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쏜살 문고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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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외투, 광인일기.
고골의 세편의 단편이다.
묘한 기시감을 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외투의 주인공인 아까끼 아까끼비예치의 비극은 그가 영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눈 파는 법 없이 주어진 일에 열심일 뿐인 이 9급관리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내핍한 생활을 더욱더 궁색하게 만들고, 결국 원혼이 되는 이야기라니, 비극 중에 비극이다.
그의 죽음도 느닷없이 한줄로 등장해서 당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나는 왜 히죽거리면서 읽었을까.

고골은 이상한 존재였다. 하지만 천재는 늘 이상하다. 고상한 독자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현명한 친구로 간주되는 것은 건강한 이류뿐이다. - 5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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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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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고 해서 다음 책 전에 가볍게 읽어야지 했던 책.

개인적 경험과 여러부분이 겹쳐져서 가볍지 못하고 짠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게 읽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란 늙는 존재지만, 평화롭지 못하게 노쇠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이란...
아무래도 한국인과 미국인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겠지 싶었으나, 유대인 가족이라는 놓칠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들과 별반 다를바 없이 서로에게 집착하고 집착한다.
바탕색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겠지.
팔십대 중반에 생을 달리한 필립 로스의 아버지, 올 해 팔십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필립 로스를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먹먹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 조차 작가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랄지... 언뜻 스치는 기억도 가슴아프고 울고싶은 것들이 많을 법한 추억을 활자로 한자한자 써내려가는 마음이랄지.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도 뭘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뜻대로 될 일인가는 오롯이 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게 문제랄까.
그래도 최소한의 후회를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다짐(은... 개뿔... 아니지.. 그래도 다짐...)한다.


혼자서 울고 싶을 때는 울었는데, 잇따라 찍은 아버지 뇌 사진을 봉투에서 꺼낼 때만큼 울고 싶은 마음이 복받친 적은 없었다. - 그 뇌를 침공하고 있는 종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다름 아닌 그의 뇌, 나의 아버지의 뇌, 아버지가 그 솔직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 단호한 방식으로 말을 하게 하고, 그 감정적인 방식으로 추론하게 하고, 그 충동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게 한 뇌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끝없는 걱정들을 만들어내면서 팔십 년 이상 그 고집스러운 자기 규율을 지탱한 신체 조직이고, 사춘기 때 아들인 나를 그렇게 좌절하게 만든 모든 것의 원천이고, 아버지가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우리의 목적을 결정하던 시절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던 물건인데, 이제 그것은 “주로 우측 소뇌교 뇌각과 뇌교조로 이루어진 구역 안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 때문에 쪼그라들고 밀려나고 파괴되고 있었다. - 16

묘지가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 증명하는 것은 죽은 자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버렸다는 사실뿐이다. 그들은 가버렸지만, 우리는, 아직, 가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이해는 쉽다. - 23

여덟에서 열 시간, 그런 다음에 닷새에서 엿새. 그런 다음에 아버지에게 뭐가 남아 있을까? 궁핍한 유년과 변변찮은 교육 뒤에, 신발 가게와 냉동식품 사업 실패 뒤에, 메트로폴리탄생명의 유대인 할당 정책에도 불구하고 관리자 역할을 맡으려고 안간힘을 쓴 뒤에, 사랑하는 그 많은 사람들 -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형제 모리스, 찰리, 밀턴, 1940년대에는 어린 조카딸 지넷과 어린 조카 데이비드와 사랑하던 처제 에셀- 의 때 이른 죽음 뒤에, 아버지가 앙심을 품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극복하며 견디어낸 그 모든 일 뒤에, 여덟에서 열 시간의 뇌수술은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
답은 그렇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천 퍼센트 그렇다이다 - 이건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이었다.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이다. - 135

그럼에도 아버지는, 굳이 말하자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시기만큼 의기소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새로운 시련과 마주해야 했고, 시련과 마주하는 것은 절망을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대신 도전과 체념이 섞인 태도를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그런 태도로 노년의 수모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 178

그쪽 아버지는 용감한 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쪽 아버지도요. 내가 말했다. 늙는 건 소풍이 아니에요, 그렇죠? - 198

“내가 거기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고, 입이 마비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말은 말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거기 있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번에는 격노하여 되풀이했다.
병원에서 내 곁에 있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 276

그 모든 것, 모든 것을 보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최대한 아버지한테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아버지의 움푹 파이고 망가진 얼굴에 내 입술을 갖다 대고 간신히 힘을 내 마침내 속살일 수 있었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 밖에 없겠어요.” 아버지는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있어 내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충격을 받고 놀라고 울면서 다시, 또다시, 나 자신이 그 말을 믿을 때까지 아버지한테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278

아침에 나는 아버지가 이 책, 내 직업의 꼴사나움에 어울리게, 아버지가 아프고 죽어가던 내내 내가 써오던 이 책을 가리킨 것임을 깨달았다. 꿈은 나에게 내 책이나 내 인생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꿈에서는 내가 영원히 그의 어린 아들로서 살것이라고, 어린 아들의 양심을 갖고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아버지로서 계속 살아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심판하듯이. 어떤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283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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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수도원 펭귄클래식 8
제인 오스틴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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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일련의 책들에서 언급되어 있어 이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인 오스틴이 묘사하는 캐서린은 강압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지도 않고, 현실감있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다.
당시로선 꽤나 자기 주장이 강하고, 스스로 주변을 정리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아마도 가장 마음에 들었고, 노생거 수도원을 언급한 책들의 의견도 대체로 그런 편에 속한다.

젊은 숙녀가 여주인공이 되려고 할 때면 사방 사십 리 내 가족들이 아무리 심통을 부린다고 해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 24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로부터 그녀가 옹호와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 주인공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 51

어쨌거나 난 뒤따라갈 거예요. 그들이 어디쯤 있든 상관없어요. 단지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을 설득당하지 않고 안 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에 걸려들지 않을 거에요. - 138

작가 스스로 염두에 둔 바와 같이 세상물정에 밝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한이 있더라도 캐서린은 작가의 소망대로 현명한 여성이 된다.
얕은 꾀에 빠져 곤경에 처했을 때, 수동적으로 슬퍼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도 그런 현명함의 일종일 것.

다만 시대적 배경의 한계랄까, 이토록 현명한 여성이지만, 결국 헤쳐나갈 운명이란 것은 결국 좋은(=부유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여성 스스로 삶을 결정지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결국 너도 그런 신데렐라 컴플렉스의 여주인공일 뿐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게 하는 것.
악역을 맡은 이자벨라와 존 소프는 투명하게 속물적인 존재로 보여지지만, 신분과 부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욕망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할 수 밖에 없을가하는 의문도 따라온다.

역사책은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지루하거나 아니면 짜증스러워요. 페이지마다 교황과 왕들의 다툼, 전쟁이나 역병들이 가득하잖아요. 남자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옳고 착한 반면 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역사책은 너무 지루해요. 역사책은 어쩜 그토록 따분한지 종종 정말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148

역사에 관한 캐서린의 (더불어 제인 오스틴의 ) 관점을 서술한 부분을 보면, 여성이 지워져 있는 반쪽짜리 역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의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흑역사에 가까운 실수를 한 후에도 문제의 핵심을 정리하고 앞으로는 이성적으로 이치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리라 결심하는 모습은 현대의 여성 캐릭터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부분이다.
긍정적, 자유로움, 발전적인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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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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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맥버니...... 존 맥버니 상병.
만나서 반가워요.
몇 살이니, 어밀리아?
열세 살이에요. 9월이면 열네 살이 돼요.
키스는 해봤을 나이로구나.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 나이이고.
아저씨를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 12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를 학교에 들인 것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것.
물론 부상당한 병사라는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이고, 어밀리아의 수집벽?의 일종으로 도움을 받아 존 맥버니 상병은 여자들 여남은 명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외딴 여학교에 들어선다.

전시라는 상황과 집안의 사정으로 기숙학교로 보내진 한창 나이의 소녀들은 외부에서 온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넘치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존 상병은 그 상황을 너무나도 능숙하게 이용하게 된다. 마사 판즈워즈는 여성으로서 여느 남성과 견주어도 출중한 능력을 지닌 선생이지만, 그녀 역시 쉽게 존 상병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관심을 기울인다.

곤경에 처한 자로서 타인의 호의와 돌봄에 감사한 마음만 가졌어도 좋았을 것을, 몸이 회복되어가기가 무섭게 호의를 이용하여 학생과 선생들을 홀리는 - 그저 유혹의 정도라면 나았을까? 뭔가 유폐되어 있는 존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습이랄까, 은근한 이간질이랄까... - 존의 모습에서 기회주의자의 모습과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이 내비춰져 영 볼썽사납다...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존과 학생들, 존과 선생의 지루한 플러팅이 거의 300여 페이지나 계속 되는 점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러팅이라고 여겨지는 각각의 대화 안에 남북전쟁, 인종, 권력과 자본에 대한 여러 의미들이 들어있다고는 해도 지루한 것은 이미 지루한 것이다.

그렇지만, 윤리를 져버리게 하는 요인이 존인지, 상황을 용인한 선생인지, 나이브하게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미성숙한 소녀들인지 그것은 선후관계가 불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미 두번의 영화화가 되었고, 큰 상도 받은 것 같지만, 보통은 원작이 주는 더 큰 즐거움을 이 책에서는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다.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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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애슐리 테이크아웃 1
정세랑 지음, 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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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시작해서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결말을 맞이했다.

내내 시큰둥한 듯 타성에 젖어 있는 아웃사이더 같은 애슐리가 겁쟁이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지점에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본토와 섬이라는 관계와, 순혈과 혼혈이라는 것과, 내면과 외면이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

이야기의 모든 과정에서 애슐리는 정말 묘사한 대로의 사람이었을까. 마지막의 변화가 세월이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긴긴 세월 한방의 일격을 노린 사람의 행동개시였다면...

이 이야기는 이후가 훨씬 궁금하다. 아무래도 작가한테 낚인듯...+_+ 어서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시라.....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도 한예롤씨의 인터뷰도 좋았다.


너도 가지 않을래?
아빠가 물어 준 건 기뻤지만, 아빠도 내 대답을 알고 물었을 것이다. 내가 없어도 그 가족은 완결되고, 본토에는 내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거리감을 유지해야만 했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거리감을. - 22

애쉬는 모르죠? 저 바깥 사람들은 애쉬의 얼굴에서 차별과 화해, 오리엔탈리즘과 세계 시민의식,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해방, 비극과 희망을 읽어요. 당신이 딱이에요.
남의 얼굴에서 이상한 걸 많이도 읽네, 나는 어이가 없었다. - 50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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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6-03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시작이야, 하면서 끝나는 이야기. 본토/섬 구분은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요...

hellas 2018-06-03 10:14   좋아요 1 | URL
며칠전에 정세랑 작가님이 하반기 좀 더 긴 이야기 가지고 오신댔는데 혹시? 하는 기대를 ㅋㅋ 전 이 책 너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