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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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받게 된 책 한 권은 나의 고정된 생각과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의아해 하는 내게 ‘당연히’라는 답을 성실하게 말해주는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여러모로 내 주위 모든 생명체들을 다르게 보게 한다.


“생태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해치는 모든 사악한 구조에 등을 지고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작가의 말을 힌트 삼아 이 책을 읽는다면 모호하고 헷갈리는 텍스트의 문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나무, 새, 호랑이, 돌, 돼지, 원숭이 등의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해치고 멋대로 다루는 생명체를 그 존재로서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아니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를 드러낸다. 물론 그 염려는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잔임과 폭력성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예술로서 표현되는 방식이 신선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상의 맹수 호랑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아무래도 동양인이다 보니 이 챕터의 내용은 허투루 넘기지 못했다. 미국인들의 시선으로 보는 차이나타운은 한국에서 내가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선과 크게 엇갈리지 않았다. 한 땅의 덩어리에 가깝게 있지만 ‘여기’와 ‘거기’는 다르다는 내 머릿속의 잣대에서 이 두 나라간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다.


- 그림 같은 폭포 아래에서 포효하는 호랑이나 흐니 눈을 맞으며 파란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백호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제멋대로 오해받는 대상인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이질감이나 거리감을 드러내는 태도였다.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차이나타운은 실제 거리보다 더 멀리 위치하고 있었다.


홍 류는 중국에서 태어나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로 1994년 작업 [오래된 황금 산]에서 중국인들의 미국 이주 역사를 표현했고 [파리스의 심판]에선 서구인들의 눈에 그려진 왜곡된 타자로서의 아시아를 드러낸다. (-40)



[오래된 황금 산]을 보면 포춘쿠키로 산을 쌓아 올렸고 양쪽에 서로 가로지르는 철길이 있는데, 이 교차하는 철길은 중국 이민자들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쌓아 올려진 포춘쿠키는 당시 작업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여기에 주목할 점은 포춘쿠키에 있다. 실제 중국에는 포춘쿠키가 없고 처음 만든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일본인 사업가였다고. 그러니까 포춘쿠키는 미국에만 있는, 미국사람들 의식에만 존재하는 이주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진만 보더라도 괴기한 초록색 형상에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중국 매춘부를 모사한 것이고, 가운데 상의를 벗고 있는 여신들이 남자 인간에게 미모 순위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도자기의 형태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본다면 중국이긴 하지만 정작 중국의 본모습이 아니라 서구의 눈에 비친 잘못된 아시아의 모습일 뿐이다.

텍스트의 서양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또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과 구분짓고 잘못된 해석 안에서 잘못된 오류를 계속 키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예술의 한계는 없다고 여기는 편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술’이란 단어가 갖는 한계를 스스로 짓는다. 이해하기 어렵고, 해석하기 불편하고,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 그러나 이번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른다면>에서 표현되는 여러 장치들은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명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되는 텍스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돼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던가. 맛있는 삼겹살로서 가치를 충분히 내었는가. 아니다. 돼지는 그저 돼지로 잘 살려고 이 세상에 왔을 뿐, 인간에게 희생당할, 인간을 위한 마음 조차 전혀 없었다. 돼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오로지 우리, 인간의 이기심일 뿐.


자꾸 의미를 더하고, 색을 진하게 표현하고, 화려한 말로 꾸미는 인간의 욕심을 덜어내는 작업이 ‘생명’에 다가가는 진실한 유일한 진실일지 모르겠다. 바로 그 앎을 이 책을 통해 배웠고, 앞으로 전진이 아닌 ‘옆으로 확장’하는 대화를 통해 ‘이 세상에 남아 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말이 다가온다.


-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고자 했다. 모든 것이 우주적 관계 안에서 서로 ‘옆으로’ 의존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꾹 눌러 말하기 위해 글쓰기 방식에도 나름의 유기적인 규칙을 더해봤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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