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의 제국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16. 2. 26. 금. `빛의 제국` - 김영하 장편소설 / 26
... 그러나 처음 맞닥뜨린 자본주의적 권태에는 무게와 질량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짓누르고 질식시키는 유독 가스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겼다. 가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아,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원초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p.87
...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 p.315
이 책을 읽고 그리고 어제 햄릿을 보며.
인간의 삶은 결국 자신의 역할에 몰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오가는 가운데 가끔 그 경계에 서서 자족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역할이란 것 대부분이 내 의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고 난 비교적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나 계획하고 결정하는 가운데...
어찌되었든 삶이라는 무대 위에 올랐으니 막이 올라있는 동안 나름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몰입하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역할 자체가 되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그 말처럼 내 생각은 몰입한 역할의 그것으로 익어가게 되고.
그렇기에 몰입은 평온하고 순조롭다. 그리고 황홀하다.
하지만 그러나 몰입은 침잠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채 점점 깊숙히 내려앉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한다. 역할에 대한 고착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 역할에 몰입할 수 없어서 혹은 어떤 외부의 이유에 의하여 내가 무대 밖으로 내려섰을 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인가.
내가 해야만 하는 그리고 하기로 한 역할들에 몰입할 수 없는 순간 순간 우리는 이방인이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스스로를 어리석고 답답한 존재로 여기며 상심하고 또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빛의 제국`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며 어두운 마음과 세상 속으로 침잠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난... 내가 몰입하며 하루 하루 걷고 있는 이 삶 역시 그들이 향하던 그 어둠 속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