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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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가정을 꿈꾸는 부부. 때는 1960년대. 이들은 아이를 많이 낳고, 전원주택에서 대가족의 삶을 꿈꾼다. 마치 중세의 귀족 가족들이 자신들만의 성에서 삶을 살아가듯이.

 

남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한다. 지금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는 많은 아이와 함께 살며 다른 가족들까지 불러 모아 잔치를 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생활의 모습이다.

 

그렇게 그들은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나, 둘, 셋, 넷. 이때까지만 해도 부인인 해리엇은 지쳐가지만 그래도 행복한 가정은 유지한다. 표면상으로 이들은 아직은 행복한 대가족이다.

 

시대는 이미 1970년대가 되었다. 중세의 삶에서 멀리도 온 때. 이 때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다. 이 아이는 임신 때부터 다르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왜 아니겠는가. 이미 1970년대는 인구 억제정책을 쓰는 때다.

 

많은 아이가 자랑인 시대가 아니라 부끄럼인 시대다. 이런 모습을 해리엇의 동생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는다는 얘기로 형상화된다. 정상성을 벗어난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아이는 보호를 필요로 한다. 명확하게 장애임이 표가 나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원하는 가족은 이렇게 표가 나는 상태는 아니다. 그냥 이들은 많은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행복은 지속될 수 없다. 다섯째 아이는 지나치게 크고 힘이 센 상태로 태어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아니 의사가 판단하기엔 정상범주에 드는 아이지만 이 가족의 기준에 다섯째 아이는 정상이 아니다.

 

아이에게 정상의 시선을 주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아이를 내치지 못하는 모성. 이 아이 하나로 인해 친척들이 멀어져 간다. 나머지 아이들도 하나하나 가정을 떠나간다. 남편 역시 가정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어머니인 해리엇 역시 가정의 행복에서 멀어진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다섯째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을 뿐인데, 가정이 해체되어 버린다. 그 해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집을 팔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가정 해체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다름이 비정상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버리든지, 다른 아이를 포기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느 선택도 행복한 가정이 될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것은 이미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름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회, 이미 정상의 범주를 정해놓고, 그것에서 벗어난 아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아이는 정상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오지 않고,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오히려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자꾸만 어긋나는 관계... 가족은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 하는 것인데, 다름을 배제로 바꾸어버리는 순간 이 가족은 깨질 수밖에 없다. 해리엇이 모성으로 아이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 모성을 다른 가족들은 자신들에 대한 배제로 받아들이지만, 해리엇조차도 다섯째 아이(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섯째 아이인 벤은 가족을 해체한 아이, 남과 다른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아이에게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지 않는다. 소설은. 그게 더 소설답다. 결론은 없다. 이 결론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름을 우리는 배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다름이 있는지... 그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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