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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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표지가 참 화사하다. 그러나 내용은 더 믿음을 배신하고 만다. 당연히 이러저러 하겠지 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되는 각 이야기는 모두 서로 다른 장르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의 결말로 마무리 되는 구성에 어리둥절하며 읽다가도 그것이 나름의 묘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한 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 침대와 냉장고를 비롯해서 최소한의 형식만을 구비한 채 사람이 기거한다는 그 특유의 구조를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구경한 적도 없다. 다만, 수년 전, 모 지역에서 근무할 때 우리 조직에서는 처음으로 인턴사원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2개월 마다 특정 지역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시스템이어서 우리 지역에도 인턴사원들이 배정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정식사원이 아니었가에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가 않았다.

 

그 아이들이 2개월마다 옮겨 다녀야했기에 숙박해결이 문제였고 모텔은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부득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고시원처럼 공용세탁, 밥 제공, 공용화장실 이야기는 들어서 친숙하기도 하다. 낯설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공문고시원의 간판에서 ‘o’이 떨어져 나가 고문고시원이 되었다는 우스개 소리는 무시하더라도 몇 차례의 사건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끈질기게 재건축 과정을 거쳐 현재의 고시원으로 살아남았단 자체가 으스스하다. 맘 편히 눈을 감고 잠들 수가 있을까? 아무리 싸다해도.

 

그래서 이제는 철거될 날만 기다리는 시점에 당도했을 때 여기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구나 했다. 아직 남아있는 여덟 명. 초능력자인 외노자, 취업경쟁을 무림강호의 세계로 판타지화한 무술 유단자, 살인청부자 소녀 등 별별 개인기를 갖춘 재야의 고수들이 여기에 숨어 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중에서도 취업 무림 패도기가 가장 재미지다. 고시생을 배경으로 하기엔 가장 적합한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협객이 되어 사파의 악인을 무공으로 처단하여 강호를 평정한다는 판타지에 한창 빠졌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무지 푸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지.

 

마치 무공초식 이름 같던 취업 면접기는 그럴싸하고, 강호 무림의 의리가 땅에 떨어져서 혼탁한 세상이 되었음을 이처럼 비유적절하게 묘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나름의 재미를 만끽하며 차례차례 각 단편들을 돌파해 나가면 초반부터 내내 신경 쓰이게 만들던 보이지 않던 어둠의 위협에 맞서 모두가 힘을 합쳐 싸운다는 설정에서는 액션, 스릴러,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가 한데 섞여 대폭발을 일으켜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전건우 작가가 후기에서 부산출신임을 알려줄 때 일단 반가웠고 본인의 고시원 경험담을 되살려 소설 소재로 삼고자 했음에 세계관의 확장은 또 호의적인 점수를 줄만하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해도 여전히 세상은 절망적이어서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는 음모론만큼은 또 맘에 들었다. 희망은 없다. 어둠은 싹을 틔워 마수를 뻗치고 우린 피를 계속 흘려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자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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