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빈방 하나를 모임방 겸 음악감상실, 전기판넬이 깔린 다른 하나는 영화감상실로 개조했다. 독서실 이용자가 많을때는 혼자 방을 쓴다는게 사치스러워 고민되었으나 요즘처럼 방치된 빈방일 바에야 나라도 이용하는게 나을듯싶어서다.
비용 아끼려고 전지니, 광목이니 주접을 떨다가 결국 120인치 체인형 스크린을 8만원에 구입했다. 스크린 부착, 전원 연결하고, 15년전에 구입한 구형 프로젝터도 셋팅하고나니 제법 감상실티가 난다. 오랜만에 영화를 감상하려니 감개무량하다. 돌아보면 결국 독서실 시작하면서 모든 지적모임과 활동이 끊어졌다.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대략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나운동 지하 서재시절이었다.
600여개의 DVD가운데서 최종 선택한게 안제이 바이다의 <당통>. 안제이 바이다는 폴란드 태생의 좌파 감독인데 <당통>과 <재와 다이아먼드>를 오래전에 구입했지만 <재와 다이아먼드>만 감상한적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가 알베르 소불에 따르면 당통은 "서민적인 말투의 웅변가이며 수수한 차림새, 현실주의자이며,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동시에 술수에도 능하고, 배짱이 있고 향락적인 기질이며, 격정적이며 모질지 못한 인물" 이고 안제이 바이다는 영화 <당통>에서 "따뜻한 인간성으로 혁명의 냉정함을 녹여 버"린 인물로 묘사한다. 즉 안제이 바이다의 <당통>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기 보다 당통의 인간적인 면을 강하게 부각시킴과 동시에 긍정적인 혁명가로 묘사한다.
안제이 바이다의 <당통>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로베스피에르는 영화와 달리 역사적으로 "냉철한 성격과 대담한 용기, 예리한 통찰력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웅변, 탁월한 조직력과 완전한 공평무사 - 이러한 것들이 로베르피에르의 희귀한 개성이었다. 그의 개성이 이제 공안 위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는 상퀼로트의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되었다. 민중은 그를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인물이라고 불렀다." 라고 평가한다.(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콤뮨까지>, 까치)
하지만 노명식은 장차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추진될 '공포정치'를 서술하는 장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이란 합리주의자들이 믿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 역사도 그렇게 합리적으로 진보만 하는 역사가 아니다. 더구나 혁명과 전쟁과 내란이 뒤범벅이된 마당에서는 한결 더 인간 이성은 흥분과 광기에 압도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혁명....>106쪽)
그렇다면 안제이 바이다의 <당통>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된 당통은 실제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 다소 장문이지만 노명식의 저서 일부를 다시 인용한다.
"당통은 동인도 회사 뇌물 사건의 공범자이고 온갖 기회를 이용하여 거액의 돈을 모아 호사한 생활을 즐기는 부패 세력의 중심 인물이었다. 비요- 바렌느는 당통을 모든 반혁명의 초점이라고 규탄하였다. 당통은 로베트피에르에게 자기의 청렴과 애국심을 눈물로 호소하여 직접 자기의 구명 운동에 나섰다. 로베르피에르는 당통의 회개이 눈물을 보고 체포를 지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통 파는 베스터만을 중심으로 하여 로베스피에르 파에 대한 역습을 기도하다가 오히려 공안위원회에 체포되었다.
생쥬스트는 당통 일파의 뇌물 사건의 공범 관계만이 아니라 당통의 더로운 과거를 낱낱이 고발하였다. 미라보와의 음모, 루이 16세와의 암거래, 반역 장군 뒤물리에와의 음모, 지롱드 파와의 타협, 8월 10일 사건과 지난 5월 31일 가건 등 위기가 있을 때마다 취한 수상쩍은 행동들, 루이 16세와 왕족의 구명 운동, 적국과의 비밀 강화교섭의 교활한 반역 행위, 모든 혁명 수단에 대한 음흉한 반대, 파브라나 샤보 같은 사기꾼들과의 공범, 외국인 혐의자들과의 깊은 교제, 혁명 정부에 대한 비난 공격 등 그 고발의 내용은 과시 혁명의 역사 전부였다. 이 생쥬스트의 고발은 오랫동안 과장된 된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사료들이 증명하는 바에 의하면 모두가 진실이었다. " -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콤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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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속의 혁명, 혁명 속의 인간
안제이 바이다의 <당통>/ 임지현(서강대 사학과 교수)
안제이 바이다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겠다. 그러나 전후 폴란드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 '노동자 영웅'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버렸는가를 그린 <대리석 인간>이나 연대노조 운동을 그린 <철의 인간>은 실로 리얼리즘 영화의 압권이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당통>이 소개되었다는 데,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바이다의 영화 <당통>이 지닌 매력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대변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에 있다. 바이다는 몇 년 전 폴란드 신문 <가제타 뷔보르챠>와의 인터뷰에서, 연대노조운동에 참여하면서 운동 지도부의 다양한 성격들을 목격했고 그 혁명가 군상에 대한 운동적 반성이 아닌 인간적 반성이 이 영화를 만든 동기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그러니까 연대노조운동의 프리즘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을 재조명한 것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오늘날의 사람들로 비추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가 소불은 당통을 "서민적인 말투의 웅변가이며 수수한 차림새, 현실주의자이며,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동시에 술수에도 능하고, 배짱이 있고 향락적인 기질이며, 격정적이며 모질지 못한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섬세하게 연기한 당통의 이러한 성격은, 금욕적이고, 냉정하며, 맺고 끊는 게 확실해야 하는 혁명가로서의 덕성과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드파르디외가 연기한 당통의 자유분방한 태도는 부르주아적 퇴폐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간 당통이 혁명가 당통을 압도한다.
폴란드의 유대계 배우 프쇼니악은 차갑고, 선병질적이며, 금욕적이고 원칙주의자인 로베스피에르를 연기한다. 당통이 초대한 거창한 저녁식사에서, 민중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는 단호하게 호사한 음식과 고급 포도주를 거부함으로써 금욕적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특히 법정의 민중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사자후를 토해내는 당통과는 대조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국민공회 연설은 치밀하게 계산된 차가운 이성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부각되는 것은 인간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이다.
당통이 따듯한 인간성으로 혁명의 냉정함을 녹여 버렸다면,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인간성을 종속시켰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이미지이다. 이 영화에서 바이다가 선호하는 혁명가는 당통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바이다는 로베스피에르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큰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가 반혁명적이며, 역사를 왜곡했고, 로베스피에르의 역사적 의의를 깍아 내렸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다.
내 나이 20대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이들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평가에 동조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민중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고급스러운 맥주를 마실 수 있냐며 소주병에만 코를 박고 있던 치기어린 나로드니끼였고, 혁명만 일어나면 세상이 쉽게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순진한 낭만주의자였다. 필요하다면, 인간도 기꺼이 혁명에 종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만만하게 본 나이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 영화를 30대 후반에 처음 보았다. 세상이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갈 나이였고, 로베스피에르보다는 당통이 더 삶을 잘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40을 훌쩍 넘기고도 불혹은커녕, "나는 유혹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를 되새길 때가 많다. 완벽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보다 건달(?) 혁명가 당통이 내 마음에 더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혁명이 인간적인 약점까지 넉넉하게 보듬을 수 있었으면 하는 한가한 생각도 한편에는 있다.
성공한 혁명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가장 큰 약점은 인간적인 약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완벽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혁명가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왜 약점이냐고? 이들은 남들도 자신들처럼 혁명에 헌신적이고 완벽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혁명적 비극의 씨앗이 된다. 혁명이 인간을 전유해버리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냉정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보다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그래서 혁명가로서는 다소 어설픈 당통이 더 큰 혁명가라는 느낌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공한 혁명가보다 실패한 혁명가를, 역사가로서 더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는 데 내 고민이 있다. 영화 <당통>의 기억이 있는 한, 평생 따라다닐 고민이다. - 2003. 9. 1
* 후기
<당대비평>문부식 주간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이 글이 발표된 직후였을 텐데,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이거 자기 정당화하려고 쓴 거지"라고. 나는 내 자신보다는 그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받았고, 우리는 낄낄거리며 술만 들이켰다. 술이 깨고 난 아침, 장난기 섞인 우리의 대화 밑에는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막 도착한 London Review of Books에서 그 막연한 느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힐러리 민츠인가 하는 여성 역사가가 쓴 프랑스혁명에 대한 에세이 서평을 발견한 것이다. 남성 역사가들이 로베스피에르보다는 당통을 인간적으로 선호하는 이유에 대한 그녀의 통렬한 지적에 한방 크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지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트위드 재킷' 속에 숨은 남성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숫총각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금욕적이었던 로베스피에르에 비해, 남성으로서의 세속적인 즐거움을 모두 누렸던 당통이 남성 역사가들에게는 당연히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지적 앞에서 나는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깊은 속내를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바이다의 영화에도 그녀의 지적은 해당된다. 영화 <당통>의 원작이라 할 스타니스와바 프쉬비셰프스카가 쓴 연극대본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헌사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지어 프쉬비셰프스카는 로베스피에르가 죽은 나이인 36세에 거의 의도적으로 굶어 죽었다고 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다는 당통을 부각시킴으로써, 원작자의 의도를 뒤집었다는 것이 힐러리 민츠의 비판 요지였다.
물론 내 자신도 그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점에서, 내 안에 감추어진 남성성은 뿌리칠 수 없는 원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나의 거친 남성적 시선이 포착하는 일면의 진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완벽한 이상주의자일수록 자기 자신만이 인민의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능력을 갖고 있으며, 옳을 수밖에 없는 그 판단에 따라 인민에게 자유롭거나 행복한 삶을 강제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인민의 뜻에 거슬리더라도 올바른 자유와 행복을 강요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단 로베스피에르뿐만 아니라 크롬웰이 그랬고 레닌이 그러했다. 나는 위의 글에서 사실상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성의 기획을 밀고 나아가는 이념의 순수주의가 가진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힐러리 민츠가 남성 역사가들에게 걸었던 남성성의 불순한 혐의에서 내가 자유롭다는 변명으로 이 사족이 읽혀지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