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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물로 간한 배추더미, 양념 단지, 고무통, 걸레, 소쿠리 등 겨울김장은 엔간한 집안잔치다. 종일 걸릴것 같더니 오전에 끝났다. 이웃 수정엄마의 도움이 컸다. 돼지고기 수육에 소주 몇 잔. 느긋한 기분으로 커피 한 잔 곁들이다. 아내와 둘이서 오붓한 점심, 따스한 햇빛, 커피 한 잔, 그리고 소설읽기.
오전에 펴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는다. 학생시절의 독서는 단순한 지적욕구와 낭만이 뒤섞인 상태. 열정은 넘쳤지만 이해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이 시절의 독서가 가장 즐거웠던것 같다. 그리고 30대, 40대....이제 60중반. 지금의 독서는 젊은시절과 달리 몇 가지 다르다. 무엇보다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젊은시절에 비해 이해력은 깊어졌지만 세상살이에 부대낀 탓인지 감동이 사라졌다. 감동은 세상 때가 묻지 않을 수록 큰 법. 문학을 가까이하며 살 수 있다는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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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304호실 천정에서 누수된다고 급한 연락이 왔다. 얼른 달려가보니 환풍구틈으로 물이 줄줄 샌다. 배관이 노후되었나. 천정 일부를 열고 확인한 결과 세탁실 수도물이 넘쳐 배관을 타고 흘렀다. 수리야 천천히 하더라도 우선 누수되는 물부터 해결해야한다. 천정재 잘라내랴, 바닥 쏟아진 물 치우랴 한밤중에 북새통을 떨었다. 자정까지 응급 복구한 후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환풍구 부착, 도배, 청소까지 완료지었다. 김장 끝나고 휴식 좀 취하려다 난데없는 누수로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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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교대로 읽다. 칸투스독서회 토론작인 펄벅의 <대지>는 이틀정도면 읽을 수 있을듯. 독서회 차기작은 에밀리 브론테 <푹풍의 언덕>, 플로오벨 < 보바리 부인>, 스탕달 <적과 흑>, 발자끄 <고리오 영감>,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으로 정했다. 아쉽지만 괴테, 셰익스피어, 윌리엄 포크너, 헨리 제임스,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프루스트, 카뮈, 사르트르, 나보코프 등을 읽기에는 아직 무리다. 투르게네프, 체호프, 고골 등 러시아문학은 고려해 볼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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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동서부부와 함께 고창 선운사 1박 2일 다녀오다. 비록 하룻밤 짧은 여정이었지만 모처럼 처가 가족끼리라 더없이 오붓했다. 어른들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능하면 이런 자리를 더 만들면 좋겠다. 다음달은 대천 쪽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귀가길은 모항, 변산 해안도로를 따라 돌았다. 오랫만에 맛본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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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은 베토벤 <교향곡 7번> 4악장만을 연습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2악장을 잠깐 연습했다. 연습 끝날 무렵 1악장 중간까지 이어졌는데, 1악장은 워낙 독특한 리듬이라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실은 4악장 고음부가 더 문제지만 열심히 연습하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결국 끊임없는 연습만이 관건이니 연습, 또 연습에 매진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