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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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나는 창비 미디어 교육의 소설은 뭐랄까, 마치 "옜다 읽어봐라. 여기서 맘에 드는 작가 한 명 못 만나나 보겠어!" 하는 느낌이다.


매월 책 자체를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그 안을 꽉 채운 소설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우와, 이건 꼭 소장해야 한다고!!!"를 외치는 것 같다.


이번 「공존하는 소설」에서는 나의 최애 서유미 작가의 이야기가 있었고(물론 예전에 벌써 다 읽어본 타르트 ^^) 최은영, 조남주 작가의 팬들도 기꺼이 행복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번에 처음 보는 소설가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존하는 소설」이 뜻하는 바를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 이른바,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함께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는 단순히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것만이 아니다. 사회를 통제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도 모자라 강한 사람은 더 강해지고 약한 사람은 더 약해지는 상황으로 바꾸어 놓았다. 운이 좋았다면 코로나 시대에 별다른 일 없이 단지 코로나 감염에 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을 테지만 운이 나빴거나 혹은 생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본 사람이라면 단절된 사회를 더욱 외롭게 느꼈으리라.



「공존하는 소설」은 학대받는 아이, 외국에서 일하러 온 불법 근로자, 이제 막 서울로 독립을 시작하는 지방러, 동성을 좋아했던 학생, 치매가 오는 엄마를 바라보는 사람 등 특수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른바 사회가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감싸줘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작가 당 한 편씩의 글이 묶여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전체적인 소설 흐름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막상 책을 펼쳐 읽어 보면 우리 주변에서 가까이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 흐름으로 자연스레 묶여 있다.


결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한껏 흡수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에 속해 있고 한 사회는 국가에 속해있다. 이 말은 사람이 아무리 혼자서 산다고 외쳐도 우리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고 이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불안하다. 뉴스에서는 연일 묻지마 살인과 폭행을 다루고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의무가 바뀐 세상에서 혼란스럽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주위를 둘러보아야 한다. 아니면 이 책이라도 읽어보시길.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약한 구석이 쓰여 있고 그것을 서로 바라보며 품는 사람은 또 다른 약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p36. 밤은 내가 가질게


네가 학부모에게 아이 발달 사항을 설명하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해 주면 가끔 선생으로 인정받을 때도 있겠지. 근데 그게 너를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 사람들은 서비스 받는걸, 과도하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그러니까 원생이든 선생이든 누가 마음에 안 들면 쫓아내라고 난리를 피우는 거지. 우리 근간은 서비스직이야. 거기까지만 생각해.



학대받는 주승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인 '나'는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얻는 칭찬이 어색하다. 자신은 선생으로서 그 일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서비스직의 개념으로 한 일이라는 걸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나는 주승이 선생님이 아니에요. 나는 한 번도 선생님이었던 적이 없어요. 나는 그냥"


처음부터 '나'가 그랬던 건 아니다. 선생님이라는 명칭 속에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희망. 하지만 몇몇 개념 없는 부모짓에 짓눌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이라는걸.


이런 '나'의 곧은 마음에 균열을 내는 건 늘 순진하고 착해빠져서 사람들을 쉽게 믿는 언니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사기를 당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진저리 치는데 어느 날 언니가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또 한 번 화가 난다. 도대체 책임감 하나 없이 불쌍하다는 마음 하나로 그렇게까지 또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p46 밤은 내가 가질게


언니가 말했다.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


「공존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상냥함'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줄 아는 마음 같은 것.


정확한 형태는 모르겠지만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따뜻해지고 스스로에게 미소가 지어지는 상냥함.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상냥함인 것 같다. 다들 특정 주제에 예민해져 물어뜯고 공유하며 서로 낄낄대는 마음이 자칫 농담이란 한 단어에 쉽게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상냥한 건 쉽게 나올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본인이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진실한 마음을 쥐어짜내어 상대에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이다.



미주는 주나와 진희와 고등학교 친구였다. 일종의 베스트 프렌드여서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만나면 재밌고 그 어떤 세상에서 그들만 있으면 행복했다. 어느 날 진희가 자신은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한 말에 주나는 "정말 역겹다"라는 말 한마디를 내뱉고 그 자리를 떠났고 미주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교복 치마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어색하게 헤어지고 그날 이후 진희는 세상을 떠났다.



p119 고백


시간을 되돌려 어느 한순간으로 갈 수 있다면 그때로 가고 싶다고 미주는 간절히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나는 너의 편이라고 말할 거라고. 너를 그렇게 외롭고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때의 미주는 더듬거리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희는 역겹다 말하며 돌아선 주나에게도 슬펐겠지만 아무 말 하지 못한 미주의 행동에도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보다는 슬프고 외롭게 그 길을 친구들과 헤어지며 돌아왔을 때 아마 친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어도 "괜찮아. 우린 네 편이니까"란 단 한마디의 상냥함만 있었더라면 진희는 덜 외롭지 않았을까.


「공존하는 소설」에서 사회적 약자에 노인을 포함시켰다는 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미래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늙고 치매는 사람을 걸러 오는 게 아니니까. 백은 빌딩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경화는 그 옆 낡은 상가가 없어지고 새로운 요양원이 크게 들어선다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당장 아이들이 공부하는 환경인데다가 왠지 요양원은 그 동네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랐기 때문인데, 그런데 이혼 후 아이를 키우며 함께 돌봐주시던 친정어머니가 치매가 올 위기가 되자 돌연 요양원이 꼭 생겨야만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전에는 내게 독이라고 했던 존재가 지금은 득이 되었고 사회적 약자로 돌아선 순간의 양면적 마음이 나쁘지만 않게 보인 건 우리들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아이가 없던 여성이 마음대로 식당을 다녔다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난 뒤 노키즈존이 이렇게 많았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처럼 사람의 상황은 언제나 바뀔 수 있고 사회적 약자로 두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p205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경화도 백은빌딩 옆에 요양원이 들어오는 것은 싫다. 적당한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축주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렇다. 신념도 좋지만 집값도 땅값도 만만치 않은 서울 한복판에서 요양원과 데이케어 센터를 운영하는 게 수지 타산이 맞는 일인가.



가난, 여성, 노인, 아이, 비정규직, 지방

위의 단어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되뇌어도 비슷한 감정을 일으키는 말이다.


소수자 혹은 약자로.



세상은 불공평한 게 맞다. 모두에게 똑같이 공평한 세상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신도 해낼 수 없는 일은 사람이 해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인간이고 최소 교육을 받고 말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한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사람으로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존하는 소설」은 단순히 소설로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를 만나고 그 속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아직 가닿지 못한 상황을 미리 살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는 것. 우리가 소설을 읽고 좋아하는 이유다.



내가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상냥함으로 서로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안전하다는 걸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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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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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입력이 좋은 책

★ 성장소설로 손색없는 책

★ 여러 생각과 사고를 확장시켜줄 수 있는 책

★ 새로운 가족형태를 만날 수 있는 책

이지애 작가는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글을 쓰는 소설가이기 때문일까. 「완벽이 온다」는 꽤 흡입력이 좋아 하루만에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다 큰 어른이 읽어도 여러모로 생각해볼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민서는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마저 자신을 그룹홈에 맡긴 뒤 18살이 되자 독립을 하면서 살고 있는 주인공이다. 야간근무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날 중 그룹홈에 있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너희 아버지 돌아가셨대. 지금 부산에서 장례 치르고 있다더라. 선생님도 급하게 연락받느라 경황이 없어서... 내일이 입관이래. 갈거면 주소 알려주고."

"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문자로 보내 주세요. 먼저 끊을게요."


나를 버린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원망도 하고 싫어해보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끊을 수 없는건 가족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는, 그러나 적극적으로 찾고 싶지는 않은. 하지만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또 슬픈..

그룹홈은 공동생활 가정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모인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곳으로 겉으로 보기엔 일반 가정집이지만 그 안에서 배우고 지켜야 할 규율이 있고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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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은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가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그룹홈을 떠났다. 나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적응했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자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나는 떠밀리듯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통장에 찍한 오백만 원의 자립 지원금과 함께 그룹홈에서 만들어진 생활 패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무로 돌아갔다.


「완벽이 온다」에서 완벽은 그룹홈에서 함께 지낸 해서 언니의 아이 태명이다. 민서와 해서는 그룹홈에서 자매처럼 지냈고 이번에 함께 산부인과를 가게되면서 해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동안 민서는 사는 게 힘들고 무슨 일이든간에 심드렁했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길 줄도 모르고 사람에게 어떻게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모든 게 서툴렀다.


-15

또래 알바생들은 불편했다. 그들과 같이 웃어야 할 타이밍을 맞추는게 어려웠다. 다들 웃는데 나 혼자 웃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난처했다. 생각하는 걸 다 말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지만 그다음은 익히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서가 연락이 안 되고 민서는 해서를 찾으려 해도 그동안 언니에 대해 알고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예전 그룹홈에서 같이 지냈던 설, 솔 자매에게 연락을 한다. 이 자매는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여서 할머니를 때렸고 이를 자매가 신고하여 그룹홈에 들어왔다. 그룹홈의 특성상 아이들 개개인은 저마다의 사정과 슬픈 서사를 안고 있기에 서로에게 겨누는 눈빛과 마음은 날카롭지만 그 뒷면으로는 본인의 모습이 투영돼서 결국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관계이기도 하다.


솔은 그동안 해서와 연락을 주고 받은 사이였고, 가끔씩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아이였기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찾지 말라고 민서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만난 민서와 가까워지게 되고 설의 죽음, 할머니의 치매 등 그동안 묵혀 두었던 삶을 이야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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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밖에서는 멀쩡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만 오면 돌변했어. 설이 전에 신고를 해서 그런지 술만 먹으면 자꾸 설한테 시비를 걸더라. 설은 자기만 참으면 된다고, 나한테 신고하지 말라고 했어. 신고하면 다시 흩어져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싫다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한번만 더 용서해 보자고.



가족이란 울타리는 한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것이 좋은 가족이든, 나쁜 가족이든.


아니, 나쁜 가족인 경우 더 큰 재앙과 불행을 갖고 오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이가 왜 이렇게 틀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룹홈에서 만난 민서와 해서, 솔은 서로의 불안을 껴안으며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드려고 한다.


이들의 연대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해서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솔과 살게 되면서, 그 집에 민서까지 집보증금을 들고와 함께 하면서 더 단단해질것이다.

흔히 부모가 없는 아이들, 불안한 가정 속에 방치된 아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과 동정으로 마음을 처리하곤 하는데 「완벽이 온다」를 읽는 동안 그런 편견은 흐지부지해졌다.

단 하나 마음에 남은 건 불안을 함께 겪은 아이들이 그것을 폭력이나 불법적인 일로 이루지 않고 성실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써왔다는 것이 기특했으며 함께 하는 마음을 거부하지 않고 각자의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른들로 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완벽은 완전한 것과 다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말은 흐트러짐 없이 정상적인 수치와 기준에 딱 들어맞는 걸 의미하지만 완전한 건 그런 형태와 상관없이 내 마음의 완전하게 편안하고 좋으면 충분한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완벽이 온다」는 결국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이들의 미래를 뜻하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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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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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보면 학교소설, 청소년 소설의 단순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첫장을 펼치고 그 다음, 또 그다음 장을 읽고나면 어느 새 책 한 권을 다 읽게 될 것이다.


그정도로 흡입력이 짱짱이고 지금의 학생들과 예전의 학생이었던 내가 읽어도 비슷한 결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라떼들은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


최근 교사의 죽음과 구타당한 교사들의 기사를 보며 앞으로 우리 학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이 「스터디 위드 X」를 보면 그런 걱정은 더 가중된다. 사회 축소판 학교에서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관계와 상황들.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안전한 공간이자 불안한 곳이기도 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폭력, 왕따, 성적비관은 어김없이 전해지고 거기에 요즘은 카카오톡과 더불어 다양한 매체에 의한 정신적 가해의 층위가 깊어졌으니 요즘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우리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상하게 꼬여버리는 심리와 관계를 이 소설에서는 무서운 장치과 엮어 풀어나간다.


그 장치는 때로는 귀신이 되기도 하고, 친구의 반전 모습에 기대는데 생각보다 공포스러운 이야기들로 읽는 동안 몇 번의 섬뜩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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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아,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될 거야. 그래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사람. 근데 이젠 단순히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가 아냐. 학벌은 기본이고, 특출한 기술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건 명예건 일단 유명해져야 따라온다구.


성공하는 방법이 많아진 것만큼 해야 할 일도 다양해진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바라보며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제 책만 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일찌감치 그걸 알아버린 아이들은 건전한 야심이 뭔지도 모른채 오직 성공의 목표만을 향해 걸어간다.


수아는 전교 1등 학생. 스터디 위드 미를 주제로 꾸준히 유튜브를 올리는 학생이다. 소연이는 공부는 못 하지만 수아의 유튜브를 우연히 발견한 뒤로 남몰래 응원하면서 점점 힘이 없고 아픈 수아를 걱정하게 되는데...

더 큰일인 건 수아의 영상에서 보이는 귀신 두 명이 수아를 괴롭히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친구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스터디 위드 X」의 첫 단편 소설로 나오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결말에 놀라고 말았다.


응? 헉! 뭔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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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범인을 만들고 싶어 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범인이 아니라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어. 게임에서 관찰해야 할 대상은 다른 아이들의 손이 아니라 아이들 자체였으니까. 성격이 드센지 소심한지, 이 게임을 재밌게 생각하며 함께 가담할지 아니면 속절없이 말려들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 어떻게 그 정도로 영약할 수 있었나 싶어.


이 책에서 내 이마를 가장 찌뿌리게 만든 이야기. 슬프고 또 슬퍼서 하수구 아이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싶었던 이야기이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


소심하고 어리숙한 평범한 아이가, 아니 집안이 어둡고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반에서 왕따가 되고 더 나아가 큰 사건의 희생양이 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아이와 어른들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라 외면하기 힘들었다.


그저 장난으로 시작한 소문이 사실이 되고,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는 일이 곧 진실이 되는 작금의 현실을 소름끼치게 마주하게 만든다.


비단 초등학생들이 영악해서 그런 건 아닐거다. 모두 어른들에게 배운, 미디어에서 파생된 복합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머릿 속에 박혔을테고 재미와 장난의 이름 뒤에 숨어 결국 희생양을 찾고야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싹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내는 힘겨운 아이들 옆엔 친구가 있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 혹은 소극적으로 마음을 내보이는 친구까지.


외롭지만 외로울 수 없도록 옆에 소중한 누군가가 있다는 건 잠깐의 희망, 쉼이었을 수도.


그래서 「스터디 위드 X」는 무섭지만 슬프고 마음이 아릿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더 묘하게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이 여름, 지금 반드시 읽어봐야 할 우리의 이야기!


학생들에게는 뜨거운 몸에 차가운 이야기로 덮어 열기를 식혀줄 것이고 어른들에게는 차가운 감정에 뜨거운 이야기를 꺼내게 해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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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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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책, TV, 블로그, 유튜브, 중고앱, 언어 등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매일 쓰는 미디어 즉,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양한 매체를 소설로 구성한 책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뭘 연결한다는 건지 의아했는데 한 섹션씩 소설을 읽어보니 단편소설이지만 마치 장편 소설을 읽는 것마냥 하나의 주제로 내용이 광범위하게 통일되는 걸 느낀다.


이야기는 인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고 또 이야기가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주체가 대개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나 또한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꾼이 되는데 스스럼이 없으니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통해 배워 나간다.


연결하는 소설은 마치 논문처럼 정해진 주제가 재밌는 이야기로 탈바꿈해 전달되는 재밌는 책이다. 읽는 내내 "아, '말'이란 추상적인 단어가 이런 서사를 가질 수 있구나" 감탄했고 TV 매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지 재확인했다.


이제 우리도 쉽게 미디어를 활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구독자 수 증가, 광고수입 증대의 달콤한 상 뒤엔 어떤 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미디어는 양면의 습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점에서 한계 지어질 수밖에 없다.


소수 언어 박물관에는 약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고독하게 살고 있다. 아주 드물게 부부, 부모 관계도 있으나 거의 홀로 언어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살아지고 있고 '이 안에서 어떤 이들은 고독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고독을 예상하는 고독 때문에 조금씩 미쳐갔다<p21>'는 말처럼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이상 자신이 상징하는 그 언어를 내뱉을 일이 좀처럼 없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부족 사람들과 대화할 일도 없고 관리자조차 언어의 고유성을 핑계로 교류를 막았으니 많이 쓰고 퍼져야 할 언어가 점점 작은 세계로 좁아지는 아이러니함이 남았다.


이 소설은 마치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각자 할 수 있는 말이 있지만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타이핑 치면서 카톡, 게시판, 오픈톡에 줄줄 써대기만 하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침묵의 미래에 살게 되는 걸까. 함께 있지만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세계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동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담당 복지사가 말한 것은 고가의 '나이키' 운동화라는 이야기에 후원자가 어이없다는 투로 게시글을 썼다. 기초 수급 대상자인 저소득층인 아이가 이런 고가의 선물을 바라는게 놀라웠고 선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담당자의 말에 자신의 선의가 속물로 보인 것이 불쾌하단 이야기가 여러 SNS에 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후원 재단에서 일하는 윤미도 한 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이력이 있는, 그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해 후원금을 받았던 사회 복지사다. 미디어의 영향 덕분에 저소득층 후원 아동은 바르게 클 수 있었지만 그 장면을 위해 보이기 위해 엄마와 윤미가 살아왔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고 이번에 터진 사건에서 혹여 후원 아동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윤미.


윤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방향이 정해졌다. 메인 작가는 윤미의 교복 치마가 반질반질 닳아서 반짝일수록, 운동화 뒤축이 납작하게 눌릴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며 윤미를 설득했다. 생크림이 눈처럼 뿌려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던 안방의 시청자들이 전화기를 들어 후원금을 보낼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없느느 사람'임을 윤미의 입을 통해 드러내선 안 되었지만, 미디어라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 <후원명세서, P79>


이제는 방송국놈들이란 말을 쉽게 할 만큼 자극적인 소재를 위해 어느 정도방송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걸 뻔히 보면서도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요소 없이 담담하고 건조한 장면을 외면하고야 만다. 결국 미디어의 영향을 키우는 건 대중들이고 그걸 잘 이용하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판별할 수 없다. 우리는 복잡하게 연결돼 있지만 그 교류가 차라리 단절이 나았을 정도로 불행해지는 건 한 순간이니까.



연결하는 소설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은 고요한 시대다. 아무래도 언어를 다루고 카피를 매만지는 직업과 연관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국립대학에서 인지 언어학 강의를 하는 주인공 신영희가 여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어떤 놈을 떨어뜨릴 문구 하나만 만들어 달라'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언어는 무기다. 특히 정치판에서 표 하나를 얻기 위한 전략은 언어, 정당 구호에서부터 시작하며 어떤 프레임으로 본인을 포장하고 또 상대를 곤란에 빠뜨릴 것인지 정하는 주요 전략. 포털 게시판에 댓글 정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이 언어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데 능숙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언어도 점점 소통의 낡은 도구로서 사양될 위기에 처하고 과연 우리의 미래에 언어라는 게 지금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소통의 혁명이 가져올 찬란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어요. 집단 지성의 노래를 합창했죠. 그 희망이 사라진 게 언제부터인 줄 아세요?"

"언제부터였는데?"

"나라와 기업이 개입하면서부터요. 공무원과 직장인들이 돈을 받고 군인들이 상부 명령으로 댓글과 게시물을 퍼붓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지금 인터넷에는 텅 빈 죽은 말만 가득해요. 늙은이들이나 남아 있죠."

<고요한 시대, p178>


뜨끔. 우리는 수없이 텅 빈 말에 둘러 싸여 살아간다. 정보라는 포장지를 입었지만 막상 뜯어보면 속빈 강정과 다름없는 말들밖에 남아 있지 않고 이 속에서 진주같은 이야기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말, 글, 언어대신 우리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다른 대체제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과연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언어에 생각이 담긴다.

하지만 만약 다음 세대가 언어를 생각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어디에 담길까?

<고요한 시대, p187>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중 하나, 연결하는 소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미디어를 다루며 생길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 또한 미디어의 한 구성으로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얼굴을 볼 필요 없이 각자 쓴 문장과 읽는 문장에 기대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며 결국 연결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이 소통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연결되려는 이유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함께 살아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침묵, 언어, 몸짓, 익명의 공간, VR의 세상, 소리없이 글들로 채워진 세계- 연결의 지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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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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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나이 든 너희 중에

사랑을 구하는 자는

죄가 없이도 세상의 벌을 받으리라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예언이란 말인가.

1950년대에 못생기고 늙은(40대) 미혼 여성은 오롯이 설 세상이 없다.

남편이 없으면 삶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하여 본인이 재능이 뛰어나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희박한 일.



주디스 헌은 부모님 없이 이모에게 길러져 노망난 이모의 병수발을 드는 바람에 좋은 나잇대를 그냥 넘기고 살아온 인물로, 가장 취약한 점은 바로 '못생김'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가난해도 얼굴이 예뻤다면 늙은 영감이라도 한번씩 얼굴을 들이밀겠지만 헌에게는 그 어떤 남자와 그림자도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모가 죽고나서 아일랜드의 한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하숙집 주인의 오빠, 뉴욕에서 온 제임스 매든을 만나게 되면서 주디스 헌의 인생은 꽤 괴롭게 흘러간다.

사실 이 책이 명확하게 관통하는 지점은 주디스 헌이 느끼는 외로움이다.


요즘 이 책을 읽으면 무슨 남자 하나 없다고 세상이 무너지고 외로워 술주정뱅이가 되냐고 묻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이 시대에서 남자는 곧 세상과 연결되는 소통창구이고 여성의 존재 유무를 밝히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혼받은 적 하나 없는 주디스 헌에게 결혼은 그녀가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이고 소망이며, 그 세계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일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주디스 헌을 더욱 혼자로, 쓸쓸하고 추잡한 망상가로 만든다.

늘 남자들은 헌양 옆을 떠나려고 애썼지만 영화도 보여주고 밥도 사주는 매든을 보며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곧 결혼을 해서 함께 뉴욕에 갈 일을 꿈꾸는 여자. 하지만 매든은 주디스 헌을 돈 많은 여성으로 오해해서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고, 헌 양도 결국 이 매든이 뉴욕에서 한 일이 사업이 아니라 호텔 도어맨이였다는 것에 엄청난 실망을 한다.

제3의 눈으로 볼 땐 왜이렇게 오바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외로워서 그런다.

옆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니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쓸쓸하고 차가운지.

하여간 남자들이 문제다. 애초에 이 여성에게 돈을 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헌은 살아남았을테니까.

점점 수강생이 줄어드는 피아노 선생으로서도 어떻게든 살았을 것이고 연간 100파운드로 연금을 받으며 자기가 살 궁리를 했을텐데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은 남자에게 배신당하면서 신을 원망하기에 이른다.(메든이 주디스 헌의 사랑 고백을 가멸차게 뿌리치기 때문)

문제는 이 외롭고 복잡한 마음을 술에 기댄다는거다. 술이.. 주디스 헌의 감정을 증폭시키고도 남을 위스키가 위로한다는게 문제였고 술 때문에 그나마 옆에 있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결국 요양원에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아, 비혼의 늙은 여성의 갈 곳은 결국 요양원이란 말인가/라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이건 주디스 헌의 운명일 뿐이니.

그동안 내가 읽어 온 고전 소설 속 비혼 여성들은 자기 삶을 더 낫게 개척하려는 사람도 많았고 적어도 술이나 허울뿐인 사랑에 기대지 않으려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주디스 헌의 결말은그녀 스스로 이끌어온 운명의 몫인 것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술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못생겼단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처지가 불쌍해진 이모를 돌보다가 가난해졌다는 이유로 이 여성에게 차갑게 등 돌릴 이유는 없으니까. 여성이 홀로 설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나 홀로 살아갈 운명을 지녔기 때문에 주디스 헌에게는 외로운 열정이 필요했고 그것이 신이었고, 기도였다가 그 응답조차 듣지 못한 채 술이 주는 달콤한 세계에 빠졌을 뿐이다.

정말, 그랬을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주디스 헌이 가엾고 안됐고 불쌍하고 뭐 그런 감정이 지배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사람이 외로우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 사고의 범인들도 내면 깊숙이 파고들면 늘 혼자였고, 왕따였고 곁에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에 비하면 헌 양은 술에 취해 신에게 대들고, 신은 없다고 부정하며 다시 회개하는 길을 따르고 있으니 얼마나 가련하고 슬픈 삶인가 말이다.

퇴근 후 이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을 보면서 외로운 감정에 얼마나 증폭되고 또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약점이자 내가 좋아하는 감정 '외로움'에 대해 오늘도 이렇게 책으로 또 한 겹의 세계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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