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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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


꼭 필요한 일이다. 사회를 유지하는데, 또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노동이다. 그런데 이 '돌봄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 된다.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여서는 안 된다. 그냥 당연한 듯이 존재해야 한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 고마움을 표하기보다는 이상하게 비난이 앞서기도 한다.


왜냐고? 그들이 눈에 보일 때는 바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때이기 때문이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이대로는 돌봄이 지속될 수 없겠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아니다. 자신들의 권리가 아니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권리'라고 해야 한다. 그들의 권리가 침해당할수록 돌볼 수 있는 권리가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보일 때 그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그동안 한 '그림자 노동'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꼈을텐데 그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냥 당장 자신의 불편함만 볼 뿐이다.


그래서 돌봄 노동은 역설적이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돌봄 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중에서 간호사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그것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상황을 자신의 경험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고,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힘든 그런 상황인데도 처우는 개선되지 않는 현실.


중환자실에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2명인 경우가 복받은 경우라고 하는데, 한 환자에게 일이 생겼을 경우엔 간호사 한 명으로는 치료할 수가 없어서 최소 3-4명의 간호사가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그런데 만약 2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중환자실에 있는 간호사들이 또 투입되어야 하고, 나머지 중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인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좋다고 하는 병원에서도 이런데 한 명의 간호사 당 중환자 3명이상이면 어떻게 될까?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할까? 또 간호사들의 업무를 이렇게 극한까지 끌어올린다면 과연 제대로 된 돌봄이 가능할까?


간호사들이 건강하고 편해야 환자들도 건강하고 편해질 수 있다. 세상에 돌봄을 하는 사람이 먼저 쓰러지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떻게 돌봄을 받는 사람이 치유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지...


간호사를 더 많이 고용하면 병원 운영이 지장을 준다? 글쎄? 병원이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존재하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환자를 돈을 물어오는 고객으로 생각한다면(물론 영리병원은 그런 목적으로 존재할테다. 영리병원 이야기는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과연 의료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운영에 필요한 이익은 거두어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병원들이 '장기려' 박사와 같은 사람들이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공공의료기관은 확충해야 한다. 이제 겨우 5%정도가 공공병원이라고 하는데(210쪽 참조), 이는 적어도 너무 적다. 이를 확충해야 한다. 여기에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10년을 근무하지 않고 퇴직하는 간호사가 속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간호대학을 나온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일선에서 간호사는 부족한 현실. 그래서 외국인 간호사를 고용하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예전에 독일로 파견간 간호사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파견 간호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왜 간호사들은 많은데 실제로 일하는 간호사들은 적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낼 수 있다.


이 책에서 김수련 간호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임간호사나 선배가 챙겨주지 않아도 밥 먹고 물 마실 수 있고 선배가 관대하지 않아도 실수 때문에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설령 괴롭힘을 당하면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할 때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한 인력 구조를 방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충원을 요구해야 한다.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가진 간호사 대 환자 비율 법안을, 간호인력인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공공 병원을 더 세워야 한고,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247쪽)


이것이 무리한 요구일까? 돌봄을 제대로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인데 아직도 실현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돌봄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받는 돌봄이 의미가 있을까?


돌보는 주체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모두 자신의 권리를 누리면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간호사들의 열악한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 요즘 '보건의료노조'에서 파업을 하고 있다. 최소한 그들의 요구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간호사들과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으므로.


돌봄 노동자가 돌봄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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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3 -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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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홀로코스트에 이어 나라를 건설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온주의라고 나라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처음부터 힘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나라를 건설할 때도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은 이제 그들의 나라를 원하게 된다. 그들이 더 이상 학살을 당하지 않게 할 그런 나라.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관점들이 있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홀로코스트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 문제가 해결되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이제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은 일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여전히 세계 여러 곳에서 홀로코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증오 범죄들이 일어나고, 테러는 빈번하니)


하지만 반-유대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는 여전히 서로를 인정하는 관용과 포용보다는 밀어내는 배제와 배척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건국한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자신들의 영토를 더욱 확장해 간 사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영토를 많이 확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이유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지내온 역사에서 저자는 찾고 있다.


아랍인들이 쉽게 유대인들의 국가를 받아들이고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던 이유가 그들이 수천 년 동안 정복국가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말,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이유보다는 수천 년 동안 살아온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그 땅을 넘겨주는 것이 평화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전쟁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때 유럽 각국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런 반-유대주의를 집약해서 불을 붙인 사람이 히틀러라고 할 수 있고, 히틀러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러시아에서의 반-유대주의도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반-유대주의를 넘어 이스라엘은 건국되었지만, 그럼에도 세계 각지에는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살고 있다고 한다.


나라가 있다고 모두가 그 나라로 가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인데,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세계는 여전히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인류가 평화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런 평화로운 세계에 대해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대인의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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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2 -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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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유대 왕국이 멸망한 다음에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되는 유대인의 역사.


1차 세계대전 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각 나라에서 유대인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들이 겪은 고난과 성공은 어떠했는지를 다룬다.


유대인들도 유대교를 벗어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개종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개종하는 유대인과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는 유대인. 크게 보면 유대인의 역사는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개종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그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음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어떻게 유대인을 구분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들의 역사에서도 유대인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을테다. 수천년 동안 동화된 유대인들이 있었을테니.


하지만 동화되지 않은 유대인이 그들의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이들은 쉽게 탄압의 대상이 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박해를 받는 유대인들, 거주지 제한부터 시작해서, 재산 몰수는 물론이고 생명을 잃는 일까지 수시로 겪게 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결실이 나중에 시온주의라는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운동으로까지 나아간다.


시온주의 하면 모든 유대인이 찬성하고 동조했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대인 중에서도 상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시온주의를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런대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로 오면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이 그리 빈번하게(?러시아나 그밖의 나라에서는 수시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서양 나라에서 유대인을 학살하지는 않았다. 특히 영국에서는 유대인들이 보호를 받고 나름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어나지는 않게 된다.


빈번하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언제든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테고, 드레퓌스 사건을 중심으로 시온주의가 대두되고, 유대국가의 건설이 논의된다. 이 논의의 중심에 영국이 있고.


유대인들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보면 안 된다. 그들도 다양한 분파가 형성되었으며, 그 분파에 따라서 다른 의견과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분파의 다양성, 그리고 그들이 서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선택들. 2권은 그것을 다뤄주고 있다. 여기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들이 몇 나오는데... 유대인들이 그 사회에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거금을 지닌 재산가로서 유명하고, 디즈레일리라는 이름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둘 다 유대인이다.)


이렇게 자리잡은 유대인들이 각 분야에서 큰 활약을 펼치게 되는 것이 바로 근대인데... 2권에서는 이런 인물들을 다뤄주고 있다. (세계를 바꾼 인물로 프로이트와 아인쉬타인을 들 수 있으니) 그리고 이제 홀로코스트로 넘어가게 된다. 3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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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1 - 성경 속의 유대인들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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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갈등이 일어나는 곳. 엄밀히 말하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특정 지역에만 거주하도록 한 곳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동을 하더라도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서 이동해야 하고, 수천 년 동안 살아온 곳에서 쫓겨나 살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왜 그들은 그들도 엄청난 박해를 받았으면서 다른 민족을 박해할까?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인식한다면 다른 민족들이 그러한 일을 겪었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대인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첫권은 성경 속 유대인들 이야기다. 성경 속 유대인 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스라엘), 요셉을 비롯해서 모세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으며, 모세 이후에 여호수아, 또 다윗, 솔로몬을 다루고 있다.


유대인 왕국을 건설하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들이 멸망해 가는 과정을 성경 속 인물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기독교,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탄압을 첫권에서 다루고 있다.


유대 종교과 기독교가 양립할 수 없음을, 그리고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국가 공인 종교가 되면서 유대인들을 탄압하게 되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


이렇게 유대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서양 사회에서 박해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을 박해한 역사가 근대에 이르러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까지가 첫권의 전개인데, 이들을 보면 그들 역시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아랍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마인들에 의해서 멸망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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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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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이 재발간 되었다.  


오랫동안 구독을 하면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녹색평론을 내 정신을 깨우는 죽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남짓 휴간한 기간 동안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좀 무뎌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재발간하고, 다시 받아서 읽어보니 역시 녹색평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해의 공백을 이번 호가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좋겠단 생각. 기후재앙과 전쟁과 평화와 민주주의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기후재앙을 막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번 호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가 휴간을 하면 그 휴간이 종간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하는데,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녹색평론이 계속 발행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서나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을 한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나온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기후재앙과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쟁이 이리도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지구에게도 전쟁은 재앙임을, 그래서 전쟁은 기후재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 호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추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만 따지면 '그 양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데, 하나의 국가라고 치면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위치하게 된다'(94쪽)고 하니, 기후재앙에 전쟁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서 세계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호에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이번 정부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기후재앙은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를 보라. 평년보다도 한두 주 더 빨라지지 않았던가. 또한 기후가 어떻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후재앙이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고 (전쟁이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배출하니), 또한 농업에 대한 (기계식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정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기후재앙을 극복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기후재앙과 전쟁, 평화, 농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하승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대담에서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시골이라고 하는 데서는 읍이나 면이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하승수의 주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웬델 베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 농업이 우리 생명을 살리는 기본임에도 우리는 농업을 천시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학교에서는 농업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업주의와 농본주의를 대조하면서 농본주의가 미래를 이끌어갈 사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농업은 너무도 적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게가 아니라 아예 안 다뤄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상업계와 공업계를 생각하지 농업계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생명이 직결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서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도시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농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델 베리의 말을 이에 적용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T교육, 코딩교육, 전자교과서 등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본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기후재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게 될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녹색평론,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 한 해에 네 번은 만날 수 있을테니, 녹색평론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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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