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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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신간을 꼬박 기다렸다. 매일 퇴근을 하고 읽었던 전작은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하루를 버틸 양식처럼 흡입했고 몰랐던 책에 대해 그리고 책 속 캐릭터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서는 이번 <공부의 위로>가 3월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꼽아 기다리며 5년 회사 생활 중 가장 막막한 시기를 견뎌냈다.


책은 내게 이런 존재다. 어떤 감내도, 힘듦도 어찌어찌 견뎌내며 그 시간을 굴복하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공부의 위로>는 작가가 배웠던 대학교 교정의 교양수업을 담은 이야기다.

제목에서 모든 걸 유추할 수 있듯 공부 그리고 젊고 찬란했던 20대에 배웠던 교양 수업이 현재 밥벌이를 위한 세계를 걷고 있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차분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썼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보니 저마다의 대학교 교양 수업 추억을 써놓으셨더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부의 위로>를 읽는 내내 대학교 때 들었던 단 한 개의 교양수업이 생각났다.


사실 나의 대학생활은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신나게 잘 놀지도 못한 어정쩡한 4년이었다. 그래서 가장 아쉽고 슬픈 시기로 기억되고 다시 돌아가라면 주저 없이 열심히 공부만 해보겠다는 다짐을 보이는 때이기도 하다. (연애도 사치!!! CC 못해봄...)

여하튼, 나는 소위 신방과(신문방송학과) 학생으로서 전공은 신문, 잡지, 홍보, 미디어 등등이었고 교양수업이라고 해봤자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 좋은 쪽으로만 짰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아 공부란 이런 거구나'를 처음으로 머리에 얻어맞은 '만화와 철학'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이 지정해 준 만화를 읽고 그에 대한 리포트를 써오는 과제가 있었고 처음에는 재밌을 것 같아 신청한 과목이 알고 보니 인기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나는 대학생활 처음으로 과제로 제출한 리포트가 뽑혀 강당 앞에 나가 읽는 기회까지 주어졌는데 그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생각이란 것을 하고, 더 넓혀가 다양한 사고를 해볼 수 있었으며, 글 쓰는 일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었다. 전공에서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던 공부의 재미와 진지함을 철학 교수님에게 배웠다.


곽아람 작가의 <공부의 위로>의 서문을 읽자마자 이 책은 막 고등학교 정규교육을 끝내고 수능의 압박감을 벗어난 학생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게 조카가 있었더라면 당장 이 책을 선물했을거다. 멋진 어른이고 나발이고, 일단 네 손에 쥐어진 스무 살을 가장 천진하고 싱그럽게 보내려면 쓸모없는 공부의 진지함을 터득해야 한다고. 내가 말할 순 없고(공부 안 한 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이 책이 자연스럽게 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10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배웠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과 함께. 캠퍼스에서의 배움은 음화처럼, 내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모르는가를 뚜렷하게 하고 자아의 음역대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실용이라는 구호에 밀려 교양 강의가 축소되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강의실이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에 바치는 비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 같은 어른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30대 중반의 직장인인 내가 읽어본 결과 <공부의 위로>는 확실히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학창 시절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자존감을 쌓고 나눌 기회가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불편한 지점을 부딪치며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힘이 부족한 이유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저 공부는 따분하고 시시하다는 이유와 현실은 공부가 아닌 실전이라며 아르바이트 등의 생계적 수단을 먼저 익히려는 학생들에게서 공부는 정말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몸으로 사회를 익힌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대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인식하지만 모름지기 '공부하는 데서 오는 힘'은 기본 중의 기본. 타인을 이해하고 그대로 인정하는 내면의 깊이를 더 파고드는 데 있다.


<공부의 위로>는 우리에게 작가가 들은 착실한 교양수업을 소개하며 공부하는데 느꼈던 희열, 순수한 학문적 기쁨, 재미와 동시에 현실에서 위로받는 공부의 쓸모도 놓치지 않는다. 현재 언론사 기자로서 치열한 밥벌이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대학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취준시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고백한다. 그러하니 학문의 길을 뒤로하고 생계의 영역으로 한 발을 더뎌야 하는 취준생과 생계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직장인들도 이 책은 꽤 쓸모가 있을 것이다.


-216-217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은 수업을 들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모토가 되었다. 


"분투하는 인간은 길을 잃는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이 문장은 흔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는데, 내게는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면서도 원문을 외워 적을 정도로 아끼는 문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고시 공부를 할 것인가, 내 바람대로 인문학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취직을 해서 제3의 길을 찾을 것인가 방황 중이던 당시의 내게는 이 문장만큼 위로가 되는 말이 없었다.



미술사, 불어, 독어, 동양미술사, 영시, 중세 미술, 종교학, 심리학 개론까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우리는 공짜로 대학생이 되어 교양 수업을 듣는 기분이다. 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 평소 공부다운 공부, 지식 다운 지식, 쓸모의 여부를 떠나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교양 수업을 원했던 독자들이라면 <공부의 위로>는 그 부응에 딱 떨어지는 책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 그대로 전부는 아니어서 우리에겐 교양이라는 덕목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일부기도 하므로 다양한 세계에 발을 담그는 방법은 공부가 제일 빠르고 쉽다.


-10


교양이란 완벽한 지식체계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하되 다른 세계에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양이란 겹의 언어이자 층위가 많은 말,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일, 세 치 혀 아래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넣어도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27살 때 처음 퇴근 후 유튜브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때는 회사는 너무 싫은데 퇴사할 용기는 없고 매일 친구들과 만나 커피 마시는 것도 지겨울 때라 다른 방법으로 머리와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이었고, 그 행위는 점차 신문 필사하기- 한국사 공부와 시험 보기로 이어지며 대학생 때 들었던 '만화와 철학' 수업의 기쁨을 다시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곽아람 작가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겼던 공부를 재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늘 반복되는 하루와 하루 사이에 놓인 우리들에게 반가운 일탈이고 희망이다.


- 작가의 말에서


책 읽는 즐거움과 글 쓰는 고통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공부의 위로'다.

공부는 나에게 '획기적인 창문'을 하나 열어 주는 것이며, 상처를 입고도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길이며, 현실에 매몰되지 않도록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공부의 위로>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내내 마치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된 것 같았다.


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 시간을 남의 눈치 따위에 얽매여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면을 다지고 넓히는 과정을 거치는 대학 교정을 거닐고 싶다. 스무 살만이 새길 수 있는 운율과 리듬을 흘려보내지 않고 철저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사고한 나의 생각을 노트에 빼곡히 적고 싶다.


막 1년의 시작과 잘 어울리는 3월에 좋은 책을 만났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인연 책처럼 이 책 역시 올해 나의 인연 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봄과 어울리는, 삼십 대 중반인 내가 이십 대에 잠깐 머무를 수 있었던 좋은 이야기였다.


특히 유독 '공부'라는 단어에 환상을 갖고 여전히 학문의 세계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동경을 갖는 내게, 더없이 좋은 행복을 주는 책이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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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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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받게 된 책 한 권은 나의 고정된 생각과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의아해 하는 내게 ‘당연히’라는 답을 성실하게 말해주는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여러모로 내 주위 모든 생명체들을 다르게 보게 한다.


“생태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해치는 모든 사악한 구조에 등을 지고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작가의 말을 힌트 삼아 이 책을 읽는다면 모호하고 헷갈리는 텍스트의 문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나무, 새, 호랑이, 돌, 돼지, 원숭이 등의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해치고 멋대로 다루는 생명체를 그 존재로서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아니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를 드러낸다. 물론 그 염려는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잔임과 폭력성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예술로서 표현되는 방식이 신선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상의 맹수 호랑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아무래도 동양인이다 보니 이 챕터의 내용은 허투루 넘기지 못했다. 미국인들의 시선으로 보는 차이나타운은 한국에서 내가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선과 크게 엇갈리지 않았다. 한 땅의 덩어리에 가깝게 있지만 ‘여기’와 ‘거기’는 다르다는 내 머릿속의 잣대에서 이 두 나라간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다.


- 그림 같은 폭포 아래에서 포효하는 호랑이나 흐니 눈을 맞으며 파란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백호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제멋대로 오해받는 대상인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이질감이나 거리감을 드러내는 태도였다.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차이나타운은 실제 거리보다 더 멀리 위치하고 있었다.


홍 류는 중국에서 태어나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로 1994년 작업 [오래된 황금 산]에서 중국인들의 미국 이주 역사를 표현했고 [파리스의 심판]에선 서구인들의 눈에 그려진 왜곡된 타자로서의 아시아를 드러낸다. (-40)



[오래된 황금 산]을 보면 포춘쿠키로 산을 쌓아 올렸고 양쪽에 서로 가로지르는 철길이 있는데, 이 교차하는 철길은 중국 이민자들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쌓아 올려진 포춘쿠키는 당시 작업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여기에 주목할 점은 포춘쿠키에 있다. 실제 중국에는 포춘쿠키가 없고 처음 만든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일본인 사업가였다고. 그러니까 포춘쿠키는 미국에만 있는, 미국사람들 의식에만 존재하는 이주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진만 보더라도 괴기한 초록색 형상에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중국 매춘부를 모사한 것이고, 가운데 상의를 벗고 있는 여신들이 남자 인간에게 미모 순위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도자기의 형태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본다면 중국이긴 하지만 정작 중국의 본모습이 아니라 서구의 눈에 비친 잘못된 아시아의 모습일 뿐이다.

텍스트의 서양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또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과 구분짓고 잘못된 해석 안에서 잘못된 오류를 계속 키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예술의 한계는 없다고 여기는 편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술’이란 단어가 갖는 한계를 스스로 짓는다. 이해하기 어렵고, 해석하기 불편하고,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 그러나 이번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른다면>에서 표현되는 여러 장치들은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명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되는 텍스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돼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던가. 맛있는 삼겹살로서 가치를 충분히 내었는가. 아니다. 돼지는 그저 돼지로 잘 살려고 이 세상에 왔을 뿐, 인간에게 희생당할, 인간을 위한 마음 조차 전혀 없었다. 돼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오로지 우리, 인간의 이기심일 뿐.


자꾸 의미를 더하고, 색을 진하게 표현하고, 화려한 말로 꾸미는 인간의 욕심을 덜어내는 작업이 ‘생명’에 다가가는 진실한 유일한 진실일지 모르겠다. 바로 그 앎을 이 책을 통해 배웠고, 앞으로 전진이 아닌 ‘옆으로 확장’하는 대화를 통해 ‘이 세상에 남아 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말이 다가온다.


-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고자 했다. 모든 것이 우주적 관계 안에서 서로 ‘옆으로’ 의존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꾹 눌러 말하기 위해 글쓰기 방식에도 나름의 유기적인 규칙을 더해봤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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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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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겠다고 다짐한 건 순전히 백수린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놀랍게도 트레버 덕분에. 그 고독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윌리엄 트레버의 책은 그 전에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너무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이르러서야 그의 세계에 초대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밀회>를 읽으며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발견했다. 섬세하지만 모호하고, 모호하지만 뭔지 알 것만 같은 표현들이 자꾸만 문장을 더듬더듬 읽게 만들었다.

<밀회 - 고인 곁에 앉다>

12편의 단편이 들어 있는 <밀회>는 첫 이야기부터 강렬했다. 남편이 죽은 아내가 털어놓는 비밀.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기도, 그러나 사랑 후 남은 잔잔한 재인 듯도 한 원망과 미움이 섞인 고독한 감정이었다. 타인에게 털어 놓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여인이 함께 살았던 남자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란 생각보다 남편이 죽고 난 뒤 살아갈 여인의 삶이 더 궁금해질만큼 여인이 느끼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미스터리처럼 남아 있다.

- 에밀리는 기도를 올렸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랫동안 자신을 모욕한 이 남자의 구원을 빌었다. 두려움이 에밀리가 말한 사랑을 고갈시켜 껍데기만 남았지만, 방문객 앞에서 그랬듯 에밀리는 사랑의 잔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밀회 - 신성한 조각상>

다음 단편으로 내 마음을 붙잡은 건 누엘라의 이야기였다. 가난한 집에 남편과 아이들과 살고 있는 누엘라는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남편 모르게 친구에게 주려고 했지만 친구가 거절했고 영원히 혼자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간직하게 된다.

너무도 간략하게 줄거리를 적었지만 윌리엄 트레버는 세밀하고 모순된 마음을 너무도 순수한 언어로 잘 풀어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드는 마음을 죄책감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함께 움직인다.

- 누알라는 최선을 다해 남편에게 연민과 지지를 보냈고, 이제 영원히 혼자서 간직할 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렸다. 모두가 떠나고 집에 홀로 남았을 때 누알라는 아침 먹을 그릇을 닦고 마음에 들게 부엌을 정리했다.

<밀회>를 읽는 동안 계속 드는 머리 속 상상은 겨울에 읽기 잘 했다는 점이었다. 흰 눈의 배경도,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떠오르는 일도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소설과 너무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고독을 갖고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감정선도 들어 있다. 마음은 춥고 외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마음들…

만약 내가 소설을 쓰는 작가 혹은 지망생이라면 <밀회>의 모든 이야기를 열심히 필사했을 정도로 섬세했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평범한 감정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들여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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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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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홍인혜 지음



팬심으로 서평단을 하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빨리 다 읽어버리고 싶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싶어!

이 두 마음 모두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이고, 그만큼 고르고 고른 말은 참 재밌는 책이었다.


카피라이터, 만화가, 작가, 시인까지 언어로 이루어진 모든 콘텐츠를 다루는 작가님답게 이 책은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들로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도 결국 너는 너고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이 해묵은 슬픔을 떠올리면 언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힌 것처럼 우리는 언어를 쓰고 담고 줍고 다시 내뱉음으로서 서로를 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이 던지는 <붙드는 말> <결핍의 말> <그리움의 말> <습관의 말> 등을 차례로 읽으면 과연 내게 남겨진 말은 어떤 것들인지 함께 생각해봐도 좋다.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


나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하지만 이분만큼 대할 순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언어를 고르고 쓰는 범위가 남다르고 읽다 보면 마치 사전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실제로 작가님은 글을 쓸 때 사전을 옆에 두고 계속 찾아보신다고…)


누구든 글을 써보면 알지만 다 아는 내용을 참신한 언어를 사용해 쉽고 재밌게 읽히게 하기란 꽤 어려운 일인데 <고르고 고른 말>에선 재미도 있고 공감도 되고 이해의 범주도 넓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특히 여러 주제를 다룬 글이 단편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 읽어도 좋고 그런 장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에 더없이 괜찮은 책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


어쩔 수 없이 이 <고르고 고른 말>을 읽으면 유독 공감하는 챕터가 있고 그 안에서 내 마음에 또다르게 번지는 말들이 있다. 책은 이렇게 간접경험을 확장시켜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이 책에는 짧은 에세이들이 여러 개 들어 있어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과 비교해서 읽어 보기 좋았다.

책을 더 잘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 내가 맺는 관계가 ‘부족한 혼자’끼기 만나 서로 완성하는 관계이기보다 ‘완결된 혼자’끼리 서로를 부딪치며 건배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혼자는 충분하고 충만하다.

(충만한 말-이토록 혼자)


- 모든 사람은 본인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는 복잡한 층위의 인간이고, 단편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쾌활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고,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일 수 있고, 평범하면서도 기발할 수 있다.

(깨닫는 말-우리는 모두 입체다)


- 작은 일에 마음을 쓰며 번민하는 당신에게 누군가가 신경쓰지 말라고 무심히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하자. 내가 신경 쓰는 게 아니고, 이것이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거라고.

(섬세한 말-어떻게 신경을 안 써)


언어가 가진 ‘맛’을 얘기하다


직업적으로 말의 ‘맛’을 논리와 감성으로 풀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인지 어떤 사물이나 단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꽤 구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 속으로 더 잘 그려지고 공감의 밀도가 깊어지는데 가령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읽을 때면 그동안 무심하게 발음하던 모든 단어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느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경우 ‘바람’을 내뱉었을 때 [바]에서 울리는 숨공기가 [람]에서 혀끝을 한번 더 돌아 입 안에서 휘몰아치는 모양이 그려졌다.)


- 나는 ‘벽’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혀가 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벽을 입에 올릴 때마다 단단한 구조물이 혀 위에 올라가는 것 같다.


- 나는 ‘별’이란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아련하게 풀어지는 혀를 느낀다. 혀 위에서 구르는 맑은 리듬과 함꼐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빛의 지느러미. 나는 별을 발음하며 저 멀리서 파리하게 반짝이는 천체를 혀끝으로 맛본다.


고르고 고른 언어의 호흡이 보였다


글과 말을 좋아하는 작가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말들이니 얼마나 정성스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주면서 문장의 싹을 틔웠을까.


아마도 자기의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고르고 고른 말>을 읽으며 언어가 가진 숨, 호흡을 캐치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사소한 언어들이 관계에서 생명을 얻고 그후부터는 결코 사소하지 않을 힘을 갖는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만들어낸 소중한 문장을 정말 아낌없이 기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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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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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죽음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살’엔 쉽게 동요하는 듯 낯설게 느끼는 내게 이 <여섯 밤의 애도>는 죽은 사람과 남은 사람이 결국 함께 살아내기 위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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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2018년에 남동생을 잃었다.
민이: 2019년에 오빠를 잃었다.
선이: 2015년에 여동생을 잃었다.
영이: 2019년에 아버지를 잃었다.
경이: 2019년에 언니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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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는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눈다. 각자의 애도 시간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실로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족과 친구 중에서도 자살로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자살 사별자들이 털어놓는 날것의 감정들에 쉽게 동요되었다. 그건 우리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양가의 감정이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들을 시신으로 마주할 때 느낀 낯선 감각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나의 가족이 자살을 한다면..
내 친구가 마지막 메세지를 남기고 자살을 한다면..

자살 사별자들이 느낀 이해안됨, 이상함, 말도 안되는 감정 이외에 죄책감, 미안함, 슬픔, 분노 등의 여러 감정이 판도라 상자처럼 열렸고 결국은 스스로 세상을 등진 그들을 이해해보기 위해 용기를 내었다.

자살이란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여러 의문을 남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죽음밖에 선택이 없었을까. 내가 도울 건 없었을까…

이미 소용없는 무언의 외침인 걸 알면서도 남은 자들의 고통은 다른 형태로 남겨진다.

<여섯 밤의 애도>를 읽으면서 ‘애도’의 의미를 알게 됐다. 고인의 물리적인 죽음으로부터 정신적으로의 독립과 다시 일상을 보내기 위한 준비가 애도의 과정이며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차근차근 모임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나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함께 애도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는 자살의 복잡미묘한 죽음의 성격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되짚어 가는 시간을 통해 나의 시선이 옮겨간다.

자살이란 정서적 죽음에서 물리적 죽음으로.
자살이란 낯섦에서 보편적인 죽음의 이해로.
살아남은 미안함에서 일상을 회복하는 용기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변해가는 남은 사람으로.

<여섯 밤의 애도>는 꼭 주변의 누군가 자살로 생을 떠나지 않아도 우리 모두 함께 이야기하고 관심가져 볼 책이다. 결국 죽음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건강한 애도 과정을 지나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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