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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약국 갑시다 - 나는 4.5평 가게에서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배웠다!, 개정판
김성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육일약국 갑시다''라는 책 제목은 일단 머리속에 육일약국이 과연 어떤 약국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책제목만 보더라도 저자 김성오씨는 마케팅의 귀재, 아이디어 창고라는 느낌이 드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가 삶과 사람을 얼마나 겸손한 태도로 사랑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분인가를 알게 된다!

김성오 사장은 1958년 마산 출생으로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600만원의 빚을 얻어 마산에서도 변두리 지역인 교방동에 4.5평의 약국을 개업한다. 그는 약국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택시를 탈 때마다 무조건 "육일약국 갑시다!"를 외친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15분정도를 올라가야하는 곳에 처음 개업한 육일약국을 택시기사들이 알고 있을리 없지만, 그는 3년여동안을 택시기사들에게 길 안내를 해가면서 늘 육일약국을 행선지로 말했다. 그 결과 택시기사들 사이에 육일 약국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그의 약국은 마산시민들에게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작은 약국을 운영하면서 그는 약국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한다. 컴컴한 밤에 멀리서도 육일약국이 빛나 보이도록 조명을 잔뜩 설치하거나 밤에도 간판을 끄지 않기, 좁은 약국이 넓어 보이도록 유리문 설치하기, 심지어는 80년대에는 호텔에나 설치되어 있던 자동문을 그 작은 약국에 설치해서 마산의 명물로 만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하드웨어 투자에 남들이 뭐라하든, 확신만 있다면 무조건 투자하고 보는것이었는데 이는 늘 매출증가로 이어지곤 했으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한 발 앞서 걸어간 그의 안목에 감탄할 수 밖에....

 

그런데 그의 진가는 남들은 생각도 못하는 아이디어로 약국 이름을 알리는 발상의 전환에 있는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인간성에 있다. 그렇게 자신의 돈을 들인 육일약국에 어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오던지간에 그는 늘 손님을 섬긴다. 손님에게 친절을 넘어 감동을 주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결국 손님이 다른 손님을 끌고 오게 하는 최선의 홍보전략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업의 성공 여부가 '사람의 마음 방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는지, 반대로 나를 떠나고 있는지에 사업의 성패가 달린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를 향하게'하려면 감동을 주는 수밖에 없다.>(p86)

 

이 신념은 그가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의 권유료 교육사업에 뛰어들었을때도 변함없이 적용되는데,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감동시키겠다는 태도로 회사를 키워나간다. 퇴사하겠다는 직원이 사직서를 낼 때마다 그 사람이 회사에 정말 필요한 사람임을 주지시키고 그만두지 말것을 간곡히 부탁하는것이나 학원에 꼭 필요한 선생님을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가 아니라 삼십고초려도 하겠다는 그의 자세는 사람을 중히 여기는것이 결국은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가 이렇게 남다른 경영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때문이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김성오 사장의 아버지는 늘 "얻어먹는 근성을 경계해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얻어먹으려고 하지 말고, 네가 스스로 자립해서 오히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거라."라고 강조하였다. 또, 새벽마다 어린 아들에게 집앞을 빗자루로 쓸게 하고 한자가 대부분이었던 성경을 매일 읽고 붓글씨로 쓰도록 시켰다고 한다. 어린 김성오가 해 내기에는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버지의 엄한 교육 덕분에 그는 정직, 성실, 인내심, 긍정적인 마인드, 그리고 판단력을 키울 수 있었고, 이는 마산 변두리 4.5평 작은 약국에서 출발, 메가스터디 부사장을 거쳐 중등 온라인 교육업체 엠베스트와 성인 대상 직무, 영어 교육업체인 메가넥스트를 성공시킨 저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이런 류의 성공담 책은 사실 읽을 때마다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특출난 점 때문에 '내가 저렇게 할 수 있겠어?' 하는....어느 정도는 약간의 좌절감을 맛보곤 했었다. 그런데 김성오 사장의 '육일약국 갑시다'는 약간의 좌절도, 조금의 포기도 생각나지 않는 책이었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려는 큰 애도, 대학에 가기 위해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 내고 있는 둘 째도, 그리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나이로 접어드는 나도, 그리고 회사에서 윗 사람이자 아랫 사람으로 고군분투 일하고 있는 남편도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되돌아 볼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좌충우돌 그가 살아 온 삶의 궤적이 성공을 향해 뻗은것은 그의 성품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철학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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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8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솔직히 "우아한 냉혹"이라는 제목에 선뜻 마음이 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체사레 보르자의 냉혹함을 우아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뉘앙스의 단어를 조합하여 한 남자를 세련되게 표현한 제목을 보며 저자가 체사레 보르자라는 한 남자에 대해 맹목적인 애정을 갖고 있는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한 남자의 성정이 냉혹하다는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더구나 냉혹함이 우아할 수 있다니....냉혹하다는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말이 아닐까? 빛나는 지성과 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냉혹함이라면 그 당위성이 인정될것이고, 심지어는 그 냉혹함이 미화되기까지 할텐데, 저자는 이탈리아 역사에 피의 장을 몰고 왔던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어떻게 우아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는것은 내게는 마치 안개가 옅게 깔린 숲속에서 보일듯 말듯 뒤엉킨 길을 따라가는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그녀의 글은 "소설과 역사의 접점에 있다"고 평가받는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녀의 그런 글쓰기 방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상상력이 메마른 건조한 성격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얻은 느낌은 세러 브래드퍼드의 <체사레 보르자>는 과연 어떻게 그를 묘사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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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3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사레 보르자, 잘 모르는 인물이지만~~~ 냉혹한 우아함이란 말은 끌리네요.^^

책향기 2008-06-02 10:52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끌렸답니다.
 
<그늘의 계절> 서평단 알림
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그늘의 계절>이라는 제목에서는 어쩐지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상처입은 마음이나 구비구비 삶의 신산함을 견뎌온 노년의 쓸쓸함같은게 느껴져 나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일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었고, 이 소설이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 책을 받아든 나는 일단 산뜻하고 유머러스한 책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우울하고 가라앉은 느낌과는 다르게 책표지의 일러스트는 인물의 과장과 생략이 과감하고, 색감이 원색인데도 튀지않게 적절히 조화되어 있다. 게다가 차 안에 앉아 있는 세 사내의 웃음기 없는 표정들은 그들 사이에 뭔가 비밀스러운 파워게임이 진행중일것이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묘한 힘이 있는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의 장면이 <그늘의 계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묘사한 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세 남자의 표정을 어쩜 그렇게 캐릭터에 딱 맞게 그려냈을까 뒤늦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소설은 네 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되는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요코야마 히데오의 추리소설은 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그가 모티브로 삼은 네 가지의 사건은 미스테리의 요소도 물론 있지만  그저 살다보면 어쩌다 겪을 수도 있는 에피소드라고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D현경 본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는 양념을 맛깔나게 버무릴 줄 아는 숙련된 살림꾼의 솜씨처럼 딱 적당한 흡입력을 가진 듯 하다.

<그늘의 계절>에서는 경무과에 근무하는 인사 담당자 후타와타리 신지가 사건을 풀어 간다. 경찰계의 거물로 퇴직과 동시에 경무과에서 마련한 자리인 "산업폐기물불법투기감시협회" 전무이사에 3년을 약속하고 취임한 오사카베 미치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약속된 임기 3년을 마치고도 전무이사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승진과 징벌등을 표나지 않게 인사이동 시기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퇴직경찰의 재취업도 알선해주는 것이 경무과의 힘이고 후타와타리의 능력이었는데, 오사카베의 느닷없는 선언때문에 그를 뒤이어 전무자리에 취임하려 했던 방범과장의 자리가 붕 뜨게 되고 경무과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될 위험에 처한것이다. 오사카베의 진의를 알기위해 그를 찾아간 후타와타리는 그가 흰 머리의 운전사를 대동하고 산업폐기물 현장을 수도 없이 누비고 다녔으며 그 지점을 표시한 지도 꾸러미를 발견하게 된다. 과연 오사카베는 산업폐기물투기 현장을 잡으러 그 많은 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일까?

<땅의 소리>는 경무부 감찰과 감찰관으로 일하는 신도 다카야시가 어느 날 Q경찰서 생활안전과장 소네 가즈오에 대한 밀고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네 가즈오는 성실하고 사람 좋지만 오래도록 승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인데 밀고 내용은 "PUB 무무의 마담과 호텔에서 밀회한다"는것이다. 마지막 승진기회를 남기고 "하늘의 소리"만을 기대하고 있는 소네에 대해 날아든 이 밀고는 내부자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외부인에 의한것인가? 

<검은 선>은 여경에 대한 이야기다. 순사로 임명받은 지 5년째인 스물 둘의 여경 히라노 미즈호가 어느 날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게 된다. 그 전날 범인의 몽타주를 완벽하게 그려 범인검거에 공을 세워 기뻐했던 그녀가 바로 다음 날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여경 담당 계장 나나오 도모코가 그녀를 찾아 나서고, 그녀의 기숙사 방에서 향수냄새와 차 안의 담배꽁초만이 단서로 드러나게 되지만 히라노는 평소 향수를 뿌리지도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기에 그녀의 행방은 더욱 더 묘연하기만 하다.

<가방>에서는 경무부 비서과의 과장보좌로 "의회 대응" 직무를 맡고 있는 쓰게 마사키가 등장한다. 정기 현의회에서 오고 갈 의원들의 질문과 경찰의 답변에 대해 미리 사전조사하고 준비하는것이 그의 일이다. 그런 그에게 우가이 현의원이 "폭탄"질문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날아든다. 질문을 미리 알아내지 못할 경우 답변이 궁해 D현경 본부장이 진땀을 흘릴 것은 뻔한 일이고 그러면 의회 담당인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은 자명한 일일 터....사방팔방으로 질문의 내용을 알아보려다 결국 우가이의 호텔 방까지 찾아간 쓰게는 우가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류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보게 된다. 미친듯이 가방 속 서류를 뒤진 쓰게는 "폭탄 질문"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가이는 있지도 않은 "폭탄 질문"을 왜 흘린것일까?

네 가지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문득 의학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하얀 거탑>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다루었지만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치열한 암투까지도 불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의사보다는 조직내 한 개인, 인간을 느끼고 많은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일본국민의 저 깊은 정서에는 아무래도 조직과 개인간의 관계에 대한 불문율 같은것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직은 지켜져야 한다는 암묵의 약속....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이 범인을 잡는 사건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조직내에서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 경쟁하고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도태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해 낸다. 그러한 경쟁속에서도 조직은 결국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이 곳곳에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가 일본인이고 또한 기자출신이기 때문일까?

어찌됐든 추리소설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어떤 이야기에서는 애틋한 부정을,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페미니즘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의 서글픔을 나는 느꼈고, 그 점이 바로 이 작품이 발산하는 묘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호기심을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 덧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안고 나오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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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8-01-01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겠는걸요?
일본 추리소설을 겨우 몇권 읽었으나 아직 땡기는 것을 발견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번 기대를 다시 걸어봐야겠어요.

책향기 2008-01-02 12:02   좋아요 0 | URL
일본 소설들은 어떤 장르이던간에 일본 특유의 느낌이 있는거 같아요. 미즈행복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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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위그든씨의 사탕가게>를 다 읽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바로 추억이라는 단어였다. 저자 폴 빌리어드가 담담한 필체로 묘사하는 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이 사람만큼 추억이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컴퓨터게임, TV프로그램등 영상매체에 길들여지고, 학교와 학원 오가다 보면 노는것이라곤 부모따라 콘도나 펜션에 가서 노는게 대부분일 우리 아이들에겐 과연 어떤 추억이 남겨져 있을까....? 나만 해도 어릴 때 혼자 해돋이를 보겠다고 겨울 새벽 바닷가 등대에 가서 오돌오돌 떨던 시간, 여름방학 할아버지댁 평상에 누워 쏟아질것 같은 별무리를 바라보던 시간, 아침에 일어나 동생 손잡고 엄마 아빠 가게까지 가서 밥먹고 등교했던 시간등...꽤 많은 아날로그적 추억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세대인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 폴 빌리어드가 풀어놓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어보면 문명이 발달할수록 추억은 점점 사라지는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생길정도로 20세기 초에 보낸 그의 유년시절은 온갖 재미있고도 기발한 장난으로 가득차있고 또한 마음 훈훈해지는 정이 넘쳐흐른다.

<이해의 선물>은 사탕을 사며 은박지로 싼 체리씨로 값을 지불하려 했던 어린 소년에게 거스름돈까지 내어주었던 위그든씨에 대한 이야기로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이야기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첫사랑 담임선생님께 선물한 야생화환에 독이 든 담쟁이가 섞여서 선생님이 입원까지 하게 되지만 선생님은 "아들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고 싶어."라고 위로해주는 내용이다.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일학년 아이를 세시간이나 교실 한 구석에 세워놓았다는 어떤 선생님께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하다.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전화교환원과의 교감이 감동적이고, <양배추머리>는 이웃집에서 양배추농사를 짓는 아저씨의 드러나지 않는 배려가 따뜻하다.

이렇듯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내 아들이었다면 정말 속 꽤나 끓였겠다 싶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개구장이로서의 면모도 다분하다. <방화범>에서는 공원에서 감자를 구워먹다가 불을 냈던 추억(?)이 나오고 <감기약 도둑>은 사탕처럼 맛이 좋은 감기약 드롭스를 훔쳐서 한꺼번에 먹고 토해버렸다가 들킨 내용이다. <위험한 불장난>은 이모부네 집 4층에서 이종사촌과 쓰지않는 세면대위에다 불을 지펴 감자를 구워먹으려다 소방차가 출동하게 된 이야기다. 진상을 알게 된 소방관은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돌아갔고 저자는 어머니에게 단단히 꾸중을 들었고 이종사촌은 이모부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ㅋㅋ 게다가 <롤러코스터>에서는 형과 함께 집 마당에 나무로 롤러코스터를 설치해서 직접 탔다가 속력을 이기지 못해 석탄광에 나가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결과는?? 형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다...^^;; 이 외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재미있다. 완고했던 아버지를 결국 이해하는 모습과 생활력 강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위트넘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힘을 갖고 있다. 

저자 폴 빌리어드는 열네살의 나이에 세상에 나와 공학자, 수의학자, 생태연구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다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분명 어릴적 그가 자라온 환경과 무관치 않을것이다. 숲속을 다니며 벌레와 식물을 관찰하던 일, 늪지대에서 낚시를 하던 일, 형과 롤러코스터를 만들었던 일등이 차곡차곡 그에겐 경험으로 쌓여 그가 가잔 여러가지 달란트의 바탕이 되었을테니까... 광활한 자연, 부모님의 사랑, 형제애,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소년을 둘러싼 이런 환경들은 어린 소년의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가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개구장이의 말썽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 커가는데 필요한 성장통으로 여겨지도록 하는 이유이다.

며칠 전 컴퓨터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자신의 아이디가 해킹당해서 그동안 모아온 무기며 돈이 다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던 아들을 바라보며 참 심란했던 적이 있다. 살아 숨쉬는것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저장되어 있던 것들이 사라졌다고 마음상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가 그렇게나 마음 둘 데가 없는것인가 얼핏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밤마다 다리만 아프고 마는 육체적 성장통만 느끼며 자라는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이 된다. 저자가 소년이었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점점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 성장통을 느끼며 커 가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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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0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악! 이해의 선물은 제 인생 최고의 감동깊었던 소설이에요. 이 책이 안 나와서 상심했는데 출간됐군요. 너무 기뻐요^^

책향기 2007-11-06 14:31   좋아요 0 | URL
음 마노아님은 이 책 알고 계셨군요. 전 신문에서 보고 구입했는데 우리 딸도 이해의 선물을 알고 있더라구요^^

미즈행복 2007-11-0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그래도 저는 낙관적입니다. 기원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다니까 말예요.
환경은 우리가 보기엔 각박하게 바뀌어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자생적으로 커간다고 믿습니다. 하긴 그렇게 생각 안하면 너무 절망적이겠지요?

책향기 2007-11-06 14:3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미즈행복님의 믿음처럼 우리 아이들이 잘 클거라고 생각해요.^^

뽀송이 2007-11-1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의 선물' 이 이야기는 중학생인 아들녀석 국어책에 있었는데 꽤 감동적이었어요.^^
저런... 아들아이 마음이 무지 안좋았겠어요.ㅡㅜ
중학생인 저희 아들도 작년에 해킹당해서 현금으로 육십만원정도 되는 무기들을 잃어버려서 꽤나 마음 상해 했었는데... 많이 달래 주셔요.^^;;
아이들에겐 게임공간도 나름 소중한 것 같아요.^^ 깊이 빠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을듯 합니다.

책향기 2007-11-10 22:35   좋아요 0 | URL
사실 게임공간에 있던 것들이 없어졌다고 속상해 하는게 이해는 잘 안가는데... 뽀송이님 말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야겠어요^^
 
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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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 경주. 내가 김 경주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미당문학상 최연소 후보라는 신문기사를 접하면서였다. 그때 같이 읽은 그의 시 "주저흔"이 너무 인상적이었던데다 젊은 나이에 카피라이터, 고교 교사, 방송작가, 영화제작자등을 두루두루 거친 그의 직업 이력도 범상치 않게 다가왔기 때문에 "김 경주"라는 이름 석 자를 좀 더 관심 있게 바라본 것 같다.

 

어떤 이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재능이 많은 시인이다."

그의 글은 느낌이 풍부하면서도 예민하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고, 그 사물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으나 보통사람들이 발견해내지는 못하는 요소들을 끌어내어 언어로 표현하는 재능이 너무나 탁월하다. 그는 이 세상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온 감각을 다 해 느끼며 사는 듯 하다.

 

그런 그가 여행 산문집을 내 놓았다.

 

패스포트.

 

시인의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단어가 아닌 단도직입적인 제목이 의외였고, 400여쪽이 넘는 꽤 두꺼운 분량도 의외였고, 그의 글과 조화를 이루는 여러 장의 사진들도 의외였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번 생과 외교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그게 여행이었던 것만도 같고 시였던 것만도 같고, 혹은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목의 땅인 고비에선 걷거나 지프를 탔고 유형의 땅인 시베리아에선 기차를 타거나 걸었다. 고비에서 나는 인간이 지상을 유목하는것이 아니라 삶이 저 스스로 바람 속으로 떠나는 유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형이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시간을 견디는 빛의 시차라는 걸, 빛이 눈에 뒤덮인 나무처럼 얼어버린 시베리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는 이동식 천막 게르와 함께 유목민들이 떠도는 모래의 땅 고비와 정치범과 소수민족들이 강제로 쫓겨나 살아야했던 동토 시베리아를 여행지로 선택한 것일까? 그는 고비사막 여행기에는 유목, 시베리아 여행기에는 유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단어 모두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고단한 여정의 느낌을 풍기고 있다. 시인은 고행을 통해 삶의 에테르를 찾고자 했던 것인가?

우리는 그의 여행기에서 그가 어떤 호텔에서 묵었는지, 어떤 유적을 돌아보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 그의 여행기에서 우리는 그의 눈으로 바라본 고비와 시베리아의 이미지와 그의 사유만 따라갈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고비사막의 먼지에서 시차를 발견하고, 사진은 빛과 렌즈가 나누는 춤이라 생각하고, 세숫대야에서 간절한 사랑을 상상한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기차에선 만남과 이별을, 유배지의 어떤 방에선 그 옛날 데카브리스트들과 그 부인들의 열렬하고도 처절한 사랑을 떠올린다.

패스포트를 읽으며 나는 시인이 고비와 시베리아를 여행했지만 동시에 그의 삶을 여행했고, 사막의 먼지만큼, 바이칼의 호수 깊이만큼 겹겹이 쌓여온 시간을 여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바람, 먼지, 시차, 빛의 이미지가 이 여행을 어찌보면 몽환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얼음속에 가두어 둔 불꽃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는 삶이라는 여행에 대한 절절한 고뇌와 열정, 그리고 아련하게 내비치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그 이미지 속에 숨어있다는 걸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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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9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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