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집을 읽으면 가능성이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고정이 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들의 모습. 또 청소년들의 마음. 그들 마음이 하나가 아니고, 또 굳어있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딱딱함, 굳음은 죽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특정한 형태로만 있으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청소년에게서 생동감을 빼앗는 일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시집을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겠지만, 청소년보다도 어른들이, 기성세대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그들이 청소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문학을 통해야 한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청소년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우선 어른들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어른들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지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청소년과 직접 이야기하는 일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전달이 되거나, 또는 어른들 구미에 맞는 말을 늘어놓는 청소년들의 말을 듣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소년시집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의 내밀한 마음들을 상상을 통해 표현한다.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던 소소한 감정들을 시로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역할이다. 시인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을 표현해낸다. 


시인이 꼭 청소년일 필요는 없다. 청소년시라고 해서 청소년이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청소년의 마음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써야 한다. 그런 시들을 통해서 우리는 청소년의 마음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오은 시집을 읽으며 청소년들의 마음이라는, 그 마음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고, 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하며, 과거나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보게 됐다. 제목도 '마음의 일' 아닌가.


그런 청소년들의 무한한 가능성, 마음의 가소성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읽었다.


그리지 않아야 그려졌다


내가 쓰고자 했던 것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

그릴 수 없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도

쓰거나 말할 수 없다

온전하게는


창밖에는 나무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몇 분 뒤에 나도 나무 아래에 있을 수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을 맞으며

아, 행복하다

여기가 따뜻하구나

여기가 시원하구나

따뜻하면서 시원할 수 있구나

말할 수도 있다


현장의 나만 아는

그때의 나만 아는

내 몸에 새겨지고 있지만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는


나이테가 있다

지문이 있다


그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안에 있어야 보이는 바깥 부분이 있었다


내뱉고 나면 사라지고 말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꿈이 있었다


나는 아직 창 안에 있다

창 안에 있기에

백지 위에 한가득

창밖을 상상할 수 있다


오은, 마음의 일. 창비. 2020년. 초판 2쇄. 53-54쪽


청소년을 고정시키지 말자. 어떤 한 역할로 국한시키지 말자. 그들을 기대라는 이름으로 틀에 가두지 말자.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일, 그들이 '백지 위에 한가득 / 창밖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오은 시집을 읽으며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들, 청소년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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