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소설은 구리거울에 새겨진 인생과 우주의 만화경이다.
어떤 이는 거기서 불안과 공포의 늪을 건너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또 다른 이는
선험적인 고향을 상실한 잃어버린 영혼들의
존재론적 심연을 응시한다. “ - 우찬제 (문학평론가)

‘문학하려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의식’이 그렇고 그렇던 시절 60~70년대 작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필히 몇 겹의 문을 더 지나야 했을 것이다.

5권의 소설집을 읽고 이 짧은 인터뷰와 산문이 실린 부록을 읽으니 그 부당함의 좀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워낙 바람 잘 날 없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시대를 논하고 이념을 논하고 그에 비견할 만한 거대한 주제의식을 가지는 것을 뭐랄순 없지.
그러나 그에서 조금 비껴선 시선들을 깍아내리는 것도 우스운일.
그렇다고 해서 남성문인들이 거대 담론에 크게 부합하는 글을 썼는가를 생각하면 어쨌든 약간은 실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럴싸한 이념을 논하는 글을 써 제낄때 그들의 자리를 유지케 해주는데 공헌한 가부장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
.... 어찌 됐든, 작가 오정희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자책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말에 나는 또 부르르하고 치를 떨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채로운 소재로 여성의 주체의식을 잃지 않는 창작물들을 남긴 여성 문인 ‘오정희’를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 포인트.

‘우리는 모두 이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문학이란, 생이란, 결국 들짐승이 새끼를 낳는
거친 자리. 그렇게 슬픈 피비린내와 고독과
경이로움과 신비를 다함없이 끌어 안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컬렉션을 읽으면서 희미했던 무엇은,
전체를 다 읽고 나서 완성되는 어떤 이미지였다.
작가 <오정희> 라는.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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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강 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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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의 마지막으로 첫 단편집을 읽었다.

광기, 귀기, 범죄의 냄새가 나는 음울한 단편들.

70년대 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시도이고 다양한 소제가 이야기가 되었다.

그것이 이야기로서 공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시절이 많이 지났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려나.

취향으로서는 상당히 비취향으로 밀려나 있는 우울이다.

부록으로 끼워진 얇은 책자 하나만(작가의 수필, 인터뷰 등이 실려있다) 읽으면 컬렉션의 끝을 보게 되었다.

좀처럼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하지 못하는 요즘 뭔가 환기도 되고 의미도 있는 독서다.

이 참에 토지 재도전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오뚝이들을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역시 나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다. 다리가 맥없이 후들거렸다. 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가슴은 금방 버석버석 소리를 내며 부서져버릴 듯 건조해져 있었다. - 323, 완구점 여인(1968)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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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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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공쿠르상 수상작 < 달콤한 노래 >를 너무 재밌게 읽었던 터라, 출간이 무섭게 쟁여둔 책이다.

데뷔작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는데, 데뷔를 참 하드코어로 했구나 싶었다.

성욕의 이상 항진, 우울감을 동반하는 정신질환이라고 일컫는 님포매니악이 주인공이다.

초반부터 훅 들어오는 아델의 섹스 중독 증상은 아 얘는 대체 왜 이래? 류의 짜증이 밀려왔다. 중독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책이... 중독이라면 중독인데... 뭐 파멸적인 중독은 아니니까.

어쨌든 그런 류의 수긍과 이해를 어느 정도 챙기고 나니 <달콤한 노래>에서 느꼈던 작가 특유의 문장의 중력이랄까, 멱살을 붙들려 땅에 철썩 들러붙는 느낌의 힘.
그 힘이 이 책을 순식간에 읽게 한다.

딱 한 문장, 어린아이의 수동성, 게이샤의 외설성... 이 문장만 납득을 못하겠다. 양인의 편견이랄까 부적절하고 군더더기라고 느껴졌다. 딱 한 문장...

어쨌든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그보다는 무엇보다 철저하게 이해받지 못하는 결핍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 아델... 얼마나 공허하고 공포스러울지.. 타인과 자신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떤 것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불가항력일 때...
이 이야기에서 강박적인 모습은 아델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 약간은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적어도 이 속에서는 외로운 돌연변이는 아닐테니.

작가의 영원한 주제가 여성이라고 했다니 앞으로도 쭉 읽게 될 작가.

소모적 독서라고 느껴지는, 아무래도 한겨울 더러운 눈이 녹은 진창에 한발 크게 푹 빠진 듯한 감상이 남았다.

아델은 결혼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이를 낳았다. 세상에 구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아델은 누구도 그녀로부터 제거할 수 없는 존중의 후광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고통의 저녁에 몸을 숨기고, 방탕의 나날에 기댈 곳이 되어줄 피난처를 스스로 만들어나갔다. - 44

뤼시앙이 태어났다. 그녀는 곧 담배를 다시 물었다. 거의 동시에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의 게으름에 자꾸 딴지를 걸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돌보기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신생아에게 진한 육체적 사랑을 헌신했으나 택도 없는 일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하루는 끝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때로 아델은 우는 아이를 내버려둔채 베개로 머리를 감싸고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음식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아기 식탁 의자 앞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아이 얼굴을 보며 아델은 흐느꼈다. - 47

로렌은 옷을 벗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침대에 길게 누워 이야기를 했다. 아델이 곁에 눕자 로렌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제 막 친구가 되어가는 이의 어깨 위에 놓인 머리, 아델은 지쳤고, 몸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잠에 빠져들기 전, 아델은 로렌이 어떤 어마어마한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걸 직감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 57

늙어가기 위한 집이야, 아델이 생각한다. 편안한 마음을 위한 집. 추억, 바람 따라 들렀다가 떠나는 친구들을 위한 집. 이 집은 방주, 무료 보건소, 피난처, 석관이야. 유령들의 쉼터. 소극장의 장식.
그들이 그렇게 늙었단 말인가? 과연 그들의 꿈이 여기서 멈출 수 있을까?
벌써 죽음을 생각할 시간이란 말인가? - 100

그럴수록 그는 우쭐해졌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가 그녀를 살뜰히 보살필 거라고,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그는 장담했다. 그녀는 그의 강박이고, 광기고, 이상향이었다. 그의 또 다른 삶이었다. - 239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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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 테이크아웃 9
오한기 지음, 소냐리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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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한 그림체가 무척 귀엽다는 첫인상, 그에 반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괴하다라는 인상으로 변함.

정체가 대체 뭔가 싶은 ‘토끼 머리’ 인간에 적응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것.

세상에는 토끼 머리 뿐 아니라 토끼 몸, 토끼 발, 토끼 귀....의 조금씩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은유일까.

내가 떠올리는 주제와 작가의 의도와의 갭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대체 왜 외삼촌은 애를 구지 ‘토끼 머리’라고 불러가지고는... 이 사단을 냈을까. 그가 비록 토끼 머리라고 해도. 이런 쓸데 없는 생각도...

나는 더 이상 캐리커처가 아니라 정밀하게 그린 초상화였다. - 16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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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넋 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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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가 바스라질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읽고나니 기력이 쇠진하고, 무력감에 휩싸이는.

중년의 여성이 겪는 극단적 우울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단편으로 모아 놓으니 힘에 부쳤달까.

정체성에 자신감이 결여되고, 흔들리는 상황과 환경에 놓인 여성들. 반면 그들을 자신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의지가 있나 싶은 남성들.

이야기 속 그녀들이 삶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다 헤아리기엔 단편은 이야기가 짧다고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실제적이 못 될까(p 12)라며 한숨짓는 명혜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책의 초반에 확 몰려들어 더 그랬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울음을 감추려 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는 무언가 위무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는 다정한 말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소년 같은 수줍음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입을 열었으나 아내는 어눌하게 새어 나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내는 유언이라도 듣는 시늉으로 그의 입에 바짝 귀를 갖다 대며 안ㅌ깝게 되물었다. 뭐라구요? 뭐라고 하셨어요? - 276. 동경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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