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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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홍인혜 지음



팬심으로 서평단을 하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빨리 다 읽어버리고 싶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싶어!

이 두 마음 모두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이고, 그만큼 고르고 고른 말은 참 재밌는 책이었다.


카피라이터, 만화가, 작가, 시인까지 언어로 이루어진 모든 콘텐츠를 다루는 작가님답게 이 책은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들로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도 결국 너는 너고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이 해묵은 슬픔을 떠올리면 언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힌 것처럼 우리는 언어를 쓰고 담고 줍고 다시 내뱉음으로서 서로를 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이 던지는 <붙드는 말> <결핍의 말> <그리움의 말> <습관의 말> 등을 차례로 읽으면 과연 내게 남겨진 말은 어떤 것들인지 함께 생각해봐도 좋다.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


나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하지만 이분만큼 대할 순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언어를 고르고 쓰는 범위가 남다르고 읽다 보면 마치 사전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실제로 작가님은 글을 쓸 때 사전을 옆에 두고 계속 찾아보신다고…)


누구든 글을 써보면 알지만 다 아는 내용을 참신한 언어를 사용해 쉽고 재밌게 읽히게 하기란 꽤 어려운 일인데 <고르고 고른 말>에선 재미도 있고 공감도 되고 이해의 범주도 넓어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특히 여러 주제를 다룬 글이 단편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 읽어도 좋고 그런 장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에 더없이 괜찮은 책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


어쩔 수 없이 이 <고르고 고른 말>을 읽으면 유독 공감하는 챕터가 있고 그 안에서 내 마음에 또다르게 번지는 말들이 있다. 책은 이렇게 간접경험을 확장시켜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이 책에는 짧은 에세이들이 여러 개 들어 있어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과 비교해서 읽어 보기 좋았다.

책을 더 잘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 내가 맺는 관계가 ‘부족한 혼자’끼기 만나 서로 완성하는 관계이기보다 ‘완결된 혼자’끼리 서로를 부딪치며 건배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혼자는 충분하고 충만하다.

(충만한 말-이토록 혼자)


- 모든 사람은 본인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는 복잡한 층위의 인간이고, 단편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쾌활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고,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일 수 있고, 평범하면서도 기발할 수 있다.

(깨닫는 말-우리는 모두 입체다)


- 작은 일에 마음을 쓰며 번민하는 당신에게 누군가가 신경쓰지 말라고 무심히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하자. 내가 신경 쓰는 게 아니고, 이것이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거라고.

(섬세한 말-어떻게 신경을 안 써)


언어가 가진 ‘맛’을 얘기하다


직업적으로 말의 ‘맛’을 논리와 감성으로 풀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인지 어떤 사물이나 단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꽤 구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 속으로 더 잘 그려지고 공감의 밀도가 깊어지는데 가령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읽을 때면 그동안 무심하게 발음하던 모든 단어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느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경우 ‘바람’을 내뱉었을 때 [바]에서 울리는 숨공기가 [람]에서 혀끝을 한번 더 돌아 입 안에서 휘몰아치는 모양이 그려졌다.)


- 나는 ‘벽’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혀가 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벽을 입에 올릴 때마다 단단한 구조물이 혀 위에 올라가는 것 같다.


- 나는 ‘별’이란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아련하게 풀어지는 혀를 느낀다. 혀 위에서 구르는 맑은 리듬과 함꼐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빛의 지느러미. 나는 별을 발음하며 저 멀리서 파리하게 반짝이는 천체를 혀끝으로 맛본다.


고르고 고른 언어의 호흡이 보였다


글과 말을 좋아하는 작가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말들이니 얼마나 정성스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주면서 문장의 싹을 틔웠을까.


아마도 자기의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고르고 고른 말>을 읽으며 언어가 가진 숨, 호흡을 캐치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사소한 언어들이 관계에서 생명을 얻고 그후부터는 결코 사소하지 않을 힘을 갖는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만들어낸 소중한 문장을 정말 아낌없이 기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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