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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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일이 떠올랐다.


하나는 미국이 7월에 한국은 인신매매 방지 2등급(2류)국가라고 분류했다는 기사.


또 하나는 장애인차별쳘폐연대에서 벌인 지하철 타기 운동과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과의 토론.


왜? 이 책의 주인공 주디스 휴먼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장애인이었기 때문.


그가 살아온 환경이 우리나라와 겹치는 장면도 많았고, 그가 하는 말 중에 지금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 많지만, 우리가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라고 여기고 있는 미국이 장애인에 대해서 차별을 하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특히 미국이 지니고 있는 오만함이 이 책에 잘 나와 있어서 다른 나라들을 인권 후진국이니 인신매매 방지 2등급 또는 3등급 국가니 규정짓는 그들 정부의 행태를 인식할 수 있어서.


유엔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해서 각 나라에서 비준을 해서 실행을 하는데 미국은 오만하게도 비준을 하지 않는다. 이 책 저자인 주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비준을 실행하도록 움직였지만 결국 비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 나라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처럼. 


미국은 일반적으로 유엔의 협약을 비준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 없이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84쪽)


현재까지 177개국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2022년 2월 현재 184개국이 비준했다-옮긴이) 우리도 머지 않아 비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현재는 2017년이다. )(291쪽)


이런 나라가, 수많은 총기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나라가, 경찰이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총을 쏘아 죽이는 나라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은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둥, 인신매매 방지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재단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겠다고 하니,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나라다.


이런 태도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첫번째 말한 기사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주디스 휴먼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교육, 이동, 생활을 위해서 투쟁했던 과정때문에 떠올랐다. 


지하철 타기 운동이 과격하다고, 왜 출근시간에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방식은 비문명적(비문명이라는 말은 불법이라는 말을 에둘러 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불법보다는 비문명이 더 안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그렇다면 문명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또 그들을 보지 않으려 해도 소리내지 않고, 보이지도 말아야 하는 걸까. 법적인 행동, 그들 말대로 문명적인, 문화적인 행동을 아무리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소리를 들으라고, 좀 보라고 하는 행동 아닌가)이라고 몰아세운 전 국민의힘 당대표도 있었다. 그가 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그들이 우상으로 삼는 미국에서 벌어진, 그리고 그런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이 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읽었다면 비문명 운운하는 말을 할 수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애인들이 자신들만을 위해서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과 같이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인데... 그 목소리가 전달이 안 되니 눈에 보이는 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주디와 그를 비롯한 사람들이 권리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일도 그것이다.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 눈 앞에 나타나야 한다.


한데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이? 당시로서는 불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 앞에 나타날 수가 없으니... 도로를 점거하는 일, 차를 세우고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에 기어올라가는 일,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하여 자신들과 대화하게 하는 일, 의사당 건물까지 80여 개 되는 계단을 온몸으로, 남들은 오래 걸려야 몇 분 걸리는 그 계단을 몇 시간씩 온몸을 써가며, 다쳐가며 올라가는 일. 그렇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런 보여줌, 나타남에 불법(비문명) 운운하면, 그건 아예 눈에 띠지 말라는 말이다.


당신들은 장애인이니까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장애인이기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다. 주디가 어렸을 때 휠체어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벨을 누르지 못하고(계단이 있기 때문에) 문 앞에서 친구를 불러 함께 놀 때, 그때 어린아이들은 편견이 없었다. 주디는 본래 그런 애다. 그냥 함께 놀아준다. 못 하는 놀이가 없다. 그런 주디에게 낯선 남자애가 '너 어디 아프니?'라고 묻는다. 


자신 앞에 나타난 낯선 존재, 다름을 아픔으로 치환해서 묻는다. 다르다와 아프다. 아픈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나하고 함께 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때 받은 충격. 주디는 그러나 이 충격을 이겨나간다. 학교 입학을 거부 당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교사 자격증 수여를 거부당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꾸 그들 눈 앞에 나타난다. 혼자 힘들면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함께 그런 상황을 바꿔 나간다. 그렇다. 자꾸 보이게 해야 한다. 보게 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혼자만 끙끙 앓지 말고, 외쳐야 한다. 보여야 한다. 그러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기에.


장애인들만 그렇게 모이지 않는다. 비장애인들도 함께 한다. 장애인이 잘살 수 있는 사회는 비장애인도 잘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힘들게 사는 사회는 장애인들에게도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 이게 바로 문명이다.


또 장애인이라고 한 범주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장애인에도 청각, 시각, 지체, 인종, 성적지향성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은 그런 스펙트럼을 존중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들이 지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게.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했을 때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장애인들이 그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는 장면.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장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 소통의 길을 열어가는 장면들. 여기에 비장애인들까지 함께 해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그런 모습.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은 불법을 저질렀어. 그런 방식은 비문명적이야. 그러면 안 돼. 아무리 의견이 정당해도 방법이 불법(비문명)이면 안 되는 거야. 하면 될까? 그렇게 하기까지 들어주기나 했나? 그들의 존재를 보아주기나 했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오마바 행정부에서도 일했다. 정책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먼 길, 오랜 시간이 걸리 거라고. 그러나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기에.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미국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것은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토론과 회의를 거치며, 시간이 걸리는 견제와 균형의 방식을 따르기를 민주주의에 요구한다. 의사 결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을 검증하고, 납득할 만한 객관성을 보이며,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298쪽)


이 말,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다. 특히 집권을 한 사람,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불통 또는 자신의 주장을 밀고나가는 것이 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글에서 미국을 우리나라로 바꾸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민주주의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나라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정부를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꾸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디의 다음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회 안에서 전체 집단이 다른 사람들부터 분리될 때 민주주의의 구조는 약화된다. 서로 거리를 두고 분리되다 보면 이해와 공감에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불의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나라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면 불평등과 가난의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로 쉽게 돌리게 된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행동을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300쪽)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장애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나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디가 한 말, 혹 앞이 안 보인다고 희망을 놓으려는 사람에게, 솔닛의 말처럼 희망은 어둠일 수도 있으니..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종종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300쪽)는 주디의 말도 마음 속에 새겨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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