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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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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시드니에 갔었다. 시드니로 말하자면, 한국과 비슷한 곳이어서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위도는 정반대여서 계절이 정반대인 신기한 곳이다. 시드니에 가기 전에는 막연히 남쪽에 있으니 발리나 스리랑카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이리라 생각했지만, 시드니는 적도보다는 남극에 더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 피서를 잘 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시드니 체류기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서큘러 키, 조지 스트리트, 달링 하버, 본다이 비치, 팬케이크 온더 록스 등등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지명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알타이, 페루,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처럼 내가 가 보지 못했던 곳들에 대해 읽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2016년 2월의 알라딘신간평가단 추천에세이로 선정된 책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두 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체류, 산책, 독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체류를 다루고 있고,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쫓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산책과 독서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저자 중 한 사람인 장석주는 걷기를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받는다. 걷기는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활력을 주는 해방과 자유의 느린 몸짓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며 영문 모를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두말할 것 없이 느릿느릿 걷는 일은 속도와 효율성을 섬기는 현대성에 맞서는 저항이다. (중략) 느림은 사람들이 눈이 시뻘개져서 매달리는 수익의 창출이나 효율성의 극대화, 그리고 현대적 삶의 필요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것을 방기하는 행위에 속한다. (170)

생각해보면, <처음 보는 유목민 여행>과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내고 있는 에세이 '걸어본다' 시리즈의 하나이니, 걷기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저자들이 시인이니만큼 시드니에서 책 읽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또다른 저자인 박연준은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다.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와 같이 늙는다.
책도 저마다 운명, 혹은 팔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후엔 얇고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시티에 나가봐야겠다. 저 책의 운명에는 시드니를 걸어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5)

산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비슷한데, 이 책의 특징은 바로 박연준과 장석주 두 저자가 시인 부부이며, 시드니 여행이 신혼여행이라는 점에 있다(이름만 봐서는 둘 다 남자 같은데 박연준이 여자다). 전반부는 박연준이, 후반부는 장석주가 담당하여 쓰고 있는데, 장석주의 파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박연준 파트에는 JJ(책에서 박연준은 장석주를 JJ라고, 장석주는 박연준을 P라고 부른다)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되풀이 나온다. 그래서 솔로가 읽기에는 시쳇말로 '오글거리는' 부분이 많아 괴롭다. 안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서 괴로운데ㅠㅠ

시인이라서 그런지 글에 대한 시적 고민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장석주는 칫솔모에서 만물의 운명을 발견한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갈 무렵 치약은 닳고 칫솔모는 끝이 뭉툭해진다. 양치질을 하려다가 닳은 칫솔모를 한참 바라본다. 만물은 그 시작에서부터 소멸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한번 생겨나면 반드시 닳아지고 바스러지며 줄어들고 쪼개져서 (중략) 사라지는 게 만물의 운명이다. (중략) 시간은 안 보이지만 흔적조차 없는 게 아니다. (177)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인다움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라서 '詩드니'인 것일까?

박연준은 한 편의 시로 시드니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도 그 시를 인용하고 끝마치겠다.

낯선 곳을 여행해보면 안다.
여행은 불편을 동반한 낯선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그리 익숙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돌아와보면 안다.
익숙할 때 즈음 그곳을 떠나왔음을.
이곳의 익숙함이 달콤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만
잠깐일 뿐이라는 것을.
조만간 권태에 빠져,
불편과 낯선 상황을 향해 달아나고 싶어할 것임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을 서울 밖에서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돌아와서도 헤매야 한다. (10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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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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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이 아닌지라, 한국은 겨울엔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여름엔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한다. 제발 덥거나 춥거나 한쪽만 했으면 좋겠다. 일 때문에 한국에 1년간 살던 미국인 친구는 한국 사람이나 음식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했으나 한국의 날씨에 대해서는 "내 고향 텍사스에서는 50도 가까이 돼도 습기가 없어서 여기보다 덜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황사-더위-장마-추위)을 경험하고 귀국했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서 추위에 괴로워하는 나날이 이어지다보니 차라리 열대의 남국으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에 나오는 여행지는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네 곳이다. 모두 가 본 적 없는 곳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누와라엘리야 등의 이름만 들어도 낯선 장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여느 여행에세이와는 한결 달랐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아보기'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일일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3주 내지 석달간 말 그대로 '살아보는' 저자의 여행은 관광과 이주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체류에 있다. 발리 현지의 나염 원피스를 입고, 발리어를 한두마디 배워 인도네시아 현지 전통 요리를 배우는 저자의 여행방식은 현지인들의 삶 그 자체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흥행하자 라오스에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현지의 삶이 오염되는 것을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현지의 생활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비엥이 다시 옜 모습을 찾아가는 대신 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비즈니스를 걱정할 무렵 한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 TV에서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부터였다. 지금 방비엥의 주 수입원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이렇게 밀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방식은 비슷하다. "이거 칠봉이가 맛있다고 했던 거야. 먹어보자. "<꽃청춘>의 걔네들이 머물렀던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방이 없대." "블루라군은 꼭 가야 해. 걔들이 점프한 데잖아." 라오스에서 실제 내 귀에 들려온 대화들이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방송에 나왔던 대로 한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중략)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들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374, 375)

유명 관광지들을 다니는 대신에 저자가 즐기는 여행은 산책과 독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산책에 대한 예찬을 논한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산책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이들이 많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벌판을 헤매이누나'라고 노래했던 하이쿠 시인 바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 자크 루소, 너무 많이 걸어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할 만큼 오래 걸었던 방랑시인 랭보,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어 다니며 사색했던 발터 벤야민,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며 산책을 즐겼던 소로. 좋아하는 호숫가를 산책하다 감기에 걸려 세상을 뜬 시인 워즈워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걷기나 산책은 존재의 방식이자 사색의 수단이다. (62, 63)

나 역시 성격이 게울러서인지 여행지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히키코모리라서 한국에서도 집-학교-집을 반복하던 나인데, 여행을 가서까지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하고 그저 책이나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치앙마이의 도서관에는 한글로 된 책이 1천 권이나 있다고 한다. 저자처럼 치앙마이에서 느긋하게 몇 주일간 체류하면서 도서관이나 오고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254)

그렇게 말하면 "왜 굳이 비싼 돈 써서 외국에 나가 산책이나 하고, 책을 읽는가? 그럴 거면 한국에서 하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법 하다. 저자가,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한국의 서울에서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여유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에서는 번잡한 한국의 삶과는 다른 느린 삶이 있다고 한다.

사철 꽃이 피는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꼭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없는 곳. 덜 쓰고, 덜 가지고, 덜 만남으로써 느긋해지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덜고, 일상이 주는 지루함은 벗어나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를 수는 없는 걸까. (5)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로 <POOL>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봐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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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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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황현산이 <한국일보>에 2014년 한 해동안 연재한 27편의 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책 속 글의 순서는 원래 신문에 연재된 순서와 같다고 한다.
이 시화집의 구성은 시화 하나하나가 애초에 발표되었던 차례를 그대로 따랐다. 그 내용은 시작의 연대기와 전혀 무관하고, 글이 다루고 있는 시들은 주제도 방법도 서로 다르며, 밀도와 순화의 정도에서도 고르지 않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가닥도 일관성도 찾기 어렵다. (10)
이육사의 <광야>로 시작하여 보들레르, 춘향전, 서극의 영화 <동사서독>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이 책은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보다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2014년에 있었던 바로 그 사건, 세월호 사건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윤일병사건을 다룬 글 또한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시평(時評), 혹은 시평(詩評)이라 할 수 있겠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아마도 이 책은 저자가 내놓은 답일 것이다. 저자는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종삼의 <민간인>을,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의 <부재의 형태>를, 영국의 여성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노래>를, 박노해의 <그대 나 죽거든>을, 보들레르의 <길 떠나는 집시>를 인용하고 있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시가 필요한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관념 사이, 개인과 사회 사이를 오가며 저자는 보들레르와 랭보부터 황진이까지, 공무도하가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동서고금의 시들을 종횡무진 인용한다. 과문한 탓에 여기에 나오는 시들의 대부분을 몰랐다. 이 책을 통해 시의 세계가 한결 넓어진 듯하다.
최근 서경식의 <시의 힘>,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 등 시를 소재로 한 책들이 화제가 되고 있어 우리 사회에서 시의 부활을 알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가늠해 볼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저자는 통일성 없이 엮어진 이 책의 시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으로 "어떤 극단적인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애잔함이었다. 슬플 애(哀), 남을 잔(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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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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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한 경관, 인간의 유구한 역사가 만든 경이로운 유적, 색다르고 맛있는 음식,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 등등. 손미나의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에는 이 모든 것이 들어있다.
 
최근에는 '전 아나운서'라는 타이틀보다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손미나지만, 역시 내게는 어렸을 적, <도전 골든벨> 등에서 봤던 모습이 익숙하다. 스페인어문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2004년 휴직 중 스페인에서 공부하고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출판하며 작가로 데뷔하였고, 퇴사 후에는 여행기, 소설, 번역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남미 지역은 브라질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본토 스페인어와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면 중남미 지역 여행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저자의 여행은 다른 여행자의 그것과는 차별화되는 강점이 있다. 나도 스페인어 공부해서 중남미 여행 가보고 싶다.ㅠㅠ

페루는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할 때까지 잉카제국이 번성했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마추픽추, 쿠스코 등 잉카제국의 유적으로 유명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신비한 모양을 나타내는 나스카의 그림 또한 페루에 있다. 아마존 하면 브라질을 떠올리지만, 아마존의 밀림은 페루에도 걸쳐 있는 모양이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 티티카카 역시 페루에 있다. 마추픽추, 쿠스코, 나스카, 티티카카, 아마존까지 페루는 여행자들을 매료시킬 여행지들로 가득하다. 콘도르, 알파카, 야마 등 진기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 올라야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문양을 지상에 그린 나스카 유적이나, 돌을 12각형으로 깎아 만든 쿠스코의 유적, 계단식 밭이 펼쳐진 마추픽추의 절경 등은 고대 잉카문명의 신비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면 이 책은 그 부분 또한 충실하다. 애초에 저자의 페루 여행 목적이 석사과정 동기인 친한 친구 '이야'를 만나는 것이어서, 함께 쿠스코를 여행하기도 하고, 여행 마지막에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이야의 집을 방문하여 이야의 아흔 살 할머니를 만나기도 한다. 또한 여행 내내 일본인 친구 '레이나'와 동행을 하는데, 같이 사진을 찍은 알파카가 정말 알파카가 맞느냐, 아니면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기 위한 양이냐를 두고 저자와 둘이서 논쟁을 벌이는 부분은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사실 레이나가 누군지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데, 여행 처음부터 동행한 것을 보면 저자의 전작들에 등장하는 인물인 것일까?) 이 밖에도 쿠스코의 가이드 그레고리와 우연히도 재회한 이야기 등 페루의 현지인들과의 교류 역시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데다가 사교성이 좋은 저자라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페루 여행이 좋은 점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모기가 많은 지역이라서 출발하기 전부터 황열병 주사를 맞아야 하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또한 페루라는 지역 자체가 해발 2000m~4000m에 위치한지라 여행하는 내내 고산병에 시달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아직 고산병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호텔에서 사람 몸통만한 산소통을 구비하여 고객들에게 룸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괴롭다.

페루는 한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다. 직항편이 없어 미국을 경유하여 2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가기 힘든 나라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페루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고, 언젠가 꼭 여행해 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미국 LA에서 유학했을 때, 페루 출신 친구와 함께 "퍼루비안(Peruvian, 페루의 형용사형을 이렇게 쓰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레스토랑에 가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마신 노란 색의 탄산음료 '잉카콜라'는 이 책에 거듭 나오는 것처럼 아주 색다르고 맛있었다. 내가 먹어 본 탄산음료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료로 기억된다. 세비체라는 이름의 생선회 초절임이나 쿠스케냐라는 페루의 국민맥주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듯이, 언젠가 페루를 여행할 때는 이 책을 들고 갈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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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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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정수를 본 느낌이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길지 않은 글에서 삶과 죽음, 세상사의 희비,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압도당할 뿐이었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이 나타내듯이 저자는 추상적 관념을 거부하여 구체적 삶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저자 자신의 라면을 끓이는 노하우를 논하고, 목수들의 삶에 애정을 표하고, 인간의 손과 발 등 신체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허공에 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일상의 현장에 밀착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귀중하여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여 사용한 문장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건조하고 담담한 문장 속에 유머가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반전을 통해 여운을 남기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밥벌이의 괴로움을 논하다가 마지막에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73)라고 말하는 식이다. 인생의 괴로움을 논하며 어쩔 수 없는 체념과 자조가 섞인 말을 내뱉는 것으로 삶에 작은 위로를 주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절판된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 수록되었던 산문들을 추리고, 그간 새로 쓴 산문들을 추가하여 펴낸 것이라고 한다. 위의 세 책은 2001-2003년 무렵 출판되었고, 이 책에 새로 수록된 세월호 글은 2015년에 쓰인 것이니, 대략 15년여의 간격을 두고 쓰인 산문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세월호 글과 박경리 선생 글 등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해당 산문이 어디에 처음 수록되었는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물론 저자와 출판사가 생각한 것처럼 이 글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읽힐 만한 글들일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전은 밝혀 주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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