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의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소위 하드보일드 문체로 불려지는 헤밍웨이의 판박이다. 이 소설은 외형적으로 서부극과 스릴러 장르를 취하지만 '자본주의의 우화'라는 야심찬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 심오한듯한 경구, 혹은 짧은 대화체를 삽입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수준은 평범한 대중소설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원작을 영화화한 코엔 형제의 동명 영화가 차라리 뛰어나고, 원작을 거의 손상없이 영상으로 옮긴 코엔 형제의 영화가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하비에르 바르뎀(안톤 시거 역)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아래의 시는 코맥 매카시가 소설 맨 앞 장에 인용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이다.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 W. B 예이츠
저 곳은 늙은이가 살 나라가 못된다. 서로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 나무의 새들
- 저 죽어가는 세대들- 은 노래 부르며,
연어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 짐승, 또 새들은 온 여름 내내 찬미한다.
온갖 잉태하고 태어나고 죽는 것을.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모두가
늙지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늙은이는 그저 하나의 하챦은 물건,
막대기에 걸쳐놓은 다 헤진 옷, 만일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유한한 옷의 조각 조각을 위해 더욱 더 소리높여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또한 거기엔 영혼의 장려한 기념비를 공부하는
노래 학교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항해해왔다.
오 마치 벽의 금빛 모자이크 속에 있는 것처럼
신의 성스러운 불 속에 서있는 성인들이여,
성화로부터 나오라, 감돌려 내려오라.
그래서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라.
나의 심장을 삼켜라,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동물에 얽매여
심장은 스스로가 뭔지 알지 못하니, 그리고 나를
영원한 예술품 속에 넣어다오.
한번 자연을 벗어나면 나는 결코
자연을 닮은 육체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리라.
오직 희랍 금 세공공이 졸리운 황제를 깨어놓기 위해
혹은 비잔티움의 귀족과 귀부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노래해 주도록 황금 가지 위에 않혀놓은
쳐늘인 황금 혹은 황금 에나멜로 만든
그러한 형상이 되리라.
현기영의 단편 <순이 삼촌> <아버지> <길>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륭 이야기> 등 제주 4. 3항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읽다. 소설을 읽기에 앞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여순 항쟁'과 '제주 4. 3항쟁' 강연, 주철희 박사의 '여순 항쟁' 관련 강연이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현대사에 속하는 여순항쟁과 제주 4. 3 항쟁은 나뿐 아니라 아마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잘 모르는 실정이다. 그도그럴것이 반공과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과거의 권위주이 정부는 소위 '빨갱이'라는 단어를 금기 중의 금기어로 맨 앞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여순항쟁'과 '제주 4. 3항쟁'의 참상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동안 관련 단체의 많은 노력이 있어왔지만 솔직히 최근까지도 전문 학자들조차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아무 제약없이 연구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작업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두 항쟁에 대한 언론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데, 먼저 도올 김용옥 교수와 주철희 박사의 강연이 비교적 대중들이 이해하기에 쉽고, 전문가의 저서로는 '여순항쟁'을 연구한 주철희 박사의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디자인 흐름)가 추천할만 하다. 아울러 제주 출신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과 지난 90년대 후반에 출간된 현기영의 <순이 삼촌>(창비 출간)을 비롯한 몇몇 단편도 '제주 4. 3 항쟁'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주말 저녁 EBS TV <한국기행>을 시청하고 있자니 마침 제주도 화산성 편을 방영하고 있다. 화면 가득히 펼쳐진 제주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 밭일 하는 농부들이 어린 당근을 솎아내고 있다. 해녀들의 물질, 밭에 돌담쌓는 장면도 연이어 나온다. 아, 중산간 마을도... 해안가 5킬로 내륙쪽은 모조리 불태워졌다는 그 중산간 마을......육지의 흔한 여느 농촌마을처럼 평화로운 농촌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문득 처참했던 '4. 3항쟁'의 광경이 오버랩된다. 평소에 보던 익숙한 관광지 제주가 아니라 70년전 상흔으로 얼룩진 제주가 연상되는거다.
아직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제주. 주철희 박사 말마따나 역사 서술을 비롯한 모든 공적 기록은 '사건'이 아닌 '항쟁'으로 명확하게 인정되어야 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권력의 민중에 대한 속죄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게 진정한 '제주 4. 3항쟁'이 역사 속에서 바로 서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
* 중산간 마을
한라산 자락이 뻗어내려오다 평지 지형을 이루면서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해발고도는 100~300미터 가량이다. 바닷가에 해안마을이 있다면, 한라산 자락 사람이 살 만한 초지에 자리잡은 마을이 중산간 마을이다. 중산간 마을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더 올라가면 사람이 살 수가 없고,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면 바다에 기대서 살아가는 해안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중산간의 사람들은 주로 목축과 농사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