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과의 만남
EBS 화인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미술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그것도 주로 서양의 미술을 보다가 왜 우리나라엔 서양처럼 이렇게 화려한 채색을 하지 않았을까? 색깔이 있다고 해도 너무도 단조로워 오히려 흑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묵담채화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과연 색채에 무심했던가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나라가 성리학의 영향으로 수수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자연과 조화되는 삶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체가 칙칙한 흑백의 세상은 아니었을테고, 상류층들의 옷들은, 왕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그림이 너무도 없다는 사실에, 서양화들을 보다보면 우리나라 그림들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안 그린 건지, 못 그린 건지, 아니면 색깔이 변색이 되어 남아 있찌 않은 건지... 유화라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 과거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후기 세 명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이 이름은 사실 처음 듣는다. 내가 EBS다큐프라임을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던 인물이다)의 그림에서도 서양의 그림에 나타나는 그런 화려한 색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서는 신윤복은 조선의 색감을 살린, 채색의 절정을 이룬 조선의 색을 살린 화가라고 하지만, 그의 색깔은 서양 그림의 색깔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 없다. 이 단조로움 자체도 예전의 그림에 비하면 엄청 진일보한 것이라고 하지만.

 

특히 간송미술관에서 원본을 보았을 때도 색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조명 탓이든, 아니면 색감을 못 느끼는 내 눈 탓이든, 나에게는 그저 그런 색으로만 보였는데... 조금 진하고, 화사하다고 할 정도에서 머물렀을 뿐.

 

그렇다면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그림은 화려함을 뽐내기보다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람의 정신을 드러내는데 있지 않았을까? 그림에서 정신의 높이와 깊이를 발견해내려고 했던 선인들의 그림 감상법이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데...

 

풍속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당시의 풍속을 모사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그림에 드러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아도 그냥 그 시대는 그랬구나가 아니라,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또 그 시대의 정신문화가 그림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즉 인물들이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다. 그것이면 됐다.

 

거기다 일반 서민들의 옷은 그야말로 흑백이었을 터. 그러니 김홍도의 작품에서는 색채가 미약하다고 투덜거릴 일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태도, 그들의 마음을 느끼면 된다.

 

그것을 이 책은 김홍도의 그림 기법과 더불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는 대상이 다르다. 그는 주로 기생들을 그리고 있다. 기생들의 옷은 서민들에 비해 화려하다. 화사하다. 그러니 신윤복의 그림에는 색채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화사한 모습 속에서도 무언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림을 통하여 기생들과 양반들의 생활 내부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의 그림 기법은 요즘 인테리어 기법을 생각나게 할 정도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가 색채 뿐만이 아니라 구도에서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두 사람의 화가 이야기인데, 김준근으로 넘어가면 도대체 누구야? 하고 말 정도다. 또 그의 그림은 풍속화라기 보다는 안내그림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풍속그림을 그렸기에 배경은 생략하고 풍속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풍물은 있으되, 사상은 없는... 무언가 그림 뒤로 들어가 더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고 있다.

 

개항이라는 시기에 상품으로 외국인에게 넘기는 그림들이니 가능하면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우리나라 풍습의 핵심을 짚어냈으니, 그런 점에서 김준근의 그림이 의미가 있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그림에는 상업의 냄새가 너무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이면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과 김준근 그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록 서양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들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우리 그림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서양과 추구하는 정신세계가 달랐던 우리나라에서 서양화와 비교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떨쳐버리려 한다. 우리 그림은 우리 그림대로 그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글쓴이는 말한다.

 

풍속화는 그들의 삶이며 예술이며 무기였다. 그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속에 뿌리 내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는 실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 배어 있다. 필시 그들의 풍속화가 오래도록 우리 주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 역시 이것이리라. (이 책 종(終)에서)

 

그런 점에서 쉽게 조선 후기 풍속화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마 영상으로 보면 책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어떤 것을 볼 수도 있겠지.

 

삐딱한 덧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시종일관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책에서 저자라고 하면 EBS 화인 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책의 출판서지를 보면 글 서주희 · 화인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은 김광호 피디라고 한다.(책 표지 접힌 부분에 보면)

 

아마 글을 작가가 좀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썼나 본데... 즉,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나'라고 하지 말고, '우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김광호 피디 책임 하에 화인 제작팀이 제작하고, 글은 서주희가 씀이라고 먼저 밝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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