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터 뒷산에 아득한 솔숲이 우중충하게 그늘진 밑으로 마을 초가집들은 선경과 같이 은은히 안겨 있다.
조각달은 어느덧 서천에 기울어졌는데 딱따구리는 뒷산에서 울고 소쩍새는 동구 앞 느티나무 속에서 운다. 고요한 이 밤에 한줄기 시냇물이 은파를 번득이며 들 가운데로 감돌아 흐르는데 큰 내의 여울물은 바다같이 훤하게 남쪽으로 트여 있다." - 이기영의 <고향>(문학과지성사) 184쪽
이기영의 장편 <고향>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이니 나의 어린시절인 1960년대 중반과는 40년이라는 적지않은 시차가 있다. 따라서 물리적인 시대 배경은 물론이려니와 식민지 체제하에서 가난과 억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 20년대 농촌 풍경을 60년대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작가가 묘사하는 농촌의 자연 풍경과 농민들의 삶의 애환만큼은 거리를 뛰어넘어 어린시절에 보던 농촌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