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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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려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말을.

 

스투디움이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푼크툼은 개별적인 이해하고 한다. (19쪽)

 

둘은 상반될 수도 있지만, 상보적이어야 한다. 일반적 해석을 무시한 개별적 해석은 독단에 불과하고, 개별적 해석을 하지 못하고 일반적 해석만을 따르는 일은 모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중권의 책들이 그렇듯이 읽기에 편하고, 명쾌하다.

 

그를 우리 시대의 입담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입담이 글로도 잘 나타나고 있으니, 그는 글과 말을 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목적이 작품을 읽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읽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대중을 예술적 문맹으로 가눚하고 그들에게 작품을 읽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스스로 읽도록 자극하는 것이리라.

작품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은을 제기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 (18쪽)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그림들을 '생물'로서 느끼도록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도 읽으면서 그림에 대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그림에 대한 해석이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음을 조르조네의 '폭풍우'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해석이 무려 스물여덟 가지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이 책의 '해석이 바벨탑'이라는 부분을 읽으면 될 것이고.

 

이렇듯 일반적인 해석과 개별적인 해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또 그림에 대해서 이거다라고 단정짓지 않고,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게 안내해주고 있다.

 

제목이 된 '교수대 위의 까치'라는 그림에 대해서도 이런 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림에 대한 읽기 방식을 배울 수도 있고, 또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도, 작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스투디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푼크툼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그런 나만의 그림 읽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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