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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탄생 - 아는 만큼 더 맛있는 우리 밥상 탐방기
박정배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1월
평점 :
음식에 관한 방송이나 책이 즐비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먹방부터 음식의 유래까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식에 관한 책도 주기적으로 보게 된다. 이제 어느 정도 볼 만큼은 보았다고 자부했는데,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깨닫는다.
맛있는 건 먹어 봐야 한다?
No, 이제 맛있는 건 읽어 봐야 한다!
이 책의 띠지에 있는 말에 공감하며 책 속에 푹 빠져드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박정배. 현재 음식평론가와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국내 레스토랑 랭킹 리스트 코릿 선정위원이기도 하다.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3년 동안 <우리땅 우리음식>을 진행했다. KBS <밥상의 전설>, SBS PLUS <중화대반점>, MBC 라디오 <건강한 아침> 등 다수의 방송에 패널로 출연했으며, 현재도 KBS <대식가들>의 고정 패널을 맡고 있다. 팟캐스트 <술주나 안주나>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각종 잡지에 음식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계절의 향기 따라'에서는 장, 육회, 미나리강회, 청포묵, 복달임 음식, 냉면, 콩국수, 은어, 물회, 빙과, 수제비, 깍두기, 냉국수, 추어탕, 전어, 송편, 꼬막, 해장국, 떡만둣국, 메주, 홍어, 막걸리, 명태, 수정과, 과메기 등을 다룬다. 2부 '날마다 기분 따라'에서는 설렁탕과 곰탕, 감자탕, 돼지국밥, 북엇국, 부대찌개, 짜장면, 소갈비, 삼겹살, 치킨, 참게장, 비빔밥, 상추쌈, 고추장, 참기름, 장아찌, 젓갈, 콩나물, 당면, 쥐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는 점을 먼저 꼽을 수 있다. 다룬 소재도 낯설지 않은 데다가 내용도 알차다.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옛 기사와 역사적인 자료가 기반이 되어 읽을 거리가 풍성하다. 눈이 번쩍 뜨이며 감탄하며 읽게 되어서 뿌듯하고 읽은 보람이 있다. 지금껏 음식 관련 책을 읽을 때에는 맛집 위주의 단편적인 정보만 담은 책을 읽거나, 좀더 관심을 갖고 찾아보았을 때에는 전문 서적의 느낌이 들어 난해하고 지루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중간지점을 잘 찾아서 펴낸 듯 하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흔한 식재료에 숨은 역사적인 지식까지 꿰뚫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
읽기만 해도 그 맛이 오롯이 느껴지는 것도 음식 관련 서적을 보는 기쁨이다.
"살이 오르는 미나리로 만든 미나리강회를 초고추장에 꾹 찍어 먹으면 이건 봄을 먹는 겁니다." (22쪽),
"젓갈의 감칠맛과 소금의 짠맛,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설탕의 단맛. 이 모든 맛의 조화가 깍두기에 담겨 있다."(71쪽)
입에서는 이미 군침이 돌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가 된다. 배고플 때 읽으면 안 되는 책이다. 두둑히 밥을 해먹고 다시 책장을 넘긴다.
'게 맛'을 아냐고 물었을 때 꽃게를 떠올린다면 게 맛을 절반만 알고 있는 것이다. 게의 참맛은 민물에서 나는 참게가 최고다. (214쪽)라고 설명하는 '참게장' 글은 신선했다. 해당 선전을 보면서 당연히 꽃게만을 떠올렸고, 생각해보니 민물에서 나는 참게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게장이란 게를 간장에 담가 먹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는 가을 암게의 등딱지 안쪽에 있는 내장을 게장이라고 불렀다는 점, 간장에 숙성된 이 게장은 10년 이상 된 발사믹 식초처럼 진득하고 깊은 맛이 난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참게의 종류와 지역별 특징,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어떤게 취급되었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이렇듯 이 책에는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한식이라고 부르는 음식이 몇 백 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6세기부터 이어 온 수제비의 생명력을 놀랍지 않은가?
젓갈과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인 깍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는가?
이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에 대화 소재가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우울한 상황에서는 이야기를 나눌 다른 소재가 필요한데, 식탁 앞에서 음식 이야기로 화기애애해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는 위에 예로 든 질문 말고도 이야기를 나눌 만한 소재가 풍성하니, 하나만 골라서 풀어나가도 모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어구이를 거의 먹지 않는데, 전어의 일본말인 '고노시로'는 직역하면 '아이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영주가 자신의 딸을 데려가려하자 전어를 관 속에 넣어 태운 뒤 딸이 죽었다고 속인 어부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시체 타는 냄새로 연상할 정도로 전어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같은 재료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95쪽) 등 이 책을 보고 나면 음식 관련 상식이 풍부해질 것이다.
계절별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지식을 채워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음식평론가 박정배가 직접 발로 뛰면서 찾아낸 맛의 기록이다. 단순히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더니 맛있더라는 기록이 아니라, 몇 배의 알찬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며 한국의 식문화와 그 역사, 시대별 지역별 특징,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 변화된 모습 등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 음식을 살펴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기분 좋게 먹은 듯 흡족한 느낌을 건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