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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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시의성이 있는 이 작품은 흠잡을 곳 없이 경이롭다. "딱 한페이지만 더!"를 외치게 만든다.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엘러리 로이드(더클럽 저자)-



나또한 이 레퓨테이션:명예 (1)(2)를 이틀 만에 다 읽었다. 한 자리에서 읽기 시작해 몇 시간을 걸쳐 엉덩이를 요리조리 굴려가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재밌고 속도감이 빨라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결말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예측했던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더니 아니네?


갑자기 얘가 나오네? 하는 정도라서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덮으면.

뭐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여성 공인이 사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정치인이 정치를 잘 해내기 위해서 여성 정치인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유권자를 용인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엠마는 자신의 집에서 쓰러진 마이클을 죽인 의심을 받으며 재판에 임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집에서 보낸 메세지를 받았다고 말했지만 엠마는 그런 메세지를 보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았지만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에게서, 그 순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쳤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엠마였다.


아이러니하지만 자신의 정당방위 행동이었음을 증명하는 레퓨테이션:명예(2)를 읽는 내내 내 가슴이 함께 졸이는 느낌이 들었다. 말꼬리를 잡으며 그것이 이 사건에 중요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사람들의 말이 있고 그것을 다시 방어하고 주도적인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말들을 재해석하는 시간들이 엠마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것인가.


레퓨테이션:명예(2)는 확실히 (1)보다 반전에 반전이 많아 더욱 흥미진진하다. 엠마의 딸 플로라와, 플로라의 새엄마 캐럴라인의 비밀스러운 동행은 이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마이클의 직장 동료의 증언은 배심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과연 이곳에 엠마의 편이 있을 것인가.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서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대목은 여성 공인이 감수해야 할 도덕성에 관한 것이었다. 


법정 스릴러를 표현하고 있지만 진정 이 이야기의 스릴러는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인 듯하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일반 여성들도 자신의 전 남자친구, 남자 직장 동료 및 상사, 혹은 가족들, 익명의 타인에게서 위협을 느끼며 살아간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까지도 이유없는 의심을 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여성들이 어떻게 명예를 만들고 유지하고 심지어 잃어버린 걸 되찾을 수 있을까. 


끝까지 이 책을 읽어본다면 어렴풋 힌트를 얻을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당신의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터놓고 싶지만 그렇다면 앞으로 이 레퓨테이션:명예를 읽을 독자들의 재미를 빼앗는 것이므로 간략하게 마무리한다.


과연 엠마는 명예를 되찾았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또다른 목표물을 향해 가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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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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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는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집 현관에 잠금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지역구 사무실에 테러에 대비한 패닉룸을 마련했다고 밝힌 실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이야기다.



노동당 평의원 엠마 웹스터가 잡지 촬영을 하면서 시작하는 이 「레퓨테이션:명예」는 여성 공인에게 부여되는 명예가 얼마나 가볍고 하찮은지, 힘겹게 쌓아올린 본인의 이미지를 얼마나 빠르게 추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문제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 빠르고 속도감있는 추락을 끝까지 세심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고, 거기에 여성 모두 갖고 있는 불안과 의심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플로라의 엄마이자, 페미니즘 캠페인을 벌이는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한 순간에 명예를 추락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의 집에서 누군가가 죽었다. 한때 좋은 의도로 캠페인을 함께 발전시킨 기자이자 하룻밤 남성의 몸을 탐했던 그.

왜, 무엇때문에 초대하지 않은 그녀의 집에 죽어 있을까?


이 책의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도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이 사진에서부터 시작됐으니까. 고루하고 딱딱한 여성 정치인으로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배우처럼 나온 사진은 책의 표현에 의하면 ‘성적 매력과 권력욕’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잡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그녀의 트위터에는 입에 담지 못할 적나라한 메세지들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왜냐고? 정치인으로 말한 인터뷰 내용보다 사진 한 장으로 여성이 부각된, 그래서 性으로만 남겨진 사람이 되었으니까.


악플러들에게 성은 매우 씹기 좋은 주제이다. 쉽게 내뱉어 자신이 한 말인줄도 모르고 소비하는 형태의 말들은 엠마에겐 하나씩 칼처럼 심장을 옭죄는 무기였고 누군가는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툭 말하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쓸모 없는 말인지 알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평가하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니까.

그래서 여성에서 명예는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더욱 얇고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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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인생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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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을 할까?

돈을 벌려고?

그럼 돈 벌어서 뭐하게? 집사게? 그럼 집사면 끝이야?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 바로 우리는 도대체 왜 일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일을 '잘' 한다는 건 또 뭔가.

이 책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시작한다.



-p24 아들러는 인생에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라는 세 가지 '인생 과제' 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과제도 그것 하나만을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각각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두 가지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우리는 이 세가지만 알고 이 책에 성큼성큼 들어가면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받아들이면 우리가 앞으로 평생 이뤄야 할지 모르는 '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을 잘 하려면, 그리고 즐겁게 평생 할 수 있으려면 한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바로 '공헌감'


공헌감은 공공에 도움이 되는 감각이자 나의 일이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갖는 것으로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내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할 때 뿐이다(아들러 강연)라고 정의했다.

내가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건 지금 누군가에게 간절히 필요한 책을 추천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일과 인생」을 서점 장바구니에 넣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내 자존감을 올린다. 사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매체도 아닌 개인 블로그에 소소하게 적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게 단 0.1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해나가고 있는 일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공헌감은 직장과 직업을 떠나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훌륭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그래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작은 사무실을 청소하거나 우편번호를 정리하는 모든 단위의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자기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는 일이 바로 공헌감이라고 볼 수 있다. 



자, 그러면 이 공헌감으로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면 다음은 교우의 단계로 들어서야 한다.


교우의 단계는 쉽게 말해 관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로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협력하며 함께 살아가야 안전할뿐더러 행복과 사랑의 감정이 더욱 증폭된다. 그러나 관계는 모두 핑크빛이 아니며 갈등과 마찰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불안하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에 우리는 자기의 일을 함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갖추고 그 용기로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다. 타인이 내게 어떤 상처를 주어도 스스로 쌓아올린 견고한 공헌감이 바로 사회관계를 시작하는 용기인 것이다.


중요한 건 인정욕구와 헷갈리면 안 된다는 것!

내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마음이 전부여야지 이 일을 통해 상사로부터, 후배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면 그때부터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경쟁구도에 들어서야 하고 선의없이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욕망이 끼어들기 때문인데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영역은 꽤 넓고 길기 때문에 건전한 형태로 자신의 일을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일과 인생은 아들러와 릴케의 이야기가 이 책을 더 풍성하게 채운다.


일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 상사와의 트러블을 잘 대처해야 하는 태도, 오랫동안 일을 하기 위한 창조력 등 직업에서 보이는 모든 면면의 형태를 철학자의 말을 빌려 쉽게 이해시키고 그것을 이해하고 재구성함으로서 독자가 이뤄내야 할 각자의 일의 의미를 창조해낸다.


개인적으로 일과 인생은 자기계발서보다는 에세이처럼 읽었다. 저자가 오랜 시간 품어온, 삶에서 차지하는 일의 모습을 세심하게 구분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증명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심플하고 명료하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좋아하는지, 이게 맞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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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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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담고 있는 책.


책에도 표정이 있다면 과연 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책은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아마 개인적으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펼쳐서일까. 누군가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책의 문장을 타고 넘어와 내 마음에 살랑 바람을 불어 넣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이 첫 프롤로그는 김달님 작가가 이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압축해 놓았다.

첫장에서 보이는 구질구질, 문득, 아름답게, 순간. 이 4개의 단어는 인생의 모든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같은 주문이자 이 책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세지다.


분명히, 지금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김달님 작가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문득, 아름답게 위로 받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처럼 이 책엔 작가가 듣고 건져 올린 소중한 말들이 적혀 있다. 대개 그 말을 전해준 이들은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 p85 이산가족 부부, 환경미화원, 청년 농부, 댄서, 신인배우, 이발사, 여자 야구단, 글쓰는 할머니, 마을신문 기자단, 환경운동가, 식당주인, 간호사, 사회복지사, 동네 통장, 인쇄소 직원, 치어리더, 시니어 바리스타, 과일가게 사장님, 라디오 DU 등... 이 있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읽히는 직업인 작가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기다렸던 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의도하지 않게 다가와 콕 박히는 말들도 읽을 수 있었다.



P120

이번에는 정말 될 거라 예상했던 공모전에서 최종 탈락했던 날, 그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과자 한 봉지를 나눠 먹다가 물었다. 혹시 다음에도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도 계속하겠느냐고. 그때 나는 그를 조금은 미련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날의 대화를 여전히 기억하는 건 뒤에 이어진 그의 대답 때문이었다.

"지금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야"



우리가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거나 위로를 얻는 건 거창한데서 나오는게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말을 머리 속으로 기억했다가 복기하며 가슴으로 저장한다. 누군가는 다이어리에 적어 놓거나 또 누군가는 영상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겠지. 여하튼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의 말들을 건지고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며, 스스로에게 전하는 진심이기에 이토록 소중하다.

나에겐 '지금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야'란 말이 큰 울림이 있었다. 쓰고 싶은 글을 게으름 때문에 못 쓰고 있을 때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회사 업무를 꾸역꾸역 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든 소설을 쓰고 일을 이어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내게 말할 수 있었고 뭐라도 시작하는데에 힘이 되었다.


김달님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 봤는데 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만 읽고도 어떤 이야기를 짓고 맺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하고 귀를 크게 열어 멀리 있는 사람말고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그 말을 자신만의 온도로 다시 채색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만으로 이런 결을 느끼게 할 수 없을테니까.

P185-186

"작년 12월에 태어난 아이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열 걸음을 걸었어요. 그 전까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이 아이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걷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제 손을 놓고서 한 발 한 발 자기 힘으로 걷더라고요. 세어보니 딱 열 걸음. 그 모습을 보는데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열 걸음을 걸었으니 이 아이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 그런 믿음이 생겼어요."



이 문장을 읽고 나선 한동안 다음 문장을 이어가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기 때문인데 아마 우리 부모님도 내가 처음 걸었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자꾸만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로 뛰어갔다. 또한 내게도 아이가 있었다면, 내가 부모였다면 나의 아이가 처음 걸었던 그 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어서. 너무 놀라고 벅찬 마음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그 순간을 목도하며 지나갔을 싶지만 이제 내가 위의 문장을 가슴에 남겼기에 앞으로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만난다면 이 글에 기대어 내 마음을 더 크게 부풀릴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몇 번이나 이 페이지를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김달님작가의 그리운 것들은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책이 되었다.


결국 우리를 키우고 돌보는 것들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즉 한 사람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찰나에 이뤄지는 거였다. 그런 모든 순간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어느 날의 내 모난 마음에 맞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의 다정한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겪은 상실감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말들을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서 읽어 본다면 분명히 허전하고 외로웠던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질 것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그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고 당장 이 책을 지금 내 주변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로 들어서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옆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았다. 이것을 계기로 만나서 두 눈을 직접 마주치며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묻어왔던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거리며 또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데 더할나위없이 좋은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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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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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명품'이라니. 명품이란 말에 휘둘린 걸까?

일상을 유용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부제 아닌 부제로 이 책은 단번에 나의 픽이 되었다. 과연 명품이란 무엇인가.

오픈런을 하고 훨씬 오른 가격을 치르고 나서야 얻는 전리품 같은 것?

명품 앞에 <생활>이 붙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생활명품은 내 옆에 있는 일상적인 물건의 가치를 다시 되뇌고 그 심미적 기능을 찾아 새롭게 바라보는 의미니까.


이 책은 윤광준의 생활명품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2002년에 시작한 그의 생활 물건을 바라보는 안목에 열광한 대중들에게 에센셜 한 물건을 소개하는 자리다. 그만큼 엄선한 물건이나 도구들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만이 포착한 물건의 기능, 브랜드의 역사, 디자인의 미적 감각까지 오감을 총동원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취향을 탐색하고 리치할수록 취향의 고급함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꼭 비싸고 잘난 물건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 취향이라는 것마저도 자신에게 행복을 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취향의 본질적 의미를 제시한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일수록 우리는 내 손에 착 감기고 내 눈에 꼭 들어맞는 물건을 쓸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그래서 유용하고 아름답다.

이 책을 제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
차례에서 내가 흥미 느끼는 물건을 쭈욱 살펴보고 그 페이지부터 읽는 것이다.

처음 보는 브랜드도 많았고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흥미로운 것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는 물건이 있고 나 또한 평소 그 물건을 탐냈거나 갖고 싶었던 거라면 저자가 쓴 내용에 훨씬 이입이 잘 된다. 나의 경우 허먼밀러 뉴 에어론 체어와 몽블랑, 몰스킨, 무인양품, 연두, 파타고니아, 다이슨이 눈에 띄었고 역시나 재밌게 읽었다.

그럼 모르는 물건들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냐고?

그럴 리가! 내가 밑줄 긋고 필사한 내용은 그동안 전혀 몰랐던 브랜드 혹은 생활명품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물건들에게서 보였고 이 책 덕분에 내가 물건을 고르고 보는 가치관이 더 확장되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은 저자가 물건의 기능을 재정의하고 문화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놀라운 책이다. 잠깐의 메모를 하는 포스트잇에도, 작업하기 위한 장갑의 기능에서도 단순히 물건이 지닌 기능을 넘어서 그 기능이 가능해지기까지의 고민을 문학적으로 풀이한다.

p251, 바리고

온습도계의 역할은 불현듯 궁금해지는 실내 상태의 체크다. 약간 추운 듯한데 현재 온도는? 건조한 느낌인데 가습기를 틀어야 할 때인가 등등. 상태의 정량화로 쾌적하게 일할 수 있게 했다. 무심코 보았다가 하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던가. 보지 않으면 연상도 상상도 없다. 생각의 환기가 이루어져 막혔던 아이디어의 물꼬를 터뜨릴지 모른다. 미처 챙기지 못한 사안도 불현듯 떠오르게 된다.


이쯤 되면 이것은 예술책이다. 소비와 취향을 문학적으로 반영하지만 생활의 장면들에게서 동떨어지지 않은. 생활예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책은 이쁘다. 즉, 소장용으로 좋다는 의미다. 책꽂이에 착 하나 꽂아두면 하얀색과 회색의 경계에서 밝게 빛나는 표지, 그 위에 깔끔한 타이포그래피, 가름끈까지 책 분위기와 어울리는 색으로 마감한 센스. 을유문화사의 로고도 잘 어울리는 생활명품 책으로 손색없다. 이왕이면 표지까지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나, 기분 좋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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