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저녁,  낮에 읽던 이주동의 <카프카 평전>과 카프카의 중, 단편을 드문드문 읽다. 독서실엔 불과 몇 명, 연휴 시작이라 한산하고, 낮에 내리던 비바람 여전하다. 현관 우산통, 바람이 흩날리는 귤나무, 을씨년스럽다. <문학서재> 클릭하다. 내 글쓰기의 첫사랑인 문학서재. 대부분 2002년~2004년경에 쓴 글이니 50 전후무렵이다. 몸이든 글쓰기든, 열정까지 모두가 절정의 시기였다. 어떤 글은 부끄럽고, 어떤 글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글은 치기가, 또 어떤 글은 패기가 넘친다. 분명한건 열정만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새삼 알았는데, 주로 2002년도에 한정되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재를 출입했다. 꿈 많고, 한없이 아름다운 시절, 그래서 문득 떠오른 한 마디. 모든 분이 사랑스럽고 고마워라!  

소설가 이도원, 물빛 동인이신 이진흥 선생님, 김학원 선생님, 봄비, 우박, 최설운, 비, 행인, 나무, 우향, 양정영, 강은소, 김병희 기자, 이민숙, 꿈 없는, 이효순, 오경옥, 이영채, 오경희, 준원, 최 작가, 문찬미, 미소, 김수관 교수, 그리고.....한 두 분 소식은 알지만 대부분 근황을 모른다. 글은 여전히 쓰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건강은 어떤지, 잘 살고들 있는지, 대체 어떻게 살고 계실까. 모두 나이가 꽤 들었을텐데 어떻게 나이들었을까. 가장 궁금한건 역시 지금도 글을 쓰는지, 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지 등이다.

2
보바리즘. 현실을 몽상으로 바꾸고 열병처럼 앓는 병. 엉뚱하게도 몽상을 삶의 전부로 여긴다. 눈앞이 아니라 저멀리 산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대로 "종이에 빵과 포도주라고 써놓고 먹고 마시는 자들". 20대 청춘시절이야 통과의례라치자. 하지만 30, 40, 50, 아니 60을 넘어가면 통과의례가 아니라 평생 앓는 지병이다. 그냥 편하게 혹은 책임을 덜기위해 취미니, 딜레탕트니 치부하지만 이쯤되면 단순히 취미차원도 아니잖은가. 뭔가를 평생 지속하거나 그 생각만으로 줄기차게 산다면 분명 중증환자가 아닐 수 없다. 보바리즘. 태어날때부터 숙명적으로 타고난 기질, 혹은 병. 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치유가 불가능한 병. 불행하든 행복하든 그냥 안고 살아야 할 지병, 보바리즘!   

3
그대 잘 지내시는가? 그간 어떻게 변했는지 두루 궁금하지만 전혀 소식 알 수 없으니.그래도 이 나이가 되니 우선 건강이 어떤지. 열정이야 다소 식었다쳐도 삶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한지. 아직 문학동네 주변을 서성대고 있는지. 그새 궁금증은 좀 풀렸는지. 돌아보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열정하나였달뿐, 지혜도, 깊이도, 체계도 모두가 결여된 결함투성이 생각들, 글쓰기아녔겠나?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긴, 결국 그대로겠지만, 다만 하나. 두루뭉술해도 대강의 계획은 있어야 했다네.

가령 말인데, 나의 지식과 앎을 어데까지 드러내는가. 어떤 방식으로 글쓰기를 전개할 것인가. 딜레탕트와 전문적 글쓰기 사이에서 포지셔닝은 어떻게 취할것인가. 문학, 혹은 에세이, 음악, 영화 등 모든 장르를 백화점식으로 아우를게 아니라 좁힐수는 없었는가. 이것저것 아는체할것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일이니 때로 코멘트를 자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든다네.

작지만, 뚜렷하게, 저력있게, 끈기있게, 묵직하게 뚜벅뚜벅 걸었어야했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순간의 감성으로 달뜨지 말아야했다는것. 분위기와 기분을 멀리했어야 한다는것. 즉흥에 취하지 말고, 균형미를 잃지 말았어야 한다는것. 더 공부하고 더 열심히 썼어야한다는것. 자칫 몸과 마음이 느슨하지 않도록 더욱 고삐를 졸라맸어야한다는것. 하지만 어쩌겠나.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인것을.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이게 전부인것을. 더 보여줄것도, 아는것도 없는 것을.

그대, 아쉬운대로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 하고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전히 호기심이 남아있다, 여전히 책읽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한 굳이 만나고싶지는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소식을 알 수 있고, 살아가는 방식을 짐작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젠 허세도 잘날것도 못날것도 무에 있겠는가. 부끄러움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사라지고 이대로 살다 어느날 스르르 긴잠에 빠져들테니....

4

잘 지내고 있어요  - 목필균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칸투스 단원인 J씨와 트럼펫 연습. 아마추어 트럼펫터가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하기엔 너무 벅차다. 가령 1악장 경우 3옥타브 A음과 B음을 한 마디에 한 음씩, 때로 10여마디 가까이 한 호흡으로 연주 해야한다. 이것을 잘 하려면 먼저 3옥타브 고음을 수월히 내야하고, 어텍을 가볍고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뿐만이 아니다. 16분음표 붓점이 연속되는 이른바 '말타기 리듬'을 제대로 연주해야 하고, 2악장, 3악장은 그렇다쳐도 4악장은 강력한 주력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하다. 

숙고 끝에 한 주에 두 차례 J씨와 연습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내 제안에 J씨도 동의했다. 개인연습은 각자하고, 아르방 2권 듀엣곡을 통해 앙상블과 주력을 향상시키려는 거다. 대략 두 시간정도 연습을 하면 어느정도 효과가 있지않을까.

2
J씨와 점심을 마치고 오랜만에 한길문고에 들렀다. 책구경이나 하려던 심사였지만 어찌 구경만할까. 호주머니 탈탈털어 최근 출간된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권, 8권을 구입했다. 

내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언젠가 기어이 정복해야 할 세 개의 고봉(高峰) 가운데 하나다. 평생 숱한 책을 읽으면서도 이 세 작가의 작품을 한시도 잊어본적 없다. 뚜렷한 이유는 없다. 굳이 말한다면 등산가 힐러리를 흉내내, 그냥 그 책들이 있기 때문이랄밖에. 그렇다. 그냥 책들이 있기 때문이지 달리 이유가 없다. 한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 묘하게 호기심이 끌린적 있다. 유별난 지적욕구, 고급한 문학취향, 세간의 평가가 워낙 강력하다거나 '불멸의 고전' 운운도 한 몫 거든셈인데, 이것저것 알만한 나이인 지금은 호기심 따위에 끌릴처지는 아니다. 

3
<스완네 집 쪽으로>에 해당하는 민음사판 1권, 2권을 오래전에 읽은 바 있지만 더 이상 진도가 더 나가질 못했다. 귀가 후 '소돔과 고모라' 1권에 해당하는 7권을 펴들었다. 단숨에 1부 샤를뤼스와 쥐피앵의 동성애 관련 부분을 읽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슬슬 몰입이 된다. 저녁 식사후 7권을 잠시 덮고, 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를 다시 펴들었다. 과거 수십 차례도 더 읽었을 '프티드 마들레느 과자와 홍차 에피소드'를 다시 읽어보기 위해서다.

 최근 우연히 카프카를 시작했는데 프루스트가 다시 사정권에 들어오다니, 공교롭다면 참 공교로운 일이다. 책 읽는데 무슨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그냥 내 식대로, 내 방법대로 해보자. 일단 카프카는 그간 하던대로 이주동 교수와 막스 브로트의 평전과 작품을 병행하고, 프루스트는 직접 작품으로 들어가야겠다. 다만 순서대로 읽지 않고, 오늘처럼 1권과 7권을 병행하는 식이다.

마치 평탄대로를 걷다가 우연히, 참 우연히 아무 장비도 없이 히말라야 고봉을 등정하는 식이다. 물론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머리속으로 꾸준히 준비해온지도 모른다. 장비야 서가에 오래전부터 비치되어 있었으니 등에 둘러매면 그만이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올라가보자. 까짓 실패하면 죽기 전에 다시 시작하지 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가 그러는데 젊은시절 지인들과 학교 동창생들을 주욱 만나봤더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란다. 학생때나 젊은시절 하던 행동, 하던 짓을 고대로 하더라는것. 그럴리가? 하면서 다시 생각하니 나 역시 마찬가지.조직 생활 서툴고, 책과 음악 좋아하고, 방안퉁수마냥 집 밖을 잘 나가지 않고, 소심하며 변덕 심하고, 누구 만나기 싫어하고 대인교제 원만치 못한것 등등. 하긴 사람 성격, 행동이 나이든다고 쉬 바뀔리 없다.

달리보면 이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엔간이 나이들어도 인격과 품성이 쉬 고상해지지 않는다는것. 나이걸맞게 고상하기는커녕 품격이 더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 당장 눈앞만 보고 허겁지겁 내달린다. 욱 성질에 참을성도 없다.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그냥 단순하게 하루하루 산다. 의미고 뭐고도 없다. 정면에 대놓고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다. 깜박했다간 평생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채 산다. 바로 내가 이런 식으로 살고 있다. 어떻게 할까.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걸까? 정말 나이들어도 학생때, 젊은시절 고대로 변하지 않는건가?

물론 다짐 몇 번 한다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질리 만무하다. 섵부르게 각오해봤자 작심삼일 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던짓 그대로 하면 어쩌겠는가. 내일 죽더라도 노력은 해볼일이다. 쉽진 않겠지만 뭔가 내일은 좀 다르게 살아야 하지않겠는가? 아주 작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달라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정말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위해 배우고, 생각하고 또 배우고, 공부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을 두 번 완독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 읽은셈인데, 처음은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전집(세로쓰기)으로 나온 1976년판이고, 두 번째는 한국문학대계 중 한 권으로 출간된 두산동아판(1995년), 이어서 오늘 읽은건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한 최종 결정본(2015년 6판) 전집 중 한 권이다. 

<광장>이 현대한국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편이라는건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어서 나 역시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전집을 출간하기 전에 신구문화사판, 민음사판을 구입한적이 있을정도로 <광장>의 중요성을 일찌기 인식하고 있었지만 막상 작품을 꼼꼼히 읽고 이해한건 최근 들어서다. 

2
"우리 가슴속에서 불타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 그것만이 문젭니다. 이남에는 그런 정열이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뿐이어습니다. 서양에 가서 소위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무슨 판서 무슨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인민의 등에 올라앉아 외국에서 맞춘 아른거리는 구둣발로 그들의 배를 걷어차고 있었습니다. 도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본 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아버지 같은 애국자를 잡아 죽이던 놈들이 무슨 국장, 무슨 처장, 무슨 청장 자리에 앉아서 인민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백귀야행하는 도시 알 수 없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섹스와 재즈와 그림 속의 미국 여배우의 젖가슴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재빨리 외국인을 친지로 삼아서 외국으로 내빼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그 험한 사회의 혼탁에서 잠시 몸을 빼고, 아름다운 아내와 쪼들리지 않을 만큼 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간판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 외국으로 간 것입니다."   - <광장> 96쪽(2015년, 문학과지성사)  

비극의 출발은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친 승전국도 아니고, 프랑스대혁명의 주인공인 부르주아도 아닌, 단지 타의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점령국 미국의 식민지 백성이라는데 있다. 우리는 마르크스도 미국의 천민자본주의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게 아니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전수받았을뿐이다. 그리고 미군정은 점령자로서 식민지 남한을 자기 식대로 통치함으로써 오늘날 비극을 배태시켰으며, 비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북조선에는 혁명이 없었던 탓일 것 같았다. 인민 정권은, 인민의 망치와 낫이 피로 물들여지며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약소 민족의 해방자이며 영원한 벗인 붉은 군대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바스티유의 노여움가 기쁨도 없고, 동궁 습격의 아슬아슬함도 없다. 기요틴에서 푸르던 피를 본 조선 인민은 없으며, 동상과 조각을 망치로 부수며, 대리석 계단으로 몰려 올라가서, 황제의 안방에 불을 지르던 횃불을 들어본 조선 인민은 없다. 그들은 혁명의 풍문만 들었을 뿐이다."   - <광장> 150쪽

그렇다고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을 완수한 러시아는 오늘날 별수 있던가? 제아무리 혁명을 경험한 그들이라지만 오늘날 러시아는 독제자 푸틴의 파쇼체제에서 단 한 치를 벗어날 수 있었던가? 오늘날 러시아는 구체제와 뭐가 다를게 있던가?

3
<광장>의 몇 가지 특징. 1) 소설은 상당 부분 주인공 이명준의 생각과 회상에 의해 진행된다. 2) 과거의 회상이 현재와 교차되며 회상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스토리가 햇갈린다. 3) 현재와 과거의 회상 장면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때가 있다.  4) 책 뒤 해설에 이명준과 관련된 주요내용이 시간 순서대로 요약된 부분이 있다. 이를 참고하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5) 마치 시처럼 비유와 상징을 사용한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이들어 노인이 되면 삶의 연륜이 지긋하니 절로 지혜로워질까? 온갖 신산을 겪었으니 인생에 대해 아는게 많아질까?  하고많은 삶의 경험에서 세상사는 이치를 절로 터득할 수 있을까? 모든걸 해봤다고 아는체하는 노인들의 다변을 귀담아 들어야할까? 노인들은 정말 제대로 알고 말하는걸까? 60중반에 이른 나의 생각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노인들은 그냥 생각없이 나이만 먹는다. 대체로 노인들은 하루하루 뜻없이 살다가 속절없이 나이들어간다. 그러므로 노인들의 말을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 하얕게 머리 센 노인들의 머리카락, 깊게 주름진 눈길 속에 삶의 지혜가 가득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무가 오래되면 고목이 되거나 온갖 세월의 상처로 험상궂게 되듯이 노인 역시 그냥 나이들어 머리 센것에 불과해서 지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평생을 가도 자라지 않는 피터팬처럼 어떤 노인은 그냥 어린아이, 젊은이의 치기를 그대로 간직한채 겉만 늙어간다. 아무리 세상을 오래 산 노인이라도 매일같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코 피터팬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 생각없이 대충 대충 살다간 영원히 어린 피터팬이 되고만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배우는 일은 비단 젊은이만 하는게 아니라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죽을때까지 해야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데로 가는지.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간직하는지, 또 저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한다. 확실하다고 주장한 진리가 행여 편견의 결과는 아닐까? 줏대있게 내세운 그것이 행여 근거없는 고집은 아닐까? 설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신비한 인생살이의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자기가 본것, 자기가 생각한것의 한계내에서 겉만 모호하게 짐작하다 죽는게 인생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