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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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이 말은 효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므로 감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처음이라는 말. 맞는 말이다. 부모에게 하는 효도가 별것 아니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효도가 된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온통 자식에게 신경이 간다. 그러니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효도의 처음이 된다. 공부, 출세... 이것은 나중일이다. 

 

그런데 이 말을 정면에서 거역하는 일이 일어났다. 조선말에, 아니 대한제국 시기라고 해야 하나... "단발령"

 

우리나라가 개화를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명령, 그것도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반대하는 백성들의 머리를 강제로 자르기도 했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야 했던 그 어마어마한 재앙.

 

아마도 우리 조상들에게 이 "단발령"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재앙이었으리라. 조상을 배신하는, 부모를 욕되게 하는 그런 일. 하여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지키기도 했는데...

 

몇 십년이 지난 뒤 세상은 다시 단발령이 난무하였으니.. 어른들에게는 장발 단속으로(이래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라 마라 하는 공권력은 그 나라 성인들도 진정한 성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미숙한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 바로 장발 단속령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학생들에게는 두발 규제로 나타났다.

 

단발령이 포고되고 머리를 자르는 사람이 '체두관'이었다면 몇 십년 뒤에는 경찰관이 또 학교에서 학생부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소설은 이런 점에 착안해서 내용이 전개된다. 주인공은 열일곱 살이 된 송일호. 그는 태성이발관 주인의 손자이고, 그의 고조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상투를 잘랐던 체두관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짧은 머리를 하고 지내야 할 태생이었던 셈.

 

그런 그가 두발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하다 정학을 당하게 된다. 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체두관 학생부장 '오광두'의 머리깎기를 보고, 그 비인간성에, 비교육적인 면에 반발해 두발 자유를 외치는 시위를 계획하지만 사전에 탄로가 나고...

 

학교에서는 정당한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학교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부모님 소환을 하고(이게 학교에서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 학교는 늘 '악법도 법이다'는 말과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일호의 아버지가 학교의 방침을 비판했다는 이유까지 가중치가 되어 정학 30일 처분을 받는다.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시위 계획에 정학 30일이라.. 이는 괘씸죄가 추가된 것일텐데...문제는 주인공이 이발소집 자손이라는 것. 조상은 단발령을 철썩같이 신봉하고 실행했던 사람이라는 것. 현재의 이발소 주인인 할아버지 역시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그 집 자손이 두발 규제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은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중재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 20년 전 집을 나가 세계를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 그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로 인해 아들은 송일호는 더 먼곳을 볼 수 있게 되고...

 

재개발 문제가 겹치면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고 결국 할아버지의 결단으로 학교는 두발 문제를 재심의하기에 이른다.

 

열일곱살의 털... 제목으로 이상한 생각을 하겠지만 이 때의 털은 바로 머리카락이다. 그리고 이 머리카락은 바로 청소년의 신체다. 그들의 몸이다. 또 그들의 권리다. 그들의 자유다.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하면서도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너희는 한참 공부해야 할 때니까.. 또 이것은 학교 규칙이니까라는 말로 합리화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또 여기에 예전에는 한 학교마다 꼭 존재하는 별명 '미친개'가 있지 않은가. 이 작품에서는 현대에 맞게 영어로 '매드 독(mad dog)'이라는 교사가 등장하고, 아이들은 요즘 추세에 맞게 이를 줄여서 '매독'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들의 인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교사.

 

아이들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그런 교사가 등장하여 소설의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해주고 있다. 물론 그의 역할은 사건이 터지는 순간까지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런 인물의 역할은 중요해지지 않는다. 이미 사건이 터졌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었다는 이야기고... 그는 다음부터는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여 열일곱의 털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고, 청소년들의 성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많은 시,도에서(비록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기껏 제정된 청소년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청소년 인권조례를 제정하여 학생체벌 및 학생의 신체표현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으니... 그렇게 지방자치 조례로 학생들의 털에 대한 자유가 명문화되기까지는 이 소설에서 전개된 그런 사건들이, 그런 싸움들이 수없이 많았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은 이렇게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쪽으로 사회가 변해가고 있음을, 아니 변해가야 함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렇게 '털'에 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학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규제되고 있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는 노력을 하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지켜야 함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럼에도 내용 전개가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이루어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하늘을 보는 법을 배웠고, 할아버지를 통해서는 땅에 발을 딛는 법을 배운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청소년들은 이상은 높고 멀리 하되, 실천은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해야 함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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