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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사슬 ㅣ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네 놈이 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난 너보다 더 거친 사람이다. 그리고 너보다 잔인한 사람이다. 넌 지금 내가 아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난 네가 지금까지 꿔왔던 어떤 악몽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다. 내 말을 믿겠나?"
한적한 네브래스카의 한 시골마을에 들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방랑자 잭 리처는 술에 취해 환자의 호출을 거절하는 의사를 만나 그를 반강제적으로 차에 태워 환자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의사가 치료한 환자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코피가 멈추지 않던 던컨 일가의 며느리 일리노어였고 이에 열받은 리처는 남편 세스 던컨을 찾아가 응분의 주먹을 먹입니다. 단순히 가정폭력에 개입했을 뿐인 것 처럼 보였던 이 행동은 던컨 일가의 대장인 세스의 아버지와 삼촌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곧 바로 수하들에 의한 보복과 맞닥뜨립니다.
하지만 던컨 일가의 보복에 힘으로 제압하는 리처의 무력시위에 위기감을 느낀 던컨 일가는 리처를 제거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리처는 리처대로 이 마을은 던컨 일가가 농산물 운송사업의 장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을 통제하고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25년전 마을에서 어린 소녀의 실종사건이 있었고 모두 던컨 일가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의심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미제에 빠져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음을 추가로 알게 됩니다. 던컨 일가에서 감지되는 악의 기운과 그들에게 굴종당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소녀의 실종에 얽힌 미스터리가 교차하면서 리처는 정면돌파하여 악을 처단하고자 던컨 일가에 맞서 대적하게 됩니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된 잭 리처 시리즈의 신간 <악의 사슬>은 전작 <하드웨이>에서 쓴 맛을 안겼던 표지의 실패의 만회를 염두에 둔 탓인지 시리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미지(개인적으로)의 표지로 탄생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제목부터가 작가명대신 캐릭터를 내세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왔더군요. 덕분에 구매욕구의 충동이 생기면서 한동안 멀리했던 잭 리처 시리즈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잭 리처는 소속이 없고 독립적이어서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떠돌이지만 찰나의 호기심과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투철하고 확고한 신념때문에 항상 위험한 상황에 빠져듭니다. 옳은 것을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늘에 놓여있는 약자들의 고충을 대변하고 불의를 앞세운 강자에게는 철저히 힘으로 응징하는 인물이죠. 그렇지만 그를 다시 만난 텀이 길었던 탓인지 리처의 대응방식도 많이 냉혹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같으면 이 정도에서 손 봐주고 끝을 냈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어이 총알을 박아 넣습니다. 인정 사정 봐주지 않고 손속이 잔인해진 면도 있는데 그만큼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오히려 악의 세력들은 자신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내분 덕에 먹이사슬이 꼬이면서 리처의 수고를 덜어주는 어리석음도 보여줍니다. 옳고 그른 일에 관해서는 한 치의 균열도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의에 관해서는 의리나 원칙같은 것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뒷통수를 치려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탓에 사슬은 느슨해지면서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그 빈틈은 확실히 호재였습니다. 그리고 심리 스릴러가 아닌 액션 스릴러 계통이기에 글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역동성의 쾌감은 여전합니다. 더불어 25년전 실종된 소녀에 얽힌 미스터리를 해결하면서 전달되는 안타까운 진실에서 비롯되는 아픔 또한 악을 철저히 짓밣고 응징해야할 절대적 명분을 쌓아 올리는데에 성공했다고도 보여집니다. 던컨 일가에 대한 처단은 결말이 예상가능하지만 "그래, 그렇게 끝을 내야하는거라구" 라며 주먹을 불끈 쥐게 하지요.
그런데 <하드웨이>와 함께 지난 달 개봉한 <잭 리처>의 후속영화로 <악의 사슬>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잭 리처>의 원작인 <원 샷>보다 영화화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가 가는 곳마다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내려쬐는 따뜻한 봄이 있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인 것 같습니다. 잭 리처는 자주 만나기보다 한번씩 읽어주면 깊이는 없지만 시원시원 맛에 다시 찾게되는 그런 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