 어미의 심성을 닮은 사람이다. 그가 펴낸 이 책 <착한 밥상 이야기>는 우리네 삶에 녹아든 단상의 갈무리로 대변된다. 소박하지만 맛깔나고 담백한 우리네 밥 이야기로 이 땅의 모든 이들의 울대를 자극하고 든든한 삶의 활력소를 준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님이 차려 준 딱히 거창할 것 없는 소반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세상에 산다. 제대로 되었다는 의미 또한 달리 해석될 순 있겠으나 자연 그대로를 첨가되지 않는 상태로 먹는다는 것은 퍽이나 힘든 현실이다. 제철이 아님에도 사시사철 넘쳐나는 시간을 거스른 먹거리와 각종 화학첨가물의 결과로 변신, 인위적인 맛으로 무장한 인스턴트식품의 범람은 우리네 오랜 미각마저 마비시켜 버렸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만 할까? 사람이 도저히 먹어서는 안 될 독약이나 다름없는 첨가물을 집어넣어 버젓이 시중에 유통하는 악덕업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허망함 마저 든다.




책은 계절의 주기에 맞춰 험난한 시기를 넘은 이 땅의 재건으로 점철된 시기를 회상했다. 각 장의 후미에는 자연으로부터 길러 낸 채소를 사용한 간단한 레시피를 더 해 잊힌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한 된장 내음이지만 누구나 읽어도 부담 없다. 저자가 특히 애착을 갖은 엄동설한의 긴 동토를 뚫고 온 산을 점령한 취나물 애찬에는 절로 슴슴한 맛이 한 가득 고인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네 전통 음식을 통해 삶에 치이고 지친 수고스러움 생명들을 보듬는 따사함이 온몸을 감싸는 강한 전율을 경험한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넘쳐나는 세상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지 모른다. 사회구조가 탈분화되고 쪼개지면서 흔히 먹던 음식조차 오히려 희귀해졌다. 무엇을 먹고 산다는 명제가 물질로 이해되고 가진 것의 층위에 따라 달라지는 인심은 입맛마저 양분화 하였다. 먹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인다면 지나칠 과장일까?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나물무침에 개운한 냉이된장국과 갓 지은 고소한 밥상이 그리운 세상이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다시 회귀하는 것 또한 본능의 거스를 수 없는 기억의 소치이다.




그녀는 거칠고 투박해진 자신의 손에 뇌가 달렸다고 읊조린다. 못다 핀 감성의 필력을 시를 통해 노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다스리는 지혜를 안다. 그래서인지 정도 많고 살갑게 보인다. 이러한 저자의 신실한 삶의 흔적은 여간 정성과 노력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밥 심에서 비롯된 그녀의 강단한 모습은 한국인의 정서와 교차되는 정점에 이른다.

 

옛말에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뿌리가 같으며 먹는 것을 잘 챙겨 먹으면 약과 진배없다는 뜻으로 새겨 봄직한 경구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그녀의 할머니의 정성은 산해진미를 물리친다. 이처럼 그녀를 길러 낸 원형적 힘은 자연으로부터 온다. 소탈한 성품과 정갈한 밥상은 우리를 살리는 치환의 그것이다.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립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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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 옛길박물관이 추천하는 걷고 싶은 우리 길
김산환 글 사진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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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휴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육신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정신을 이완시켜 주는 행위의 일종이다. 하지만 급격한 문명화와 현대화로 인해 여행의 본질이 오도되는 경향이 짙다. 세련되고 최신 시설을 갖춘 위락시설이 구비된 휴양지를 선호하는 현실을 대하다 보면 씁쓸함마저 감돈다. 이처럼 여행이 변질된 이유야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경험의 틀과 범위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눈에 뜨이게 늘었다.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의 저자 김산환은 잊힌 옛길을 통해 우리네 산천을 돌아보고 현대화에 매몰된 향수와 정취를 공유하고 회복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 신작로가 뚫리고 돌담길이 사라지고 징검다리의 기억이 가라앉은 추억을 오롯이 간직한 옛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였다. 책을 통해 우리는 상념의 즐거움과 휴식의 충만함을 곁으로 얻을 수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미천한 것들도 작가를 통해 다듬어진 후라면 태고의 품을 잉태하여 오래도록 간직한 아슴아슴 자연으로 회복되어 새로이 태어난 날 것 그대로의 오감을 자극한다.  



저자는 여느 기행문과 달리 주관적 단상을 맛깔나게 소묘하였다. 이름 모를 들꽃에서부터 옛 시간이 만든 돌담길, 오솔길, 징검다리길 등에 고귀한 생명의 불씨를 불어 넣었다. 하나같이 진득하게 매료시키는 표정에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감촉이 그대로 전율한다. 왜 걷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단상을 길어 올렸는지 이내 공감하는 글이라 하겠다.


책은 저자가 밟은 우리네 강산의 구석구석 중 알짜배기만 골라 실었다. 가족중심의 여행을 테마로 구성하였다. 상세한 지역 설명과 지명이야기, 맛집 소개, 걷기 난이도 등 여행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여 허투루 넘겨볼게 없다. 물론 이름난 관광지도 있겠거니와 아직 낯선 곳도 종종 자태를 뽐낸다.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주목적이기에 번잡함을 일부러 피했다. 읽기도 쉽지만 작가가 직접 담은 사진은 마치 생동감 있게 잡아 낸 펄떡이는 역동감과 숨결이 느껴진다.


전체 3부로 나뉘어 엮었다. 각 장을 걷는 이를 통해 바라 본 풍광을 중심으로 제1부는 물이 주는 원형의 순수함을 녹여 내었다. 시간의 흐름이 마비되어 마치 멈춰버린 굽이굽이 물길이 흘러가는 섬진강자락을 필두로 걷기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제주 올레 길을 지나 마지막 남은 조선의 큰길을 내처 흘렀다.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자연이 주는 위대한 작품에 인간의 오만함 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제2부는 경계를 넘어 잇는 고개를 걸었다. 백두대간의 고준산령 대관령의 아스라이 펼쳐 진 눈길의 순간을 담고 한 많은 동강의 뼝대 고개를 온몸으로 넘었다. 자작나무에 편지를 쓰면 맺어진다는 러시아의 전설이 스민 인제 점봉산의 운치는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락부락 총각들이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에 동해 꽃 꺾기 내기하던 백운산 화절령은 옅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렇다고 마냥 좋을 수만은 없듯 탄광이 막히고 도롱이못과 아롱이못의 사연은 가엾기만 하다. 인간이 휩쓸고 간 자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처음 열린 하늘재를 통해 명멸한 아픔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깃든 월악산은 그 산세 또한 기가 막힌다. 조령을 넘어 문경세재에 얽힌 야사는 그 시절 그 사람들과 함께 걷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영남대로의 중심관문인 문경과 충주를 이어주는 길에 아직도 주막거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 선현들의 결과 얼이 깃든 그 오름길을 따라 거니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기운이 풀릴 것만 같다.


제3부는 물아일체에 맞닿은 풍경의 가운데를 타고 넘었다. 해남 끝자락 두륜산 대흥사로 오르는 길은 자연과 나와 하나 된 혼연일체의 착각을 돋운다. <서편제>와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로 유명해진 유선장은 운치 또한 멋들어진다. 이 모든 것이 도탑기만 하다. 또 장성 축령산에는 춘원 임종국의 나무사랑은 그 얼과 기상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그의 행적이 고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것에 다르지 않다.


핏빛처럼 어스러지는 동백꽃길이 곧게 뻗은 전남 강진 백련사와 다산 정약용은 친분은 정겹기만 하다. 정약용이 여유당이라는 호를 버리고 다산이라 바꿔 부른 사연은 옛길을 통해서만 스치는 교감이다. 이쯤 되면 저자의 기행은 세상으로 통하는 부드러운 흙내임 가득한 길처럼 느껴진다. 사자평의 드넓은 화전의 향취가 아스라이 배인 낙동정맥의 기운도 이젠 살갑게 다가선다.


인생은 쉼 없이 걷는 고독한 삶의 일환인지 모른다. 먼저 간 자의 발자취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어질한 풍광에 도취되고 자연 속으로 교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굳이 어디라도 이름난 곳이 아닐지라도 잊힌 우리네 옛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흥겹기만 하다. 문명화로 치우친 마음의 편식을 저자가 다시 터 준 책을 길라잡이 삼아 시간 내어 따라 걷다 보면 녹음이 전해 주는 풍광에 충만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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