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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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하려는 목적에 앞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꺼내놓지 않으면 스스로를 알아갈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알고 싶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표현하는 시간을 늘려봐요. 어떤 틀이라도 좋아요.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내가 제일 잘 아는 진짜 나의 언어로요.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말이든, 요리든, 스타일링이든,
뭐든 다 좋아요.


료님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묘하게 단단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평가받기 위해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표현의 시작점을 *타인이 아닌 자 자신*에 두라고 말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요리든.. 사소한 무언가라도 꺼내 놓을 때 그 순간 비로소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게 된다고요.

/료의 생각없는 생각/은 그런 '나다움'을 되찾는 기록이자 스스로를 표현해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료님의 글이 글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건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화려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면서도 결국 그녀가 붙잡은 건 **나다움** 이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기록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나도 나를 더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때 꺼내 읽을 수 있는 조용한 안내서처럼 느껴집니다.

화려한 수식어로 꾸며진 기사 속 료라는 사람보다 한 권의 책 안에 일상 속에서 스치고 사라질 뻔한 감정들을 다정하게 붙잡아 글로 남긴 료라는 사람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겠지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
✔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알고 싶은 사람
✔ 타인의 시선보다 내면의 시선을 더욱 소중히 만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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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 띵 시리즈 27
곽아람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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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토일!
직장인이 매일 가는 곳은 회사뿐 아니라 구내식당도 있다. 매주 월요일 구내식당 메뉴를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놓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업무 메일 체크? 업무 사항 확인?

아니아니, 오늘과 내일, 모레, 글피를 견디려면 당장 즉각적인 기쁨이 필요한데 그건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월급이 아니라 매일 먹는 한끼의 소중한 밥이다.

먹고 살려고 일하지, 뭐 자아실현하려고 일하나?
싶은게 내 솔직한 마음.

그런 면에서 곽아람 작가의 이번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는 직장인에게 아주 적절한 마음을 안겨주는 책이다.

책 제목은 이북식 속담이라고 하는데 직장인이라면 정확한 뜻은 몰라도 늬앙스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알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출근은 꼬박꼬박하는 우리들. 바로 직장인이니까.

구내식당은 단순히 밥만 먹는 곳이라고 보기엔 그 의미가 얇다. 이곳에 가면 얼굴과 이름 모를 다른 직원들도 보이는데 알게모르게 우리는 이곳에 한 조직을 위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소속감은 나를 옭매기도 하지만 단단한 결속력을 주기도 한다.

띵시리즈에서 구내식당을 다룬다고 해서 메뉴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자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구내식당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해, 회사라는 조직에 갖는 마음에 대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확실히 해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 구내식당 요소를 빌려 썼다.

요리에세이보단 직장에세이에 훨씬 가까운. 그래서 출퇴근하는 동안 든든한 부적처럼 가방에 넣어 읽고 다녔다.

오랜만에 얇아도 옹골찬 책을 읽었다.
내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들이여. 이 책을 추천합니다!

(017) … 무엇보다도 이 책을 있게 한 가장 큰 공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 영감의 원천이었던, 회사에 돌리고 싶다. 직장인으로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구내식당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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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책읽기 좋은 계절이다.


매서웠던 겨울이 슬금슬금 지나간 자리에 아직은 낯선 봄이 두리번거리며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계절. 


시작하고, 견디고 살아남아야 하는 3월이기에 이럴 때는 고전문학이다. 


현대소설보다는 고전소설에 더 마음이 가고 유독 그 세계에서 비혼의 몸으로 생존하려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결혼이 아닌 '본인의 삶'을 살아내려 결혼 대신 '자신의 일(노동)'로 존재를 증명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여성이 자신의 능력으로 일을 하며 산다는게 결코 녹록치 않은데 루시 스노우는 독립적인 삶과 경제적인 자립을 해냈다. 


(하지만 결말은... 읭? 스럽다. 그런데 그게 또 고전문학의 맛^^)







여성의 자립이 곧 '고립'이었던 시대에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원했던 릴리 바트의 이야기. 섬세한 심리적인 묘사가 재밌어서 후루룩 읽기 좋은 책이다. 


성공한 여자는 '결혼을 잘한 여자'인 시대에서 어쩐지 자유를 원했던 릴리 바트의 인생은 녹록치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에서도 배운다. 


지금 이 시대에 비혼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을.








 

비혼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날 것으로, 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응원하면서도 그 속의 외로움을 어쩌지 못하는 인생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 소설의 묘미는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의 절망과 희망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











70대 비혼 여성의 삶은 이토록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싶은 캐럴라인.

무능한 남자들은 이 여성을 괴짜로만 보기 바쁘지만 우리는 안다.

이런 여성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원하는 여성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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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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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출생. 86년생 여자. 올해 마흔이 되었고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으며, 직장인 8년 차.


이 한 줄에 담은 나라는 사람에게서 차별이란 단어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싶지만 <여자>, <마흔>, <딩크>라는 단어들이 주는 인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벽이 되기도 한다.


가령, 마흔이 된 여자는 관리직으로 올라가야 할 나이와 더 이상 젊은 감각이 남아 있지 않을 나이에서 애매한 평가를 받는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때론 '왜 아직 아이가 없냐'는 친절한 조언으로, 때론 '애도 없는데 야근 좀 할 수 있지?'같은 당연한 요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를 규정하는 단어들이 나의 능력이나 의지보다 먼저 평가받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 내가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했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어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리천장의 존재를 실감하며 독박 육아의 부담을 감내하고 있으며, 그 차별은 일상 속 폭력과 다름없으니 나는 그 피해자로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답게 나의 예상과 달리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책이다.


나는 피해자 아닌 가해자

"나는 차별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차별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단 점에서 독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꽤 신선하다.


그동안 나는 '차별'이란 단어를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책은 차별이 반드시 악의적인 소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차별을 '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차별 논의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무심코 저질렀던 차별을 되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이 지하철 집회를 열었을 때 가졌던 불편한 시선. 또는 복직한지 얼마 안 된 동료가 다시 육아휴직을 간다고 했을 때 느꼈던 씁쓸함. 같은 여성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기억. 나는 이 사회가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 딩크를 고민한다고 하면서 정작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동료에게 불편한 감정을 품었다. 자연스럽게 느꼈던 이런 감정은 결국 차별의 씨앗을 품은 감정이었고, 내가 바로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음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는 말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라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 속 차별 언어. 정말 나는 몰랐어

작가는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차별을 강화하는지 설명한다. 다른 건 몰라도 독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꼭 알았으면 하는데 그 이유는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구조적으로 배치하고 그 생각과 편견이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확실하고도 결속이 높은 체계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든 예를 보면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은 '정상 가족'과의 구분을 전제하며,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한창 많이 보였던 'MZ 세대'라는 표현도 한 세대를 획일적인 이미지로 묶으며, '꼰대'라는 단어는 연령에 따른 선입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MZ 세대'는 종종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젊은 세대를 단순화하고 고정된 성격을 부여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꼰대'라는 단어도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권위적이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세대 간의 단절을 부추긴다.


이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한 말속에서 차별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으며, 우선 이를 인식하는 것부터 변화의 출발이다.


나에겐 차별, 너에겐 평등

이 책을 청소년기에 읽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한 사고로 내용을 받아들이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차별로 느껴졌던 일이 누군가에겐 공정한 시스템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커서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내가 차별하는 입장에 서 있는 순간이 많더라도 역으로 차별받는 대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저자가 지적한 능력주의적 시각에서의 차별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입사 기준(예: 토익점수)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모순된 감정과 생각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선량한 차별의 경험은 나의 전 직장에서도 있었다. 내가 회사에 들어도고 1년 뒤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업무 능력이 더 특출난 것도 아니었지만 팀장은 남자 직원에게 먼저 진급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그가 남자여서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고려해야 하고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남자는 가장이니 더 많은 책임과 보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불공정하게 들렸지만 그 당시 팀장은 이를 공정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성별에 따른 역할을 고정하고 여성의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로 작용했고 이것이야말로 '차별이 공정으로 포장된' 사례이자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이처럼 차별과 공정은 쉽게 뒤섞이며, 우리는 때때로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곤 한다.

차별은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에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까?'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옷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란 질문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처럼 들린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도 등장하고, 과거에 비해 법적·제도적 차별은 줄었지만 무의식적 편견과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차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변화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차별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다. 차별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질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은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단 나부터 바뀌어야

내게 붙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타이틀을 똑바로 인지하고 이 이름표를 떼기 위해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고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인식하기

작가가 강조하는 것처럼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차별은 일부 악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일상 속 차별적 언어를 점검해 보자.

- 여자가 너무 드세니까 저래

- 남자가 저렇게 소심해서 어디다가 쓰냐?

위와 같은 말들은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또한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사회적 변화들(장애인 이동권 시위, 여성 할당제, 육아휴직 등)의 문제들을 돌아보며 그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행동하기

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반응하는 것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나 다큐멘터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접한다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차별을 간접 체험하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구조적 변화 위해 소리내기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국 사회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영향이 축소된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제도적 차별 개선을 직접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내가 리더급에 있다면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평가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들의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빛을 발하는 일일 테다. 저자도 이를 알기에 당장의 변화를 말하기보다 다양한 판례와 용어를 통해 독자들이 차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이 책이 더더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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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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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김려령 작가님의 이름은 생소해도 <완득이>라고 하면 다 아는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신간 소설 「기술자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장편소설인줄 알았지만 7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었고,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한 문장씩 공을 들여가며 읽는 맛이 있다면, 단편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내가 원할 때 어떤 이야기든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맛이 있는건데 그리 어렵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 풍경의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나의 최애 단편 소설은 「기술자들」 속의 《기술자들》 소설이었다.

제목 그대로 종합설비 기술로 한평생 살아온 최가 가게를 정리하면서 구인용 승합차 한대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날의 노동비로 삶을 재정비하려는 이야기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욕실 누수 문의가 들어와 빌라로 가던 때 조가 다가와 최의 보조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기술자들》 소설은 다른 전체 이야기 중에서 더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도 했고, 내가 늘 부러워하는, 자신만의 능력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노력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감에 있어 맞닥뜨리는 일의 부침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09 공사는 최가 도맡았다. 아직 조의 실력을 몰랐다. 그러나 조가 화장실 입구에 방진용 비닐 막을 칠 때부터 그가 괜히 덤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엇다. 자고로 기초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이 나머지 일도 잘했다. 대형 비닐을 각 잡고 펼쳐 말끔하게 설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조는 혼자서도 잘했다. 장비를 준비하거나 거드는 일도 매끈하게 소화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신속한 보조였다.


전문가가 느끼는 전문가의 '각'
어떤 대화없이 일과 일로 주고 받는 현장에서 대충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본인과 상대 모두 기술자여야만 알 수 있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런 면을 이 책에서는 중심 인물로 중년의 기술자들을 정했고 마치 로드무비를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독특함을 자아낸다.

우연히 합류한 조는 의외로 최에게 큰 도움이 되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냐는 질문에 조는 두루뭉실하게 대답했지만 서로의 역량을 확인한 뒤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길거리 생활을 잘해나간다.


18 조는 최가 세면대를 교체하면서 테두리에 두른 실리콘을 유심히 봤었다. 좋은 솜씨였다. 단시 설치·수리가 주였던 최가 실리콘 작업은 부차적인 일로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맨손의 노상 기술자에게 부차적인 일이란 없었다. 당장의 일이 곧 본업이었다.


조가 만든 조잡한 전단으로 일이 들어오는 걸 보며 최는 처음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 희망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동네에 하나씩 있던 가게에 누구나 드나들며 자신의 집 문제를 상의하러 오는 세상은 저물고 이제는 모든 것이 검색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빚만 빚대로 늘어가는 최의 가게는 몰락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최는 처음 가게를 인수받을 때만 해도 동네에 정 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14)을 꿈꿨지만 변하는 시대를 붙잡는 건 그 어느 기술이 있었더라도 어려웠을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일이 자리를 잡고, 집은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몸이 누울 수 있는 허름한 여관도 달방으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오늘만 같기를 바라는 최의 작고 소박한 행복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재주로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고 나조차도 늘 원하고 원하는 바다. 거기에 믿고 일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현장에서 발휘하는 일의 능력은 더욱 높은 단계를 쌓을 것이다.

김려령 작가님이 보여준 기술자들의 세계는 처음에는 어둡고 외로웠지만 점점 환해지며 삶의 희망이 든든해진다. 한 사람을 만나고(조),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어(황) 불안한 하루만 예측하던 삶이 좀 더 안정적인 삶으로 확장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결국 희망을 보니까.


(출판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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