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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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이 그들의 유일하고 확실한 보상이다

 

 

더위를 먹었는지, 아니면 연속으로 읽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뒤늦게 출간되었으면서도 스토리 전개 상 가장 앞선 순서인 0권 먼저 읽은 탓이 크다. 당연하게도 0권을 1권으로 착각하고 바로 2권으로 건너뛰었더니 구리하라와 하루나가 겨울등산을 하고 있어서 좀 생뚱맞게 느껴진 것이다.

 

 

더군다나 0권 말미에서 조난자를 구조한 후, 구리하라가 신경 쓰인다며 온타케소로 돌아가던 하루나의 모습으로 끝났었는데 여기서는 이미 구라하라가 혼조병원에서 근무한지 5년이 흐른 데다, 하루나와 구리하라는 결혼까지 한 뒤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짱이란 별명답게 미어터지는 환자로 인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구리하라와 그이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하루나 부부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극적인 장치 없이도 이 소설을 묵묵히 이끌고 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마도 하루나라고 해야겠지. 자신의 일인 산악 사진촬영에도 열심일 뿐만 아니라 남편의 기분이 처지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밝고 다정한 이 여인을 글로서 접하는데도 마치 책속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마냥 마음이 힐링된다. 정말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어질고 현명하여 이상적인 아내상이라는.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라는 부제대로 대학친구인 다쓰야가 혼조병원에 부임해서 참 반갑더라. 도쿄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여기로 왔으며 왜 야간이나 주말에는 비상호출에 안 응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렇게 무책임한 친구가 아닐 건데 자꾸 안 좋은 소문들이 떠도니까 독자인 나조차도 조마조마했다. 알고 보니 그런 사연이.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개인의 자유와 행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딜레마는 분명 쉽게 결정내릴 수 없게 한다.

 

 

선한 양심이 그들에겐 유일하고 확실한 보상이다, 라고 자위하는 동안 의사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서라도 환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쉽게 강요할 수 있을까?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 의사도 사람인데 최소한 사람답게 살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 의료환경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애달픈 사연을 접하노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온전한 육신으로 치유해주고 싶은 열정이 꿈틀되지 않던가. 지금 이순간의 고통과 힘든 여정을 잊고 싶게끔. 떠난 자와 남은 자,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의 연이 작별을 고할 때 숭고한 슬픔이 가슴을 저민다. 이제 순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1권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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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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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전제가 부질없는 상상의 부산물이라며 굳이 냉소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흔히 대체 역사소설이라고 말할 때 과거에 있었던 특정 중요사건의 결말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르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데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이 승리했다거나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승리했다는 경우가 흔히 거론되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 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은 어떤 역사적 팩트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꾸며낸 이야기인가? 그것은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놀랍기도 하고 충분히 흥미로운 발상이 아닐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영국이 자신들의 암호를 해독해냈단 사실을 깨닫고 즉시 암호를 바꾼다.

 

 

암호를 성공적으로 변경한 덕택에 봉쇄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고 영국은 이내 항복하게 된다. 처칠 내각은 캐나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고무된 독일은 소련마저 굴복시켰으며,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자 V3로켓을 미국에 발사하여 니들이 우릴 건드리면 맞보복 하겠다고 엄포한 것이다. 결국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게 된 독일의 총통 히틀러는 유럽의 절대지배자로 등극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으로 우뚝 선 독일제국의 총통 히틀러의 75세 생일을 맞이하여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독일 방문을 앞둔 1964년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미국과 승전국 독일의 냉전시대, 미국이 독일에 저항하는 소련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던 시절이자 미독 정상회담 개최가 코앞이던 그 무렵, 베를린 하벨 호숫가에서 폴란드 총독부 장관을 지냈던 요제프 뵐러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독일 사법경찰 크리스포의 친위소령인 크사비어 마르크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데 그는 전직 U보트 승조원 출신에 현재는 이혼남이다. 단순 자살처럼 보였던 이 죽음에 의혹을 느낀 마르크가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자 게슈타포로부터 손을 떼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그럴 수 없다며 독자수사에 더욱 몰두하던 마르크는 희생자와 친분이 있던 전직 나치고관들이 줄줄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와중에 또 다른 희생자의 시신을 발견한 미국 여기자 샬럿 맥과이어를 만나 함께 진실에 다가설수록 어떤 정치적 음모에 의한 살해위협에 시달리게 되는데... 무엇이 진실을 은폐하려 하는가를 파헤칠 때 그 배후가 어마 무시했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어떤 사건들은 실존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렇게도 절묘하게 가상의 역사를 꾸며낼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실로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음모의 배후세력들이 덮으려 했던 추악한 진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인륜적 행태가 역사의 흐름이 달라졌을 때 어떻게 본질이 달라지느냐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용서받지 못할 범죄도 승자의 관점이 되면 떳떳하지 못해서 두려운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때문에 진실을 세상에 밝히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숨 막히는 진실게임과 추적은 제대로 된 서스펜스의 품격을 보여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이 소설은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한 개인의 자유의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원래부터 마르크는 나치당에 입당하지도 않고 체제에 냉소적이기도 하거니와 직무에 충실한 형사로서 당국에 찍혀 승진이 되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는 남자이다. 그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지만 샬럿과 함께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직면하고부터 묵묵히 순응하며 살아있던 체제에 대한 반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비로소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압제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동시에 싹트는 것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역사와 대체 역사를 비교하는 재미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따라 투쟁하는 주인공의 가치에 현실감을 불어넣으면서 교훈도 함께 전달하는 대체 역사 스릴러의 클래식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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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여가 1
명효계 지음, 손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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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 열화(烈火)가 있다면 저승에는 암하(暗河)가 있다.”

 

무림 최고 문파로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열화산장이 있다. 열화산장의 장주 열명경의 외동딸 열여가는 산장의 수제자이면서 차기장주가 유력한 전풍과 어려서부터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어느 날부터 전풍이 갑자기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영원히 지켜주겠노라 맹세했던 남자의 돌변에 이유를 알 수 없어 속 태우던 여가는 최고의 기루인 품화루에서 시녀로 입사하면서 기녀들로부터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을 전수 받고자 한다.

 

 

그때 품화루 미인 랭킹 1위를 달리던 절대 미인 은설(남자에게 미인이라고 하다니 읽으면서 기분이 묘했다.)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여가를 지목하고선 첫눈에 반했다면서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들이민다. , 뭐래, 됐거든. 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구. 더 이상 배울 게 없음에 환멸을 느껴 산장으로 돌아가자 거기까지 졸래졸래 따라오는 이 절대 미인을 어떡해.

 

 

우선 열여가, 이 낭자는 성격이 발랄하고 정 많은 만큼 여리기도 해서 사랑했던 전풍이 모멸 차게 자신을 대하는 것에 받은 상처가 크다. 자세한 속사정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전풍이 왜 그리 여가에게 못되게 구는지 대략적인 짐작은 했다. 그녀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사랑하는 여자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하고 일부러 돌변해버린 게 안타깝더라는, 그냥 우리 서로 사랑해주세요가 안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실연에 깨진 뚝배기 마냥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을 여가가 아니지. 용수철처럼 씩씩하게 반등하는 모습이 그녀답지.

 

 

전풍을 마음에서 깡그리 정리하고 나서 여가의 큐피트 화살을 다시 맞게 될 행운의 주인공은 사형인 옥자한이다. 나중에 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지만 그러면 뭐하누. 귀가 안 들리고 다리까지 못 쓰는 신체상 불편함만 아니었다면 벌써 그가 정혼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늘 여가 옆에서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지켜주었던 그였기에 전풍이 떠난 그 자리를 훌륭히 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한 독자가 은근 많은 듯하다.

 

 

그러나 나의 팬심은 오로지 절대미인 은설에게만 향한다. 옥자한 사형에 대한 마음이 연민에서 사랑으로 변한 여가 옆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면서(칭얼대는 것 같기도) 여가가 힘들 때 마다 큰 힘을 빌려주던 은설에게 친근감과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솟더란 말이지. 게다가 드라마랑 원작소설이랑 주인공들의 성격이 판이하단 것도 살짝 알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서 여가는 우유부단해서 좀 답답하다던데 여기서는 털털, 은설은 여기선 능글능글, 드라마에서는 감성적이라더군.

 

 

솔직히 절대 지존인 열하산장과 라이벌 관계인 암하궁의 세력다툼과 음모가 무협소설이란 무늬를 덮어쓰고 있기는 하나 정통무협소설에 비견하기엔 파괴력이랄까, 지분이 미약한 게 사실이라 그 점에 대해서는 큰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다. 대신에 전풍이 변심한 진짜 이유를 2권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이 소설은 판타지 로맨스로 정의 내려야 한다. 가장 감정이입하게 만들며 응원해주고 싶은 은설의 일방적인 짝사랑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여가의 무심함으로 인하여 내내 쓸쓸하다 끝내는 슬프다.

 

 

그러고 보니 옥자한이랑 여가랑도 잘 되었으면 싶기도 한데... 그러자면 가엾은 은설은 어쩌라구. 흑흑. 진짜 이대로 끝나는 거냐고. 안 돼, 은설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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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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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표지가 참 화사하다. 그러나 내용은 더 믿음을 배신하고 만다. 당연히 이러저러 하겠지 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되는 각 이야기는 모두 서로 다른 장르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의 결말로 마무리 되는 구성에 어리둥절하며 읽다가도 그것이 나름의 묘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한 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 침대와 냉장고를 비롯해서 최소한의 형식만을 구비한 채 사람이 기거한다는 그 특유의 구조를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구경한 적도 없다. 다만, 수년 전, 모 지역에서 근무할 때 우리 조직에서는 처음으로 인턴사원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2개월 마다 특정 지역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시스템이어서 우리 지역에도 인턴사원들이 배정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정식사원이 아니었가에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가 않았다.

 

그 아이들이 2개월마다 옮겨 다녀야했기에 숙박해결이 문제였고 모텔은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부득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고시원처럼 공용세탁, 밥 제공, 공용화장실 이야기는 들어서 친숙하기도 하다. 낯설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공문고시원의 간판에서 ‘o’이 떨어져 나가 고문고시원이 되었다는 우스개 소리는 무시하더라도 몇 차례의 사건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끈질기게 재건축 과정을 거쳐 현재의 고시원으로 살아남았단 자체가 으스스하다. 맘 편히 눈을 감고 잠들 수가 있을까? 아무리 싸다해도.

 

그래서 이제는 철거될 날만 기다리는 시점에 당도했을 때 여기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구나 했다. 아직 남아있는 여덟 명. 초능력자인 외노자, 취업경쟁을 무림강호의 세계로 판타지화한 무술 유단자, 살인청부자 소녀 등 별별 개인기를 갖춘 재야의 고수들이 여기에 숨어 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중에서도 취업 무림 패도기가 가장 재미지다. 고시생을 배경으로 하기엔 가장 적합한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협객이 되어 사파의 악인을 무공으로 처단하여 강호를 평정한다는 판타지에 한창 빠졌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무지 푸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지.

 

마치 무공초식 이름 같던 취업 면접기는 그럴싸하고, 강호 무림의 의리가 땅에 떨어져서 혼탁한 세상이 되었음을 이처럼 비유적절하게 묘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나름의 재미를 만끽하며 차례차례 각 단편들을 돌파해 나가면 초반부터 내내 신경 쓰이게 만들던 보이지 않던 어둠의 위협에 맞서 모두가 힘을 합쳐 싸운다는 설정에서는 액션, 스릴러,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가 한데 섞여 대폭발을 일으켜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전건우 작가가 후기에서 부산출신임을 알려줄 때 일단 반가웠고 본인의 고시원 경험담을 되살려 소설 소재로 삼고자 했음에 세계관의 확장은 또 호의적인 점수를 줄만하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해도 여전히 세상은 절망적이어서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는 음모론만큼은 또 맘에 들었다. 희망은 없다. 어둠은 싹을 틔워 마수를 뻗치고 우린 피를 계속 흘려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자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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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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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작년 5월 광주를 방문했을 때 도선우 작가님으로부터 권여선 작가에 대한 인상이랄까 평판을 전해 들었을 게다. <안녕 주정뱅이>를 읽다보면 술 생각이 간절해진다는 입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실제 이야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만나보니 진짜로 술 좋아하고 엄청 잘 마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로서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비주류라 그랬을 듯.

 

 

막상 이 소설을 다 읽고 말미의 해설 편을 읽게 되면 그 해설의 난해함에 거의 환장해 버릴 지경이 된다. 이건 뭐 술 마시고 취하는 게 아니라 글에 질식당하다 어지럽고 빙빙 돌게 되는데 다행히 일곱 편의 단편 중 네 편 정도는 뭔가 훅 치고 들어오더라는. 맞은 것처럼 가슴이 얼얼하군.

 

 

먼저 봄밤은 요양원에 같이 입원 중인 수환, 영경 부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환은 친구와철공소를 운영하다가 홀라당 말아먹고, 도망 간 친구의 책임전가로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관절염만 키웠다. 그러다 친구 결혼식 뒤풀이에서 술고래인 영미를 만나 취한 그녀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 준 일을 계기로 둘은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병고와 생활고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서 나중에 모든 걸 정리한 후 요양원에 둘이 들어간 것이다.

 

 

수환의 증세는 점차 심해졌으나 그와 별개로 영경의 알콜중독도 심해져서 남편만 병실에 둔 채, 외박을 끊어 금지된 음주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려 애쓰다 그 줄이 끊어지면 비로소 촛불의 심지에 더 이상 불이 타오르지 않게 된다. 누구나 그녀의 무정함에 욕하다가도 술이 아니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란 안타까움, 동정과 연민이 한데 뒤섞여 쓸쓸했다.

 

 

카메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2년 전 관주와 문정은 잠시 사귄 적이 있었는데 관주로부터 연락이 없으면서 자연스레 이별했던 연인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관주의 누나인 관희를 우연히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 관희가 술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한다. 문정은 차마 거절 못하고 그렇게 술을 함께 마시다가 좀 혀가 꼬인 듯한 그녀에게 묻어두었던 관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카메라 이야기가 대뜸 나온다. 그러고 보니 카메라를 배우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던 적 있었는데 그때 자신에게 가르쳐주겠다고 했었지

 

 

! 카메라에 얽인 사연에는 인력으로 어찌 막을 방도가 없는 불가사의한 불행이 있었다. 몰랐던, 그래서 둘은 이별할 수밖에 없었구나. 수환과 영경 부부처럼 관주와 문정 또한 불행이극단적으로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면 누구나 그랬듯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관계이자, 삶이된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이여, 어떡하든 묵묵하게 견뎌내며 살아남으라, 술기운을 빌린 취중진담에 가슴 먹먹함이 남는다. 그래서 주()류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타당한 표현이다.

 

 

그래도 어느 대목이더라, 커피 잔에 소주를 부어 마셨던가?? 그렇게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다. 다만 어제는 술을 조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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