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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평점 :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읽고 나누는 책이다. 오늘 후기의 키워드는 ‘함께’가 아닌가 한다. 사실 나도 혼자가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같이 한다는 것은 많은 번거로움을 동반하고 양보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인 작가는 책 전반에 걸처 ‘연민, 공동체 정신, 인간애’라는 3가지 핵심 단어를 아주 많이 반복하고 있다. 함께 하지 않으면 미연에 방지하기도, 발생 후 치료도 어렵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요즘 우리는 ‘공공 선’이라는 개념에도 많이 고무되지 않으며 정신건강의 개념이 과소평가되고 정서지능 수준이 매우 낮다고 시작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유되는 트라우마(trauma)는,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듯, 가면를 쓰고 조용하고 음흉하게 환자를 위협한다. 둘다 고립을 유발하지만 바이러스는 백신이 나올 때 까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활동을 줄이면 되지만, 트라우마는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게 하기에 오히려 우리 각자가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생활해야 물리 칠 수 있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은 죽음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이지만 실제는 동료에 의한 강간이며, 간경변도 사실은 어린 시절 중독 부모에 의한 학대임이 알려지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에 의하면,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는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리게 한다. 인간의 수많은 인식, 믿음, 그리고 행동이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그런 기둥 역할을 하는 종교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학대자와 동거하고 부정적인 자기와 대화를 하는 트라우마의 궁극적 목적은 사전에 저지하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수면 아래에서 무섭게 활동하게 하는, 두려움, 수치심, 편견 및 내면의 줄다리기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교육과 보호책이 미리 개입해야 한다고 한다.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습관, 점진적인 근육 긴장 완화 요법, 개인의 글쓰기 연습과 신뢰할 만한 사람과의 공유, 스스로에게 좋은 아군되기 등의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개방적인 돌봄의 환경에서 자양분을 얻도록 우리가 다같이 함께 노력해야함을 아주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즉, 누군가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사는 곳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전 세계적 대의를 옹호하는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 이런 삶을 위해 우리에게 연민, 공동체 정신, 인간애가 필요하다. 또한 구체적으로 온정어린 사회를 만드는 5대 요소( 역사, 종교, 과학과 의사, 삶의 경험, 조기교육)를 포함시킬 것도 제시한다.
저자는 그 누구보다 환자들과의 소통과 치유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의료 시스템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환자의 치료가 우선시되지 못하고, 경비 최소화, 시간 절감 및 되도록 많은 환자 진료를 보게 하며 의사들을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리게 하는 의료업계의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의료 분야는 내부 규정과 지침을 앞세우는 최악의 범죄집단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있고 그 정도와 깊이가 다를 뿐이다. 저자는 동생의 자살을 미리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사는 동안 치러야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후에 찾아든 수치심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았다. 나 역시 올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상처가 있다. 작년 일중독으로 살면서 지치고 힘들어 2번 밖에 시골에 내려가지 못했고, 임종 직전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조금 좋아지셨다고 하기도 했고 다음 날 맡은 큰 업무 때문에 바로 내려가지 못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과거 작은 상처들도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쉬며 가끔씩 열등의식과 자괴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나는 트라우마의 무서운 마력을 알지만 프로이드 이래 과거의 상처에서 원인을 찾는 트라우마를 많이 신뢰하고 싶지 않다. 과거는 고칠 수가 없고 상기될 수록 눈물만 연상시킨다. 그래서 목적과 용기의 심리학인 애들러의 심리학을 더 신뢰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트라우마는 치료가 힘들고 손끝에서 바로 나오는 답이 아니라서 미연에 저지하기 위해 공동체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애들러의 심리학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목적을 두기에 고칠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선에 대한 믿음과 남을 돕는데 헌신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했다. 각자의 서로 다른 고군분투와 공공 선에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함께’가 있어야 바이러스 같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