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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아마도 2013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드 애청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한자와 나오키>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자, 나오키.. 이렇게 2명이 주인공인 드라마인 줄 알았지만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기대 없이 시청했던 나는 매회 영화 같은 완성도와 재미에 푹 빠져 열혈 팬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도 이 드라마를 입에 침 튀겨가며 시청을 권유할 정도였으니 두 말 하면 잔소리. 그리고 원작이 국내 정발되었는지 검색했더니 불행히도 아니었다. 출판사의 어떤 사정이 있더랬다.
아, 그렇게 6년이 훅하고 지났다. 드디어 이케이도 준의 원작 <한자와 나오키>가 정식으로 국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오랜 목마름을 촉촉히 적시게되었으니 얼마나 기쁘던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주인공인 일본 도쿄 중앙은행의 융자과장 “한자와 나오키”는 기업대출 담당으로서 대출 신청한 기업의 재무 상태와 담보여력을 꼼꼼히 살펴 적어도 떼이는 불상사가 없도록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지점장 아사노가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고자 서부오사카철강이라는 회사의 대출신청에 대하여 한자와가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고 무리하게 직권으로 결재해 버린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한자와는 찜찜하고 불안했다. 리스크를 떠안으면서까지 급하게 대출결정을 해줘도 문제가 없을까? 곧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 서부오사카철강은 부도가 났고 사장은 어디론가 잠적해 버린 것이다. 이제 대출금을 어떻게 회수해야 한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게도 아사노 지점장은 한자와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엉터리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이 사단이 났다며 모든 책임을 부하 직원인 한자와에게 돌리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직장 내 진정한 갑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니 상사가 지 꼴리는 대로 결재해서 대출해놓고 자신더러 잘못을 반성하라니. 한자와도 열 받고 나도 따라 또 열 받고. 공은 상사가 가진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 우리 직장에도 버젓이 존재한다. 젠장, 젠장, 젠장... 소설이나 현실이나 빌어먹을.
보통이라면 힘없는 부하 직원이 찍소리도 못하고 꼼짝없이 독박 뒤집어쓰고 최소한의 징계 또는 최악의 경우 옷 벗게 되는 사태를 감수하게 마련인데 한자와는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 복수로 되갚아 주겠다며 이때부터 자신만의 전략으로 맞대응하기 시작한다. 계속 한자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본사의 인맥을 동원하여 부당한 감사 출동하게 만들어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려는 아사노 지점장의 모략에 그때마다 슬기롭게 함정에서 벗어나는 을의 반격이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예상 밖으로 자신들에게 대놓고 반항하는 한자와 때문에 당황하고 쩔쩔 매는, 부패하고 썩은 상사들이 추풍낙엽처럼 패배하는 순간들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정의가 가끔 승리할 때도 있다는 대리만족 때문에 독자들이 열광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대출금을 회수해야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고 돼먹지 못한 상사에게도 복수해야 하는 한자와는 정말 열일 한다. 이렇게 보듯 은행이란 조직은 더 이상 서민과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다 함께 동반성장 하도록 힘쓰는 이웃 같은 관계가 아니라 앞에서는 친절한 미소였다가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손길을 거두고 의절하고 마는 비정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각인시켜준다.
하여 금융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백미라고 하겠다. 버블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난 후의 일본 금융계의 어두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이 시리즈를 계속 정 주행 하련다. 2편도 곧 돌입해야겠다. 아직 “한자와 나오키”가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 이대로 진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