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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의 재미라면 굳이 어느 것에 얽매이지 않고 관심가는대로 유유자적 즐길 수 있는 점이다. 서가에서 안톤 체호프를 꺼냈다. 시공사판 희곡 전집, 민음사판 단편선집과 열린책판 단편선집 등 세 권이다. 누리 빌게 세일란의 <윈터 슬립>의 원작이 체호프의 단편이라기에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원작이 어느 한 작품이 아니라 여러 단편 혹은 희곡에서 아이디어를 빌리지 않았나싶다.

이왕 책을 펴들었으니 희곡 몇 편이라도 읽어봐야겠다. 사실 체호프의 희곡은 국내 연극무대의 단골 공연작이기도 한데, 그중 <갈매기>는 영화화된 바 있고, 비디오로 출시된 적 있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극중 분위기가 <윈터 슬립>에서 아이딘과 그의 동생 네즐라, 아내인 니할이 신랄하게 논쟁을 벌이던 장면과 흡사했던 것 같다. 

여하튼 <윈터 슬립>의 감동이 워낙 묵직하다보니 원작의 분위기도 느껴볼겸, 체호프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희곡 두어 편, 단편 몇몇이면 가능할까? 

하다보면 체호프에 푹 빠질 수도 있고, 슬그머니 고골이나 뚜르게네프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게 딜레탕트의 생리다. 그래서 더욱 피상적, 즉흥적일 수밖에 없는데, 오묘한 해석과 탐구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연구 결과를 열심히 챙겨보거나 즐기는게 딜테탕트인 내 역할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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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네마 두 번째 상영작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1986년). 상영작 선정은 주로 여성 독서회 멤버들인 점을 우선 고려한다. 평소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영화 초보자여서 일단 이해하기 쉽고, 여성의 공통 관심사를 반영한 영화 위주로 선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의외로 에릭 로메로의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잘 선정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감상회라 무엇보다 영화보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려면 이해하기 쉽고, 재밌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사실 <녹색광선>은 내가 먼저 보고싶은 영화였다. 과거 서너차례 감상했던 기억이 나는데, 감상평도 써봤고, 에릭 로메로 평전도 별도로 구입해서 읽기도 했으니, 특별히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나로서는 로메로에 대한 애정이 꽤 남다른 편이다. 로메로의 영화하면 얼른 홍상수 감독이 떠오른다. 그만큼 두 감독의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자, 그렇다면 나는 왜 로메로 영화에 관심이 많은가.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줄곧 영화에서 문제삼고 있는 '모럴'이라는 주제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로메로가 뜻하는 '모럴'은 주로 '도덕 이야기' 연작에 해당하는데, 이 단어는 로메로 영화 전체로 확산해도 크게 어긋나지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모럴'은 우리가 알고있는 도덕 개념과 약간 차이가 있다. 로메로는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모럴리스트는 도덕(moral)이라는 단어와 그다지 연관이 없다. 모럴리스트는 인간의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그는 정신과 감정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도덕성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위 속에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가장 좁은 의미의 모럴이라는 단어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모럴은 또한 그들이 자신의 동기들,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그 영화들은 행동의 영화들, 즉 물리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영화가 아니고, 매우 극적인 영화도 아니며, 매우 특별한 감정이 분석되고 심지어 인물들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매우 내향적인 영화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이다."   - 문화학교 서울 엮음 <에릭 로메로> 

그러니까 나는 통상적 의미의 도덕 개념이 아닌 모럴리스트, 즉 인간 내부에 관심을 갖는 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우선 관심이 끌리고 로메로 영화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로메르가 말하듯 도덕은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원칙이 아니라,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사유의 작용이며 모럴에 의한 선택이고, 그러한 모럴리스트로서의 인물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 로메르의 궁극적 관심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영화문법과 다른 로메로 특유의 영화방식, 즉 극적 전개와 비극성을 피하고, 에피소드 위주로 사건이 전개되는 점, 삶의 소소한 사건들을 주목하는 점 때문인데, 이것은 홍상수의 영화와도 상당히 흡사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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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는 어느덧 1년반이 다 돼간다. 비록 회원이야 여 섯명에 불과하지만 평소 독서습관이 없는 회원들끼리 여기까지 온것만해도 얼마나 대견한가. 예상 밖으로 잘 따라가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자 슬슬 욕심이 생긴다. 영화도 함께 하면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한 편 한 편 보다보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생길거고 따라 감상 실력도 늘겠지. 혹 다른 이들도 오지 않을까 했지만 아직 까지는 독서회 멤버인 서너 명뿐이다. 역시 영화도 독서만큼이나 쉽지 않다. 독서든 영화든 한 두편이라면 몰라도, 꾸준히 읽고 보려면 상당한 열정이 요구된다.

애초 생각은 영화따로 독서따로 했지만 독서회와 영화감상을 결합시키는것도 그럴듯하겠다. 그러니까 '영화와 문학' 형태로 변경해서 원작이 별도로 있는 영화만 감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영화도 보고 책도 병행해서 읽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만해도 로메르의 <녹색광선> 원작이 따로 있는지 몰랐다. 더욱 반가운건 원작인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의 국내 번역서가 이미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책도 함께 읽을까했지만 일단 이번만은 영화에 국한하기로 했다.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이 너무 빈약한듯싶어서다. 

막상 소설읽기는 포기했지만 아쉬움때문일까. 쥘 베른의 <녹색광선> 표지가 눈에 어른어른하다. 재밌는건 '녹색광선'이라는 출판사가 있고, 그곳에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출간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책의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흡사하다. 두 책 모두 표지 디자인이며 금박 글자,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하고 싶지만 쥘 베른의 <녹색광선>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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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은 어느 한 지점에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즉 찰라적인 순간들이다. 쉼없이 흘러갈뿐이니 세상 그 어떤 것도 고정된게 없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라것도 환상일뿐다. 수많은 과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덧없는 삶, 의미없이 주어진 삶은 그렇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어느 때, 과거의 어떤 한 순간이 지금 내 앞에서 오롯이 되살아날 때, 마치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그 어떤 것처럼 생생하게, 명확하게 되살아난 그것이 오히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건 아닐까? 그러므로 과거란 이미 잊혀진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보다 더 실재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카뮈 혹은 사르트르와 또 다른 의미에서 실존의 의미를 말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프루스트,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는 동일하게 잃어버린 과거를 현재보다 더 뚜렷한 현재라고 증언한다. 

현실은 마냥 지루하고 덧없다. 반면 문학과 영화, 혹은 음악 속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가까운 지인 대신 죽은 이를 더 경배하고, 가깝게 느낀다고 핀잔한다. 현재보다 과거가 더 낯익다는 것.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현실이 지루하기 때문이고, 이런 나는 또 한 명의 보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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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연휴라 아내와 함께 처가에 들렀다. 올해부터는 딸애 부부, 아들 부부, 손주들까지 함께 처가에서 보내기로 했다. 가족들과의 식사, 정담도 얼추 끝나고, 잠시 손주들 데리고 동네 한 바퀴돌고, 아이들 흙장난 거들거나 빈둥거렸지만 마땅히 할게 없다. 수 년째 독서실에 얽매이다보니 이게 굴레가 되었는지 불과 이틀뿐인 자유시간조차 영 소화하기기 쉽지 않다.

 

하릴없이 호숫가 잠자리 날듯 마당 빙빙돌다 토방 옆 작은 창고를 뒤적이니 먼지 쌓인 헌책 몇 권이 있다. 1970년대에 발행된 문예지 '문학사상' 두 권을 꺼냈다. 출간된지 불과 40년전인데 이렇게 촌스럽다니. '문학사상'은 그 당시 1급 문예지였다. 그런데도 표지 디자인이며 보수일색인 필자, 수록 글 모두가 참 시덥잖다. 하긴 70년 중반은 박정희의 파쇼정치가 극에 달했을때라 '씨알의 소리' '사상계', '창비', '문지'만 봤지 '문학사상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때다

 

토방에 앉은채로 이 글 저 글 넘기다 장왕록 교수와 헨리 밀러의 대담이 눈에 들어왔다. 대담 중 <체털리 부인의 연인>의 작가 D. H 로렌스와 <북회귀선>의 작가인 헨리 밀러를 비교하는 대목이 나왔다. 한데 두 번이나 꼼꼼히 읽었지만 질문하는 장 교수나 대답하는 헨리 밀러나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가 없다. 대담자가 헨리 밀러이니 당연히 '섹스'가 화두인터라 동양문명, 노자철학,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플라톤 운운하며 섹스와 연결짓느라 애를 쓰긴하는데, 독자인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거다. 

 

참고로 헨리 밀러와 D. H 로렌스의 성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한 <북회귀선>(문학세계사, 1991년)의 번역자 김진욱의 작품해설 일부를 소개한다. 

 

"성문제를 다루는 밀러의 방식은 로렌스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로렌스에 비해 밀러의 성에 대한 태도는 훨씬 자연스럽다. 예컨대, 로렌스는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루려는 자신의 입장을 은연중 정당화하려는 태도, 달리 말하면 퓨리터니즘의 잔재 같은게 있는데 반해 밀러는 모든 것이 자연 그 자체이며, 로렌스와 같은 인물의 영웅화가 작품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밀러가 제시하는 인물은 성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태도에 있어 가장 낮은 곳으로, 심지어 시궁창 속으로라도 태연히 내려간다. 그들은 영웅들이 자신의 긍지 때문에 감히 하지 못하는 행위일지라도 피하지 않는 역설적인 영웅이며, 쾌락주의의 밑바닥을 분쇄한 에피큐리언이다."  - 헨리 밀러 <북회귀선>, 341쪽, 역자 해설

 

D. H 로렌스는 <체털리 부인의 연인>을 비롯 <사랑에 빠진 연인들>, 창비에서 출간한 단편집 <패니와 애니> 등을 최근에 읽었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있지만 헨리 밀러의 사상과 성담론은 도무지 이해하질 못하겠다. 게다가 출세작인 <북회귀선>조차 오래전에 읽은탓에 스토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후 잠깐 서평가 이현우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 들르니 마침 헨리 밀러가 등장하기에 글 일부를 인용한다.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들이 쓴 <교양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다 보니 읽어서는 안되는 책 15이란 항목이 눈에 띈다. 일본에도 우리처럼 아직 불온도서라는 게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사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따로 골라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목록은 거꾸로 한번 읽을 테면 읽어보라고 광고하는 의미도 갖는다. 2008년에 국방부 불온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예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금지한 책의 목록에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셀린의 <밤 끝으로의 여행>,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포함돼 있다. 읽다 보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게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대한 평이고, 순진한 영혼을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는 책이라는 게 <차라투스트라>를 읽지 말도록 권유하는 이유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서가에서 셀린의 <밤 끝으로의 여행>(동문선, 2004년)과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빼들고 사무실로 내려왔다. <밤 끝으로이 여행>을 펴드니 앞 부분에 예전에 써둔 독서메모가 눈에 띈다. 

 

"신새벽 지하철, 군대 훈련소, 종교의 이름으로 치루는 전쟁터, 가난으로 죽어가는 아프라카인들, 중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들, 시계추처럼 매일 직장으로 향하는 직장인들, 목표치를 채워야하는 세일즈맨. 그들은 모두 "밤 끝으로의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이다. 셀린의 염세적 토로는 어느 특정한 부류의 인간만 해당하는게 아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 201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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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낮에 읽던 이주동의 <카프카 평전>과 카프카의 중, 단편을 드문드문 읽다. 독서실엔 불과 몇 명, 연휴 시작이라 한산하고, 낮에 내리던 비바람 여전하다. 현관 우산통, 바람이 흩날리는 귤나무, 을씨년스럽다. <문학서재> 클릭하다. 내 글쓰기의 첫사랑인 문학서재. 대부분 2002년~2004년경에 쓴 글이니 50 전후무렵이다. 몸이든 글쓰기든, 열정까지 모두가 절정의 시기였다. 어떤 글은 부끄럽고, 어떤 글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글은 치기가, 또 어떤 글은 패기가 넘친다. 분명한건 열정만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새삼 알았는데, 주로 2002년도에 한정되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재를 출입했다. 꿈 많고, 한없이 아름다운 시절, 그래서 문득 떠오른 한 마디. 모든 분이 사랑스럽고 고마워라!  

소설가 이도원, 물빛 동인이신 이진흥 선생님, 김학원 선생님, 봄비, 우박, 최설운, 비, 행인, 나무, 우향, 양정영, 강은소, 김병희 기자, 이민숙, 꿈 없는, 이효순, 오경옥, 이영채, 오경희, 준원, 최 작가, 문찬미, 미소, 김수관 교수, 그리고.....한 두 분 소식은 알지만 대부분 근황을 모른다. 글은 여전히 쓰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건강은 어떤지, 잘 살고들 있는지, 대체 어떻게 살고 계실까. 모두 나이가 꽤 들었을텐데 어떻게 나이들었을까. 가장 궁금한건 역시 지금도 글을 쓰는지, 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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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즘. 현실을 몽상으로 바꾸고 열병처럼 앓는 병. 엉뚱하게도 몽상을 삶의 전부로 여긴다. 눈앞이 아니라 저멀리 산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대로 "종이에 빵과 포도주라고 써놓고 먹고 마시는 자들". 20대 청춘시절이야 통과의례라치자. 하지만 30, 40, 50, 아니 60을 넘어가면 통과의례가 아니라 평생 앓는 지병이다. 그냥 편하게 혹은 책임을 덜기위해 취미니, 딜레탕트니 치부하지만 이쯤되면 단순히 취미차원도 아니잖은가. 뭔가를 평생 지속하거나 그 생각만으로 줄기차게 산다면 분명 중증환자가 아닐 수 없다. 보바리즘. 태어날때부터 숙명적으로 타고난 기질, 혹은 병. 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치유가 불가능한 병. 불행하든 행복하든 그냥 안고 살아야 할 지병, 보바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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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잘 지내시는가? 그간 어떻게 변했는지 두루 궁금하지만 전혀 소식 알 수 없으니.그래도 이 나이가 되니 우선 건강이 어떤지. 열정이야 다소 식었다쳐도 삶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한지. 아직 문학동네 주변을 서성대고 있는지. 그새 궁금증은 좀 풀렸는지. 돌아보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열정하나였달뿐, 지혜도, 깊이도, 체계도 모두가 결여된 결함투성이 생각들, 글쓰기아녔겠나?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긴, 결국 그대로겠지만, 다만 하나. 두루뭉술해도 대강의 계획은 있어야 했다네.

가령 말인데, 나의 지식과 앎을 어데까지 드러내는가. 어떤 방식으로 글쓰기를 전개할 것인가. 딜레탕트와 전문적 글쓰기 사이에서 포지셔닝은 어떻게 취할것인가. 문학, 혹은 에세이, 음악, 영화 등 모든 장르를 백화점식으로 아우를게 아니라 좁힐수는 없었는가. 이것저것 아는체할것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일이니 때로 코멘트를 자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든다네.

작지만, 뚜렷하게, 저력있게, 끈기있게, 묵직하게 뚜벅뚜벅 걸었어야했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순간의 감성으로 달뜨지 말아야했다는것. 분위기와 기분을 멀리했어야 한다는것. 즉흥에 취하지 말고, 균형미를 잃지 말았어야 한다는것. 더 공부하고 더 열심히 썼어야한다는것. 자칫 몸과 마음이 느슨하지 않도록 더욱 고삐를 졸라맸어야한다는것. 하지만 어쩌겠나.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인것을.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이게 전부인것을. 더 보여줄것도, 아는것도 없는 것을.

그대, 아쉬운대로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 하고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전히 호기심이 남아있다, 여전히 책읽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한 굳이 만나고싶지는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소식을 알 수 있고, 살아가는 방식을 짐작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젠 허세도 잘날것도 못날것도 무에 있겠는가. 부끄러움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사라지고 이대로 살다 어느날 스르르 긴잠에 빠져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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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어요  - 목필균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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