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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나의 독서습관은 편향적이다. 문학, 그 중에서도 클래식이라 일컫는 해외고전문학을 선호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유명한 현대문학 작품들은 십중팔구 나의 관심 밖에 존재한다. 특히 국내현대문학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적막한 상태이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내 독서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 김숨의 『물』을 읽고 내가 놓친 훌륭한 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주된 인물은 '소금'이다. 소금은 '물(어머니)'과 '불(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금에게는 '금'과 '공기'라는 여동생들이 있다. 가족 구성원은 물, 불, 소금, 금, 공기로 이뤄져있다. 소금은 '혀(남편)'와 이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우연찮게도 소금이 집에 돌아온 날, '수족관'이 나보다 한발 앞서 먼저 들어왔다. 그다음으로 금, 공기, 불이 차례차례 집으로 모여들었다. 소금의 집은 불이 홀로 삼백만 톤의 물을 쫓아내고 저수지를 메워서 '이룩된' 결과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을 펑펑 쏟아내던 수도꼭지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섯 명의 구성원은 심각한 물 부족 상태를 물, 불, 소금, 금, 공기의 각자 특성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사연을 끄집어낸다.
『물』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소금과 물의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소금은 물의 사랑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물은 이런 소금을 야속하게 밀어낼 뿐이다. 그리고 물은 십오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동생 금을 안아준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모자라 물의 사랑까지 빼앗은 금에게 소금은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금에 대한 소금의 질투는 너무도 오래된 것이다.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도 방금 생성된 싱싱한 것 마냥 질투는 소금을 자각하게 한다. 그럼 물은 왜 소금을 밀어냈던 것일까? 금은 물속에서도 원래 모습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물속에서 소금은 상황이 달라진다. 물이 소금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소금은 녹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소금이 아니게 된다. 물은 자신의 딸이 물이기를 바라지만 한편에는 딸의 본디 모습을 유지하길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수족관에 들어가 점점 침잠되어가는 상태에서도 물은 잠시 깨어나 소금에게 소금 섬의 위치를 알려준다. 소금이 지금보다 완벽한 소금이 되길 바라면서. 결국 물은 금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소금에게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이 '이룩한' 집과 삼백만 톤의 물은 참 독특한 소재였다. 삼백만 톤의 물은 불에 의해서 안식처를 잃고 자취를 감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이들의 집이 생겼다. 삼백만 톤의 물은 이들에게 복수를 단행한다. 집안의 모든 물을 말라버리게 하는 것으로 복수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일시에 많은 물을 집으로 흘러 보내 그들의 공간을 엉망으로 만든다. 또한 집 주변에 늪지대를 형성해서 그들을 철저하게 현실과 고립시킨다. 삼백만 톤의 물은 결말까지 복수를 행하고 이들의 복수는 현재진행형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복수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제목이 '물'인만큼 나는 호기심의 갈증에 시달리면서 작품을 읽어나갔다. 어떤 식으로 사건이 이어지는지, 가족구성원 욕망의 형태가 어떤 모양인지, 나는 궁금증이 심하게 발동되었고 해답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작가 김숨은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 독자의 호기심을 구현한다. 힘을 잔뜩 뺀 작가의 문체는 오히려 역으로 독자가 잔뜩 힘을 실어 긴장하게 만든다. 『물』을 읽으면서 생성된 긴장감은 내게 매력적이며 기분 좋은 것으로 다가왔다. 이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김숨의 『물』에 빠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