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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에세이라고 해서 다음 책 전에 가볍게 읽어야지 했던 책.
개인적 경험과 여러부분이 겹쳐져서 가볍지 못하고 짠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게 읽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란 늙는 존재지만, 평화롭지 못하게 노쇠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이란...
아무래도 한국인과 미국인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겠지 싶었으나, 유대인 가족이라는 놓칠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들과 별반 다를바 없이 서로에게 집착하고 집착한다.
바탕색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겠지.
팔십대 중반에 생을 달리한 필립 로스의 아버지, 올 해 팔십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필립 로스를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먹먹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 조차 작가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랄지... 언뜻 스치는 기억도 가슴아프고 울고싶은 것들이 많을 법한 추억을 활자로 한자한자 써내려가는 마음이랄지.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도 뭘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뜻대로 될 일인가는 오롯이 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게 문제랄까.
그래도 최소한의 후회를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다짐(은... 개뿔... 아니지.. 그래도 다짐...)한다.
혼자서 울고 싶을 때는 울었는데, 잇따라 찍은 아버지 뇌 사진을 봉투에서 꺼낼 때만큼 울고 싶은 마음이 복받친 적은 없었다. - 그 뇌를 침공하고 있는 종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다름 아닌 그의 뇌, 나의 아버지의 뇌, 아버지가 그 솔직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 단호한 방식으로 말을 하게 하고, 그 감정적인 방식으로 추론하게 하고, 그 충동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게 한 뇌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끝없는 걱정들을 만들어내면서 팔십 년 이상 그 고집스러운 자기 규율을 지탱한 신체 조직이고, 사춘기 때 아들인 나를 그렇게 좌절하게 만든 모든 것의 원천이고, 아버지가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우리의 목적을 결정하던 시절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던 물건인데, 이제 그것은 “주로 우측 소뇌교 뇌각과 뇌교조로 이루어진 구역 안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 때문에 쪼그라들고 밀려나고 파괴되고 있었다. - 16
묘지가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 증명하는 것은 죽은 자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버렸다는 사실뿐이다. 그들은 가버렸지만, 우리는, 아직, 가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이해는 쉽다. - 23
여덟에서 열 시간, 그런 다음에 닷새에서 엿새. 그런 다음에 아버지에게 뭐가 남아 있을까? 궁핍한 유년과 변변찮은 교육 뒤에, 신발 가게와 냉동식품 사업 실패 뒤에, 메트로폴리탄생명의 유대인 할당 정책에도 불구하고 관리자 역할을 맡으려고 안간힘을 쓴 뒤에, 사랑하는 그 많은 사람들 -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형제 모리스, 찰리, 밀턴, 1940년대에는 어린 조카딸 지넷과 어린 조카 데이비드와 사랑하던 처제 에셀- 의 때 이른 죽음 뒤에, 아버지가 앙심을 품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극복하며 견디어낸 그 모든 일 뒤에, 여덟에서 열 시간의 뇌수술은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
답은 그렇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천 퍼센트 그렇다이다 - 이건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이었다.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이다. - 135
그럼에도 아버지는, 굳이 말하자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시기만큼 의기소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새로운 시련과 마주해야 했고, 시련과 마주하는 것은 절망을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대신 도전과 체념이 섞인 태도를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그런 태도로 노년의 수모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 178
그쪽 아버지는 용감한 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쪽 아버지도요. 내가 말했다. 늙는 건 소풍이 아니에요, 그렇죠? - 198
“내가 거기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고, 입이 마비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말은 말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거기 있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번에는 격노하여 되풀이했다.
병원에서 내 곁에 있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 276
그 모든 것, 모든 것을 보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최대한 아버지한테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아버지의 움푹 파이고 망가진 얼굴에 내 입술을 갖다 대고 간신히 힘을 내 마침내 속살일 수 있었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 밖에 없겠어요.” 아버지는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있어 내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충격을 받고 놀라고 울면서 다시, 또다시, 나 자신이 그 말을 믿을 때까지 아버지한테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278
아침에 나는 아버지가 이 책, 내 직업의 꼴사나움에 어울리게, 아버지가 아프고 죽어가던 내내 내가 써오던 이 책을 가리킨 것임을 깨달았다. 꿈은 나에게 내 책이나 내 인생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꿈에서는 내가 영원히 그의 어린 아들로서 살것이라고, 어린 아들의 양심을 갖고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아버지로서 계속 살아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심판하듯이. 어떤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283
2018.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