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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평점 :
현실에 순응하느라 천성에 맞지 않은 회계를 전공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이끄는 건 여전히 글이 전부라 늦게나마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저자는 무수한 감정, 무한한 상상, 그리고 영원한 꿈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답니다. 가족 이름의 '하', 글 '서', 고양이 이름의 '루', 또 하나는 눈물 '루'와 출하하는 글' 하서'라는 뜻을 가진 필명 루하서가 쓴 <밤이슬 수집사, 묘연>을 보겠습니다.
주인공 문이안은 생활력 없이 착하기만 한 엄마가 병으로 죽고 난 후 자신도 자살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리고 나를 오랫동안 찾아다녔다며 할아버지 문현남이 나타납니다. 돈이 필요하면 3일 안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명함을 건네고 사라집니다. 엄마가 죽기 전 할아버지를 찾으라는 유언을 따라 전화를 하자 할아버지는 석 달만 자신을 대신해서 집사가 되는 조건으로 30억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대저택 미다스를 알려줍니다. 미다스 주인은 낮엔 고양이로, 밤엔 사람으로 변하는 수집사 묘연으로, 그녀와 함께 죽기 직전 자신도 모르게 흘리게 되는 후회의 눈물인 '이슬'을 얻어 오는 것이 이곳 집사의 일이랍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아무나 올 수 없고 이곳에 올 수 있는 자격은 쉽게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들 중에 저승의 문을 넘지 않고 집사 심사를 받은 자만이 가능하지만 이안은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 채용이 되었습니다.
이안은 묘연과 '밤이슬 집사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안의 첫 번째 루인(눈물을 흘리는 사람)인 29살 자살 예정인 반미나를 만나러 갑니다. 그녀가 죽을 장소는 느티나무 언덕이었고, 묘연과 이안은 보이지 않는 투명 캡슐에 가려져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루인은 묘연과 이안의 목소리와 모습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자살의 경우 집사가 죽음에 관여하지 못하는 건 루인이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을 내리기 전까지입니다. 루인이 마음을 돌려서 다시 살아가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면 수집사 묘연에게 특별한 신호가 느껴지고, 목숨을 앗아가는 도구나 그 어떤 것이라도 제거할 수 있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그때 집사 이안이 루인의 눈물이 이슬이 되어 눈에서 떨어지게 되면 자동으로 흡수가 되는 투명 호리병을 품에 넣고 반미나 앞에 나타납니다. 루인이 집사에게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루인의 주변 사람으로 모습이 변한 채 이안은 나섭니다.
루인이 흘리는 이슬은 생명의 씨앗이 됩니다. 대저택 미다스의 진열장이 적정한 온도를 잘 유지해 주면 그 안에서 이슬이 서서히 변하게 되고 생명의 씨앗이 싹틉니다. 싹이 튼 씨앗들은 탄생소로 갑니다. 만일 삶과 죽음을 모두 다 집사들이 직접 다스릴 수 있다면 힘들게 이슬을 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이슬을 모아서 사라지는 생명을 줄이고, 태어나는 생명을 늘리게 돕는 것입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경계에서 집사들이 구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루인 사고사 예정인 한주군 씨, 세 번째 루인 병사 예정인 임찬원 씨, 네 번째 루인 사고사 예정인 이준호 군, 다섯 번째 루인 사고사 예정인 우재훈 씨, 마지막 여섯 번째 루인 박태순 씨의 이야기와 운전기사 유재석, 이안의 할아버지와 묘연의 이야기는 <밤이슬 수집사, 묘연>에서 확인하세요.
매일 아침, 따스한 햇살에 눈을 뜨고, 온전히 숨을 쉬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어쩌면 우리는 귀중한 삶의 의미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p. 171)
요즘처럼 책의 이 말이 공감 가는 적이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묻지마 범죄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일어나고, 교통사고도 줄어들지 않으며, 군인들의 사고사도 많이 일어납니다. 나이가 들어 죽거나, 병이 들어 아파서 죽게 되면 본인도, 주변인들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본인과 가족들, 주변인들에게 닥치는 일인지라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닥치게 될 뿐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자신의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고,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을 건데 말입니다. 그런 애통의 순간에 누군가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들도 이승에 한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환상적인 존재를 <밤이슬 수집사, 묘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죽기 직전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 그 눈물인 이슬을 수집하는 집사들의 이야기입니다. 특별 채용된 문이안 집사와 수집사 묘연은 루인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특별한 인연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사자,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정해 주는 천수 신선의 존재는 익숙하지만 특별했습니다. 삶이든, 죽음이든, 그것을 대하는 우리는 모두 다 간절하듯 루인들의 사연에 감동받으며 마지막까지 읽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 더욱 그다음 이야기가 또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책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