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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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림 따로, 음악 따로 책을 읽어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이른바 우리 옛 그림과 옛 소리의 컬래버레이션입니다'라고 표현한다. 옛 그림과 옛 소리가 서로 어떻게 만나서 얼마만큼 잘 어우러지는지 이야기를 풀어낸다기에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 손철주의 책 중 이미《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를 통해 옛 그림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았기에 더욱 기대하며 이 책《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를 펼쳐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손철주. 미술평론가이자 명강사이다. 저서로 그림 속 옛 사람의 본새까지 읽어낸《사람 보는 눈》, 마음씨 곱고 속 깊은 우리 옛 그림 68편을 꼽아 사계절로 나누어 감상하는《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인생길에서 만난 정다운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은《꽃피는 삶에 홀리다》등이 있다. 그중《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전문가들이 뽑은 1990년대 대표적인 책 100선'에 뽑힐 만큼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1998년 초판 발행 이래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림이 소리를 내면 음악이 되고 음악이 붓을 들면 그림이 될 터이니,

둘 사이의 깊은 사귐과 정분을 알게 되면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릴 것이다. (책 속에서)

 

이 책에서는 은일, 아집, 풍류의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음악이 그림 속에 들어와 앉은 양식을 세 가지 소제목으로 나눠 살펴본다. 은일, 즉 숨어 사는 것은 세상과 떨어져서 자신을 감추고 사는 삶 속에서도 세상과 접촉하는 것으로는 누릴 수 없는 열락을 찾아내는 것인데, 은일이 외롭지 않은 까닭은 음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아집, 은일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커뮤니티인 '아집'을 통해 격조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은 풍류, 멋스럽고 풍치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짓을 일컫는데, 때로는 음악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니, 이 세 가지 주제가 어떻게 녹아들어있을지 본문을 통해 들어본다.

 

이 책은 저자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이 책은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저자는 미술과 음악을 배우는 한 모임 덕분이라고 감사하는 말에서 밝힌다. 2015년 여름 두 달 동안 재계 CEO와 함께 옛 그림과 옛 음악을 공부하고 감상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국악은 황준연 서울대 교수가 맡고 그림은 저자가 맡아 연이어 강의하면서 연주를 곁들였다고 한다. 옛 그림과 옛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야깃속으로 흥미롭게 빠져든다. 옛 그림에 대한 책을 여럿 접하다보니 살짝 그 패턴에 익숙해져있었는데, 음악을 곁들이니 새로운 요리를 먹는 양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직접 강의를 듣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매력이다. 강의 덕분에 엮인 책이어서 당연히 강의 분위기를 느낀다. 물론 강의를 직접 듣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 및 청중이 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책으로 접해도 직접 그림을 짚어주며 이야기를 펼쳐주고, 옛 시나 음악에 관해 짚어주면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다. 옛 그림과 옛 음악을 흥미롭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는 "우리 것이 왜 좋으냐? 왜 우리 가락이 좋고, 우리 소리가 좋고, 우리 그림이 좋고… 왜 좋으냐?"라고 물으면, 다산 선생의 시 한 수로 답하겠다고 한다.

백가지 꽃을 꺾어다 봤지만

우리집의 꽃보다 못하더라

꽃의 품종이 달라서가 아니라

우리집에 있는 꽃이라서 그렇다네 (다산)

저자는 학술적으로 치장된 설보다 이 시 한 수가 설명 없이 그냥 바로 와닿았다고 한다. 나또한 그동안 우리 옛 그림에 관한 책을 읽으며 왜 내가 이런 작품들을 찾아 읽고 알고 싶은 것일까 규정짓지 못하는 질문이 있었다. 그동안 어떤 다른 이유를 대도 마음까지 와닿지 않았는데, 이 시가 내 마음에 와닿는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우리 것을 찾아보는 데에 다른 이유는 필요없을 것 같다.

 

현장감 있고 생동감 있는 책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가 강의를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알고 나니 남다르게 생각된다. 옛 그림에 관한 책 중 읽을 만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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